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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측정불가(5)
“뭐야?”
김태성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심혁진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까닭이다.
그가 보기에 심혁진은 아무 것도 아닌 놈이었다.
기껏해야 차수린 밑에서 일하는 잡놈일 뿐.
끄나풀이라는 표현조차 아까운 버러지가 아닌가.
그런 주제에 자신과 맞먹는다는 듯이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사무실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분노보다는 황당함이 더 컸다.
‘대체 이것들은 뭘 한 거야?’
심혁진 본인보다도 놈을 사장실까지 들여놓은 직원들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평소라면 스피커폰으로 보고부터 할 터.
아니, 그 전에 앞서 개나 소나 맘대로 사무실 안에 들일 리도 없었다.
‘한데 이것들이……?’
김태성은 심혁진을 무시하고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었다.
심혁진은 그가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뒀다.
“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벌컥 열린 문틈으로 일갈하는 김태성.
이윽고 그의 안색이 굳었다.
“뭐, 뭐야?”
문밖에 있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책상과 칸막이들, 그 사이로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어야 할 직원들이 없었다.
김태성 본인이 직접 고른 파스텔 톤의 벽지가 발라진 벽면, 곳곳에 놓인 값비싼 화분과 허세 섞인 장식물들도 없었다.
사무실 자체가 통째로 날아가고 남은 것은 우중충한 빛깔의 공간뿐.
흔히 비가 내리고 난 카센터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기름 웅덩이 같은 공간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이런 씨앙!”
보통 공간이 아님을 인지한 김태성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심혁진을 돌아본 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뭐, 뭐야! 너, 대체 뭐야?”
“뭐긴, CS 매니지먼트의 매니저지. 맡고 있는 헌터는 아직 한 명뿐이지만.”
“씨발, 당장 이 장난질 그만두지 못해? 나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
“그런 협박 갖고는 여고생 하나도 울리지 못할 것 같은데?”
심혁진은 김태성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여자애 하나 해치우자고 우락부락한 녀석들을 셋씩이나 보내는 놈이나 할 법한 수준이란 말이지.”
“이익……!”
김태성이 주먹만 꽉 쥐고서 부들거렸다.
당혹감과 공포마저 비치는 그의 눈동자가 잠시 후 서서히 냉정을 되찾았다.
“그거 아냐? 뭔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몰라도 넌 인생 종쳤어.”
“이번 협박도 그리 신선하진 않은걸.”
“썅! 내가 지금 헛소리나 하는 걸로 보이는 거냐? 여기가 어딘지 모르나 본데, 여긴 바로 태성 매니지먼트의 본사란 말이다!”
“알아. 근데 뭐 어쩌라고?”
“이 건물 자체가 우리 아버지 꺼라는 건 아냐?”
심혁진이 김태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건 몰랐네, 금수저 양반. 그래서?”
“내 사무실이 있는 4층 아래 3개 층이 모두 태성 소속 헌터들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이란 말이다.”
“응. 그래서?”
심혁진의 반문에 김태성은 주춤했다.
“뭐?”
“이 아래로 너희 헌터들이 있단 말이지? 이해했어.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 나한테 이상이 생긴 걸 그들이 알면 당장에 몰려올 거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예상했지. 역시나 한 치도 벗어나질 않는군.”
심혁진은 비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김태성과는 달랐다.
쓸데없는 허세나 부리고자 정보를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예컨대 그가 지금 레벨 65의 아공간 생성 스킬을 사용했다거나 하는 것들.
어차피 말해줘 봐야 믿지도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 잘난 헌터들은 어디에 있지?”
“금방 달려와 네놈을 개박살 내줄 테니 걱정 마라.”
“그래? 하지만 안 와. 온다고 해도 날 막진 못할 테지만.”
심혁진이 김태성에게 다가갔다.
으름장을 놓던 김태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우,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나 알고 이러는 거냐?”
“여기 건물주라며. 네 입으로 얘기했잖아? 애석하게도 그것 말고는 모르겠군. 내 알 바도 아니고.”
“이, 이익!”
