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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측정불가(6)



“김태성 사장 말이에요. 일신상의 사정으로 사임했다고 해요.”
“그렇습니까?”
“들리는 얘기로는 피습을 당한 채로 발견됐대요. 그런데 특이한 게, 외상은 전혀 없는 대신 정신이 거의 붕괴됐다더라고요.”
“그랬군요.”
“경찰 쪽에서 수사 중이긴 한데 피습자에 대한 단서 하나 찾지 못하고 있다더라고요.”
“그렇군요.”
척.
두 손을 책상 위에 얹은 차수린이 눕다시피 의자에 앉아 있는 심혁진과 시선을 맞추었다.
“말 빙빙 돌리는 취미는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뭐, 그쪽이 수린 씨답기는 하죠.”
“업무 중엔 사장이라 부르세요. 혁진 씨 짓이죠?”
심혁진은 빙긋 웃었다.
“감사 인사를 하려는 거면 됐습니다. CS 식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니.”
“감사라고요?”
“우리 헌터를 해치려 들고 이 회사를 똥통에 처박으려 한 놈에게 심판을 내렸잖습니까.”
“……김태성은 혁진 씨를 못 본 건가요?”
“아뇨. 주구장창 봤습니다. 일부러 눈높이를 맞추고서 두들겼으니.”
“두들겨요?”
“예. 두들겨 패고 치료하고 다시 두들겨 팼죠.”
차수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피해자한테 뻔히 얼굴을 보이고서 구타했단 말인가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장님 말마따나 그놈의 정신은 풍비박산 났으니.”
“만약 김태성이 정신을 차린다면요? 기억이 되돌아오기라도 한다면 혁진 씨도 우리도 끝장이에요.”
“그럴 일 없습니다.”
“어떻게 그리 장담할 수가 있죠? 김태성은 태성 매니지먼트 사장이기에 앞서…….”
“대평 그룹 실세의 아들이라더군요. 전형적인 금수저.”
“알고 있었어요?”
“놈이 직접 말하던데요. 자기가 누구 아들인지 아느냐고.”
대평 그룹은 ST 그룹에 맞먹는 초거대 기업.
김태성의 큰아버지인 김대평이 회장으로 있고, 김태성의 아버지 또한 상임 이사로 있었다.
“그럼 그들이 충분한 권력과 능력을 지녔다는 것도 알겠군요. 김태성의 정신을 회복시킬 아이템이나 능력자를 구하는 건 시간문제일 거예요.”
“그래서 제약을 걸어 뒀습니다.”
“제약이라고요?”
“예.”
심혁진의 클래스는 사이킥 마스터(Psychic Master).
기본 클래스인 사이커(Psycher)의 최종 승급 단계라 할 수 있었다.
사이커를 풀어 말한다면 결국 초능력자.
물론 헌터 직종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초능력 계열의 클래스 또한 수십 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염력(念力)과 정신 조작을 주특기로 삼은 것이 사이커 계열.
심혁진의 경우엔 그중 염력 쪽에 초점을 맞추어 단련을 했다.
성격 자체도 직선적이었으며 아케론의 환경 역시 정신계 스킬보다는 염동계 스킬을 키우기에 적합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심혁진의 정신계 능력은 최상위.
극상이라 할 수 있는 염동력에 비해 떨어질 뿐, 객관적으로 보자면 맞설 이가 거의 없었다.
“혹시 우리나라에 S랭크 정신계 능력자가 있습니까?”
“네?”
갑작스런 질문에 차수린이 두 눈을 깜빡였다.
“아마도… 우리나라엔 없을 거예요.”
“나도 찾아봤는데 그런 것 같더군요.”
“찾아보다니, 어디서요?”
“인터넷. 구걸인지 개골인지 하는 데서요.”
“…….”
“하여간 거기서도 그렇다 하고 사장님도 그렇다 하면 그런 것이겠죠.”
“자, 잠깐만요. 너무 확신하진 않는 게 좋아요. 인터넷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완벽하진 않단 말이에요.”
