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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차원 레이드(4)



‘뭐야, 대체.’
ST그룹 수원 부지.
별도로 마련된 대기실 안에서 연희수는 볼을 부풀렸다.
레이드용 복장으로 갈아입는 중.
대기실은 남녀 별도로 나눠져 있었고, 여성 헌터가 비교적 적은 탓에 내부는 한산했다.
복장을 갈아입은 다음엔 장비와 아이템을 점검할 차례.
하지만 정신이 딴 데 팔린 탓에 지지부진했다.
‘정말 괜찮은 걸까?’
그녀는 몇 분 전을 떠올렸다.
부지로 들어서는 어귀.
원래대로면 좀 더 안으로 들어가도 될 텐데, 심혁진은 대뜸 그녀를 바깥에서 내려 줬다.
“더 같이 안 가시게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이제 와서 따로 할 일이라니?
멍해져 있는 연희수의 속도 모르고 심혁진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수고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퍽이나 기운이 나는 응원이네요. 뭔가 다른 할 말은 없는 거예요?”
“태성 쪽 잔챙이들은 신경 쓰지 말고 마수들을 조심해.”
“네?”
연희수는 한층 멍해졌다.
도그마 차원은 뱀파이어들의 전진기지.
외부 필드를 배회하는 것은 주로 구울이나 좀비 같은 하급 몬스터뿐이었다.
비전투 클래스인 바드조차 두 자릿수까진 어렵잖게 대적 가능한 수준.
언제 급습할지 모를 헌터들을 조심하면 조심했지, 구울이나 좀비 따위를 걱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역시 헌터나 레이드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는구나.’
연희수는 심혁진에 대한 기대를 접기로 했다.
‘이젠 나도 몰라. 그냥 위험하다 싶으면 탈출해 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대기실로 들어선 그녀였으나, 생각할수록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수린 언니에게 뭔가 생각이 있는 거겠지?’
연희수가 알고 있는 차수린은 결코 직감이나 운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
지금으로선 그것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 * *

후우우.
흰 담배 연기가 모니터 위로 흩뿌려졌다.
그 앞에 앉아 있던 여성 오퍼레이터가 오만상을 확 찌푸렸다.
“임 선배님, 실내에선 금연인 거 모르세요? 그냥 확 위에 찔러 버릴까보다.”
“어, 미안.”
“도대체가, 평소엔 컨트롤 룸에 코빼기도 안 비치시면서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대요?”
“그냥. 가끔은 밥값을 해야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선배님이 안 계신 게 더 도움이 될 듯한데요.”
“섭섭하게 너무 그러지 마라, 좀.”
“알았으니까 담배나 끊으세요. 정말 탄원서를 제출하든지 해야지.”
쩝 하고 입을 다신 임철수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꽁초를 투하했다.
국정원 소속 컨트롤 룸.
십여 명의 오퍼레이터가 모니터를 앞에 두고 앉아 레이드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레이드가 벌어질 때마다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작업.
차원 레이드 자체가 워낙 중대한 사업이다 보니 국가 차원의 감시 및 관리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국정원이었고.
“그런데 말이야. 이번 레이드 보스가 A랭크랬던가?”
“네. 선배님도 잘 아시잖아요? 도그마 차원엔 항상 A랭크 뱀파이어 백작이 나타난다는 거.”
“역시 그렇지? 근데 확인도 제대로 해 본 거겠지?”
“ST그룹 산하 길드에서 척후조를 보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임철수는 반사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려다가 멈칫했다.
주먹 쥔 손으로 담배를 동강 낸 그가 혀를 찼다.
“이놈의 담배를 정말 끊든지 해야지.”
“선배님 담배 끊는 날보다 남북통일 되는 날이 먼저 올 것 같은데요.”
“맞는 말 자꾸 하지 마라. 듣는 사람 뼈가 시리다.”
농담조로 대꾸하긴 했으나 임철수의 눈빛엔 일말의 장난기도 섞여 있지 않았다.
며칠 되지도 않은 일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심혁진…….’
불과 이틀 전이었다.
불현듯 국정원 근처까지 찾아온 심혁진이 임철수를 호출했다.
“이번 도그마 차원 레이드, 별 문제는 없는 겁니까?”
대뜸 던진 질문에 임철수는 전에 없이 당황했다.
“예. 뭐,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묻습니까?”
“정말 별 문제가 없는 겁니까, 아님 지금까지 없었으니 이번에도 없을 것 같다는 겁니까?”
“……굳이 따지자면 후자지요.”
대답을 하면서도 의문을 접을 수 없는 임철수였다.
다신 보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홀연히 나타난 심혁진.
게다가 대뜸 던진 질문이란 게 도그마 차원 레이드 건이라니.
더불어 상부에서 내려왔던 언질까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심혁진에 대해 더는 파고들지 말라던 경고.
한데 당사자가 직접 나타났으니 임철수로선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좀 알려 주시죠. 그래야 도와드릴 수 있을 듯한데.”
“느낌이 좋지 않다고 한다면 납득하시겠습니까?”
“느낌이요?”
임철수의 반문에 심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전달하면 ST그룹이나 정부 측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코웃음이나 친다면 다행이겠지요. 되도 않는 개소리를 한다고 경을 치려 들 겁니다.”
“그렇죠?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임철수는 잔뜩 긴장했다.
“설마 이번 도그마 차원 레이드가 불길하단 말씀입니까?”
“예. 뭐, 이렇게 말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겠습니다만.”
“으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ST그룹이나 정부에 언질 정도는 주시죠. 개미 눈곱만큼의 대처나마 더 할지도 모를 일이니.”
