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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차원 레이드(3)



“그 사람 좀 이상해요, 언니.”
차수린이 돌아보자 연희수가 아차 했다.
“사장님.”
“언니가 편하면 그렇게 부르렴.”
“아. 네, 언니. 어쨌든 그 심혁진이란 사람, 완전 이상해요. 사이코… 는 좀 심한 것 같고, 과대망상증이 있는 것 같아요.”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그러면 언니도……?”
차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역시 그랬군요. 그럼 왜 군말 없이 고용하신 거예요. 혹시 어마어마한 부자라서……?”
“돈은 많아 보이더라.”
“역시 그랬군요? 그 사람이 사고 치게 내버려둬서 계약서대로 돈을 뜯어내려는 거죠?”
“일단은… 그렇긴 한데.”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는 차수린의 목소리.
연희수는 그 이질감을 놓치지 않았다.
“뭔가 더 있는 거예요?”
“일단은, 희수야. 이 언니를 믿어 줘.”
“언니답지 않은데요. 평소라면 납득 가능 하도록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설명해 주셨을 텐데.”
“이번엔 평소랑은 좀 다르거든.”
희미하게 웃은 차수린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사람 앞에서라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어떤 거요?”
“유럽 여행이라거나 친구들 얘기 같은 거.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
“……네.”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연희수.
차수린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기에 뭐라고 더 말하지는 않았다.
“하여간 일단은 그 사람을 믿어 주렴. 최악의 경우라 해도 넌 니케의 깃털로 탈출하면 되고, 소모비용은 그 사람이 대게 될 테니까.”
“알겠어요, 언니.”

