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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차원 레이드(6)
콱!
“끄악!”
칼날에 관통당한 헌터가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스킬조차 쓰이지 않은 통상 공격.
하지만 방비조차 없이 멍한 상태에서 당한 탓에 치명상으로 이어졌다.
“큭! 다들 정신 차립시다! 멍청히 있다간 전멸당할 뿐입니다!”
“싸우자! 공격대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자고!”
그나마 경험 있는 몇몇이 리더십을 발휘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어렵사리 반격하기 시작했다.
연희수도 두 뺨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고는 스킬을 사용했다.
“버프해 드릴게요!”
[액티브 스킬 ‘어설트 휘슬’이 사용되었습니다.
파티원 전원의 공격 속도가 5% 상승합니다.
파티원 전원의 방어력이 11% 상승합니다.
파티원 전원의 스킬 시전 속도가 4% 상승합니다.]
우우우웅.
그녀 주변의 파티원들에게 버프가 걸렸다.
일견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
충격에서 벗어난 파티원들은 어설프게나마 스크럼을 짜고는 강하해 올 뱀파이어들에 대비했다.
버프를 걸어준 연희수는 곧장 또 다른 스킬인 비탄의 노래를 준비했다.
그녀가 지닌 유일한 바드 클래스 공격 수단.
이윽고 눈앞으로 뱀파이어들이 내려섰을 때, 그녀는 단숨에 기술을 사용했다.
[액티브 스킬 ‘비탄의 노래’가 사용되었습니다.]
아아아아……!
연희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하이톤의 가락.
파티원들에겐 그저 단순한 노랫소리로 들릴 뿐이었으나 뱀파이어들에겐 달랐다.
마력이 실린 멜로디가 귓속을 파고들어서 뱀파이어들의 신경계를 파손시켰다.
캬악!
크어억!
뱀파이어들이 괴로워하며 비틀거렸다.
하급이다 보니 지성이 없어 짐승처럼 으르렁댈 뿐.
그 광경에 파티원들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괴물 새끼들!”
“토막을 쳐 주마!”
도끼와 장검 같은 냉병기를 쥔 헌터들이 뱀파이어들에게로 쇄도했다.
일견 총화기보다 약해 보일 법한 무기들.
하지만 그걸 휘두르는 건 헌터라는 이름의 초인이었고, 각각의 무기에도 특수한 힘이 담겨 있었다.
카캉!
뱀파이어들이 무기를 들고는 맞섰다.
비탄의 노래에 타격을 입긴 했으나 심하진 않은 수준.
게다가 그들 역시 초인적인 완력과 마력을 지녔기에, 헌터들에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캉! 카캉! 카카캉!
쉽사리 한쪽으로 기울어 지지 않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그러한 소모전이 벌판 전역에서 전개되었다.
잠시 후 대량의 구울과 좀비들까지 끼어들면서, 거대한 규모의 난전으로 확장됐다.
일방적이며 단순한 사냥이 아닌, 치열하고 위험한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 * *
[그… 곽주성 해설?]
[예…….]
[지금 이게 외부 필드 쪽 중계 팀에서 전송해 온 화면입니다만, 이런 경우가 전에도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화면에 비치는 건 헌터들의 전투 장면.
지금까지의 ‘사냥’과는 전혀 다른,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였다.
[외부 필드 중계 팀에서 전해 온 정보에 따르면 뱀파이어 백작이 성내가 아닌 바깥으로 직접 나온 모양입니다.]
[…….]
[곽주성 해설, 이런 경우가 전에도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성내로 진입한 세레니티 길드원들이 돌아와 맞서겠지요?]
[그 경우가 최선입니다만, 지금 중계 화면에 비치는 광경이…….]
블러드 캐슬의 외부를 감싼 반투명한 배리어가 화면에 잡혔다.
[저게 만약 고레벨의 고유 결계라면…….]
[탈출에 걸리는 시간이 지체되겠군요.]
[예,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만약에… 이건 예시일 뿐입니다만… 1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면, 외부 필드의 헌터들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건 아무래도…….]
해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뒤에 흘러나올 말을 억지로 참은 느낌.
하지만 듣고 있던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다.
힘들겠지요.
“희수야……!”
차수린은 결국 중계창을 닫고 말았다.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린 뒤.
전대미문의 상황이 발발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자신이 그녀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생각 역시 상당한 충격이었다.
‘아냐, 희수는 괜찮을 거야. 비상 탈출 아이템을 지니고 있잖아.’
치명상을 입을 경우 니케의 깃털이 자동으로 발동될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만도 없었다.
