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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차원 레이드(1)



제4장 차원 레이드



“하.”
심혁진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미친 거 아닙니까?”
갑작스런 폭언에 신발을 벗던 연희수가 움찔했다.
반면 차수린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시나 보군요.”
“최소한 소년병 동원이 전쟁 범죄라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거야 국제법이 통용되는 국가 사이에서의 얘기죠.”
“마수는 뭐 나이 봐가며 사람 죽인답니까?”
“혁진 씨가 왜 열을 내시는지는 잘 알겠어요. 그래도 일단 진정 좀 하고 얘기라도 들어 주실래요?”
심혁진이 현관 쪽을 돌아봤다.
연희수는 그때까지도 들어오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어… 저기, 저 일단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올까요?”
“아냐. 잠깐이면 돼. 들어와서 뭐라도 좀 마시고 있어, 희수야.”
“네, 사장님.”
연희수는 하얀 스니커즈를 벗고 슬리퍼를 신었다.
심혁진의 눈치를 살피며 들어선 그녀가 냉장고에서 딸기우유를 꺼내 응접 테이블로 향했다.
“우선은.”
차수린이 한숨 섞인 말을 토했다.
“혁진 씨가 말한 소년병 얘기, UN 아동권리협약 상으로는 15세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냥 기준이 그렇다는 거예요. 제가 말하려는 요점도 그게 아니고요. 그러니 일단 좀 들어 주실래요?”
심혁진은 팔짱을 꼈다.
“알겠습니다.”
“일단 미성년자라 해도 몇 가지 조건 하에 차원 헌터가 될 수 있어요. 물론 희수는 그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고요.”
“그 조건이란 게 뭡니까?”
“우선은 부모, 혹은 법적 보호자의 동의예요.”
“그리고요?”
“합법적 관리 업체와의 계약이 선결되어야 해요. 물론 우리 CS는 합법적인 업체고요.”
“끝입니까?”
“아뇨. 가장 중요한 조건이 남아 있죠. 모든 형태의 차원 진입에 앞서 비상 탈출 아이템의 소지가 필수예요.”
비상 탈출 아이템.
심혁진도 그게 뭔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사용 즉시 해당 차원에서 탈출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다른 소모용 아이템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고가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전능하진 않았다.
당장 심혁진이 경험했던 아케론 차원부터가 비상 탈출이 불가능했으니까.
그 점을 심혁진이 지적하자 차수린은 당혹스런 기색을 내비쳤다.
“비상 탈출 아이템이 통하지 않는 차원이라고요?”
“예. 상위 차원의 경우엔 먹히지 않을 텐데요?”
“그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도그마 차원은 그렇지 않아요.”
심혁진은 그녀의 뉘앙스가 약간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자신이 지적한 부분을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
왜 그러나 싶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쟤한테는 그 아이템이 있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그게 규정이니까요. 희수야, 니케의 깃털은 잘 가지고 있지?”
“네, 사장님.”
잡지를 들추던 연희수가 고개만 쫑긋 들어 대답했다.
“보셨죠?”
“설령 그런 템이 있더라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아닙니까.”
“네. 그래서 헌터 랭크가 있는 거고, 여러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는 거죠.”
차수린이 딱 잘라 말했다.
“혁진 씨가 우려하는 부분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이게 대세예요. 비단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들도 다 이런 식이라고요.”
“…….”
“대한민국에 등록된 미성년 헌터만 2만 명이 넘어요. 장래 희망 직업 1위가 헌터인 세상이고요. 혁진 씨가 말한 소년병 예시하고는 맞지 않단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심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환하고 나서 접한 영상이나 잡지 기사들이 뇌리를 스쳤다.
헌터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어떠한지도, 그런 가운데 열을 내봐야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 것 같았다.
당사자가 좋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자신이 기억하던 시절과는 모든 것이 다른데, 혼자 따져 봐야 자신만 바보가 되는 것이다.
어째 이방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도 드는지라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보아하니.”
차수린이 말을 돌렸다.
“혁진 씨도 부정적인 쪽으로 돌아선 것 같군요. 역시 이번 레이드는 포기해야겠어요.”
“네에?”
한귀로 대화를 듣던 연희수가 펄쩍 뛰었다.
“사장님, 설마 도그마 차원 레이드를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맞아, 희수야. 미안하게 됐어. 다음에 기회가 또 있을 테니까 이번엔 이해해줬으면 해.”
“안 돼요! 벌써 친구들이랑 놀러 갈 계획까지 다 잡아 뒀는데. 이번에 한탕 뛴 돈으로 유럽 여행 가기로 했단 말이에요.”
“한 달 내로 물어올게. 여행이야 연기하면 되잖니?”
“하지만…….”
연희수는 울상이 되었다.
심혁진은 약간 질린 기분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마수와 싸우는 일을 소풍이라도 가는 양 여기다니.
컬쳐 쇼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 애, 더블 C랭크라고 했죠?”
심혁진의 질문에 차수린이 힐끔 돌아봤다.
“그랬죠. 왜요?”
“CC랭크라니 감이 안 잡혀서 그런데, 스탯이랑 스킬 레벨이 어떻게 됩니까?”
“스탯과 스킬 레벨 말인가요?”
“예. 주요 스탯과 주력 스킬만 알면 될 것 같습니다만.”
헌터의 능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체 스탯.
다른 하나는 보유 스킬 및 스킬 레벨이었다.
스탯은 기본적으로 힘과 지성, 민첩성과 건강, 정신력의 5대 요소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각각의 요소는 몇 가지로 세분화된다.
예컨대 힘의 세부 요소로 근력과 순발력, 지구력 등이 존재하는 식이다.
스탯의 분배는 성장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
어떤 이는 근력이 높으면서도 지구력이 낮을 수 있고, 모든 능력치가 균등하게 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스탯만으로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됐다.
스킬은 어떤 면에서 스탯보다도 중요한 요소.
크게 액티브(Active) 스킬과 패시브(Passive) 스킬로 나뉘는데, 이 또한 성장 과정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스킬 습득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공용 스킬인 마나 연공처럼 헌터 능력의 개화와 함께 얻는 것이 있는 반면, 수만 명에 한 명 꼴로 얻을 수 있는 희귀한 스킬도 존재했다.
대체로 유니크(Unique) 스킬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해당 스킬을 보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스탯과는 무관하게 비싼 몸값을 지니는 헌터들도 많았다.
더불어 각각의 스킬은 숙련도와 경험에 따라 레벨 업을 하는 게 가능했다.
당연하게도 높은 레벨의 스킬일수록 위력이나 효과가 대체로 컸다.
한편 질문을 들은 차수린은 난색을 표했다.
몰라서 저러는 건 아닐 터.
말해 주기가 난감한 모양이었다.
“저기요.”
연희수가 입을 열었다.
약간은 화가 난 기색.
그녀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서 심혁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누구신데 남의 스탯과 스킬을 물으시는 거죠?”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던 심혁진이 차수린을 돌아봤다.
“설마 스탯이나 스킬을 묻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겁니까?”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몰랐습니다.”
심혁진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지난 20여 년 간 마주했던 사람이라고는 아케론 차원의 동료들뿐.
어떻게든 살아남아 아포칼립시온을 처치하는 것만이 그들의 목표이자 모든 것이었다.
때문에 동료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 필요가 있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합이 잘 맞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스탯이나 스킬을 묻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었던 것.
하지만 이 세상의 상식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미안하다.”
심혁진은 순순히 사과했다.
“내가 좀 먼 데서 오래 있다 와서, 이쪽 예절에 대해선 깜깜했어. 기분 상했다면 사과할게.”
“알겠어요. 모르셨다니까 이해해 드릴게요, 아저씨.”
“…….”
“그런데 대체 뭐하시는 분이세요? 누구신데 사장님이랑 허물없이 얘기를 하고 계신 거예요?”
심혁진뿐만 아니라 차수린에게도 던지는 질문이었다.
차수린은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그냥 구직자야.”
“네?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 살다 보니 그런 사람도 다 있네.”
“아. 죄송해요, 사장님.”
“괜찮아.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모처럼 들어온 레이드 기회인데 취소하게 되었…….”
“취소하지 마시죠.”
차수린과 연희수의 시선이 심혁진에게로 향했다.
“예?”
“취소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앞서 제가 다 설명해 드렸잖아요.”
“예. 그거 다 듣고서 말하는 겁니다. 해결할 거라고 했잖습니까.”
“하지만 희수를 본 다음엔…….”
“뭐, 그거야 내가 알던 상식과 어긋나는 면이 있어서 그랬던 거고요.”
심혁진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그것과는 별개로 태성 쪽 놈들 때문에 꽁무니를 빼서야 되겠습니까.”
“네? 태성이라니요, 사장님? 설마 태성 엔터 얘기예요?”
“나중에 차차 설명해 줄게, 희수야.”
“아뇨, 제가 하겠습니다. 어차피 이 애랑 따로 얘기도 좀 해봐야겠으니.”
연희수가 의아한 눈으로 심혁진과 차수린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차수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있다는 말씀이죠?”
“예.”
“만약 혁진 씨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우리 모두가 정말 끝장이에요.”
“뭔가 담보라도 내놓을까요?”
“괜찮다… 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안심이 안 되네요.”
차수린이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계약서 쓰시죠.”

