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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차원 레이드(2)
“내가 여기 소속 매니저가 되었으니.”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는 카페 안.
연희수를 앞에 두고서 심혁진이 말했다.
“일단 네 스탯이랑 스킬부터 좀 알아야겠어.”
“어…….”
연희수는 당황한 반응이었다.
그녀도 그 자리에 있었다.
차수린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심혁진이 동의하는 곳에.
때문에 믿기지가 않았다.
그 꼼꼼한 차수린이 이렇게나 간단히 일을 맡겼다는 게.
물론 계약서 자체는 심혈을 기울여 작성됐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중삼중의 그물을 쳐 놓은 격.
그런 계약서를 대강 훑어보고는 대충 사인을 했으니, 이 남자가 얼마나 허당인지는 말해 봐야 입만 아팠다.
‘보통은 그럴 텐데…….’
이 경우는 조금 이상했다.
심혁진도 심혁진이지만 차수린도 뭔가 나사 하나쯤 빠진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평소의 그녀를 잘 알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예기치 못한 횡령 건으로 크게 휘청거려서 그렇지, CS는 본디 잘 나가는 매니지먼트 업체이자 길드였다.
규모는 작아도 내실은 탄탄했고, 젊은 사장인 차수린의 수완 또한 뛰어났다.
아버지인 차상욱이 거액의 자금을 횡령하지만 않았어도 탄탄대로를 걸었을 터.
그런 그녀가, 조건을 덕지덕지 달았다고는 하지만 일개 구직자에게 일을 위임했다?
연희수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사장님은 대체 뭘 믿고 이 남자에게 일을 맡긴 거지?’
연희수는 심혁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저씨라 부르긴 했지만 사실 그건 박한 표현이고, 연령대는 차수린과 크게 차이 나게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은 평범하지만 잘만 꾸미면 괜찮을 듯했고, 나름대로 운동을 했는지 체격은 탄탄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전반적인 태도가 자신만만하기는 했지만, 믿을 구석이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연희수.”
심혁진의 목소리에 그녀는 상념에서 깼다.
“네?”
“스탯, 스킬.”
“네?”
“말해 보라고, 네 입으로.”
심혁진이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수린 씨한테서 서류를 받긴 했는데, 마지막으로 갱신된 날짜가 반년 전이더군.”
“그런데요?”
“반년이면 스킬 레벨 업을 몇 번이나 하고도 남을 기간이잖아. 그동안 놀고먹지만은 않았을 테니 뭔가 진척이 있었을 것 아냐?”
“…….”
은근히 깔보는 듯한 어조에 연희수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런 종이 쪼가리 말고 길드 앱을 확인하면 되잖아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꼬박꼬박 될 텐데.”
“길드 앱?”
“네. 앱, 어플리케이션이요. 어플 모르세요?”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던 심혁진이 말했다.
“몰라.”
“네? 핸드폰 안 써 보셨어요?”
심혁진은 웃옷 주머니 안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 아침에 산 물건.
대강 보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다룰 줄도 몰랐다.
“안 가져왔어. 대신 네 걸로 좀 확인할 수 있을까?”
“하아.”
대놓고 한숨을 쉰 연희수가 앱을 열어 확인시켜 주었다.
스탯창과 스킬 목록을 대강 훑어본 심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게으르진 않았나 보군. 반년 동안 꽤나 스탯을 올려놓았는데?”
“성공하려면 열심히 해야죠.”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서?”
“그것도 그렇지만…….”
무언가를 말하려던 연희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됐고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아저씨는 누구시고, 사장님은 왜 도그마 차원 레이드를 취소하려 하시는 거죠?”
“간략히 설명할까, 좀 길게 설명할까?”
“간략하면서도 요점은 확실하게.”
“그러지.”
심혁진이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김창준 얘기는 생략하고서, 그저 태성 쪽과 트러블이 생겼다는 식으로만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듣는 연희수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구겨졌다.