설령 니케의 깃털이 발동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동시키는 치명상 자체를 무효화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타격을 입은 채 그대로 귀환하게 된다는 건데,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상처로 인해 죽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심혁진 씨는……?’
차수린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간신히 연락처를 터치한 그녀가 심혁진의 이름을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나니 짤막한 다이얼음 뒤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상대방이 통화권을 벗어나 있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십시오.]
차수린은 이런 음성이 언제 들려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수도 없이 들어 본 음성이기도 했다.
다른 차원에 있는 헌터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그 말은 곧…….
“심혁진 씨가… 지금 다른 차원에 있다고?”
차수린은 다시 마우스를 움직여 중계창을 열었다.
LCD 모니터에 떠오른 화면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차수린으로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도 저곳에……?’
* * *
“그러니까 지금 당장 포탈을 다시 열란 말입니다! 뭐요? 차원석이 얼마나 든다고? 그게 뭐 어쨌다고!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 할 거 아뇨!”
핸드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임철수.
그의 고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지만 콘트롤룸 내의 오퍼레이터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고성을 지를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자꾸 돈 얘기 좀 하지 마시오! 차원석 비싼 건 나도 아니까. 근데 그거 압니까? 저 헌터들 싹 죽어 나가면 그 뒤처리랑 법적 책임은 당신네 ST에서 물어야 한다는 거? 뭐? 당신네 변호 팀이 국내 제일이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이 새끼야!”
뚝.
“어? 어? 이 새끼가 전화를 끊어? 이 개새끼가!”
핸드폰을 냅다 벽에다 집어 던지려던 임철수는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참아 넘겼다.
“씨발. 할부만 안 남았어도.”
속으로 울분을 삼킨 그가 오퍼레이터를 돌아봤다.
“이쪽에서 개입할 방법은 없는 거야? 최소한 저쪽이랑 통신이라도 나눌 수는 없어?”
“아까부터 시도 중이긴 한데 어려워요. 중계 화면 전송되는 것도 감지덕지할 상황이에요.”
“그 정도야?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잖아.”
“그러니까 큰일인 거죠. 보아하니… 뱀파이어 백작보다 강력한 몬스터가 개입한 모양이에요.”
“백작보다 강해? 그럼 후작이나 공작이라도 끼어있다는 거야, 뭐야?”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미묘한 말 줄임에 임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설마 뱀파이어 로드가……?”
“어쩌면요.”
오퍼레이터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지금 블러드 캐슬을 뒤덮은 결계 말이에요. 백작 정도의 몬스터가 걸어둔 거라면 세레니티 쪽에서 금방 부술 수 있었을 거예요.”
임철수가 무의식중에 시계를 살폈다.
그의 기억이 맞는다면 공격대가 성내에 진입하고 족히 15분은 흐른 뒤였다.
“그런데도 지금껏 깨지지 않았다는 건 제삼자의 개입이 있다는 거죠. 게다가…….”
“또 뭔데?”
“이미 적잖은 수의 헌터들이 비상 탈출 아이템으로 차원 도약을 시도했어요. 그런데…….”
“설마 돌아오지 못한 거야?”
“네. 그들 모두의 종적이 묘연해요.”
임철수는 눈앞이 순간 캄캄해졌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던 까닭이었다.
“차원 자체에도… 결계가 펼쳐져 있다는 거군.”
“네.”
해당 차원의 주인만이 펼칠 수 있는 능력.
차원과 차원 간의 이동을 교란시키는 특수 결계.
그것이 펼쳐졌다는 건 이쪽에서 지원군을 보내기가 힘들어졌다는 의미였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
“뱀파이어 로드……!”
이유는 모르겠으나 도그마 차원에 얽혀 있던 명운의 굴레가 소멸했다.
나아가 지금까지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망할……!”
임철수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집어 물었다.
이번만큼은 오퍼레이터도 핀잔을 주지 못했다.
* * *
“썩을!”
손바닥이 벗겨질 만큼 결계를 두들기던 전사가 욕설을 토하며 핼버드를 내던졌다.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화력을 집중하고는 있었으나, 성을 감싼 결계엔 이제야 자그마한 균열 하나가 생겼을 따름이었다.
하나같이 최소 A급 랭커로 구성된 20인의 공격대.
한국 굴지의 길드라는 세레니티의 길드원들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쩌죠, 선배? 이제 정말 어쩌면 좋아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칭얼거리는 여성 헌터.
그녀를 진정시킬 만한 말을 찾아야 하건만, 윤준태는 한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역시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건 마찬가지였다.
“윤준태! 야, 윤준태! 정신 차려!”
전사가 토한 외침에 윤준태는 움찔했다.
