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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경쟁사와의 마찰(1)
제3장 경쟁사와의 마찰
김창준은 쌍코피를 쏟으며 달아나듯 사무실을 떠났다.
심혁진이 헛웃음을 짓고 있자니, 차수린이 오른손을 주무르며 주저앉았다.
“아야야…….”
“잠깐 좀 보죠.”
“아, 안 돼… 꺅!”
차수린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손을 살핀 심혁진이 혀를 찼다.
“인대도 나가고 뼈도 상한 것 같은데. 좀 살살 때리지 그랬습니까?”
“그래선 분이 안 풀리잖아요.”
“뭐, 그럴 것 같아 보였습니다만.”
심혁진은 이차원 인벤토리에서 로크의 깃털을 꺼냈다.
손바닥 상한 데에 쓰기엔 아까운 물건이었지만 딱히 이보다 값싼 치료 아이템이 없었다.
“자, 잠시만요!”
로크의 깃털을 본 차수린은 기겁했다.
“그, 그거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심혁진은 주저 없이 깃털을 사용했다.
차수린의 손바닥이 새하얀 빛에 휩싸이더니 완전히 치료됐다.
“미쳤어요!?”
“멀쩡한데.”
“그거 내다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데, 고작 이런 데에 쓴단 말이에요?”
“꽤 받겠죠.”
장비형이라지만 B랭크 아이템도 천만 원을 호가하고 있으니, 소모용 C랭크 아이템인 로크의 깃털이 그에 뒤쳐질 리는 없었다.
“근데 이건 내 거고, 내가 내 물건을 어디에 쓰든 그거야 내 마음 아닙니까?”
심혁진의 말에 차수린이 멈칫했다.
“그렇긴… 하죠.”
“그렇죠?”
“알겠어요. 고마워요. 근데 그쪽이 멋대로 사용하신 거니 혹여나 값을 지불하라거나…….”
“그런 짓 안 합니다.”
“알겠어요.”
차수린이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볼일 다 보신 듯한데 가 주세요.”
“……?”
“맞잖아요? 저를 도와주셨으니 큰아버지 소원을 들어준 셈이고, 이제 그만 가셔도 되잖아요.”
“아니, 그게…….”
“김창준 잡아 주신 것과 치료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해요. 평생 잊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이상의 도움은 사양하겠어요.”
“이유가 뭡니까?”
“부잣집 도련님의 자기 과시에 소모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심혁진은 순간 멍해졌다.
“부잣집 도련님? 내가?”
“그럼 아닌가요? 보아하니 김창준을 데려온 것도 사람 부려서 한 일 같던데요. 비싼 아이템을 막 쓰는 것도 그렇고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차수린이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그것을 본 심혁진은 쓰게 웃었다.
“또 측정기로군.”
“미처 얘기하지 않은 건 사과하죠. 하지만 확인해야만 했어요. 심혁진 씨가 누군지 파악해야 했으니까요.”
“그런 측정기 따위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최소한 헌터가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죠.”
“뭐, 그렇긴 하죠.”
국가에선 죽은 사람 취급하고, 마수 사냥도 지긋지긋했다.
대낮에 환전소에서 말했던 것처럼, 심혁진 본인부터가 스스로를 헌터로 여기는 게 싫었다.
“대단한 재력을 지니신 듯하고, 어쩌면 우리 업체의 고비쯤은 가볍게 해결해 주실 수 있을지도 모르죠.”
차수린은 모종의 각오마저 어린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심혁진 씨에게 손을 벌려 위기를 모면해 봐야, 또 다른 빚을 지는 데 지나지 않으니까요.”
심혁진은 피식 웃었다.
“빚 같은 것 안 받겠다면?”
“그래도 싫어요. 물질적인 빚이 없더라도 마음의 빚은 생기는 법이니까요.”
“결국 손 벌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잖습니까?”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금전적 도움만 아니면 된다는 겁니까?”
“네?”
차수린의 반문에 심혁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합시다. 나를 고용하십쇼.”
“네에?”
“내게 월급을 지불하고 직원으로 쓰란 겁니다.”
차수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심혁진은 설명을 이어 갔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갈 데도 없고 연고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아리송하니, 당분간 신세 좀 지겠다는 겁니다.”
“갈 데도 없고 연고도 없다니요? 가족들이…….”
“없습니다.”
“아.”
차수린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심혁진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지만.
“그쪽 말대로 금전적 도움은 일절 주지 않겠습니다. 그럼 괜찮은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거죠?”
