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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측정불가(4)



“저… 이게 뭔가요?”
같은 날, 점심 무렵.
연희수는 탁자에 놓인 A4 용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격대 보상 명세서. ST 그룹에서 보내 온 거야.”
“공격대 보상이요? 하지만 우리는…….”
뱀파이어 백작도 잡지 못하고 간신히 살아 돌아오기만 했다.
물론 실제론 백작을 잡긴 했다.
그 주역이 공격대와 전혀 무관한 인물인지라 문제일 뿐.
도그마 차원 레이드는 막대한 피해만을 남겼다.
ST 그룹과 세레니티 길드는 신뢰도와 명성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레이드를 승인한 정부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피해 손실액은 최소 수백억 대.
죽은 이들의 숫자만 칠십여 명을 헤아렸다.
물론 헌터라는 직업 자체가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인지라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현실이란 게 단순하진 않은 법이라, ST 그룹과 세레니티 길드 앞으로 적지 않은 소송이 걸린 상태였다.
죽은 헌터들의 유족 및 길드들이 건 것이었다.
“결국 이 돈은 입막음조라는 뜻이지.”
차수린은 냉소적인 투로 말했다.
“차원 레이드는 항상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해. 척후를 보내 적의 동태를 살피고 조사단을 통해 차원계의 상태를 관측해야 하지.”
지극히 당연한 기본 중의 기본.
하지만 기나긴 안락에 젖어 있던 길드들 대부분이 망각하고 있던 점이었다.
“ST도 세레니티도 그 점에 소홀했어. 죽은 헌터들의 죽음을 방조했다고 보기에 충분하지.”
“저도 뉴스 봤어요. 댓글 참 살벌하던데요? 평소엔 그렇게들 찬양하고 추켜세우더니.”
“군중 심리란 게 그런 거니까. 평소엔 우상의 권위에 편승해서 남들을 깔보려 하다가도, 그 우상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헐뜯고 공격하려 들거든.”
“근데 입막음조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보상금을 이만큼 줄 테니 부디 자기네한테 불리한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는 거지. 이미 비공식적으로 접촉도 해왔어.”
“ST에서요?”
“ST랑 세레니티, 두 곳 모두에서.”
연희수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명세서를 다시 훑어봤다.
숫자 옆으로 이어진 0의 행렬에 두 눈이 의심됐다.
“언니… 아니, 사장님. 제가 보통 파티 퀘스트 깨고 오면 얼마쯤 받았었죠?”
“20만 원쯤?”
“거기서 계약상 7대 3으로 나누고 나면 14만 원만 받았었잖아요. CS에서 3을 가져가니.”
“그랬지.”
고개를 든 연희수가 히죽 웃었다.
“사장님, 차 한 대 뽑으셔도 되겠는데요?”
“너는 월세를 전세로 전환해도 되겠고 말이지?”
“정말 이게 다 제 돈이에요? 그러니까, 이중에 70퍼센트가요.”
“100퍼센트야.”
“네?”
“공식적인 루트로 들어온 수입이 아니라 그쪽에서 사적으로 보내 온 돈이니까, 매니지먼트를 거칠 필요는 없지.”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우리도 챙겨 받았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 그래요? 그럼 괜찮겠네요.”
“그 아래에 적혀 있는 조건도 읽어 보도록 해. 그자들도 맨입으로 그만 한 돈을 주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결국 ST랑 세레니티에 불리한 얘기만 안 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응. 일단 공식적인 인터뷰 요청은 모두 거부하고 있는데, 그래도 언론에서 너를 직접 찾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어.”
“걱정하지 마세요. 카메라만 보여도 쌩 내뺄 테니.”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니까 잘 하겠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였다는 것만으로도 입가가 느슨해졌다.
지금까진 억지웃음조차 짓지 못할 만큼 힘든 상황이었으니.
“아, 그런데 오빠…….”
연희수가 돌연 말을 끊고는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그, 매니저님은 어디 계세요?”
“정말 오빠라고 부르게 됐나 보구나.”
“네? 아, 음. 그게 그러니까요…….”
“둘러대지 않아도 돼. 나도 전부 들었으니까.”
“……거기서 있었던 일도요?”
“대강은.”
“다행이다.”
차수린의 말에 연희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한테 계속 숨길 수 있을지 걱정이었거든요. 아마 얼마 못가 들켰을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넌 거짓말하는 데엔 서투르니까.”
“근데 혁진 오빠 말이죠. 대체 과거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언니는 다 아시는 거 아니었어요?”
차수린은 선선히 고개를 저었다.
“나라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냐. 그저 너보다 약간 더 아는 정도지.”
“흐음, 어쩌다가 만나게 되셨는데요?”
“그 사람이 찾아온 거야. 어느 날 갑자기. 큰아버지의 지인이라고 하면서.”
“네? 사장님 지인이요?”
“아버지가 아니라 큰아버지.”
“아, 그럼 사장님의 형님분…….”
“응.”
“그렇군요.”
연희수는 할 말이 궁해졌다.
원래 사장인 차상욱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지 않은데, 그 형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캐묻기에는 이래저래 껄끄러운 이야기.
결국 화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혁진 오빠는 어디 가셨어요?”
“잠깐 누구 좀 만나고 온다더라고.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던데?”
“만난다는 게 설마 태성 쪽 사람은 아니겠죠?”
“응?”
“그쪽에서 저를 노리려 했었잖아요. 상황이 꼬이고 얽혀서 실패했지만.”
차수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설마 그 와중에도 태성 쪽 헌터가 너를 노렸었니?”
“네. 정작 저는 눈치 채지도 못했지만요.”
연희수가 당시 상황을 설명해 줬다.
심혁진에게선 듣지 못했던 얘기인지라 차수린은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난… 그저 일이 꼬여서 그자들도 포기한 줄 알았는데.”
“나머지 둘은 포기했나 봐요. 저를 노린 건 한 명뿐이었거든요.”
혹은 시도하지 못할 상황이었거나.
“그러고 보니…….”
잠시 생각하던 차수린이 불안한 듯 말을 꺼냈다.
“묘하게 잠잠해.”
“네? 아, 태성 말이에요?”
“응.”
“잠잠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제가 알기로 그쪽 헌터들은…….”
“전멸했지.”
안 그래도 생존자 명단을 찾아본 차수린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태성 또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회사 내에서 꽤나 비중 있던 헌터를 셋씩이나 한순간에 잃은 셈이니 말이다.
ST와 세레니티 측에 건 소송이 잘 풀린다면야 금전적인 손해는 만회할 수 있을 테지만.
“아마도 소송 때문에 바쁜 거겠지?”
차수린으로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어떤 형태로든 태성 매니지먼트와 엮이는 건 사양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설마…….’
마음 한 구석에서 불현듯이 고개를 쳐드는 불안감.
‘그 사람, 만나겠다고 한 게 설마……?’
지금까지의 전적을 보자면 영 근거 없는 불안은 아니었다.
연희수를 돌아보니 그녀도 차수린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설마.”
“혁진 오빠.”
“태성에…….”
“찾아간 것은 아니겠지요?”
“네 생각은 어떠니?”
차수린의 질문에 연희수는 머뭇거렸다.
전장 그 자체인 레이드 필드와 현실 사회는 전혀 다른 곳이다.
필드에선 경우에 따라 살인마저 용인될 수 있다.
마수들과 싸우는 과정에선 별별 일이 다 일어날 수 있고, 극단적인 선택도 강요되고는 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는 다르다.
엄연히 형법과 사법이 존재하고 통용되는 곳.
그런 곳에서 전장과 마찬가지로 멋대로의 행동을 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아무리 강한 자라 해도 사회 자체를 능가할 순 없기에.
심혁진이 그것도 모를 만큼 멍청하진 않을 거라고 연희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심혁진이 태성을 찾아갔을 거란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지나치게 똑똑했으니까.
“혁진 오빠한테 연락해 보시는 게 좋겠어요.”