“그러니까… 태성 매니지먼트의 사장이 우리 사장님한테 선전포고를 했다는 거네요?”
“응.”
“대체 어쩌다…….”
“그놈이 구제불능의 개자식이라서 그렇지 뭐.”
심혁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연희수.
심혁진은 대수롭잖게 말을 이어 갔다.
“하여간 일이 그렇게 됐으니, 우리도 대비를 해둬야겠지?”
“대비요?”
연희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힘들 거예요. 사장님이 잘 생각하신 거였네요.”
“포기가 빠른걸.”
“제 스탯 보셨으니 아실 것 아니에요. 괜히 CC랭크가 아니라는 거.”
연희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노력은 정말 열심히 했죠. 사장님 모르게 템 파밍도 해봤고. 그런데도 그게 한계더라고요. 반년 동안 스탯 찔끔에 C급 잡템 한두 개 먹은 게 전부였어요.”
심혁진은 조금 전 읽어 내린 스탯창을 떠올렸다.
====================
힘(STR): 32
지성(INT): 42
민첩성(DEX): 24
건강(CON): 22
정신력(WILL): 51
====================
기본 스탯만 보자면 대체로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
지성과 정신력이 일반인의 2배가량에 이르긴 했지만, 나머지 스탯은 헌터 기준으로는 자격 미달에 가까웠다.
그나마도 반년 간 성장한 게 이 정도였고, 반년 전 스탯은 평균적으로 4~5가량 낮았다.
“그래도 스킬 구성은 좋던데.”
심혁진은 연희수의 스킬 일람도 어렵잖게 떠올렸다.
기실 스킬 자체가 몇 없어서 떠올리기도 편했다
====================
어설트 휘슬(Assault Whistle)
비탄의 노래(The Lamentation)
응원가(Cheering Song)
====================
강격(Power Attack)이나 마나 실드(Mana Shield) 같은 기본 스킬은 배제하고 보면, 핵심 스킬은 저 셋이었다.
“스킬 세트로 보니, 클래스는 바드 계열인가 보네?”
“네. 어릴 적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연희수가 우울하게 웃었다.
“근데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해도 스킬 레벨은 더디게 오르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요령껏 쭉쭉 올리던데.”
“뭐든 요령이 중요하긴 하지.”
“그래요.”
연희수의 푸념이 이어졌다.
“원래 계획은 적당히 묻혀 가는 거였어요. 제 클래스가 보조 계열이니 버프나 디버프만 적절히 걸어 줘도 공헌도를 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공헌도?”
“모르세요?”
심혁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희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젠 될 대로 되라 싶네요. 설명해 드려요?”
“응.”
“공헌도는 레이드 과정에서 헌터가 기여한 내역을 데이터화한 수치예요.”
“얼마나 잘 싸웠나 숫자로 치환한다는 거군?”
“네. 덕분에 딜, 탱, 힐러, 서포터 모두 적절한 보상을 받게 되었죠.”
“흐흠.”
“딜, 탱, 힐, 서폿이 뭔지도 설명해 줘야 하나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알게 모르게 가시 돋친 연희수의 반응.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심혁진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태성 쪽에서 개입한다면 저로선 버틸 재간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의 눈도 있을 텐데, 놈들도 함부로 나대진 못하지 않겠어?”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배치되는 곳은 일반 필드니까요.”
“일반 필드?”
“네. 보스가 도사리는 핵심 필드 바깥의, 잡몹들이 널려 있는 곳을 일컬어요.”
“그렇군.”
심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료들은 딱히 그런 분류를 한 적이 없었기에 처음 듣는 단어일 뿐, 개념 자체는 익숙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정예 부대가 보스를 상대하는 동안 일반 헌터들이 잡졸들의 지원을 막는다는 거군?”
“네. 전투 방식도 대규모 물량 싸움이고 잡몹들의 패턴도 단순해서, 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곳들이 많아요.”