“앞서 말한 대로 딱히 할 일도 없고, 상구와의 약속도 있고, 여기 있는 편이 당신 아버지를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여서요.”
“……그것뿐인가요?”
“뭐, 일단은. 이 정도면 사유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능력이야 이미 확인했고.”
“…….”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 차수린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이해하고 계신 건가요?”
“그쪽이 말해줬잖습니까. 헌터놈들 관리한다고.”
“헌터님들이죠.”
“님이나 놈이나.”
“……그렇게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김창준 같은 경우가 특이 케이스지, 대부분의 헌터들은 우리의 소중한 동반자라고요.”
“그놈 말고도 관리 중인 헌터가 있긴 합니까?”
심혁진의 질문에 차수린은 발끈했다.
“물론이죠.”
“그렇군요. 명단 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알겠…….”
자연스레 일어서려던 차수린은 움찔해선 다시 주저앉았다.
“아, 아직 당신을 고용하기로 결정하지 않았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결정하시죠.”
“천천히 할 거예요, 천천히.”
“그러시죠. 어차피 시간도 늦었고.”
심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안 오셔도 돼요.”
“올 겁니다.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런 말을 너무 당당하게 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럼 이만.”
할 말만 하고서 사무실을 나서는 심혁진.
황당해 하던 차수린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상체를 기댔다.
“이상한 사람이야.”
성격도 괴팍하고 제멋대로에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래서 차수린은 무서웠다.
괜히 정을 붙였다가 떠나가기라도 하면 어쩔까 싶어서.
“심혁진…….”
* * *
“어, 좋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며 심혁진은 탄성을 내뱉었다.
용암 범벅의 세계였던 만큼, 아케론 차원에선 어렵잖게 간헐천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로가 쌓여 휴식이 필요할 때면 그곳에 몸을 담그고는 했다.
매일이 사투의 연속이던 심혁진 일행에겐 몇 안 되는 휴양이었다.
때문에 자연히 온천욕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호텔 욕실의 온수는 냉탕 수준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분위기는 살았다.
홍대 시가지의 호텔이었다.
1박에 50만 원 가까이 하는 스위트룸이었지만 심혁진은 별 고민 없이 숙박비를 지불했다.
환전소를 방문했을 때 이미 감을 잡았다.
자신이 아케론 차원에서 벌어들인 것만 적절히 팔아 치워도, 당분간 돈 걱정은 없으리란 것을.
차수린이 걱정했던 것처럼, 그녀의 빚을 단번에 갚아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령 그녀가 그걸 바라더라도 해주진 않을 생각이었다.
“물고기를 주기보단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던가…….”
대강 그것과 비슷한 이치.
갚아 주는 건 쉽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과 CS 매니지먼트라는 회사를 생각했을 땐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 의미가 있었다.
“그래야 시간 때우기도 될 테고.”
아케론 차원에 있을 땐 별별 생각을 다 했었다.
돌아가고 나면 무엇을 할지, 무얼 보고 무얼 먹고 무얼 듣고 경험할지.
하지만 돌아오고 난 지금은 조금 달랐다.
세상은 심혁진을 뒤에 버려둔 채 너무 멀리 앞서 가 버렸다.
지금은 그 거리를 좁히는 것만으로도 벅찬지라,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CS 매니지먼트에 적을 두는 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이 세상은 헌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매니지먼트사는 그런 헌터 사회의 중추에 있었으니까.
차수린과 CS 곁에 있으면 심혁진 스스로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데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지.”
목욕을 마친 심혁진은 창가로 다가갔다.
탁 트인 전망 가득히 홍대의 야경이 비치고 있었다.
불야성을 이룬 거리를 거니는 수많은 사람들.
평화롭고 활기차기 그지없는 그 광경이, 심혁진에게 있어선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였다.
“테라리아 차원이라…….”
* * *
이튿날 아침.
심혁진은 일단 첨단 장비부터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첨단 장비란 바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고랭크의 차원 아티팩트를 여럿 지닌 심혁진이었지만, 전자기기의 발달 앞에선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랜선도 없이 인터넷이 되다니…….”
20년 전에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영상을 본다거나 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게다가 그 화질이나 음질이란 실로 경악스러운 것.
심혁진으로선 가장 먼저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차수린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걸 사는데 왜 제가 같이 가야 하죠?”
“난 잘 몰라서요.”
“모르다니요?”
“뭘 사야 좋은지, 어떤 게 효율적이고 가성비가 좋은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돈도 많으면서.”
“돈을 내는 건 상관없는데, 바가지라도 쓰게 되면 기분 나쁘잖습니까.”