뒤를 더듬던 김태성의 손에 화분이 잡혔다.
김태성은 그것을 냅다 휘둘렀다.
궤적 상으로 보면 심혁진의 관자놀이를 노린 것.
정통으로 맞으면 운동 좀 했다는 장한이라 해도 뇌진탕으로 쓰러질 터였다.
물론 그런 것에 당할 헌터는 없었다.
심혁진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콰직!
화분이 터져 나가며 흙무더기가 뿌려졌다.
김태성이 육안으로 보기엔 정확히 심혁진의 옆머리를 후려쳤다.
보통은 잠시나마 움찔할 법도 한데 김태성은 그러지 않았다.
맞은 놈이 입원을 하든 맛이 가든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심혁진은 멀쩡했다.
그냥 맞아도 타격 하나 없을 터.
그래도 기분은 나쁠 것 같아 배리어를 쳐 두었다.
흙이 묻는 것도 찝찝했고.
결과적으로 심혁진의 몸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고, 잡티 하나 묻지 않았다.
“너, 너 이 새끼……!”
“고맙다.”
“뭐야?”
“사실 여기 오는 동안 나름대로 고심 좀 했거든. 이걸 죽일까 살릴까 하고 말이야. 근데 너 하는 짓을 보고 나니 결심이 확고해지는군.”
“자, 잠깐…….”
쩍!
김태성의 얼굴이 크게 젖혀졌다.
그의 코에서 뿜어져 나온 시뻘건 선지가 천장까지 솟아올랐다.
“억……!”
“스킬은 안 쓴다. 근력도 제한할 거야.”
심혁진이 두 손을 뚜둑거리며 말했다.
“그래야 좀 더 많이, 그리고 오래 즐기지.”
“이, 이 새……!”
우득!
“꺼윽!”
김태성의 허리가 새우처럼 굽혀졌다.
그의 복부로 파고든 주먹을 심혁진이 가볍게 뒤틀었다.
“우웨엑!”
비틀리는 살결을 따라 자극받은 위장이 내용물을 쏟아냈다.
김태성의 식도를 타고 오른 토사물이 입 밖으로 분출되는 순간, 심혁진은 그의 턱을 무릎으로 올려쳤다.
“끄그그극!”
턱을 강타당한 김태성이 벌러덩 넘어졌다.
나오려던 토사물과 박살난 치아, 그리고 핏물이 강제로 닫힌 그의 입속에서 한데 뒤섞였다.
호흡 곤란과 격통으로 인해 김태성은 두 눈을 까뒤집었다.
“크억! 컥! 크헥, 켁, 끄르르륵!”
김태성은 토하고 괴로워하며 발버둥 쳤다.
그가 쏟아낸 피와 토사물로 인해 바닥이 지저분해졌다.
그 오물의 웅덩이에서 김태성은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그, 그만……!”
“이제 시작인데?”
시큰둥하게 대답한 심혁진이 성큼성큼 걸어가 김태성의 팔꿈치에 발을 얹었다.
그리고 지그시 힘을 주었다.
뿌득. 으저저적.
“끄아아악!”
천천히 바스러져 나가는 관절과 뼈로 인한 고통이 김태성의 머릿속을 하얗게 태웠다.
“악! 이, 이 개새끼!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릴 거다! 우리 아버지가, 끄흐, 널 가만히 둘 것 같으냐!”
“너 진짜 멍청한 놈이구나. 이 마당에 그런 소릴 지껄여서 좋을 게 뭐라고?”
심혁진은 혀를 찼다.
“하긴, 그러니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여자애를 노린 거겠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어. 적당히 손봐주고 전장에서 강제 이탈시킬 생각이었단 말이다!”
“설령 무사히 이탈했더라도 희수는 죽었을 거다.”
심혁준의 어조가 싸늘해졌다.
“그날 필드에서 강제 이탈한 헌터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알 텐데?”
“…….”
그날, 뱀파이어 로드가 펼쳐 놓은 차원 결계가 도그마 차원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비상 탈출 아이템을 통해 이탈한 이들은 전원 행방불명되었다.
