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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차원 레이드(5)



심혁진은 이차원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아이템 목록 중에서도 유달리 빛을 발하는 물건을 확인했다.
초록색에서 붉은빛으로, 다시 푸른색으로 변했다가 노란빛으로.
계속하여 색채가 변화하는 주먹 크기의 돌.
‘월드 소울.’
아케론 차원의 소유주임을 나타내는 아이템이었다.
그곳의 본주인인 R랭크 몬스터, 염마신왕 아포칼립시온을 죽임으로써 심혁진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된 것이었다.
그로 인한 혜택이 무엇인지는 심혁진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애초에 월드 소울을 소유하게 된 것도 이번이 처음.
그에 대해 조사해 본 적도 없고 기록을 살펴보지도 못했던 까닭이다.
다만 그 이후로 변화된 점을 느낄 수는 있었다.
예컨대 지금처럼.
차원계의 변동이 느껴졌다.
말로 형언하기도 힘들고 뭐라 표현하기도 버겁지만,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저곳, 도그마 차원에서.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심혁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비단 이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연희수를 돕기로 약속한 바.
겸사겸사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여겨졌다.
더군다나 현세대 헌터들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국 최고의 길드라고 했던가?’
현 시대의 길드는 매니지먼트의 동의어나 마찬가지.
연희수 역시 서류상으로는 CS란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이었다.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힌다는 게 세레니티.
듣자하니 그에 필적하는 길드가 몇 개 더 있다지만, 차수린의 설명으로 보건대 비슷비슷한 수준인 모양이었다.
결국 저들을 통해 헌터들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는 의미였다.
거기까지 생각하는 사이 심혁진의 차례가 되었다.
“…….”
또 다시 차원 포탈을 마주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번에 지구를 떠날 땐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허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다면 이번엔?
‘저번하고는 다르지.’
여러 모로.
피식 웃은 심혁진이 포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편의상 차원이라 표기하긴 했으나, 각각의 차원은 규모와 질적인 측면에서 각양각색이었다.
지구가 속한 차원이 인간의 기술로는 측량하기 힘든 규모를 지닌 반면, 대부분의 차원들은 그 넓이가 한정되어 있었다.
도그마 차원도 마찬가지.
이곳 차원의 면적은 달보다도 작은 소행성, 그리고 그 대기권까지였다.
그 바깥은 혼돈의 공간.
섣불리 벗어나려 했다간 이차원의 섭리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나갔다.
스슥. 스스스슥.
도그마 차원으로 이동된 헌터들이 소행성 표면의 곳곳에서 나타났다.
똑같은 포탈을 넘어갔으나 도착한 지점은 천양지차.
헌터들은 지정된 파티 구성을 따라 동료들과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희수도 마찬가지.
빠르게 버프 스킬인 응원가를 사용한 그녀가 주변을 돌아봤다.
우우웅.

[액티브 스킬 ‘응원가’가 사용되었습니다.
응원가의 효과에 의해 각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응원가의 효과에 의해 각 스킬의 쿨타임이 12% 감소합니다.]

미네르바가 알아듣기 편하게 스킬의 효과를 설명해 주었다.
배틀 보조 시스템 미네르바.
미국 M소프트 사에서 만든 헌터 전용 인터페이스 시스템.
체내에 이식된 마이크로칩을 기반으로, 다양한 정보 제공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초기형만으로도 상당히 완성도가 높아, 셀 수 없이 많은 개량을 거친 지금도 시스템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은 채였다.
기껏해야 시각화 인터페이스나 음성 정도가 세련되게 바뀌었을까.
‘파티원을 찾아줘.’

[파티원 서칭을 시작합니다.]

요구에 따라 미네르바가 파티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연희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후드를 쓴다거나 해서 위장할까도 싶었으나 그러지는 않았다.
의식하고 위장하는 쪽이 오히려 더 수상쩍어 보이게 마련이니까.
‘다음 세 사람을 요주의 인물로 지정해 줘. 오석호, 윤주태, 조상현.’

[불가합니다. 해당 인물들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칫.’
아무래도 방화벽 계열의 시스템 제한을 걸어 둔 모양.
요주의 인물로 지정해 두면 접근할 시 경고음이 들리게 되어 있었으나, 그것을 기대하긴 어려울 듯했다.

[파티원들을 찾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을 활성화하시겠습니까?]

‘응.’

[내비게이션을 활성화합니다.]

미네르바의 말과 함께 자그마한 홀로그램 영상이 눈앞에 떠올랐다.
연희수는 그것을 옆으로 옮기고서 걸어 나갔다.
주변의 헌터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전투태세를 갖추는 중.
구울이나 좀비의 태동은 아직 느껴지지 않았다.