여전히 정신의 절반은 먼 데 가 있었지만, 그는 가까스로 해야 할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모두들 스킬 쿨타임을 체크하세요. 저 결계… 아무래도 자체 재생 능력을 지닌 것 같습니다. 단숨에 화력을 집중해 뚫는 게 최선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자그맣게나마 생겼던 균열이 서서히 봉합되고 있었다.
“제가 신호를 하겠습니다. 그때 공격 스킬을 집중해서 돌파하도록 합시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무사할까요?”
“무사하길 바라야지요.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입니다.”
가까스로 진정한 헌터들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바깥 상황을 파악할 순 없었지만 무사할 리 없다는 건 느끼고들 있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간신히 결계를 깬다고 해도 만사형통일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들로선 그저 기적이 있길 바랄 뿐이었다.
* * *
세레니티 길드원들의 걱정과는 달리, 바깥의 헌터들은 예상 외로 잘 버텨 주었다.
애초에 구울과 좀비들은 평소와 마찬가지.
하급 뱀파이어들이 섞인 것 말고는 차이가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가만히 상황을 관조하던 뱀파이어 백작이 호위 병력들을 전장에 투입했다.
강화 구울과 누더기 골렘, 폭주 좀비와 레드 스켈레톤.
성내에서 공격대를 맞고 있어야 할 병력이 외부 필드에 투입된 것이다.
“크아악!”
“커헉!”
가까스로 버티던 탱커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반 구울이나 좀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을 지닌 것이 성내의 몬스터들.
A랭크 헌터들도 방심하지 못하는 마수들이 C, B랭크 헌터들 사이에 뚝 떨어진 셈이었다.
전력 차이가 크다 보니 단숨에 진형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크윽, 후퇴! 일단은 뒤로 빠집시다!”
“으아아아!”
전의를 상실한 헌터들이 성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자 급조된 진형이 붕괴됐다.
연희수의 파티 역시 인파에 떠밀려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아!”
누군가와 부딪친 연희수가 바닥에 넘어졌다.
황급히 일어나려는데 그녀의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웠다.
‘몬스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신의 낫이 목덜미에 닿는 느낌.
연희수는 터지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며 중얼거렸다.
“사, 살려주세요……!”
“응.”
쩌저적!
태연스런 대꾸와 함께 몬스터의 그림자가 양단되었다.
콱!
“끄악!”
칼날에 관통당한 헌터가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스킬조차 쓰이지 않은 통상 공격.
하지만 방비조차 없이 멍한 상태에서 당한 탓에 치명상으로 이어졌다.
“큭! 다들 정신 차립시다! 멍청히 있다간 전멸당할 뿐입니다!”
“싸우자! 공격대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자고!”
그나마 경험 있는 몇몇이 리더십을 발휘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어렵사리 반격하기 시작했다.
연희수도 두 뺨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고는 스킬을 사용했다.
“버프해 드릴게요!”
[액티브 스킬 ‘어설트 휘슬’이 사용되었습니다.
파티원 전원의 공격 속도가 5% 상승합니다.
파티원 전원의 방어력이 11% 상승합니다.
파티원 전원의 스킬 시전 속도가 4% 상승합니다.]
우우우웅.
그녀 주변의 파티원들에게 버프가 걸렸다.
일견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
충격에서 벗어난 파티원들은 어설프게나마 스크럼을 짜고는 강하해 올 뱀파이어들에 대비했다.
버프를 걸어준 연희수는 곧장 또 다른 스킬인 비탄의 노래를 준비했다.
그녀가 지닌 유일한 바드 클래스 공격 수단.
이윽고 눈앞으로 뱀파이어들이 내려섰을 때, 그녀는 단숨에 기술을 사용했다.
[액티브 스킬 ‘비탄의 노래’가 사용되었습니다.]
아아아아……!
연희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하이톤의 가락.
파티원들에겐 그저 단순한 노랫소리로 들릴 뿐이었으나 뱀파이어들에겐 달랐다.
마력이 실린 멜로디가 귓속을 파고들어서 뱀파이어들의 신경계를 파손시켰다.
캬악!
크어억!
뱀파이어들이 괴로워하며 비틀거렸다.
하급이다 보니 지성이 없어 짐승처럼 으르렁댈 뿐.
그 광경에 파티원들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괴물 새끼들!”
“토막을 쳐 주마!”
도끼와 장검 같은 냉병기를 쥔 헌터들이 뱀파이어들에게로 쇄도했다.
일견 총화기보다 약해 보일 법한 무기들.
하지만 그걸 휘두르는 건 헌터라는 이름의 초인이었고, 각각의 무기에도 특수한 힘이 담겨 있었다.