“보아하니 바가지 써도 모르실 듯한데요.”
“언젠가 알게 되면 기분 더러워지겠죠.”
“미안하지만 전 바빠요.”
“그럼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죠. 어차피 나는 한가한 편이라서.”
차수린은 말문이 막혔다.
바쁘다고는 했지만 실상은 일거리가 없었던 까닭이다.
약속이 잡혀 있긴 했지만 상대가 방문하기까진 2시간가량이 남아 있었다.
잠시 마우스만 깨작거리던 그녀는 결국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가요. 같이 봐드릴 테니.”
“어? 바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 바빠요. 이제 속이 후련하세요?”
“……?”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녀가 심혁진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다.
두어 걸음쯤 떨어진 채 걷고 있자니, 그녀를 향해 제법 많은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예쁘긴 했으니까.
홍대 거리엔 젊은이들도 여성들도 많았지만, 차수린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외모를 뽐냈다.
“그러고 보니 말인데.”
“뭐죠?”
“왜 연예인이나 모델 같은 쪽으로 안 나갔습니까?”
차수린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심혁진을 돌아봤다.
“지금 수작 부리시는 거예요?”
“수작은 무슨. 그냥 묻는 겁니다. 작은 업체 사장보다야 그쪽이 더 가능성 높아 보여서.”
“성향에 안 맞아요.”
“성향?”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짓는 거나, 시키는 포즈를 잡는다거나. 그런 걸 잘 못해요. 게다가 집안 사정도 사정이고.”
“흐흠.”
“게다가 요즘은 예쁜 사람도, 잘난 사람도 너무 많아요. 수술도 수술이거니와 차원 아이템이나 스킬을 이용하면 용모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거든요.”
“흐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헌터 겸 연예인이 대세니까요. 헌터 자질이 없으면 잘 먹히지도 않아요.”
“그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심해도 어쩔 수 없죠. 그런 게 트렌드니까.”
말을 마친 차수린이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런데.”
“……?”
“정말 그런 것들을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요?”
“정말 모르는데요.”
“정말로 냉동수면이라도 했던 거예요? 그게 아니면 머나먼 오지에 있었던가?”
“후자가 좀 낫긴 한데…….”
심혁진이 말끝을 흐렸다.
거슬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제3장 경쟁사와의 마찰
김창준은 쌍코피를 쏟으며 달아나듯 사무실을 떠났다.
심혁진이 헛웃음을 짓고 있자니, 차수린이 오른손을 주무르며 주저앉았다.
“아야야…….”
“잠깐 좀 보죠.”
“아, 안 돼… 꺅!”
차수린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손을 살핀 심혁진이 혀를 찼다.
“인대도 나가고 뼈도 상한 것 같은데. 좀 살살 때리지 그랬습니까?”
“그래선 분이 안 풀리잖아요.”
“뭐, 그럴 것 같아 보였습니다만.”
심혁진은 이차원 인벤토리에서 로크의 깃털을 꺼냈다.
손바닥 상한 데에 쓰기엔 아까운 물건이었지만 딱히 이보다 값싼 치료 아이템이 없었다.
“자, 잠시만요!”
로크의 깃털을 본 차수린은 기겁했다.
“그, 그거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심혁진은 주저 없이 깃털을 사용했다.
차수린의 손바닥이 새하얀 빛에 휩싸이더니 완전히 치료됐다.
“미쳤어요!?”
“멀쩡한데.”
“그거 내다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데, 고작 이런 데에 쓴단 말이에요?”
“꽤 받겠죠.”
장비형이라지만 B랭크 아이템도 천만 원을 호가하고 있으니, 소모용 C랭크 아이템인 로크의 깃털이 그에 뒤쳐질 리는 없었다.
“근데 이건 내 거고, 내가 내 물건을 어디에 쓰든 그거야 내 마음 아닙니까?”
심혁진의 말에 차수린이 멈칫했다.
“그렇긴… 하죠.”
“그렇죠?”
“알겠어요. 고마워요. 근데 그쪽이 멋대로 사용하신 거니 혹여나 값을 지불하라거나…….”
“그런 짓 안 합니다.”
“알겠어요.”
차수린이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볼일 다 보신 듯한데 가 주세요.”
“……?”
“맞잖아요? 저를 도와주셨으니 큰아버지 소원을 들어준 셈이고, 이제 그만 가셔도 되잖아요.”
“아니, 그게…….”
“김창준 잡아 주신 것과 치료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해요. 평생 잊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이상의 도움은 사양하겠어요.”