차원 결계로 인해 워프 좌표가 일그러져 버린 탓.
물론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아예 제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 있다 해도 이름 모를 외딴 차원으로 보내졌을 터.
죽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놈의 차원 결계 때문에.’
애초에 심혁진과 동료들이 함부로 아케론 차원에서 탈출하지 못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해당 차원의 주인이 펼쳐 놓은 결계.
그 수준이 낮다면 이번 경우처럼 술식을 되풀어서 깨트리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결계 생성자의 힘이 막강하다면 그마저도 불가능.
없애는 방법은 단 하나.
차원의 주인을 처치하는 것뿐이었다.
때문에 심혁진은 2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하고서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
이번에 행방불명된 헌터들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연희수 역시 하마터면 그리 될 뻔했고.
“마수에 의한 이탈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애초에 그걸 각오하고서 헌터가 된 거니까.”
“자, 잠깐…….”
“하지만 같은 입장의 헌터면서 뒤통수를 치려는 놈들은 용서하지 못해. 그걸 사주한 놈은 더더욱.”
“어, 어쨌든 살아남았잖아! 게다가 그 난장판 속에서 우리 쪽 애들이 연희수를 노릴 수 있었을 리가…….”
“노렸어. 오석호란 놈이.”
“뭐, 뭐라고?”
“그것도 희수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말이야. 정말 뿌리까지 썩어 빠진 놈이더군.”
김태성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심혁진을 바라봤다.
이윽고 그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그, 그걸 대체 네가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심혁진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안 그래도 피와 토사물로 엉망진창인 김태성의 얼굴이 공포로 찌그러졌다.
“제, 제발!”
콰직!
김태성의 얼굴 한복판으로 심혁진의 주먹이 파고들었다.
코뼈와 안면 골격이 함몰되는 것이 피부를 타고 느껴졌다.
딱히 이런 것에 희열을 느끼진 않는 심혁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패고 볼 생각이었다.
콰직! 쾅! 콰득! 우드득!
1분여의 짤막한 시간 동안 구타가 이어졌다.
앞서 선언한 대로 스킬은 조금도 사용하지 않고 힘 조절까지 한 타격이었지만, 김태성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제, 제발 살려…….”
“안 죽여. 그럴 가치도 없으니까.”
짤막히 쏘아붙인 심혁진이 이차원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소모용 회복 아이템인 ‘베히모스의 체액’이었다.
심혁진은 시약병에 담겨 있는 베히모스의 체액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그것이 닿자마자 김태성의 육체가 삽시간에 회복됐다.
“뭐, 뭐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김태성의 목소리엔 안도감이 아닌 공포가 어려 있었다.
“온몸이 언제 다쳤냐는 듯 쌩쌩하지? 약효 하나는 직방이야. 나도 그거 덕분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었거든.”
“이, 이런 것을…….”
“왜 너한테 쓰냐고? 우선은 내가 급히 오느라 다른 회복템을 구해 오질 못했어. 좀 아깝긴 하지만 체액이야 충분히 있고.”
심혁진은 실소했다.
“무엇보다도 그게 효과가 빠르고 확실하거든. 절명만 안 하면 반드시 살려낼 수 있을 만큼.”
“크, 크윽!”
“난 널 죽이지 않을 거다. 하지만 멀쩡히 살려 놓을 생각도 없어.”
심혁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늘 김태성이란 인간의 일부분은 확실히 죽게 될 거다.”
“아, 안 돼!”
김태성이 토해내는 비명이 사장실 안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비명에 화답하는 이는 없었다.
1시간 후.
“사장님? RT 매니지먼트의 김 사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방문 약속이 있었고요. ……저, 사장님? 사장님?”
내선을 통한 보고에도 반응이 없었다.
김태성의 비서는 의아함을 느끼며 사장실 문을 열었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장면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 김 비서?”
“저, 저, 저기…….”
의문 어린 얼굴로 비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 본 직원들도 순간 멍해졌다.
사장실 한가운데.
오줌을 잔뜩 지린 김태성이 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뭐야?”