* * *

“……이게 정말 갱신된 예정표인가?”
“그렇습니다, 사장님.”
“정말로?”
“예. 뭔가 문제라도 있는지……?”
“아니야.”
김태성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대답했다.
마음 같아선 모니터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아깝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모습을 부하 직원 앞에서 보이기가 싫었던 까닭이다.
김태성은 담배를 빼 물었다.
“석호랑 주태, 상현이 좀 오라고 해.”
“예? 아, 예. 알겠습니다.”
도그마 차원 레이드에 참가할 태성 쪽 헌터들.
그들이 오는 동안 김태성은 담배 필터를 씹어 먹을 기세로 질겅거렸다.
“빌어먹을 년, 감히 내 경고를 무시해? 이 김태성을 우습게봤단 말이지. 다름 아닌 이 나를…….”
“무슨 일입니까?”
“왜 부르셨대요? 안 그래도 바쁜데.”
세 사람의 헌터가 찾아왔다.
그들의 면면을 확인한 김태성이 대뜸 벽장의 금고를 열었다.
척척척.
5만 원짜리 다발 수십 개가 탁자 위에 쌓였다.
“이게 뭡니까, 사장님?”
“추가 수당. 내가 내거는 추가 의뢰를 받아들이면 착수금으로 바로 내주겠다.”
“이게 착수금이면 성공보수도 있는 겁니까?”
“물론.”
헌터들의 시선이 돈과 김태성에게로 번갈아 향했다.
하지만 대뜸 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굳이 헌터 짬밥 덕분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의뢰랍니까? 일단 설명부터 좀 해주시죠.”
“듣고 나서 결정하겠습니다.”
“의뢰 자체는 간단해. C랭크 피라미 한 마리를 강제 이탈시키면 된다.”
“강제 이탈이라면…….”
“이번 레이드에서 말입니까?”
“그래.”
“누군데 그러십니까?”
“CS쪽 바드 계집애.”
“어, CS쪽 바드라면…….”
“이름이 연희수랬던가? 여자애 아닙니까? C랭크는 아니고 CC랭크일 겁니다. 별 차이는 없지만.”
“잘 알고 있나?”
김태성의 질문을 받은 헌터가 눈만 껌뻑였다.
“몇 번 스치듯 본 적은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고생 헌터가 많지는 않은 편이니까요.”
“어, 나도 봤는데. 그리 예쁘진 않던데요?”
“예뻤으면 채수지처럼 빵 떴겠지. 하여간 그년은 왜요? 사장님한테 뭐 실수라도 했습니까?”
“그년 말고, 차수린이.”
그제야 헌터들의 얼굴에 알겠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아, 창준이 그 새끼 때문이죠? 하긴 저도 그년이 뭔가 수를 쓴 것 같더라고요.”
“뭔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집구석에 처박혀 나올 생각을 않는다던데.”
“하여간 그년도 독하긴 무지하게 독하다니까요. 적당히 돈만 받고 보내줬으면 됐을걸.”
“쓸데없는 소리들은 됐고,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
김태성이 으르니 세 헌터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C랭크에 클래스까지 바드면 그리 어렵지 않긴 한데.”
“CC랭크예요, 주태 형.”
“C나 CC나. 어차피 별 능력도 없는 헌터 조무사인 건 마찬가지지.”
“그럼 형이 나서서 하시든지요.”
“닥쳐, 새끼야.”
꺼리는 듯한 분위기에 김태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왜들 그래? 계집애 하나 처치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아니면 착수금이 적어서 그래?”
“그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카메라도 돌고, 보는 눈도 많다 보니…….”
“듣자하니 이번 레이드는 3개 방송사에서 동시 중계까지 한다던데요.”
“그게 뭐? 어차피 방송국 카메라는 보스방만 줄기차게 찍어댈 텐데. 바깥에서 난전이 펼쳐지면 뭐 제대로 확인이나 될 것 같아?”
“그건 그렇지만…….”
“아직 참가 인원 명단 수정 가능한 거 알지? 내가 뭐 너희 아니면 보낼 헌터가 없는 줄 아냐?”
김태성의 으름장에 세 헌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진짜 왜 그러실까, 사장님.”
“싫다는 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 좀 주십사 하는 거죠.”
“일이 잘못됐다가 우리만 독박 쓸 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거잖아.”
김태성이 돈 다발을 한 움큼 집어선 탁자 위에 쏟았다.
“그리고 니들이 잘못되면 내가 가만히 있겠냐? 너희랑 직접 계약한 사장인데?”
“…….”
“뒤는 내가 봐줄 테니 걱정 말고 성공하는 것만 생각해.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싫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만.”
시선을 교환하던 헌터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 것, 해 보죠.”
“웬만하면 진짜 이런 짓은 안 하는데, 사장님 부탁이니까 해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눈빛들에 긴장감이 없었다.
그만큼 어렵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터.
애초에 빼는 척한 것도 보수를 올리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저깟 푼돈쯤이야 얼마든지 지출할 수 있는 것.
자존심을 되찾고 차수린을 짓밟아 버릴 수만 있다면야 저 정도 출혈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네년이 내 앞에서 울고불고 매달리는 꼴을 반드시 봐야겠다.’
그렇게 속으로 뇌까리는 김태성 앞에서, 세 헌터는 희희낙락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 * *

