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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매니지먼트(5)



사람의 음성은 그 음색과 파형이 제각각이다.
따라서 특정 인물을 찾고자 한다면, 그가 발하는 음성의 파형을 대조해 보면 된다.
지금처럼.
우우우웅.
탐지 스킬, 사운드 디텍트가 발동되었다.
심혁진을 중심으로 일정한 굴곡의 파장이 흘러나왔다.
앞서 차수린과 통화할 때 대강 들어 기억해 두었던 김창준의 음성 파장이었다.
이것과 같은 파형의 소리가 흘러나올 경우, 체내의 차크라가 반응하게 되어 있었다.
시끄러운 곳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통하는 스킬이었지만, 탐지 반경이 10m에 불과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여기저기 들쑤시는 수밖에.’
심혁진은 클럽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VIP만 받는 날이라더니 내부는 인산인해. 두어 걸음마다 꼭 누군가와 부딪칠 정도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심혁진은 어느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서 걸어 나갔다.
범인을 아득히 상회하는 스피드와 반사 신경의 합작품.
그것이 눈 아프게 깜빡이는 실내조명과 결합되니,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 와중에.
‘찾았다.’
심혁진은 걸음을 멈췄다.
클럽 내에 마련된 별실 앞이었다.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여니, 만취한 여성들을 좌우에 낀 사내가 왕이라도 되는 양 앉아 있었다.
척 봐도 준수한 외모.
거나하게 취했는데도 잘 생겼다는 게 느껴지는 걸 보니 비주얼 계열이란 표현이 단숨에 와 닿았다.
반쯤 감긴 눈을 보자니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두 손은 정확하고도 효율적으로 여자들의 살결을 더듬고 있었다.
“뭐야?”
김창준이 게슴츠레한 눈을 깜빡였다.
“새로 온 웨이터냐? 부르기 전까지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여긴 대체 신입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김창준 맞지?”
“뭐?”
반말을 들은 김창준이 정색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내가 네놈 새끼 친구인 줄 아냐?”
“CS 매니지먼트에서 왔는데.”
“CS? 아, 거기?”
김창준이 반쯤 내민 상체를 소파에 파묻으며 비웃었다.
“차수린 씨 심부름으로 오셨구만? 근데 어쩌지? 나는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는데. 꼬우면 법대로 하자고 해. 허물어지는 회사 갖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김창준 맞다는 거네. 술술 불어주니 나로선 편하지 뭐야.”
심혁진이 테이블 위에 발을 얹었다.
어지럽게 널려 있던 술병과 안주들이 스르륵 밀려나선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와장창!
요란한 소리에 여자들이 질겁했다.
심혁진을 본 그녀들이 흠칫 놀라서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둘이 얘기 좀 하려니까 나가 줬으면 좋겠는데.”
“가긴 어딜 가? 야! 너희들 다 그냥 앉아 있어.”
“나가.”
심혁진이 은근히 힘을 실어 말했다.
음파 스킬, 언령(言靈: Power Word)이 실려 있는 한마디.
여자들은 홀린 것처럼 일어나선 부리나케 밖으로 달아났다.
“이 새끼가!”
김창준이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그래도 헌터라고 순식간에 얼굴에서 취기가 사라졌다.
다만 심혁진의 스킬을 간파할 정도의 능력은 없는지, 딱히 겁을 먹거나 긴장하진 않은 기색이었다.
‘하룻강아지.’
내심 중얼거린 심혁진이 빙긋 웃었다.
“차수린 씨 왈, 네가 법정 싸움으로 시간을 질질 끌면서 버틸 거라더군. 조금 전에 지껄이는 걸 보니 그 말이 맞나 본데.”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그러지 못하게 만들 거다. 듣자하니 너 키워주느라 노력깨나 했다던데, 은혜를 갚으라곤 안 하겠다만 최소한의 신의는 지켜야지.”
“신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주둥이 참 예쁘게도 놀린다.”
심혁진의 목소리가 가라앉자 김창준이 움찔했다.
사삭!
단숨에 품을 뒤진 그의 손에 웬 장치 하나가 들려 나왔다.
뭔가 싶어 물끄러미 쳐다보려니, 김창준이 그 장치로 심혁진을 겨냥했다.