“그 사각에서 비열한 짓들을 벌일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죠. 실제로 그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기도 하고요.”
연희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복잡한 과정까지도 필요 없을 거예요. 난전 중의 기습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바드는 전형적인 서포터 클래스.
음악을 통해 적에게는 디버프를, 아군에겐 버프를 건다.
자체 전투 스킬도 있기는 하나 전문적인 탱커와 딜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든든한 파티원이 받쳐준다면 또 모를까, 혼자뿐인 상황에서라면 스스로를 지킬 방도가 마땅치가 않았다.
“다치는 건 무섭지 않아요. 그 정도는 처음 이 바닥에 들어왔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뭐지?”
“뭐겠어요. 다치는 것 이상의 경우죠.”
허용치 이상의 데미지를 입게 되면 자동적으로 비상 탈출 아이템이 소모된다.
니케의 깃털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싸구려였지만, 그렇다 해도 차 한 대 가격이었다.
“목숨 값에 비하면 싼 편이겠지만… 지금은 우리 회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거야 불 보듯 뻔하죠.”
연희수는 우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수린 언니, 안 그래도 어려워 보이는데 더 부담 주는 짓은 도저히 못해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한걸.”
“당연하죠. 솔직히 말해서 수린 언니 아니었음 누가 C급 헌터를 받아주겠어요?”
“더블 C급이라며.”
“C나 더블 C나, 밑바닥인 건 마찬가지잖아요.”
퉁명스런 연희수의 대꾸에 심혁진은 실소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어설픈 위로는 됐어요. 헌터 아닌 사람은 이 심정을 이해 못해요.”
심혁진이 헌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모양.
하긴 헌터 자질을 지닌 사람이 이런 일을 하겠답시고 나서는 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수린 언니, 아니 차 사장님이 잘 생각하신 거예요. 제가 레이드 뛰겠다고 고집 부려봐야 회사에 피해만 갈 거예요.”
“그럴지도.”
미적지근한 심혁진의 반응에 연희수가 실소했다.
“이제 아셨겠죠? 포기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는 걸요.”
“그건 아냐. 하지만 필요로 하는 건 대충 다 안 것 같다. 고마워, 잘 대답해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죠?”
“여러 가지.”
“그러니까 여러 가지 어떤 생각인데요.”
“우선은 네가 생각보다 착한 애라는 것.”
연희수가 움찔했다.
“최소한 김창준 그놈보다는 훨씬 싹수가 괜찮네.”
“김창준? 우리 길드 간판인 김창준 씨 말이에요?”
“응. 이제 더는 아니지만.”
“태성으로 날았군요? 근데 이상하네요?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태성에서 보복하겠다고 난리죠?”
“다 이유가 있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번 일을 잘 해내는 거잖아?”
“백기 드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이는데요.”
“그렇지 않아.”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심혁진의 태도에 연희수는 약간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어쩜 이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는 거지?’
그녀가 보기에 이 남자, 심혁진은 아무 것도 없는 개털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워낙 자신만만하다 보니, 숨겨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흐흠.”
심혁진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연희수는 움찔했다.
“뭐예요? 설마 이제 와서 답이 없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죠?”
“답이야 있지. 너한테 말해줘야 하느냐가 문제지.”
“왜요?”
“말해봐야 믿지 않을 테니까.”
연희수는 어이가 없었다.
“일단 들어봐야 믿든 믿지 않든 하죠.”
“뭐, 그것도 그렇군. 솔직히 네가 믿든 말든 상관없기도 하고.”
“…….”
“우선 생각난 건 두 가지야. 하나는 지금 당장 태성으로 들이닥쳐서 죄다 엎어놓는 거지.”
“……예?”
“그런데 그래선 뒷감당하기가 귀찮아질 거야. 그러니 레이드가 벌어지는 곳에서 역습을 가하는 게 낫겠지?”
연희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거 봐.”