* * *

계약서 본문의 내용은 평범했다.
문제는 맨 끝에 따라붙은 추가 조항.
이번 일이 잘못됐을 시, 심혁진에게 부가되는 법적, 물질적 책임에 대해 반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일단 손해 배상 쪽만 살펴봐도 기본이 억 단위.
내역을 대강 읽어 내린 심혁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상세히 잘도 적었군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서 절충안을 찾아 가는 게 교섭의 방법론이니까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차수린이 말했다.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휘갈기듯 서류를 작성한 그녀였다.
“이제 혁진 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나 고쳤으면 하는 부분을 말씀하세요. 거기서부터 서로 의견을 교환해 나가죠.”
“됐습니다.”
“네?”
“딱히 고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요.”
“저기요.”
“이거, 그냥 사인만 하면 됩니까? 인감도장이나 뭐 그런 건 딱히 없어서.”
“심혁진 씨?”
“예.”
차수린이 팔짱을 꼈다.
“제가 쓴 거긴 하지만, 이건 일방적으로 혁진 씨한테 불리하게끔 작성된 계약서예요.”
“그래 보이네요. 특히 추가 조항들이.”
“그런데 그냥 냅다 사인하겠다고요? 자칫하면 눈 뜬 채 코 꿰이게 생겼는데?”
심혁진은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이 추가 조항이라는 거, 한마디로 내가 실패했을 때 이런 불이익을 받는다는 거잖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괜찮다는 겁니다.”
너무나 당당한 태도에 차수린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란 말인가요?”
그녀의 질문에 심혁진이 대답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