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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매니지먼트(4)



“길드 매니지먼트는 그러한 헌터들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해요.”
“지원이라면 물자 같은 것 말입니까?”
“물자, 장비, 광고, 나아가 파밍(Farming)용 차원까지. 헌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걸 지원해요.”
“파밍용 차원? 그건 또 뭡니까?”
“간단해요. 통제된 소규모 차원에다 마수들을 양산시켜서 헌터 육성에 사용하는 거죠.”
“흐흠, 그러니까 마수를 대량으로 사육해서 헌터들더러 잡게 한다는 겁니까? 경험치 먹으라고?”
“네. 주로 대형 사교육 업체가 애용하는 방식이죠.”
“사교육? 헌터 학원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물론이에요. 메가헌트, 못 들어 보셨어요?”
심혁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때는 판검사나 의치한이 최고였는데.”
“의치한?”
“의사, 치과의, 한의사.”
“요즘은 그리 재미를 못 보는 직업들이에요. 치료용 머신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발전한데다 차원 곳곳에서 갖가지 영물과 비약을 얻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팔다리가 부러졌다?
넥타르(Nectar) 한 모금이면 뼈가 붙는 걸 넘어 없던 근골까지 강화된다.
죽을병에 걸리거나 극도로 쇠약해졌다 해도 엘릭서(Elixir) 한 방울이면 말끔히 낫는다.
기존의 의료 기술이나 인적 자원이 싹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예전에 비해 그 위상이 바란 것은 분명했다.
이는 심혁진 역시 차원 전쟁 초창기에 예상했던 것.
마수들의 피나 내장 같은 게 효험이 있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성행하게 될 줄이야 몰랐지만.
“지금까지의 설명을 들으셨으니 이해하시겠죠. 헌터는 그 자체로 소중한 자원이에요.”
차수린의 어조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자질을 타고난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스카우트하려 몰려들고, 그중에 정말 빼어난 이들은 남들은 감히 꿈도 못 꿀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어요.”
“그만큼의 노력도 필요하잖습니까.”
“그렇죠. 스탯과 레벨, 스킬과 아티팩트는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길드 매니지먼트 사업 규모도 상당히 크겠군요.”
“예. 아실지 모르겠지만 연예 기획사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지금은 시장 규모도 더 크고, 사실상 통합된 형태에 가깝죠.”
심혁진은 앞서 보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헌터들이 실린 잡지, 광고, 방송 등의 매체.
현대 문화의 곳곳에 헌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 조금 전의 전화는 뭡니까?”
심혁진의 질문에 차수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김창준. 우리 매니지먼트의 간판 헌터예요. 조금 전에 계약 파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고요.”
단번에 상황이 이해됐다.
“길드 쪽에서 계약을 불이행한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광고 수입이 체불되긴 했지만 사전에 양해를 구했고, 김창준도 흔쾌히 동의했으니까요.”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았다고 잡아떼기라도 하는 겁니까?”
“네. 그래서 녹취록을 따 뒀어요. 이런 일을 대비해서.”
“그럼 됐군요. 법대로 하면 되잖습니까.”
“그래서 문제죠.”
차수린의 한숨이 한결 무거워졌다.
“법정 싸움으로 가면 시간과 돈이 들게 돼요. 그리고 전 둘 다 없어요. 판결이 날 때까지 버티지도 못할 거예요.”
“그 작자도 그걸 알고 있겠군요.”
“물론이죠. 이미 다른 매니지먼트와 얘기가 다 끝났을 거예요. 그쪽 전속 법률 고문이 대기 타고 있을 테죠.”
“흐음.”
“다른 데로 옮겨 가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나 같아도 이런 암울한 업체와 일하기는 싫을 테니.”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하지만!”
차수린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위약금 몇 푼을 내기 싫어서 이런 짓까지 벌이는 건 용서할 수가 없어요.”
“하긴, 거지한테 돈 떼먹는 건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짓이죠.”
“돈 때문이 아니에요. 우리가 자길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어줬는지 알면서도 그런다는 게 화나는 거예요.”
괘씸함과 서러움에 차수린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래도 기어코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르고는 심혁진을 돌아봤다.
“제 설명은 여기까지예요. 이제 만족하세요?”
“대강은. 이제 내 차례군요. 근데 얘기를 풀자면 꽤나 길고 복잡해질 듯한데, 일부터 해결하고 와서 하면 안 됩니까?”
“네? 해결이라니요?”
“나는 차상구와 약속했습니다. 못 미덥기 짝이 없는 동생 좀 돌봐주기로.”
“아버지… 말이군요.”
“예. 차상욱 씨 말입니다. 근데 보아하니 이곳에 없는 것 같더군요.”
“네. 회사 자금을 횡령해서 내뺐어요. 어이가 가출할 일이죠.”
“왜 그랬답니까?”
“그건…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차수린의 표정에서 강한 거부감이 드러났다.
심혁진은 더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내게 있어선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그래서 저를 돕겠다고요?”
“예. 차상욱 씨를 찾기 전까진 차수린 씨가 차상구의 유일한 혈육이니까요.”
“어째 꿩 대신 닭이라는 투로 들리는데요.”
“제대로 봤습니다.”
“……후우.”
지나치게 솔직한 대답에 차수린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예전이었다면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요.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죠.”
“지푸라기가 아니라는 건 금방 알게 될 겁니다.”
“좋아요.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시니 일단 물어보죠. 어떻게 저를 도와주실 건가요?”
“그 김창준이란 친구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 주십시오. 설득해서 앞에 대령해 드리죠.”
차수린의 얼굴이 멍해졌다.
“고작 그게 전부인가요?”
“예. 이게 전붑니다.”
“뭔가 세부적인 계획은 따로 없고요?”
“영업 비밀이라고 해두죠.”
“…….”
못미덥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한 차수린.
심혁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서 더 악화될 거라도 있습니까?”
“……없겠죠, 아마도.”
차수린은 한숨을 토하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이대로 가만히 있어 봤자 말라 비틀어져 갈 뿐인데,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봐야겠죠. 최악의 상황이래도 폭행죄나 추가될 테고.”
“폭행죄?”
“그쪽이 일을 망치든 말든, 그 인간 찾아가서 한 대 후려치고 말 생각이거든요.”
심혁진은 피식 웃었다.
“상대는 헌터라면서요? 보아하니 수린 씨는 헌터 자질이 없어 보이는데.”
“어차피 그 인간도 실력은 개차반이에요. 얼굴만 좀 반반할 뿐이죠. 그래서 비주얼 계열로 밀어붙여서 겨우 뜬 거고요.”
“비주얼 계열?”
“말 그대로 얼굴 마담이에요. 요즘은 마수 사냥만큼이나 대외적인 이미지도 중요하거든요. 방송, 광고 등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정말 연예인이 따로 없군. 그건 그렇고, 그 친구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압니까?”
“짐작 가는 곳이 있어요. 아마도 확실할 거예요. 통화하는 내내 거기 음악이 귀 따갑게 들렸으니까.”
서랍을 뒤진 차수린이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심혁진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댔다.
“나이트클럽?”
“요즘은 그냥 클럽이라고 해요.”
“차이가 있는 겁니까?”
“미묘하게 다르다던데요? 저도 잘은 몰라요. 그런 데는 얼씬도 안 해봐서.”
“모범생이었나 보군요.”
“딱히……. 어쨌든 주의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거기, 샐럽이나 연예인들이 자주 찾는 데라고 들었거든요.”
샐럽은 또 뭔지.
지구를 떠나 있던 사이에 별별 말이 다 생겼구나 싶었다.
“대강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다녀와서 얘기하죠.”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예.”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대답.
이쯤 되니 차수린도 반쯤은 체념한 상태가 되었다.
저렇게까지 자신만만해 하니 한 번 믿어나 보자는 심정이 된 것이다.
“다녀오죠.”
“잠시만요.”
차수린의 말에 심혁진은 고개를 돌렸다.
“부디 무리하지는 마세요.”
“안 합니다. 무리는 지금까지 충분히 해왔어서.”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난 심혁진.
차수린은 멍하니 문을 바라보다가, 경첩이 박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 남자가 부쉈구나.
그걸 깨달은 차수린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나름대로 믿는 구석은 있다는 뜻이었으니.
“그런데 저 사람, 김창준의 얼굴은 알고 있는 걸까?”