김태성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심혁진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까닭이다.
그가 보기에 심혁진은 아무 것도 아닌 놈이었다.
기껏해야 차수린 밑에서 일하는 잡놈일 뿐.
끄나풀이라는 표현조차 아까운 버러지가 아닌가.
그런 주제에 자신과 맞먹는다는 듯이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사무실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분노보다는 황당함이 더 컸다.
‘대체 이것들은 뭘 한 거야?’
심혁진 본인보다도 놈을 사장실까지 들여놓은 직원들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평소라면 스피커폰으로 보고부터 할 터.
아니, 그 전에 앞서 개나 소나 맘대로 사무실 안에 들일 리도 없었다.
‘한데 이것들이……?’
김태성은 심혁진을 무시하고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었다.
심혁진은 그가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뒀다.
“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벌컥 열린 문틈으로 일갈하는 김태성.
이윽고 그의 안색이 굳었다.
“뭐, 뭐야?”
문밖에 있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책상과 칸막이들, 그 사이로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어야 할 직원들이 없었다.
김태성 본인이 직접 고른 파스텔 톤의 벽지가 발라진 벽면, 곳곳에 놓인 값비싼 화분과 허세 섞인 장식물들도 없었다.
사무실 자체가 통째로 날아가고 남은 것은 우중충한 빛깔의 공간뿐.
흔히 비가 내리고 난 카센터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기름 웅덩이 같은 공간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이런 씨앙!”
보통 공간이 아님을 인지한 김태성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심혁진을 돌아본 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뭐, 뭐야! 너, 대체 뭐야?”
“뭐긴, CS 매니지먼트의 매니저지. 맡고 있는 헌터는 아직 한 명뿐이지만.”
“씨발, 당장 이 장난질 그만두지 못해? 나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
“그런 협박 갖고는 여고생 하나도 울리지 못할 것 같은데?”
심혁진은 김태성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여자애 하나 해치우자고 우락부락한 녀석들을 셋씩이나 보내는 놈이나 할 법한 수준이란 말이지.”
“이익……!”
김태성이 주먹만 꽉 쥐고서 부들거렸다.
당혹감과 공포마저 비치는 그의 눈동자가 잠시 후 서서히 냉정을 되찾았다.
“그거 아냐? 뭔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몰라도 넌 인생 종쳤어.”
“이번 협박도 그리 신선하진 않은걸.”
“썅! 내가 지금 헛소리나 하는 걸로 보이는 거냐? 여기가 어딘지 모르나 본데, 여긴 바로 태성 매니지먼트의 본사란 말이다!”
“알아. 근데 뭐 어쩌라고?”
“이 건물 자체가 우리 아버지 꺼라는 건 아냐?”
심혁진이 김태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건 몰랐네, 금수저 양반. 그래서?”
“내 사무실이 있는 4층 아래 3개 층이 모두 태성 소속 헌터들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이란 말이다.”
“응. 그래서?”
심혁진의 반문에 김태성은 주춤했다.
“뭐?”
“이 아래로 너희 헌터들이 있단 말이지? 이해했어.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 나한테 이상이 생긴 걸 그들이 알면 당장에 몰려올 거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예상했지. 역시나 한 치도 벗어나질 않는군.”
심혁진은 비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김태성과는 달랐다.
쓸데없는 허세나 부리고자 정보를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예컨대 그가 지금 레벨 65의 아공간 생성 스킬을 사용했다거나 하는 것들.
어차피 말해줘 봐야 믿지도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 잘난 헌터들은 어디에 있지?”
“금방 달려와 네놈을 개박살 내줄 테니 걱정 마라.”
“그래? 하지만 안 와. 온다고 해도 날 막진 못할 테지만.”
심혁진이 김태성에게 다가갔다.
으름장을 놓던 김태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우,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나 알고 이러는 거냐?”
“여기 건물주라며. 네 입으로 얘기했잖아? 애석하게도 그것 말고는 모르겠군. 내 알 바도 아니고.”
“이, 이익!”