그러고는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이 새끼! 뭐라도 되는 양 씨불이기에 한가락 하는 줄 알았더니, 헌터 자질도 없는 잡놈이었잖아?”
“아.”
심혁진은 실소했다.
“또 그거냐? 헌터 레벨 측정기?”
“그래, 새끼야. 너 같은 놈들 상대하려고 갖고 다닌다. 어디 쥐뿔도 없는 게 공갈을 치려고 해?”
“그러니까 상대가 센지 약한지 그 물건으로 일일이 알아본다는 거군. 세면 설설 기려고 말이야. 참으로 대단한 헌터님이시군, 김창준 씨.”
“뒈지기 싫으면 그 입 닥쳐.”
“싫은데.”
“이게 죽고 싶어 환장했나!”
언성을 높인 김창준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우웅!
김창준의 두 손이 푸른빛을 발했다.
전투 스킬인 매그넘 피스트(Magnum Fist).
적절히 힘 조절만 잘 한다면 사람 두들기는 데엔 이만 한 기술도 없었다.
뒤처리야 힘으로 무마하면 그만.
그가 새로이 계약을 맺는 태성 매니지먼트라면 어렵잖게 처리해 줄 수 있을 일이었다.
“눈물 콧물 질질 쏟더라도 원망하지 마라. 네가 시작한 일이니 말이야.”
“진짜 말 많군. 사냥할 때 마수를 앞에 두고서도 그렇게 주절거리냐?”
“뭐, 뭐라고……?”
“아니면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냥을 해본 적이 없는 거냐?”
침묵하는 김창준.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심혁진은 놓치지 않았다.
“맞나 보네.”
“이 새끼가!”
격분한 김창준이 테이블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뒈져!”
쿵!
육중한 타격음이 방 바깥까지 퍼졌다.
하지만 워낙 클럽 전체를 뒤덮은 소음이 큰지라 눈치 챈 이는 거의 없었다.
“꺼… 어어억……!”
김창준이 죽는 소리를 냈다.
몸은 뒤집혀서 테이블 아래에 처박힌 상태.
부러진 콧대에선 시뻘건 선지가 꿀렁꿀렁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심혁진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 꼬락서니로 데려가도 괜찮으려나.”
“끅, 어어억…….”
“뭐, 치료하면 되겠지. 그러니 좀 더 두들겨도 괜찮겠지?”
“이 새끼! 죽여 버린다!”
벌떡 일어선 김창준이 체내의 마나를 모조리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마주잡은 김창준의 두 손으로부터 푸른빛 스파크가 일었다.
방출형 공격 스킬, 에너지 블라스트(Energy Blast)였다.
상급 스킬까진 아니었지만 실내, 그것도 지하에서 쓴다면 충분히 위험할 수 있는 기술.
자칫 클럽 천장이 폭삭 내려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창준은 그런 건 개의치도 않는 듯했다.
충혈된 눈이 반쯤 뒤집힌 게, 그저 분노를 해소하려는 일념밖에 없는 듯했다.
“쓰레기군.”
나직이 중얼거린 심혁진이 조용히 스킬을 발동했다.
에너지 배리어(Energy Barrier).
에너지 블라스트의 상위 스킬로서, 말 그대로 공격을 막는 방벽이었다.
더불어 심혁진의 에너지 배리어는 140에 이르는 스킬 레벨로 인해 여러 가지 추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소음 차단과 탐지 차단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우우웅.
심혁진은 에너지 배리어로 방을 꼼꼼히 감쌌다.
김창준은 그것도 모르고 에너지 블라스트를 방출했다.
“뒈져!”
꽈릉!
청천벽력 같은 굉음이 터졌으나 클럽 안의 사람들은 듣지 못했다.
들은 사람은 단 둘뿐.
그중 하나는 시끄럽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얼굴 한복판에 차돌 같은 주먹이 박혀 있었으니까.
“끄… 어……!”
“넌 좀 맞아야겠다.”
차분히 말한 심혁진이 오른손을 거두며 왼손을 뻗었다.
쩍!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김창준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 * *

잠시 후.
엉망이 된 별실에서 피 범벅이 된 김창준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형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누가 네 형님이냐?”