* *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와 함께 하는 레이드 플러스 채널, 도그마 정기 레이드의 중계를 맡은 캐스터 김호산입니다. 해설에는 현 더블A랭크의 곽주성 헌터가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곽주성 해설.]
[허허. 예, 그렇네요. 지난 서울시배 길드 대항전 이후 처음이던가요?]
[그렇습니다. 이번으로 도그마 차원 정기 레이드가 16회째를 맞는데요. 그간 보스 사냥에 성공한 적은 12회에 불과하단 말이죠.]
[예. 아무래도 뱀파이어들에겐 안개화를 비롯한 성가신 스킬들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번 공략의 포인트가 될 부분은 무엇일지 그 부분부터 짚어 주시겠습니까?]
[예. 우선은…….]
화면 가득 전장 맵과 설명이 나타났다.
이어서 캐스터와 해설 간의 설명 및 만담이 이어졌지만, 차수린의 귀에는 반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연희수에 대한 걱정뿐.
더불어 뒤늦은 후회까지 밀려왔다.
‘역시 취소했어야 하는 걸까?’
심혁진은 결국 끝까지 계획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
연희수 앞에선 그를 믿을 수 있다고 말했던 차수린이었으나, 이렇게 되고 보니 새삼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뒤.
심혁진이 무언가 수를 썼기만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묘한 발언이 흘러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이게… 방금 들어온 정보입니다만.]
캐스터의 목소리에서 희미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몇 분 전 세레니티 길드의 20인 공격대가 보스 필드인 블러드 캐슬로 진입했는데 말이죠.]
[예.]
[저희 레이드 플러스의 중계 팀도 함께 진입했는데, 평소와는 달리 1차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1차 전투라면 중앙 홀에 배치된 강화 구울과의 전투일 텐데요.]
[예. 그 전투가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습니까, 곽주성 해설?]
[지금까지는… 없었지요, 아마? 강화 구울 이외의 몬스터가 배치된 적은 몇 번 있었습니다만.]
[그렇군요. 일단 이것이 내부의 전경입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블러드 캐슬의 내부 전경이 나타났다.
안쪽에서 상의 중인 헌터들. 그 주변으로 을씨년스러운 성내의 전경이 들어왔다.
그 어디에도 마수나 뱀파이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치직, 치지직.
중계 화면에 묘한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아, 현재 중계 환경이 원활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실시간 중계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제법 자주 일어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곽주성 해설?]
[예. 아무래도 이차원 간 이원 중계이다 보니…….]
팟.
중계 화면이 완전히 꺼졌다.
통신이 두절됐다는 의미.
지난 15번의 공략 동안에는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은 일이었다.
[방송 환경이 고르지 못한 점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추가적인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잠깐의 침묵.
뒤이어 흘러나온 캐스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예. 그… 블러드 캐슬 외부, 그러니까 일반 필드 쪽 중계 팀으로부터 전달된 소식입니다.]
짤막한 침묵이 재차 흐른 뒤.
[뱀파이어 백작과 주력 몬스터들이… 바깥 필드에 나타난 모양입니다.]

* * *

도그마 차원의 전장은 거대한 성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채를 일컫는 이름은 블러드 캐슬.
뱀파이어의 성인지라 붙게 된 성의 없는 이름이었다.
그 성채를 중심으로 펼쳐진 벌판이 이른바 외부 필드.
성내의 전투가 시작되면 소행성 전역에 배치된 병력들이 그곳으로 몰려든다.
핵심 공격대를 제외한 헌터들은 사방에서 쇄도하는 구울과 좀비를 사냥하면 되었다.
그들이 버티는 동안 성 안으로 들어간 핵심 공격대가 보스의 멱을 따면 레이드 성공.
지배자를 잃은 시체들은 그 즉시 행동을 멈추었다.
그것이 그 동안의 대략적인 레이드의 흐름이었는데…….
파지지직!
오늘은 뭔가 달랐다.
세레니티 소속 공격대가 진입하고 5분 뒤, 돌연 블러드 캐슬 주변에 반투명한 배리어가 펼쳐졌던 까닭이다.
평소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
의아한 광경이긴 했지만, 그때까진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몇 번이고 공략해 본 곳이라는 데서 기인한 방심이 그들 속에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일까.
남쪽 능선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났을 때, 벌판에 있던 헌터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쿠구구구.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수백 마리의 좀비와 구울들.
하지만 헌터들을 경악케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 위.
구울들 위로 날개를 펼치고서 날아드는 인간형 몬스터.
뱀파이어들!
“큭!”
“이쪽으로 온다!”
냉정하게 본다면 알 수 있을 터였다.
면밀히 살펴보면 결국 하급 뱀파이어일 뿐.
비행 능력 정도가 특이 사항임을.
하지만 그렇더라도 구울이나 좀비에 비하면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전투력 자체도 높을뿐더러, 비행 능력 자체에서 파생되는 공격 루트도 다양했으니까.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쿠구구구……!
핏빛 먹구름이 뱀파이어들을 뒤쫓듯 빠르게 확산되었다.
뱀파이어들을 지나쳐서는 삽시간에 헌터들의 머리 위까지 퍼진 먹구름.
붉은 뇌전이 번뜩거리는 그것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마법계 스킬을 통해 생성된 것.

[레벨 35의 ‘썬더 스톰(Thunder Storm)’ 마법이 시전됩니다.]

“헉!”
“아, 안 돼!”
미네르바의 알림을 들은 헌터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대응하기엔 이미 늦은 뒤였다.
꽈르르릉!
거대한 뇌전이 벌판 위에 작렬했다.
핏빛 섬광이 뭉쳐 있던 헌터들을 직격했고, 일곱 명의 헌터가 변변한 방어조차 못한 채 재가 되었다.
“큭!”
“뱀파이어 백작이다! 놈의 주력 스킬인 썬더 스톰이야!”
누군가의 외침에 헌터들의 시선이 능선 위로 향했다.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실루엣 하나.
성내에서 공격대를 기다려야 할 뱀파이어 백작이 그곳에 있었다.
“이런 미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비명에 가까운 경악성을 쏟아내는 헌터들.
연희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 어쩌죠?”
조금 전 합류한 파티원에게 묻는다고 답이 나올 리 만무한 일.
그녀와 마찬가지로 패닉 상태에 빠진 파티원들은 손톱을 씹거나 부르르 몸을 떨 따름이었다.
기실 벌판에 있는 헌터들 대부분이 그런 상태.
이윽고 하급 뱀파이어들이 그들의 머리 위로 하강했다.
악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