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6화] 매니지먼트(3)
상식적으로 보자면 사무실 주인과 직원들일 터.
한데 앞서 본 게 있다 보니 마냥 그리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숫자는?’
총 6명.
그것도 5명이 나머지 한 명과 대치중인 형국이었다.
그러한 디테일한 면까지 알아낸 심혁진은 노크할 것도 없이 문고리를 쥐었다.
콰직!
강철로 된 경첩이 부러지는 소리.
벌컥 문을 열자 안에 있던 이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홱 돌렸다.
“뭐야, 이건?”
당황과 황당이 뒤섞인 음성.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우락부락한 덩치 몇을 데리고 있었다.
그와 대치중인 건 젊은 여성이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과하지 않은 화장과 세련되게 웨이브 진 머리카락.
예쁘장했다.
이런 데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만 옥에 티랄까,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등허리에 감춰진 오른손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튼실해 보이는 장도리였다.
나름대로 이해가 되는 상황인지라 심혁진은 그냥 웃고 말았다.
“넌 또 뭐냐고, 이 새끼야.”
심혁진은 사내를 무시하고 여자를 보았다.
“차수린 씨 맞습니까?”
사내들의 고개가 여인에게로 향했다.
차수린이 맞는 모양.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심혁진이 말을 이었다.
“처리해 드릴까요, 이것들?”
“뭐?”
이번에도 반응하는 건 사내들뿐이었다.
차수린은 사내들은 물론이고 심혁진에게도 경계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형님.”
씨름이나 하면 딱이겠다 싶은 사내가 슬금슬금 앞으로 나섰다.
심혁진은 내심 헛웃음을 짓고서 덩치를 응시했다.
굳이 스킬을 쓸 것도 없었다.
20년간 생사를 넘나들며 익힌 본능적인 살기.
그것을 살짝 집중시키니 덩치의 낯빛이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
“허, 허억……!”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슬금슬금 물러나는 덩치.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은 어이가 없어 쳐다만 볼 따름이었다.
“야, 마! 지금 뭐하는 거야?”
“혀, 형님. 그것이…….”
“됐고.”
심혁진이 덩치의 말을 잘랐다.
“이 아가씨랑 할 말이 있으니 댁들은 가 봐.”
“뭐? 네가 뭐라고…….”
“어차피 돈이나 뜯어내려고 온 거잖아. 그러니 이거 받고 꺼지란 말이다.”
심혁진은 이차원 인벤토리에서 돈 다발을 꺼냈다.
묵직한 신사임당 다발에 사내들의 눈빛이 재차 돌변했다.
“흠흠, 대신 갚아주겠다면야…….”
“잠깐만요.”
내내 침묵하고 있던 여자, 차수린이 말했다.
“주지 마세요. 그쪽도 받지 마시고.”
“뭐? 이봐, 차 사장.”
“대출금은 이달 말까지 정확히 갚을 거예요. 이자까지 쳐서. 그러니 그만 가세요. 더 이상 행패 부리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사내들은 멍한 얼굴로 차수린과 심혁진만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에 차수린이 덧붙였다.
“그 사람과 나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애초에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도움을 받고 말고 할 관계가 아닙니다.”
딱 잘라 말한 차수린이 심혁진을 보았다.
“뭐하자는 건진 모르겠지만 돈 집어넣으세요.”
“그렇다면야.”
심혁진은 그녀의 말대로 했다.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게다가 심혁진의 성격상 돈보다는 주먹으로 해결하는 쪽이 입맛에 맞기도 했다.
“쳇.”
나직이 혀를 찬 사내가 고갯짓을 하니 덩치들이 슬금슬금 밖으로 향했다.
“이달 지나고도 입금되지 않으면 다시 찾아올 거요. 그땐 이렇게 신사적이지 않을 테니…….”
“걱정일랑 마시죠.”
“크흠.”
사내는 마지막으로 심혁진을 흘끔거리고는 떠나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누구시고요.”
경계심 섞인 어조로 차수린이 물었다.
“그게요.”
심혁진은 본론만 꺼내기로 했다.
“상구한테 부탁을 받았습니다.”
“네?”
“차상구요. 차수린 씨 큰아버지. 차상욱 씨의 형.”
“…….”
한동안 멍하니 심혁진을 쳐다보던 차수린의 눈이 묘한 기색을 띠었다.
큰아버지.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십여 년 만에 깨달았다는 반응이었다.
“저, 혹시 그분이 그 인간과 함께 있는 건가요?”
“그 인간?”
“차상욱. 우리 아버지요.”
어지간히 미운털이 박혔구나.
속으로만 중얼거리는 심혁진이었다.