심혁진은 그렇게 할 말만 마치고 떠났다.
덕분에 임철수는 지난 이틀간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상부에 보고를 올릴지 말지 고민을 거듭한 후.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자신이 경고를 한다고 먹힐 리도 만무하거니와, 괜히 심혁진과 만난 일로 꼬투리를 잡힐지도 몰랐던 것이다.
덕분에 안 그래도 적지 않던 새치가 배로 늘어나 버렸다.
‘이번 레이드가 불길하다니, 도그마 차원에 뭔가 변화라도 일어날 거란 말인가?’
다른 사람의 얘기였다면 귓등으로 흘려 넘겼으리라.
하지만 전대미문의 탐지 불가 랭크 헌터라면 얘기가 달랐다.
문제는 이미 레이드가 시작됐다는 것.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경고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빌어먹을.’
임철수는 또 다른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가 두 손으로 분질렀다.
“이놈의 담배를 정말 끊든지 해야지.”
“오늘따라 진짜 이상하네요, 선배.”
후배 오퍼레이터가 대꾸하는 찰나.
모니터 안에선 레이드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우우우웅!
수원시 남부 외곽의 대형 부지.
이중삼중의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그곳의 중심에서 차원 포탈이 개방되었다.
대기 중이던 헌터들이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했다.
그 선봉에는 한국 최대의 길드 중 하나인 세레니티의 멤버들이 있었다.
명성과 능력에 걸맞게 착용 중인 장비 역시 최고급.
뒤편에서 대기 중인 헌터들의 시선이 저절로 그들에게 쏠렸다.
연희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와아.’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비록 CC랭크에 불과하다지만 헌터 관련 지식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연희수였다.
때문에 저들이 지닌 장비의 가치 또한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장갑 한 짝, 신발 한 짝이 어지간한 서울시내 집값보다 비싸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뇌던 연희수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의 벽이란 녹록치 않은 법.
당장은 이번 레이드를 잘 치르는 데에만 집중해도 모자랐다.
[이번 레이드의 지휘를 맡은 세레니티 길드의 윤준태입니다.]
인이어 이어폰을 통해 공격대 통신이 들려왔다.
[레이드 보스는 랭크 A의 뱀파이어 백작으로 추정됩니다. 보스는 저희 세레니티 쪽에서 맡을 테니 여러분은 외부에서 밀려드는 잡몹들을 처리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다분히 일방적인 명령.
그나마 예의 바른 어조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긴 했다.
[세세한 변동 사항이 생길 시엔 따로 전달 드리겠습니다. 임의로 5인 1조의 파티를 구성해 두었으니 파티원들과 적절히 소통하며 전투에 임하시길.]
연희수는 미네르바를 통하여 파티 구성을 확인했다.
전사 둘과 법사, 치유사, 그리고 바드인 그녀까지.
나쁘지 않은 구성이었다.
‘태성 쪽 헌터들은…….’
꽤나 멀리 떨어진 파티에 배치되어 있었다.
운이 좋은 셈이었으나 아직 안심할 순 없었다.
난전 중에 위치가 변동되는 것쯤은 비일비재했으므로.
여하간 이제 와서 전전긍긍해봐야 소용없는 일.
파티원들과 인사를 나눈 연희수는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스륵. 스르륵.
세레니티 길드원들을 시작으로 헌터들이 포탈 너머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연희수 역시 차례를 기다리다가 포탈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같은 시각.
심혁진은 포탈을 향해 이동 중인 헌터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대기업이라 해도 별것 없는걸.’
차수린의 말마따나 부지의 입구부터 안쪽까지 제법 많은 경비들이 깔려 있었다.
광학 미채를 비롯한 갖가지 은신 수단을 탐지하는 장비들로 중무장을 한 채.
그러나 심혁진의 은신 마법까지 탐지해 내진 못했다.
‘투명화(Invisibility).’
마나를 통해 빛의 난반사를 일으켜 형체를 감추는 기초적인 마법.
하지만 그 스킬 레벨이 60을 넘어설 경우 최첨단 광학 장비로도 탐지하는 게 불가능했다.
투명화 마법을 걸친 심혁진이 기척까지 죽이니, 부지의 경비병들은 그저 걸어 다니는 허수아비와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부지 안으로 숨어든 심혁진은 어렵잖게 헌터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때마침 인원 체크가 이미 끝나고 포탈 안으로 들어서는 중.
심혁진은 어렵잖게 헌터들 사이에 섞여 도그마 차원으로 이동하는 포탈에 다가갔다.
‘다른 차원에 또 다시 발을 디딜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아케론 차원으로 인해 차원 이동엔 학을 떼게 된 심혁진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차원계의 R랭크라 할 수 있는 심연급 차원인 아케론과 달리, 도그마는 일반 차원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심연급 차원에선 비상 탈출 아이템을 비롯한 차원 이동 아이템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름부터가 심연인 것.
그러나 일반 차원이라면 이에 대한 걱정이 조금도 필요치 않았다.
‘일단은 그렇긴 한데…….’
심혁진은 숨을 깊게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차수린이 설명해 준 대로, 각 차원의 지배자들은 명운의 굴레라는 시스템에 얽매어 있었다.
알려진 대로라면 도그마 차원의 지배자는 뱀파이어 로드일 터.
명운의 굴레에 의해 인터 디멘션인 도그마 차원에는 병력의 일부만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병력을 지휘하는 건 기껏해야 A랭크 근방의 순혈 뱀파이어.
덕분에 지구 입장에선 순탄하게 격파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지도.’
명운의 굴레에 변화가 생겼다.
심혁진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또한 차원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