* * *

강남 학동역 부근.
해가 떨어진 지는 꽤나 지났지만 건물들이 발하는 빛 때문에 주변은 밝았다.
생각해 보니 차수린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가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지금쯤 클럽 장사가 개시되는 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나저나 헤맬 필요 없는 건 좋군.”
일련의 젊은 남녀들이 한 방향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척 봐도 밤 한 번 제대로 불살라 보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의상들.
클럽이 자리한 호텔 앞에서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피어나는 담배 연기와 왁자지껄한 소음.
벌써부터 취한 이들이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화를 내거나 소리치거나 웃어대고 있었다.
심혁진이 그들은 무시하고서 입구로 향하자, 직원들이 다가섰다.
우락부락한 떡대들일 거란 예상과는 달리 모델 같은 외모의 남자들이었다.
“특별 회원증 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손님?”
“특별 회원증?”
반문하자마자 표정들이 살짝 굳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VIP 회원분들만 출입이 허가되는 날입니다.”
“여자들은 아닌가 본데.”
말하는 사이에도 몇몇 여성들이 제재 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여성 게스트는 무료입장이 가능하거든요.”
꼬우면 여자로 태어나든지.
접대용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핵심은 결국 그것이었다.
“흐흠.”
심혁진은 잠시 고민했다.
이걸 그냥 뚫고 들어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이래저래 뒷일이 귀찮아질 듯했으니까.
“회원증 대신 이걸로 퉁칩시다.”
“죄송하지만 다른 물건으로는…….”
직원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심혁진이 내민 게 무엇인지 확인한 것이다.
소모형 아이템인 로크의 깃털.
C랭크에 불과한 싸구려였으나,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한 달 월급쯤은 될 터였다.
“회원증 확인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손님.”
“수고.”
클럽 안으로 들어서니 두개골 안쪽까지 파고드는 드럼 비트와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가 반겼다.
아래쪽을 힐끔 보니 수십 갈래로 쪼개지는 레이저 조명에 멀미가 날 지경.
처음 와보는 곳인데도 벌써부터 마지막 방문이 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거기에 화룡점정.
김창준의 얼굴을 모른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귀찮게.”
되돌아가서 물어보거나 핸드폰으로 찾아보거나.
보통은 그럴 테지만 심혁진에겐 제3의 해결책이 있었다.
‘그놈 목소리가 분명…….’
차수린이 음량을 낮추고서 통화를 했지만, 심혁진은 둘의 대화를 모조리 엿들었다.
초인 레벨의 청력 덕분에 가능한 일.
게다가 심혁진은 막강한 청력에서 파생된 또 다른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사운드 디텍트(Sound Det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