“이유가 뭡니까?”
“부잣집 도련님의 자기 과시에 소모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심혁진은 순간 멍해졌다.
“부잣집 도련님? 내가?”
“그럼 아닌가요? 보아하니 김창준을 데려온 것도 사람 부려서 한 일 같던데요. 비싼 아이템을 막 쓰는 것도 그렇고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차수린이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그것을 본 심혁진은 쓰게 웃었다.
“또 측정기로군.”
“미처 얘기하지 않은 건 사과하죠. 하지만 확인해야만 했어요. 심혁진 씨가 누군지 파악해야 했으니까요.”
“그런 측정기 따위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최소한 헌터가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죠.”
“뭐, 그렇긴 하죠.”
국가에선 죽은 사람 취급하고, 마수 사냥도 지긋지긋했다.
대낮에 환전소에서 말했던 것처럼, 심혁진 본인부터가 스스로를 헌터로 여기는 게 싫었다.
“대단한 재력을 지니신 듯하고, 어쩌면 우리 업체의 고비쯤은 가볍게 해결해 주실 수 있을지도 모르죠.”
차수린은 모종의 각오마저 어린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심혁진 씨에게 손을 벌려 위기를 모면해 봐야, 또 다른 빚을 지는 데 지나지 않으니까요.”
심혁진은 피식 웃었다.
“빚 같은 것 안 받겠다면?”
“그래도 싫어요. 물질적인 빚이 없더라도 마음의 빚은 생기는 법이니까요.”
“결국 손 벌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잖습니까?”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금전적 도움만 아니면 된다는 겁니까?”
“네?”
차수린의 반문에 심혁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합시다. 나를 고용하십쇼.”
“네에?”
“내게 월급을 지불하고 직원으로 쓰란 겁니다.”
차수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심혁진은 설명을 이어 갔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갈 데도 없고 연고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아리송하니, 당분간 신세 좀 지겠다는 겁니다.”
“갈 데도 없고 연고도 없다니요? 가족들이…….”
“없습니다.”
“아.”
차수린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심혁진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지만.
“그쪽 말대로 금전적 도움은 일절 주지 않겠습니다. 그럼 괜찮은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거죠?”
“앞서 말한 대로 딱히 할 일도 없고, 상구와의 약속도 있고, 여기 있는 편이 당신 아버지를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여서요.”
“……그것뿐인가요?”
“뭐, 일단은. 이 정도면 사유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능력이야 이미 확인했고.”
“…….”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 차수린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이해하고 계신 건가요?”
“그쪽이 말해줬잖습니까. 헌터놈들 관리한다고.”
“헌터님들이죠.”
“님이나 놈이나.”
“……그렇게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김창준 같은 경우가 특이 케이스지, 대부분의 헌터들은 우리의 소중한 동반자라고요.”
“그놈 말고도 관리 중인 헌터가 있긴 합니까?”
심혁진의 질문에 차수린은 발끈했다.
“물론이죠.”
“그렇군요. 명단 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알겠…….”
자연스레 일어서려던 차수린은 움찔해선 다시 주저앉았다.
“아, 아직 당신을 고용하기로 결정하지 않았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결정하시죠.”
“천천히 할 거예요, 천천히.”
“그러시죠. 어차피 시간도 늦었고.”
심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안 오셔도 돼요.”
“올 겁니다.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런 말을 너무 당당하게 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럼 이만.”
할 말만 하고서 사무실을 나서는 심혁진.
황당해 하던 차수린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상체를 기댔다.
“이상한 사람이야.”
성격도 괴팍하고 제멋대로에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래서 차수린은 무서웠다.
괜히 정을 붙였다가 떠나가기라도 하면 어쩔까 싶어서.
“심혁진…….”
* * *
“어, 좋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며 심혁진은 탄성을 내뱉었다.
용암 범벅의 세계였던 만큼, 아케론 차원에선 어렵잖게 간헐천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로가 쌓여 휴식이 필요할 때면 그곳에 몸을 담그고는 했다.
매일이 사투의 연속이던 심혁진 일행에겐 몇 안 되는 휴양이었다.
때문에 자연히 온천욕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호텔 욕실의 온수는 냉탕 수준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분위기는 살았다.
홍대 시가지의 호텔이었다.
1박에 50만 원 가까이 하는 스위트룸이었지만 심혁진은 별 고민 없이 숙박비를 지불했다.
환전소를 방문했을 때 이미 감을 잡았다.