“분명한 건 그놈 일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실현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내다보고 안배를 해두었으니까요.”
“원래 성격이 그렇게 자신감 과잉이에요?”
“완벽주의라고 해주시죠.”
차수린이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이제 와서 따져 봐야 무의미하겠죠.”
“역시 사장님이라 계산이 빠르군요.”
“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만에 하나, 물론 혁진 씨는 그렇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지만…….”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면 차 사장님과 희수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팔짱을 낀 차수린이 심혁진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정말이에요?”
“이 진지함밖에 없는 표정을 보면 모른답니까?”
“한쪽 입꼬리가 씰룩거리는데요.”
“눈의 착시입니다.”
“착시라는 게 그런 식으로 벌어지는 건 아닐 텐데요?”
“그래서 믿지 못하겠단 말입니까?”
“아뇨.”
차수린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혁진 씨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믿기로 한 것도 제 결정이니, 끝까지 믿어 볼 생각이에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대꾸한 차수린이 나갈 채비를 갖췄다.
“어디 가십니까?”
“미팅이 있어요. 도그마 레이드 이후로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네요.”
“연락이라면…….”
“헌터들이에요.”
차수린이 대답했다.
“우리 회사 소속 헌터들요.”

* * *

현대 사회의 헌터 길드는 대부분 기업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한 경향은 규모가 클수록 강해져, 대형 길드의 경우엔 어지간한 대기업 못지않았다.
혹은 대기업과 어떤 형태로든 연동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고.
한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세레니티 길드 역시 마찬가지.
CS 그룹의 자회사 형태로 존재하는 세레니티는 엄연히 상장까지 된 주식회사였다.
그 말은 곧 상황에 따라 사주의 가치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뜻.
나아가 주주들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세레니티 길드의 수뇌부 회의는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제가 보고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길드 임원들 앞에 선 윤준태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말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처벌을 내리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캬, 역시 준태야. 말 하나는 청산유수란 말이지.”
머리의 절반을 금발로 물들인 사내가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머리도 어쩜 저리 잘 돌아가나 몰라. 우리가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다잖아. 멋있어. 아주 상남자가 따로 없단 말이지.”
“표 선배, 저는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준태야?”
싱글거리는 반금발 사내의 눈이 돌연 파충류의 그것처럼 축소됐다.
“네 형이 뒤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어떤 병신머저리가 널 처벌하겠다고 나서겠니. 응?”
“이번 일은 형과는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표창후 선배님.”
“넌 그렇게 말하겠지. 우리는 아무도 그렇게 이해 안 하겠고.”
“…….”
“좋든 싫든 넌 윤준걸의 하나뿐인 동생이야. 날 때부터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놈이라고.”
냉소적으로 혀를 찬 표창후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착해 빠진 양 그렇게 굽실거리지 말란 말이다. 오글거리고 역겨우니까.”
“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사과고 뭐고 하지 말라니까?”
“그쯤 하면 됐다, 표창후. 준태 너도 너무 그럴 것 없다.”
두 사람을 중재하는 이는 30대 중반의 장한이었다.
“ST쪽 보고도 그렇고 정부 쪽 얘기도 그렇고, 이번 사태는 준태로선 불가항력이었어. 그건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거다.”
“예정대로 내가 갔으면 아무 일 없었을 거다.”
“그건 모르는 거다, 표창후.”
장한의 말에 표창후가 울컥했다.
“이봐요, 덕수 형. 지금 그 말, 내가 미덥지 않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네가 아니라 내가 갔어도 외부 헌터들의 피해를 막진 못했을 거다.”
“형이야 그렇겠지. 난 아닌데요?”
“그럼 그렇다고 치지. 어쨌든 그쯤 해둬. 이 회의의 목적은 준태를 갈구는 게 아니니 말이다.”
“덕수 오빠 말에 찬성.”
원탁 한 편에 앉아 있던 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창후 오빠는 작작 좀 하면 좋겠네요.”
“뭐가 어째?”
“지금 자사주 가치 떨어져서 심통 난 것뿐이잖아요. 오빠도 준태 잘못 아닌 거 잘 알면서.”