“살려만 주십쇼. 제가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김창준의 발음은 꽤나 정확했다.
얼굴 전반이 뭉개지고 치아가 모조리 박살났던 것을 감안하면 기적 같은 일.
하기야 어떻게 보면 기적이라 할 수도 있었다.
심혁진이 고가의 치유 아이템인 로크의 깃털을 사용했던 까닭이다.
“나한테 싹싹 빌지 말고 차수린 씨한테 가서 빌어.”
“예, 예. 물론입니다. 지금 바로 차 사장님을 찾아가서 석고대죄 하겠습니다.”
“알았으니까 따라와라.”
심혁진이 문을 열었다.
김창준은 바깥에 경찰 특공대나 특수부대라도 대기 중일 거라 생각했다.
실내에서 에너지 블라스트까지 터트릴 정도의 싸움을 치렀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방이 멀쩡하긴 했지만 굉음까진 어쩔 수 없을 터였고, 소리를 들은 이들이 신고를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별실 바깥은 여전히 놀자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음악과 춤판이 계속되는 걸 보며 김창준은 얼이 빠졌다.
그런 김창준의 뒤에서 심혁진이 정강이를 찼다.
“빨랑 안 걷고 뭐해? 이 시끄러운 데엔 한 시도 더 있고 싶지 않다. 어서 가자.”
“예, 예…….”

* * *

“그래서.”
차수린이 말했다.
“계약 해지는 없었던 걸로 하고 우리 CS와 계속 일하고 싶다고요?”
“예, 사장님…….”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하는 김창준.
로크의 깃털로 치료가 된지라 몸과 얼굴은 말짱했지만, 옷가지는 걸레짝이 된 데다 곳곳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걸 보니 조금은 분노가 누그러지는 듯했지만, 차수린은 마음을 다잡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미 태성 측과 계약을 마치신 것 같던데요.”
“내일 당장 해지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용서해 주시면…….”
“아뇨.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김창준이 숙였던 고개를 슬쩍 들었다.
“예?”
“태성과의 계약, 그대로 유지하시라고요.”
김창준이 눈동자를 슬슬 굴려댔다.
이게 대체 뭔가 하는 반응.
그의 시선이 닿자 심혁진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왜 날 쳐다보는데?”
“아, 아닙니다.”
다시 시선을 내리까는 김창준.
일견 불쌍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심혁진도 차수린도 그런 수작에 넘어가진 않았다.
“그러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김창준 헌터님은 이중 계약을 하신 셈이에요. 그렇죠?”
“……예?”
“위약 행위를 하셨다는 거예요.”
차수린이 싸늘히 말했다.
“원칙대로라면 계약금의 10배에 달하는 위약금, 그간 우리와 일하며 얻으신 수익의 절반, 기타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하셔야 해요. 당연히 아시겠지만.”
“…….”
“하지만 그간의 정을 보아 깎아 드리죠. 우리가 체불한 광고 수입을 삭감하고 위약금만 받아내는 걸로 끝내겠어요.”
“그, 그게…….”
김창준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눈알만 굴렸다.
차수린이 말한 금액만 해도 상당한 액수였던 것이다.
물론 원칙대로 하는 것보다야 싸겠지만, 법정 싸움으로 몰고 간다면 얼마든지 깎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창준은 도저히 그럴 엄두가 안 났다.
그녀 뒤에 버티고 있는 심혁진 때문이었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 그래요? 생각보다 빨리 결정해 주셨네요.”
빙긋 웃은 차수린이 서류를 내밀었다.
“준비 다 해뒀으니 사인하시죠.”
“네, 넵.”
김창준은 읽어 보지도 않고 펜을 휘갈겼다.
서류 두 장을 겹쳐 인감도장까지 찍은 차수린이 활짝 웃었다.
“이걸로 우리 관계는 끝이군요. 태성 가서도 잘 하시길 빌죠.”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짝!
차수린은 귀청 떨어지는 소리가 나도록 김창준의 뺨따귀를 올려붙였다.
“억!”
걸쭉한 코피가 김창준의 콧구멍에서 분출됐다.
차수린의 손바닥도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얼얼한 손바닥을 주물거리며 쏘아붙였다.
“이제 그만 꺼져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