자신이 아케론 차원에서 벌어들인 것만 적절히 팔아 치워도, 당분간 돈 걱정은 없으리란 것을.
차수린이 걱정했던 것처럼, 그녀의 빚을 단번에 갚아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령 그녀가 그걸 바라더라도 해주진 않을 생각이었다.
“물고기를 주기보단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던가…….”
대강 그것과 비슷한 이치.
갚아 주는 건 쉽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과 CS 매니지먼트라는 회사를 생각했을 땐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 의미가 있었다.
“그래야 시간 때우기도 될 테고.”
아케론 차원에 있을 땐 별별 생각을 다 했었다.
돌아가고 나면 무엇을 할지, 무얼 보고 무얼 먹고 무얼 듣고 경험할지.
하지만 돌아오고 난 지금은 조금 달랐다.
세상은 심혁진을 뒤에 버려둔 채 너무 멀리 앞서 가 버렸다.
지금은 그 거리를 좁히는 것만으로도 벅찬지라,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CS 매니지먼트에 적을 두는 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이 세상은 헌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매니지먼트사는 그런 헌터 사회의 중추에 있었으니까.
차수린과 CS 곁에 있으면 심혁진 스스로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데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지.”
목욕을 마친 심혁진은 창가로 다가갔다.
탁 트인 전망 가득히 홍대의 야경이 비치고 있었다.
불야성을 이룬 거리를 거니는 수많은 사람들.
평화롭고 활기차기 그지없는 그 광경이, 심혁진에게 있어선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였다.
“테라리아 차원이라…….”
* * *
이튿날 아침.
심혁진은 일단 첨단 장비부터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첨단 장비란 바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고랭크의 차원 아티팩트를 여럿 지닌 심혁진이었지만, 전자기기의 발달 앞에선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랜선도 없이 인터넷이 되다니…….”
20년 전에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영상을 본다거나 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게다가 그 화질이나 음질이란 실로 경악스러운 것.
심혁진으로선 가장 먼저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차수린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걸 사는데 왜 제가 같이 가야 하죠?”
“난 잘 몰라서요.”
“모르다니요?”
“뭘 사야 좋은지, 어떤 게 효율적이고 가성비가 좋은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돈도 많으면서.”
“돈을 내는 건 상관없는데, 바가지라도 쓰게 되면 기분 나쁘잖습니까.”
“보아하니 바가지 써도 모르실 듯한데요.”
“언젠가 알게 되면 기분 더러워지겠죠.”
“미안하지만 전 바빠요.”
“그럼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죠. 어차피 나는 한가한 편이라서.”
차수린은 말문이 막혔다.
바쁘다고는 했지만 실상은 일거리가 없었던 까닭이다.
약속이 잡혀 있긴 했지만 상대가 방문하기까진 2시간가량이 남아 있었다.
잠시 마우스만 깨작거리던 그녀는 결국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가요. 같이 봐드릴 테니.”
“어? 바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 바빠요. 이제 속이 후련하세요?”
“……?”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녀가 심혁진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다.
두어 걸음쯤 떨어진 채 걷고 있자니, 그녀를 향해 제법 많은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예쁘긴 했으니까.
홍대 거리엔 젊은이들도 여성들도 많았지만, 차수린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외모를 뽐냈다.
“그러고 보니 말인데.”
“뭐죠?”
“왜 연예인이나 모델 같은 쪽으로 안 나갔습니까?”
차수린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심혁진을 돌아봤다.
“지금 수작 부리시는 거예요?”
“수작은 무슨. 그냥 묻는 겁니다. 작은 업체 사장보다야 그쪽이 더 가능성 높아 보여서.”
“성향에 안 맞아요.”
“성향?”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짓는 거나, 시키는 포즈를 잡는다거나. 그런 걸 잘 못해요. 게다가 집안 사정도 사정이고.”
“흐흠.”
“게다가 요즘은 예쁜 사람도, 잘난 사람도 너무 많아요. 수술도 수술이거니와 차원 아이템이나 스킬을 이용하면 용모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거든요.”
“흐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헌터 겸 연예인이 대세니까요. 헌터 자질이 없으면 잘 먹히지도 않아요.”
“그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심해도 어쩔 수 없죠. 그런 게 트렌드니까.”
말을 마친 차수린이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런데.”
“……?”
“정말 그런 것들을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요?”
“정말 모르는데요.”
“정말로 냉동수면이라도 했던 거예요? 그게 아니면 머나먼 오지에 있었던가?”
“후자가 좀 낫긴 한데…….”
심혁진이 말끝을 흐렸다.
거슬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