“아뇨. 차상욱 씨의 행방은 저도 모릅니다. 그 친구도 몰랐고요.”
“아, 그렇군요.”
나직이 한숨을 쉰 차수린이 이어 말했다.
“그럼 그분… 큰아버지께선 무슨 용무로 그쪽을 보내셨죠? 십 년도 넘게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사람을 보내다니요?”
“상구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아예 모르는 겁니까?”
차수린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런데요. 죄송하지만 족보상 큰아버지라고는 해도 사실상 남남이에요. 저는 그분의 얼굴도 모르고, 한 번도 뵌 적이 없단 말이에요.”
“혹시 나이가?”
“……올해로 스물 둘인데요.”
“아하.”
심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은 게, 아케론 차원이 열릴 당시 그녀의 나이는 많아봐야 두 살 언저리였을 것이다.
게다가 차상구의 얘기를 되돌아보면, 아케론에 투입되기 전의 몇 년 간은 동생을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조카딸이 있는지도 몰랐겠군. 불쌍한 놈.’
죽어간 전우를 떠올리니 재차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런데…….”
차수린이 미심쩍은 태도로 말했다.
“그쪽은 저희 큰아버지와 무슨 관계이시죠?”
“아, 친구입니다.”
“예?”
그게 말이나 되느냐는 반응.
심혁진은 왜 그러나 싶어서 멀뚱멀뚱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큰아버지, 혹시 외국에 사시나요?”
“아뇨.”
굳이 따지자면 외계, 그것도 과거형이었다.
하지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설명은 보류했다.
“그런데 그분과 친구시라고요?”
“예. 뭐, 그렇습니다.”
“……큰아버지께선 굉장히 개방적인 성격이신가 보네요.”
심혁진은 그제야 그녀가 놀란 이유를 깨달았다.
‘불로 때문이구나.’
심혁진이 신화급 영구 버프인 불로를 얻은 것이 15년쯤 전의 일.
2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은 동료들과는 달리, 그의 육체는 노화를 피했다.
육체 연령은 기껏해야 20대 중후반.
외관만 보자면 차수린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건 그러니까…….”
“됐어요. 자세한 사정까진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수린이 말했다.
예의를 가장한 철벽을 친 느낌이었다.
“그리고 돈 받을 생각도 없으니 죄송하지만 가져가 주세요.”
“왜 그럽니까? 공돈인데.”
차수린이 표정을 굳혔다.
“우리 사무실 사정, 알고는 계시죠?”
“우편함 모양새가 화려하긴 하더군요. 조금 전의 녀석들도 그렇고.”
“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돈 한 푼이 아까운 상황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의 동정에 기댈 생각은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큰아버지, 백부지요.”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분이에요. 모르는 사람과 다를 바 없어요.”
“하지만…….”
“그만 가 주세요. 그분께도 다신 연락하지 말아 달라 전해 주시고요.”
“그렇게는 못합니다.”
심혁진의 말에 차수린의 표정이 한층 굳었다.
“저기요, 지금 무슨…….”
“죽었습니다, 차상구.”
“예?”
차수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여전히 도움 받을 생각은 없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심혁진.”
“좋아요, 심혁진 씨. 아무리 큰아버지의 유언이라 해도 저는 도움을 구걸할 생각이 없습니다.”
“상구는 죽어가면서 그쪽을 돌봐 달라 부탁했습니다. 난 그 부탁을 꼭 들어줘야겠고.”
정확히는 동생, 즉 그녀의 아버지를 돌봐 달라고 한 것.
하지만 그거야 남은 혈육이 차상욱 한 명뿐인 줄 알았기에 그리 한 부탁이다.
또 다른 혈육인 차수린을 돌본다고 해서 약속을 못 지키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 회사 공금을 횡령해서 달아난 놈보다는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쪽이 더 마음에 들었고.
한편 심혁진의 말에 차수린은 혼란스러운 반응이었다.
“큰아버지가 저를 돌봐 달라고 하셨다고요?”
“뭐, 얼추 그렇습니다.”
“얼추 그렇다니, 그게 무슨……?”
부우우웅!
요란한 진동음이 대화를 깨고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책상으로 다가간 차수린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네, 차 대표입니다. 아, 네. 김창준 헌터님. 네… 네? 아뇨.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네? 하지만 그건 이미 사전에 통보를 했었고 김창준 님께서도 동의하셨… 네? 자, 잠시만요.”
3분 남짓한 통화 동안 시시각각 변해가는 차수린의 표정.
물론 철저히 안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였다.
통화를 끊은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새끼!”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심혁진이 물으니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심혁진 씨가 관여하실 문제가 아니에요.”