심혁진은 피식 웃었다.
“못 믿을 거라고 했잖아.”
“내가 여기 소속 매니저가 되었으니.”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는 카페 안.
연희수를 앞에 두고서 심혁진이 말했다.
“일단 네 스탯이랑 스킬부터 좀 알아야겠어.”
“어…….”
연희수는 당황한 반응이었다.
그녀도 그 자리에 있었다.
차수린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심혁진이 동의하는 곳에.
때문에 믿기지가 않았다.
그 꼼꼼한 차수린이 이렇게나 간단히 일을 맡겼다는 게.
물론 계약서 자체는 심혈을 기울여 작성됐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중삼중의 그물을 쳐 놓은 격.
그런 계약서를 대강 훑어보고는 대충 사인을 했으니, 이 남자가 얼마나 허당인지는 말해 봐야 입만 아팠다.
‘보통은 그럴 텐데…….’
이 경우는 조금 이상했다.
심혁진도 심혁진이지만 차수린도 뭔가 나사 하나쯤 빠진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평소의 그녀를 잘 알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예기치 못한 횡령 건으로 크게 휘청거려서 그렇지, CS는 본디 잘 나가는 매니지먼트 업체이자 길드였다.
규모는 작아도 내실은 탄탄했고, 젊은 사장인 차수린의 수완 또한 뛰어났다.
아버지인 차상욱이 거액의 자금을 횡령하지만 않았어도 탄탄대로를 걸었을 터.
그런 그녀가, 조건을 덕지덕지 달았다고는 하지만 일개 구직자에게 일을 위임했다?
연희수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사장님은 대체 뭘 믿고 이 남자에게 일을 맡긴 거지?’
연희수는 심혁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저씨라 부르긴 했지만 사실 그건 박한 표현이고, 연령대는 차수린과 크게 차이 나게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은 평범하지만 잘만 꾸미면 괜찮을 듯했고, 나름대로 운동을 했는지 체격은 탄탄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전반적인 태도가 자신만만하기는 했지만, 믿을 구석이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연희수.”
심혁진의 목소리에 그녀는 상념에서 깼다.
“네?”
“스탯, 스킬.”
“네?”
“말해 보라고, 네 입으로.”
심혁진이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수린 씨한테서 서류를 받긴 했는데, 마지막으로 갱신된 날짜가 반년 전이더군.”
“그런데요?”
“반년이면 스킬 레벨 업을 몇 번이나 하고도 남을 기간이잖아. 그동안 놀고먹지만은 않았을 테니 뭔가 진척이 있었을 것 아냐?”
“…….”
은근히 깔보는 듯한 어조에 연희수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런 종이 쪼가리 말고 길드 앱을 확인하면 되잖아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꼬박꼬박 될 텐데.”
“길드 앱?”
“네. 앱, 어플리케이션이요. 어플 모르세요?”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던 심혁진이 말했다.
“몰라.”
“네? 핸드폰 안 써 보셨어요?”
심혁진은 웃옷 주머니 안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 아침에 산 물건.
대강 보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다룰 줄도 몰랐다.
“안 가져왔어. 대신 네 걸로 좀 확인할 수 있을까?”
“하아.”
대놓고 한숨을 쉰 연희수가 앱을 열어 확인시켜 주었다.
스탯창과 스킬 목록을 대강 훑어본 심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게으르진 않았나 보군. 반년 동안 꽤나 스탯을 올려놓았는데?”
“성공하려면 열심히 해야죠.”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서?”
“그것도 그렇지만…….”
무언가를 말하려던 연희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됐고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아저씨는 누구시고, 사장님은 왜 도그마 차원 레이드를 취소하려 하시는 거죠?”
“간략히 설명할까, 좀 길게 설명할까?”
“간략하면서도 요점은 확실하게.”
“그러지.”
심혁진이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김창준 얘기는 생략하고서, 그저 태성 쪽과 트러블이 생겼다는 식으로만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듣는 연희수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구겨졌다.