“쳇.”
“떨어진 주가는 다시 오르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그쯤 해둬요. 보는 내가 다 창피하니까.”
“뭐가 어째? 강주아, 너 요즘 좀 잘 나간다고 위아래도 없나 보다?”
“내가 뭐 요즘만 잘 나갔나요? 그리고…….”
원피스 차림의 미녀, 강주아가 세련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원래 오빠보단 내가 한참 위였잖아요?”
“뭐? 이런 씨…….”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하면 혓바닥을 잘라 버릴 거예요.”
표창후가 이를 악물었다.
‘강주아……!’
두 손만으로도 분질러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가녀린 손목,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목덜미와 쇄골 라인, 전체적으로 희면서도 육감적인 몸매와 단아한 미모.
헌터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빼어난 외모의 그녀는, 세레니티 내에도 몇 명 존재하지 않는 S랭크의 헌터였다.
더군다나 클래스는 그랜드 위저드(Grand Wizard).
광역 화력만 보자면 세레니티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트리플 A랭크 마스터 아처(Master Acher)인 표창후도 최상위권의 헌터였으나 그녀에 미치진 못했다.
‘두고 보자.’
표창후가 훗날을 기약하며 조용해지자 강주아가 손뼉을 짝 쳤다.
“계속하시죠, 덕수 오빠.”
“흠흠, 그래.”
임원 회의의 주최자인 박덕수가 헛기침을 했다.
“모두들 알고는 있겠지만, 도그마 차원의 블러드 캐슬엔 결계가 걸려 있었다. 그것도 차원 전역과 연동된 초강력 결계가.”
“다 아는 얘기니까 넘어가시죠.”
“그러지. 어쨌든 준태의 보고나 다른 길드원들의 증언만 봐도 알 수 있듯, 그 결계를 부순 건 공격대가 아니었다.”
“뱀파이어 로드가 직접 풀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희박하다고 봐야 할 거다. 암만 명운의 제약이 있다고 해도 다 잡은 고기를 놓아준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
“게다가 결계가 걸렸다는 사실부터가 명운의 제약이 약해졌단 뜻이기도 하고요.”
“주아 말대로다. 그래서 나는 잠정적으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제삼자가 있었다.”
표창후가 끼어들었다.
“그날 우리 길드나 다른 헌터들 외에도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
“앗, 내가 먼저 말하려 했는데.”
강주아가 농담조로 중얼거렸다.
표창후는 그녀를 외면한 채로 말을 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당히 강한 놈이야. 결계에 대해 해박하기도 하고.”
“그래.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시작할 생각이라니요, 덕수 오빠?”
강주아의 질문에 박덕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정도의 실력자가 이 나라에 있는 거라면, 응당 찾아서 스카우트해야지.”
“흥. 손을 봐주는 게 아니라 말입니까?”
원칙대로라면 정체불명의 제삼자는 세레니티를 방해한 것.
적법한 사냥터를 무단으로 침범한 거라 봐야 했다.
사냥터의 소유권 분쟁은 길드간 분쟁의 발발 원인에서 제 1순위로 꼽힐 만큼 민감한 문제였던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창후 네 말대로 해야겠지. 하지만 이번 건은 특별하다고 판단했다.”
“형이? 아니면 준걸 형이?”
“길드 마스터가.”
세레니티 길드의 마스터.
윤준걸.
윤준태의 형이기도 한 이가 언급되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표창후는 물론이고 강주아 역시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일단은 그렇게들 알고 있어. 주가는 주아 말대로 조만간 회복될 테니 걱정들 말고.”
“그런데요, 덕수 오빠.”
“뭐지, 강주아?”
강주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빠 말대로라면 그 정체불명의 헌터는 ST랑 우리 쪽 보안을 뚫고서 사냥터에 침범한 거라는 말이잖아요?”
“그렇지.”
“그럼 그 헌터의 랭크는 어느 정도인 거죠?”
“……일단 지금으로선.”
박덕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측정불가라고 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