카캉!
뱀파이어들이 무기를 들고는 맞섰다.
비탄의 노래에 타격을 입긴 했으나 심하진 않은 수준.
게다가 그들 역시 초인적인 완력과 마력을 지녔기에, 헌터들에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캉! 카캉! 카카캉!
쉽사리 한쪽으로 기울어 지지 않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그러한 소모전이 벌판 전역에서 전개되었다.
잠시 후 대량의 구울과 좀비들까지 끼어들면서, 거대한 규모의 난전으로 확장됐다.
일방적이며 단순한 사냥이 아닌, 치열하고 위험한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 * *
[그… 곽주성 해설?]
[예…….]
[지금 이게 외부 필드 쪽 중계 팀에서 전송해 온 화면입니다만, 이런 경우가 전에도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화면에 비치는 건 헌터들의 전투 장면.
지금까지의 ‘사냥’과는 전혀 다른,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였다.
[외부 필드 중계 팀에서 전해 온 정보에 따르면 뱀파이어 백작이 성내가 아닌 바깥으로 직접 나온 모양입니다.]
[…….]
[곽주성 해설, 이런 경우가 전에도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성내로 진입한 세레니티 길드원들이 돌아와 맞서겠지요?]
[그 경우가 최선입니다만, 지금 중계 화면에 비치는 광경이…….]
블러드 캐슬의 외부를 감싼 반투명한 배리어가 화면에 잡혔다.
[저게 만약 고레벨의 고유 결계라면…….]
[탈출에 걸리는 시간이 지체되겠군요.]
[예,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만약에… 이건 예시일 뿐입니다만… 1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면, 외부 필드의 헌터들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건 아무래도…….]
해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뒤에 흘러나올 말을 억지로 참은 느낌.
하지만 듣고 있던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다.
힘들겠지요.
“희수야……!”
차수린은 결국 중계창을 닫고 말았다.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린 뒤.
전대미문의 상황이 발발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자신이 그녀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생각 역시 상당한 충격이었다.
‘아냐, 희수는 괜찮을 거야. 비상 탈출 아이템을 지니고 있잖아.’
치명상을 입을 경우 니케의 깃털이 자동으로 발동될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만도 없었다.
설령 니케의 깃털이 발동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동시키는 치명상 자체를 무효화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타격을 입은 채 그대로 귀환하게 된다는 건데,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상처로 인해 죽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심혁진 씨는……?’
차수린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간신히 연락처를 터치한 그녀가 심혁진의 이름을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나니 짤막한 다이얼음 뒤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상대방이 통화권을 벗어나 있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십시오.]
차수린은 이런 음성이 언제 들려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수도 없이 들어 본 음성이기도 했다.
다른 차원에 있는 헌터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그 말은 곧…….
“심혁진 씨가… 지금 다른 차원에 있다고?”
차수린은 다시 마우스를 움직여 중계창을 열었다.
LCD 모니터에 떠오른 화면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차수린으로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도 저곳에……?’
* * *
“그러니까 지금 당장 포탈을 다시 열란 말입니다! 뭐요? 차원석이 얼마나 든다고? 그게 뭐 어쨌다고!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 할 거 아뇨!”
핸드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임철수.
그의 고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지만 콘트롤룸 내의 오퍼레이터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고성을 지를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자꾸 돈 얘기 좀 하지 마시오! 차원석 비싼 건 나도 아니까. 근데 그거 압니까? 저 헌터들 싹 죽어 나가면 그 뒤처리랑 법적 책임은 당신네 ST에서 물어야 한다는 거? 뭐? 당신네 변호 팀이 국내 제일이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이 새끼야!”
뚝.
“어? 어? 이 새끼가 전화를 끊어? 이 개새끼가!”
핸드폰을 냅다 벽에다 집어 던지려던 임철수는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참아 넘겼다.
“씨발. 할부만 안 남았어도.”
속으로 울분을 삼킨 그가 오퍼레이터를 돌아봤다.
“이쪽에서 개입할 방법은 없는 거야? 최소한 저쪽이랑 통신이라도 나눌 수는 없어?”
“아까부터 시도 중이긴 한데 어려워요. 중계 화면 전송되는 것도 감지덕지할 상황이에요.”
“그 정도야?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잖아.”
“그러니까 큰일인 거죠. 보아하니… 뱀파이어 백작보다 강력한 몬스터가 개입한 모양이에요.”
“백작보다 강해? 그럼 후작이나 공작이라도 끼어있다는 거야, 뭐야?”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미묘한 말 줄임에 임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설마 뱀파이어 로드가……?”