뒤를 더듬던 김태성의 손에 화분이 잡혔다.
김태성은 그것을 냅다 휘둘렀다.
궤적 상으로 보면 심혁진의 관자놀이를 노린 것.
정통으로 맞으면 운동 좀 했다는 장한이라 해도 뇌진탕으로 쓰러질 터였다.
물론 그런 것에 당할 헌터는 없었다.
심혁진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콰직!
화분이 터져 나가며 흙무더기가 뿌려졌다.
김태성이 육안으로 보기엔 정확히 심혁진의 옆머리를 후려쳤다.
보통은 잠시나마 움찔할 법도 한데 김태성은 그러지 않았다.
맞은 놈이 입원을 하든 맛이 가든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심혁진은 멀쩡했다.
그냥 맞아도 타격 하나 없을 터.
그래도 기분은 나쁠 것 같아 배리어를 쳐 두었다.
흙이 묻는 것도 찝찝했고.
결과적으로 심혁진의 몸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고, 잡티 하나 묻지 않았다.
“너, 너 이 새끼……!”
“고맙다.”
“뭐야?”
“사실 여기 오는 동안 나름대로 고심 좀 했거든. 이걸 죽일까 살릴까 하고 말이야. 근데 너 하는 짓을 보고 나니 결심이 확고해지는군.”
“자, 잠깐…….”
쩍!
김태성의 얼굴이 크게 젖혀졌다.
그의 코에서 뿜어져 나온 시뻘건 선지가 천장까지 솟아올랐다.
“억……!”
“스킬은 안 쓴다. 근력도 제한할 거야.”
심혁진이 두 손을 뚜둑거리며 말했다.
“그래야 좀 더 많이, 그리고 오래 즐기지.”
“이, 이 새……!”
우득!
“꺼윽!”
김태성의 허리가 새우처럼 굽혀졌다.
그의 복부로 파고든 주먹을 심혁진이 가볍게 뒤틀었다.
“우웨엑!”
비틀리는 살결을 따라 자극받은 위장이 내용물을 쏟아냈다.
김태성의 식도를 타고 오른 토사물이 입 밖으로 분출되는 순간, 심혁진은 그의 턱을 무릎으로 올려쳤다.
“끄그그극!”
턱을 강타당한 김태성이 벌러덩 넘어졌다.
나오려던 토사물과 박살난 치아, 그리고 핏물이 강제로 닫힌 그의 입속에서 한데 뒤섞였다.
호흡 곤란과 격통으로 인해 김태성은 두 눈을 까뒤집었다.
“크억! 컥! 크헥, 켁, 끄르르륵!”
김태성은 토하고 괴로워하며 발버둥 쳤다.
그가 쏟아낸 피와 토사물로 인해 바닥이 지저분해졌다.
그 오물의 웅덩이에서 김태성은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그, 그만……!”
“이제 시작인데?”
시큰둥하게 대답한 심혁진이 성큼성큼 걸어가 김태성의 팔꿈치에 발을 얹었다.
그리고 지그시 힘을 주었다.
뿌득. 으저저적.
“끄아아악!”
천천히 바스러져 나가는 관절과 뼈로 인한 고통이 김태성의 머릿속을 하얗게 태웠다.
“악! 이, 이 개새끼!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릴 거다! 우리 아버지가, 끄흐, 널 가만히 둘 것 같으냐!”
“너 진짜 멍청한 놈이구나. 이 마당에 그런 소릴 지껄여서 좋을 게 뭐라고?”
심혁진은 혀를 찼다.
“하긴, 그러니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여자애를 노린 거겠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어. 적당히 손봐주고 전장에서 강제 이탈시킬 생각이었단 말이다!”
“설령 무사히 이탈했더라도 희수는 죽었을 거다.”
심혁준의 어조가 싸늘해졌다.
“그날 필드에서 강제 이탈한 헌터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알 텐데?”
“…….”
그날, 뱀파이어 로드가 펼쳐 놓은 차원 결계가 도그마 차원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비상 탈출 아이템을 통해 이탈한 이들은 전원 행방불명되었다.