“얘기해서 손해 볼 건 없잖습니까. 어차피 이 상황에 밑져야 본전인데.”
“밑지는 것도 자릴 보고 해야죠. 본전이 아니라 쪽박일 수도 있는 거니까.”
“흐흠.”
심혁진은 팔짱을 꼈다.
딱히 답답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나름대로 야무진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조금 전 그것들, 사채업자 아닙니까?”
“…….”
“장도리까지 몰래 준비해뒀다는 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뜻인데, 어찌 됐든 내 덕에 무사히 넘겼다는 건 인정할 거라 봅니다.”
“그래요. 그건 인정해요.”
“기왕 도움 받은 김에 좀 더 믿어 보시죠.”
“그러니까 대체 왜…….”
“친구놈 유언이라서요. 불쌍한 놈이라서요. 20년을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간 놈이 남긴 마지막 부탁이라서요. 알겠습니까?”
“그게 무슨……?”
“설명을 하라면 해드리죠. 근데 그 전에 무슨 일인지 얘기나 들어 봅시다.”
“알겠어요.”
한숨을 내쉰 차수린이 말했다.
“여기, CS 매니지먼트가 뭐하는 곳인지는 알고 계시죠?”
“길드 매니지먼트인지 뭔지 하는 데라고 듣긴 했습니다.”
“그럼 다 아시는 거네요.”
“아뇨. 그게…….”
심혁진은 작게 혀를 찼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대략적으로라도 설명을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네?”
“길드 매니지먼트란 게 뭔지 말입니다.”
얼떨떨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차수린.
어디 머나먼 오지에라도 다녀왔나 보다 지레 짐작하는 그녀였다.
“차원 전쟁에 의해 헌터라는 직종이 급부상한 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심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활동하던 초창기와 너무나도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헌터라는 직종이 짭짤하다는 것.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세간의 시선이었다.
헌터란 곧 목숨을 담보로 한 지극히 위험한 직업.
문자 그대로 전장에 나서는 용병과 같았다.
한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예전처럼 마수를 사냥하긴 하는데 임하는 태도는 정반대였다.
비장함 대신 안일함이 팽배했고, 위험성 대신 오락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마치 게임이라도 대하듯이.
상식적으로 보자면 사무실 주인과 직원들일 터.
한데 앞서 본 게 있다 보니 마냥 그리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숫자는?’
총 6명.
그것도 5명이 나머지 한 명과 대치중인 형국이었다.
그러한 디테일한 면까지 알아낸 심혁진은 노크할 것도 없이 문고리를 쥐었다.
콰직!
강철로 된 경첩이 부러지는 소리.
벌컥 문을 열자 안에 있던 이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홱 돌렸다.
“뭐야, 이건?”
당황과 황당이 뒤섞인 음성.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우락부락한 덩치 몇을 데리고 있었다.
그와 대치중인 건 젊은 여성이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과하지 않은 화장과 세련되게 웨이브 진 머리카락.
예쁘장했다.
이런 데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만 옥에 티랄까,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등허리에 감춰진 오른손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튼실해 보이는 장도리였다.
나름대로 이해가 되는 상황인지라 심혁진은 그냥 웃고 말았다.
“넌 또 뭐냐고, 이 새끼야.”
심혁진은 사내를 무시하고 여자를 보았다.
“차수린 씨 맞습니까?”
사내들의 고개가 여인에게로 향했다.
차수린이 맞는 모양.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심혁진이 말을 이었다.
“처리해 드릴까요, 이것들?”
“뭐?”
이번에도 반응하는 건 사내들뿐이었다.
차수린은 사내들은 물론이고 심혁진에게도 경계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형님.”
씨름이나 하면 딱이겠다 싶은 사내가 슬금슬금 앞으로 나섰다.
심혁진은 내심 헛웃음을 짓고서 덩치를 응시했다.
굳이 스킬을 쓸 것도 없었다.
20년간 생사를 넘나들며 익힌 본능적인 살기.
그것을 살짝 집중시키니 덩치의 낯빛이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
“허, 허억……!”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슬금슬금 물러나는 덩치.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은 어이가 없어 쳐다만 볼 따름이었다.
“야, 마! 지금 뭐하는 거야?”
“혀, 형님. 그것이…….”
“됐고.”
심혁진이 덩치의 말을 잘랐다.
“이 아가씨랑 할 말이 있으니 댁들은 가 봐.”
“뭐? 네가 뭐라고…….”
“어차피 돈이나 뜯어내려고 온 거잖아. 그러니 이거 받고 꺼지란 말이다.”