“어쩌면요.”
오퍼레이터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지금 블러드 캐슬을 뒤덮은 결계 말이에요. 백작 정도의 몬스터가 걸어둔 거라면 세레니티 쪽에서 금방 부술 수 있었을 거예요.”
임철수가 무의식중에 시계를 살폈다.
그의 기억이 맞는다면 공격대가 성내에 진입하고 족히 15분은 흐른 뒤였다.
“그런데도 지금껏 깨지지 않았다는 건 제삼자의 개입이 있다는 거죠. 게다가…….”
“또 뭔데?”
“이미 적잖은 수의 헌터들이 비상 탈출 아이템으로 차원 도약을 시도했어요. 그런데…….”
“설마 돌아오지 못한 거야?”
“네. 그들 모두의 종적이 묘연해요.”
임철수는 눈앞이 순간 캄캄해졌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던 까닭이었다.
“차원 자체에도… 결계가 펼쳐져 있다는 거군.”
“네.”
해당 차원의 주인만이 펼칠 수 있는 능력.
차원과 차원 간의 이동을 교란시키는 특수 결계.
그것이 펼쳐졌다는 건 이쪽에서 지원군을 보내기가 힘들어졌다는 의미였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
“뱀파이어 로드……!”
이유는 모르겠으나 도그마 차원에 얽혀 있던 명운의 굴레가 소멸했다.
나아가 지금까지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망할……!”
임철수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집어 물었다.
이번만큼은 오퍼레이터도 핀잔을 주지 못했다.
* * *
“썩을!”
손바닥이 벗겨질 만큼 결계를 두들기던 전사가 욕설을 토하며 핼버드를 내던졌다.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화력을 집중하고는 있었으나, 성을 감싼 결계엔 이제야 자그마한 균열 하나가 생겼을 따름이었다.
하나같이 최소 A급 랭커로 구성된 20인의 공격대.
한국 굴지의 길드라는 세레니티의 길드원들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쩌죠, 선배? 이제 정말 어쩌면 좋아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칭얼거리는 여성 헌터.
그녀를 진정시킬 만한 말을 찾아야 하건만, 윤준태는 한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역시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건 마찬가지였다.
“윤준태! 야, 윤준태! 정신 차려!”
전사가 토한 외침에 윤준태는 움찔했다.
여전히 정신의 절반은 먼 데 가 있었지만, 그는 가까스로 해야 할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모두들 스킬 쿨타임을 체크하세요. 저 결계… 아무래도 자체 재생 능력을 지닌 것 같습니다. 단숨에 화력을 집중해 뚫는 게 최선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자그맣게나마 생겼던 균열이 서서히 봉합되고 있었다.
“제가 신호를 하겠습니다. 그때 공격 스킬을 집중해서 돌파하도록 합시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무사할까요?”
“무사하길 바라야지요.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입니다.”
가까스로 진정한 헌터들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바깥 상황을 파악할 순 없었지만 무사할 리 없다는 건 느끼고들 있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간신히 결계를 깬다고 해도 만사형통일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들로선 그저 기적이 있길 바랄 뿐이었다.
* * *
세레니티 길드원들의 걱정과는 달리, 바깥의 헌터들은 예상 외로 잘 버텨 주었다.
애초에 구울과 좀비들은 평소와 마찬가지.
하급 뱀파이어들이 섞인 것 말고는 차이가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가만히 상황을 관조하던 뱀파이어 백작이 호위 병력들을 전장에 투입했다.
강화 구울과 누더기 골렘, 폭주 좀비와 레드 스켈레톤.
성내에서 공격대를 맞고 있어야 할 병력이 외부 필드에 투입된 것이다.
“크아악!”
“커헉!”
가까스로 버티던 탱커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반 구울이나 좀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을 지닌 것이 성내의 몬스터들.
A랭크 헌터들도 방심하지 못하는 마수들이 C, B랭크 헌터들 사이에 뚝 떨어진 셈이었다.
전력 차이가 크다 보니 단숨에 진형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크윽, 후퇴! 일단은 뒤로 빠집시다!”
“으아아아!”
전의를 상실한 헌터들이 성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자 급조된 진형이 붕괴됐다.
연희수의 파티 역시 인파에 떠밀려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아!”
누군가와 부딪친 연희수가 바닥에 넘어졌다.
황급히 일어나려는데 그녀의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웠다.
‘몬스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신의 낫이 목덜미에 닿는 느낌.
연희수는 터지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며 중얼거렸다.
“사, 살려주세요……!”
“응.”
쩌저적!
태연스런 대꾸와 함께 몬스터의 그림자가 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