* * *

“망할! 썩을! 빌어먹을!”
태성 매니지먼트의 사무실.
개인 PC의 모니터를 쳐다보던 김태성이 책상 위의 화분을 내던졌다.
“어떻게! 어떻게 그 년이!”
모니터 상에는 세 사람의 사진이 떠 있었다.
오석호, 윤주태, 조상현.
태성에서 파견한 헌터들의 사진이었다.
이제는 영정으로나 쓰이게 된 물건.
다만 김태성은 그 사실에 슬픔이나 안타까움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저 분노할 따름.
죽어간 세 헌터를 위한 분노는 아니었다.
“병신 새끼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기에!”
모니터 구석엔 자그마한 창이 하나 더 열려 있었다.
도그마 차원 레이드에 참여한 헌터 목록.
차수린이 띄웠던 것과 같은 창이었다.
김태성을 분노케 한 것은 그중 딱 한 줄의 글귀였다.

[연희수(18세, CS 매니지먼트 소속): 생존]

“어떻게 그 년이 살아남을 수가 있어!”
김태성은 분노했다.
자기네 헌터들은 전멸했음에도 CS의 유일한 헌터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특별히 엄선한 태성 매니지먼트 최고의 헌터 세 명이, 고작 계집애 하나 처치하지 못하고 전멸했다는 사실에.
하늘을 찌르는 프라이드를 지닌 그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씨앙!”
소송건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애초에 그는 금수저.
얼마 되지도 않는 보상금을 더 받아내는 일 따위는 그리 신경 쓸 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상처 입은 자존심에 대한 거라면 얘기가 달랐다.
‘차수린……!’
망할 년.
지금쯤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표독스러운 년.
감히 자신의 것이 되기를 거부한 건방지기 짝이 없는 년!
김태성은 오래 전부터 그녀를 주목해 왔다.
어지간한 연예인은 압도하는 외모에 나쁘지 않은 경영 능력, 그리고 특유의 도도하고 시크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여자일수록 굴복시키는 맛이 좋았던 까닭이다.
때문에 차상욱이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튀었을 때, 쾌재를 불렀다.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차수린이 무시했을 때에도 내심 환호를 질렀다.
그렇게 나올수록 무너트릴 때의 쾌감이 컸으니까.
이제 한 걸음만 남아 있었다.
원래는 김창준 건으로 결정타를 먹일 셈이었다.
한데 예기치 못한 변수로 인해 일이 꼬였다.
그래서 도그마 차원 레이드를 통해 회복 불능의 타격을 먹이려 했거늘……!
“제기랄! 이 김태성이 이깟 일로 포기할 것 같으냐!”
김태성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이 사무실은 그의 영역.
마음껏 떠들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끼이익.
문이 열리는 걸 느꼈을 때, 김태성은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렸다.
평소의 습관.
기분이 더러울 대로 더러워져 있을 때 들어온, 정말이지 운 나쁜 사원을 갈구고 욕하는 것은 김태성의 작은 취미였다.
경우에 따라선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어차피 돈 몇 푼으로 무마하면 그만.
5만 원짜리 다발을 손에 얹어 주면 사원이란 것들은 피멍이 든 얼굴로도 좋다고 실실 웃어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안으로 들어선 얼굴이 전혀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대체 뭐…….”
뭐냐고 물으려던 김태성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낯설긴 하되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조금 있으니 누구인지도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여기 있어야 할 놈이 전혀 아니었던 까닭이다.
“뭐야?”
“뭐긴.”
심혁진은 차갑게 말했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