“그러니까 이 녀석들이란 거죠?”
“네. 그 세 사람이 태성 쪽에서 내보낼 헌터들이에요.”
심혁진은 스마트폰에 떠오른 화면을 지그시 바라봤다.
아직 폰을 다루는 데 익숙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조작법은 숙달한 뒤였다.
“오석호, 윤주태, 조상현. 헌터 랭크는 각각 BB, B, B.”
“비록 잡몹 처리조이긴 해도 레이드 경험이 50회를 넘어가는 베테랑들이에요. 클래스도 각각 전사와 마법사, 도적이라서 팀 밸런스도 뛰어나고요.”
“흐음.”
“더 필요한 정보라도 있어요?”
“한 가지만 더. 이 잡몹 처리조라는 거, 보안이 철저합니까?”
“보안이라니요?”
“차원에 진입할 때 방비를 철통 같이 하느냐는 겁니다.”
“그건…….”
잠시 우물거리던 차수린이 말했다.
“레이드 차원으로 이어지는 포탈은 대개 군부대나 대기업에서 마련한 사설 부지에서 개방돼요. 이번 도그마 차원 레이드는 수원에 있는 ST그룹 부지에서 시작되죠.”
“사설 기업의 부지라…….”
“당연한 얘기지만 부지 내부로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요. 차원 포탈이 열리는 곳인 만큼 안전과 방비에 만전을 기하기 마련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매니저는 부지 바깥까지만 같이 갈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포탈 근처까진 아니어도 부지 내 대기실까진 함께 갈 수 있어요. 물론 자체 검사도 받아야 하고 감시관도 따라붙지만요.”
“사기업이라 뭔가 다르긴 하군요.”
국정원은 개판이었는데.
속으로만 중얼거린 심혁진이 피식 웃고서 화면을 껐다.
“필요한 건 다 들은 것 같군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세요. 근데 희수한텐 무엇을 줄 생각이죠?”
차수린의 질문에 심혁진이 눈을 깜빡였다.
“주다니, 뭘 말입니까?”
“뭐라도요. 아이템이 되었든 호신 장비가 됐든 뭘 줘야 그 애가 무사하죠.”
“비상 탈출 아이템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놈들도 그걸 알 테고.”
“그래서 그냥 탈출하게 내버려두려고요?”
“그건 아닙니다만, 연희수에게 딱히 뭔가가 더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대체 어떻게 하려고요?”
심혁진이 어깨를 으쓱이자 차수린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희수한테 믿어 달라고 말했는데…….”
“잘 말한 겁니다.”
“그거 알아요? 난 혁진 씨가 희수한테 사람이라도 붙일 줄 알았어요.”
“보디가드요?”
“혹은 과외선생이요. 실력 좋은 헌터 중엔 호신 의뢰나 과외 의뢰를 받아 주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건 몰랐군요. 기억은 해두죠.”
“이런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혁진 씨 재력이면 가능하지 않아요?”
“아마 그럴 겁니다.”
“……뜸도 들이지 않고 곧장 대답하시는군요.”
“사실은 사실이니까. 근데 그런 방식을 쓰진 않을 겁니다.”
“왜죠?”
“이것저것 확인해 볼 것도 있고, 느낌도 좋지 않아서.”
차수린은 순간 멍해졌다.
느낌이 좋지 않다면 돈을 처바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 입장에선 염치 불구한 요구일 뿐.
심혁진의 재력에 기대지 않겠다고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였다.
하지만 연희수가 걱정되다 보니 그런 방법까지 넌지시 제안하게 됐던 것이다.
‘그런데…….’
심혁진은 전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체 뭘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 * *

며칠 뒤.
도그마 차원 레이드 당일.
심혁진이 운전하는 소형 밴이 연희수의 앞에서 멈췄다.
그녀의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거리.
집 앞이 아닌 이곳을 픽업 장소로 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혹시 수린 언니한테서 얘기 들으셨어요?”
“응.”
옆자리에 타는 연희수의 얼굴에 어쩔 수 없구나 하는 표정이 스쳤다.
“사실 그땐 허세 부린 거였어요. 유럽 여행이니 뭐니 하는 건 계획도 잡지 않았고요.”
“…….”
“C랭크라는 게 대개 그렇죠. 웬만한 경우엔 알바 하는 것보다도 벌이가 안 돼요. 당장 제 경우만 해도 월세가 세 달이나 밀려 있고요.”
심혁진이 운전하는 차량이 큰 거리로 빠져나왔다.
아케론 차원에 진입하기 전이니, 운전면허를 딴 것은 족히 20년도 더 된 일.
원래대로라면 갱신 과정이 필요했으나, 확인해 보니 자동 갱신이 되어 있었다.
정부에서 손을 쓴 모양.
심혁진으로선 이걸 빌미로 장차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기만 바랄 따름이었다.
“하나뿐인 제 가족, 우리 진수를 위해서라도 저는 꼭 성공해야 해요.”
“그래.”
심혁진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연희수는 초조한 듯 몸을 뒤척였다.
“그러니까 얘기해 주세요. 저, 정말로 괜찮은 거죠?”
“응.”
“뭔가 해야 할 일이라거나 비법 같은 건 없어요?”
“없어.”
“그럼 위험할 때는요? 그냥 탈출템 쓰고 달아나요?”
“그래.”
그게 뭐냐고 연희수가 쏘아붙이려는 찰나, 심혁진이 덧붙였다.
“근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