“그러니까… 태성 매니지먼트의 사장이 우리 사장님한테 선전포고를 했다는 거네요?”
“응.”
“대체 어쩌다…….”
“그놈이 구제불능의 개자식이라서 그렇지 뭐.”
심혁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연희수.
심혁진은 대수롭잖게 말을 이어 갔다.
“하여간 일이 그렇게 됐으니, 우리도 대비를 해둬야겠지?”
“대비요?”
연희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힘들 거예요. 사장님이 잘 생각하신 거였네요.”
“포기가 빠른걸.”
“제 스탯 보셨으니 아실 것 아니에요. 괜히 CC랭크가 아니라는 거.”
연희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노력은 정말 열심히 했죠. 사장님 모르게 템 파밍도 해봤고. 그런데도 그게 한계더라고요. 반년 동안 스탯 찔끔에 C급 잡템 한두 개 먹은 게 전부였어요.”
심혁진은 조금 전 읽어 내린 스탯창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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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STR): 32
지성(INT): 42
민첩성(DEX): 24
건강(CON): 22
정신력(WILL):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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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스탯만 보자면 대체로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
지성과 정신력이 일반인의 2배가량에 이르긴 했지만, 나머지 스탯은 헌터 기준으로는 자격 미달에 가까웠다.
그나마도 반년 간 성장한 게 이 정도였고, 반년 전 스탯은 평균적으로 4~5가량 낮았다.
“그래도 스킬 구성은 좋던데.”
심혁진은 연희수의 스킬 일람도 어렵잖게 떠올렸다.
기실 스킬 자체가 몇 없어서 떠올리기도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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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트 휘슬(Assault Whistle)
비탄의 노래(The Lamentation)
응원가(Cheering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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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격(Power Attack)이나 마나 실드(Mana Shield) 같은 기본 스킬은 배제하고 보면, 핵심 스킬은 저 셋이었다.
“스킬 세트로 보니, 클래스는 바드 계열인가 보네?”
“네. 어릴 적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연희수가 우울하게 웃었다.
“근데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해도 스킬 레벨은 더디게 오르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요령껏 쭉쭉 올리던데.”
“뭐든 요령이 중요하긴 하지.”
“그래요.”
연희수의 푸념이 이어졌다.
“원래 계획은 적당히 묻혀 가는 거였어요. 제 클래스가 보조 계열이니 버프나 디버프만 적절히 걸어 줘도 공헌도를 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공헌도?”
“모르세요?”
심혁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희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젠 될 대로 되라 싶네요. 설명해 드려요?”
“응.”
“공헌도는 레이드 과정에서 헌터가 기여한 내역을 데이터화한 수치예요.”
“얼마나 잘 싸웠나 숫자로 치환한다는 거군?”
“네. 덕분에 딜, 탱, 힐러, 서포터 모두 적절한 보상을 받게 되었죠.”
“흐흠.”
“딜, 탱, 힐, 서폿이 뭔지도 설명해 줘야 하나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알게 모르게 가시 돋친 연희수의 반응.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심혁진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태성 쪽에서 개입한다면 저로선 버틸 재간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의 눈도 있을 텐데, 놈들도 함부로 나대진 못하지 않겠어?”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배치되는 곳은 일반 필드니까요.”
“일반 필드?”
“네. 보스가 도사리는 핵심 필드 바깥의, 잡몹들이 널려 있는 곳을 일컬어요.”
“그렇군.”
심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료들은 딱히 그런 분류를 한 적이 없었기에 처음 듣는 단어일 뿐, 개념 자체는 익숙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정예 부대가 보스를 상대하는 동안 일반 헌터들이 잡졸들의 지원을 막는다는 거군?”
“네. 전투 방식도 대규모 물량 싸움이고 잡몹들의 패턴도 단순해서, 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곳들이 많아요.”