차원 결계로 인해 워프 좌표가 일그러져 버린 탓.
물론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아예 제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 있다 해도 이름 모를 외딴 차원으로 보내졌을 터.
죽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놈의 차원 결계 때문에.’
애초에 심혁진과 동료들이 함부로 아케론 차원에서 탈출하지 못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해당 차원의 주인이 펼쳐 놓은 결계.
그 수준이 낮다면 이번 경우처럼 술식을 되풀어서 깨트리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결계 생성자의 힘이 막강하다면 그마저도 불가능.
없애는 방법은 단 하나.
차원의 주인을 처치하는 것뿐이었다.
때문에 심혁진은 2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하고서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
이번에 행방불명된 헌터들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연희수 역시 하마터면 그리 될 뻔했고.
“마수에 의한 이탈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애초에 그걸 각오하고서 헌터가 된 거니까.”
“자, 잠깐…….”
“하지만 같은 입장의 헌터면서 뒤통수를 치려는 놈들은 용서하지 못해. 그걸 사주한 놈은 더더욱.”
“어, 어쨌든 살아남았잖아! 게다가 그 난장판 속에서 우리 쪽 애들이 연희수를 노릴 수 있었을 리가…….”
“노렸어. 오석호란 놈이.”
“뭐, 뭐라고?”
“그것도 희수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말이야. 정말 뿌리까지 썩어 빠진 놈이더군.”
김태성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심혁진을 바라봤다.
이윽고 그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그, 그걸 대체 네가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심혁진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안 그래도 피와 토사물로 엉망진창인 김태성의 얼굴이 공포로 찌그러졌다.
“제, 제발!”
콰직!
김태성의 얼굴 한복판으로 심혁진의 주먹이 파고들었다.
코뼈와 안면 골격이 함몰되는 것이 피부를 타고 느껴졌다.
딱히 이런 것에 희열을 느끼진 않는 심혁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패고 볼 생각이었다.
콰직! 쾅! 콰득! 우드득!
1분여의 짤막한 시간 동안 구타가 이어졌다.
앞서 선언한 대로 스킬은 조금도 사용하지 않고 힘 조절까지 한 타격이었지만, 김태성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제, 제발 살려…….”
“안 죽여. 그럴 가치도 없으니까.”
짤막히 쏘아붙인 심혁진이 이차원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소모용 회복 아이템인 ‘베히모스의 체액’이었다.
심혁진은 시약병에 담겨 있는 베히모스의 체액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그것이 닿자마자 김태성의 육체가 삽시간에 회복됐다.
“뭐, 뭐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김태성의 목소리엔 안도감이 아닌 공포가 어려 있었다.
“온몸이 언제 다쳤냐는 듯 쌩쌩하지? 약효 하나는 직방이야. 나도 그거 덕분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었거든.”
“이, 이런 것을…….”
“왜 너한테 쓰냐고? 우선은 내가 급히 오느라 다른 회복템을 구해 오질 못했어. 좀 아깝긴 하지만 체액이야 충분히 있고.”
심혁진은 실소했다.
“무엇보다도 그게 효과가 빠르고 확실하거든. 절명만 안 하면 반드시 살려낼 수 있을 만큼.”
“크, 크윽!”
“난 널 죽이지 않을 거다. 하지만 멀쩡히 살려 놓을 생각도 없어.”
심혁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늘 김태성이란 인간의 일부분은 확실히 죽게 될 거다.”
“아, 안 돼!”
김태성이 토해내는 비명이 사장실 안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비명에 화답하는 이는 없었다.
1시간 후.
“사장님? RT 매니지먼트의 김 사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방문 약속이 있었고요. ……저, 사장님? 사장님?”
내선을 통한 보고에도 반응이 없었다.
김태성의 비서는 의아함을 느끼며 사장실 문을 열었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장면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 김 비서?”
“저, 저, 저기…….”
의문 어린 얼굴로 비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 본 직원들도 순간 멍해졌다.
사장실 한가운데.
오줌을 잔뜩 지린 김태성이 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