“그 사각에서 비열한 짓들을 벌일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죠. 실제로 그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기도 하고요.”
연희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복잡한 과정까지도 필요 없을 거예요. 난전 중의 기습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바드는 전형적인 서포터 클래스.
음악을 통해 적에게는 디버프를, 아군에겐 버프를 건다.
자체 전투 스킬도 있기는 하나 전문적인 탱커와 딜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든든한 파티원이 받쳐준다면 또 모를까, 혼자뿐인 상황에서라면 스스로를 지킬 방도가 마땅치가 않았다.
“다치는 건 무섭지 않아요. 그 정도는 처음 이 바닥에 들어왔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뭐지?”
“뭐겠어요. 다치는 것 이상의 경우죠.”
허용치 이상의 데미지를 입게 되면 자동적으로 비상 탈출 아이템이 소모된다.
니케의 깃털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싸구려였지만, 그렇다 해도 차 한 대 가격이었다.
“목숨 값에 비하면 싼 편이겠지만… 지금은 우리 회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거야 불 보듯 뻔하죠.”
연희수는 우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수린 언니, 안 그래도 어려워 보이는데 더 부담 주는 짓은 도저히 못해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한걸.”
“당연하죠. 솔직히 말해서 수린 언니 아니었음 누가 C급 헌터를 받아주겠어요?”
“더블 C급이라며.”
“C나 더블 C나, 밑바닥인 건 마찬가지잖아요.”
퉁명스런 연희수의 대꾸에 심혁진은 실소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어설픈 위로는 됐어요. 헌터 아닌 사람은 이 심정을 이해 못해요.”
심혁진이 헌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모양.
하긴 헌터 자질을 지닌 사람이 이런 일을 하겠답시고 나서는 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수린 언니, 아니 차 사장님이 잘 생각하신 거예요. 제가 레이드 뛰겠다고 고집 부려봐야 회사에 피해만 갈 거예요.”
“그럴지도.”
미적지근한 심혁진의 반응에 연희수가 실소했다.
“이제 아셨겠죠? 포기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는 걸요.”
“그건 아냐. 하지만 필요로 하는 건 대충 다 안 것 같다. 고마워, 잘 대답해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죠?”
“여러 가지.”
“그러니까 여러 가지 어떤 생각인데요.”
“우선은 네가 생각보다 착한 애라는 것.”
연희수가 움찔했다.
“최소한 김창준 그놈보다는 훨씬 싹수가 괜찮네.”
“김창준? 우리 길드 간판인 김창준 씨 말이에요?”
“응. 이제 더는 아니지만.”
“태성으로 날았군요? 근데 이상하네요?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태성에서 보복하겠다고 난리죠?”
“다 이유가 있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번 일을 잘 해내는 거잖아?”
“백기 드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이는데요.”
“그렇지 않아.”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심혁진의 태도에 연희수는 약간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어쩜 이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는 거지?’
그녀가 보기에 이 남자, 심혁진은 아무 것도 없는 개털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워낙 자신만만하다 보니, 숨겨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흐흠.”
심혁진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연희수는 움찔했다.
“뭐예요? 설마 이제 와서 답이 없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죠?”
“답이야 있지. 너한테 말해줘야 하느냐가 문제지.”
“왜요?”
“말해봐야 믿지 않을 테니까.”
연희수는 어이가 없었다.
“일단 들어봐야 믿든 믿지 않든 하죠.”
“뭐, 그것도 그렇군. 솔직히 네가 믿든 말든 상관없기도 하고.”
“…….”
“우선 생각난 건 두 가지야. 하나는 지금 당장 태성으로 들이닥쳐서 죄다 엎어놓는 거지.”
“……예?”
“그런데 그래선 뒷감당하기가 귀찮아질 거야. 그러니 레이드가 벌어지는 곳에서 역습을 가하는 게 낫겠지?”
연희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거 봐.”
심혁진은 피식 웃었다.
“못 믿을 거라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