심혁진은 이차원 인벤토리에서 돈 다발을 꺼냈다.
묵직한 신사임당 다발에 사내들의 눈빛이 재차 돌변했다.
“흠흠, 대신 갚아주겠다면야…….”
“잠깐만요.”
내내 침묵하고 있던 여자, 차수린이 말했다.
“주지 마세요. 그쪽도 받지 마시고.”
“뭐? 이봐, 차 사장.”
“대출금은 이달 말까지 정확히 갚을 거예요. 이자까지 쳐서. 그러니 그만 가세요. 더 이상 행패 부리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사내들은 멍한 얼굴로 차수린과 심혁진만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에 차수린이 덧붙였다.
“그 사람과 나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애초에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도움을 받고 말고 할 관계가 아닙니다.”
딱 잘라 말한 차수린이 심혁진을 보았다.
“뭐하자는 건진 모르겠지만 돈 집어넣으세요.”
“그렇다면야.”
심혁진은 그녀의 말대로 했다.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게다가 심혁진의 성격상 돈보다는 주먹으로 해결하는 쪽이 입맛에 맞기도 했다.
“쳇.”
나직이 혀를 찬 사내가 고갯짓을 하니 덩치들이 슬금슬금 밖으로 향했다.
“이달 지나고도 입금되지 않으면 다시 찾아올 거요. 그땐 이렇게 신사적이지 않을 테니…….”
“걱정일랑 마시죠.”
“크흠.”
사내는 마지막으로 심혁진을 흘끔거리고는 떠나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누구시고요.”
경계심 섞인 어조로 차수린이 물었다.
“그게요.”
심혁진은 본론만 꺼내기로 했다.
“상구한테 부탁을 받았습니다.”
“네?”
“차상구요. 차수린 씨 큰아버지. 차상욱 씨의 형.”
“…….”
한동안 멍하니 심혁진을 쳐다보던 차수린의 눈이 묘한 기색을 띠었다.
큰아버지.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십여 년 만에 깨달았다는 반응이었다.
“저, 혹시 그분이 그 인간과 함께 있는 건가요?”
“그 인간?”
“차상욱. 우리 아버지요.”
어지간히 미운털이 박혔구나.
속으로만 중얼거리는 심혁진이었다.
“아뇨. 차상욱 씨의 행방은 저도 모릅니다. 그 친구도 몰랐고요.”
“아, 그렇군요.”
나직이 한숨을 쉰 차수린이 이어 말했다.
“그럼 그분… 큰아버지께선 무슨 용무로 그쪽을 보내셨죠? 십 년도 넘게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사람을 보내다니요?”
“상구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아예 모르는 겁니까?”
차수린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런데요. 죄송하지만 족보상 큰아버지라고는 해도 사실상 남남이에요. 저는 그분의 얼굴도 모르고, 한 번도 뵌 적이 없단 말이에요.”
“혹시 나이가?”
“……올해로 스물 둘인데요.”
“아하.”
심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은 게, 아케론 차원이 열릴 당시 그녀의 나이는 많아봐야 두 살 언저리였을 것이다.
게다가 차상구의 얘기를 되돌아보면, 아케론에 투입되기 전의 몇 년 간은 동생을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조카딸이 있는지도 몰랐겠군. 불쌍한 놈.’
죽어간 전우를 떠올리니 재차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런데…….”
차수린이 미심쩍은 태도로 말했다.
“그쪽은 저희 큰아버지와 무슨 관계이시죠?”
“아, 친구입니다.”
“예?”
그게 말이나 되느냐는 반응.
심혁진은 왜 그러나 싶어서 멀뚱멀뚱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큰아버지, 혹시 외국에 사시나요?”
“아뇨.”
굳이 따지자면 외계, 그것도 과거형이었다.
하지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설명은 보류했다.
“그런데 그분과 친구시라고요?”
“예. 뭐, 그렇습니다.”
“……큰아버지께선 굉장히 개방적인 성격이신가 보네요.”
심혁진은 그제야 그녀가 놀란 이유를 깨달았다.
‘불로 때문이구나.’
심혁진이 신화급 영구 버프인 불로를 얻은 것이 15년쯤 전의 일.
2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은 동료들과는 달리, 그의 육체는 노화를 피했다.
육체 연령은 기껏해야 20대 중후반.
외관만 보자면 차수린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건 그러니까…….”
“됐어요. 자세한 사정까진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수린이 말했다.
예의를 가장한 철벽을 친 느낌이었다.
“그리고 돈 받을 생각도 없으니 죄송하지만 가져가 주세요.”
“왜 그럽니까? 공돈인데.”
차수린이 표정을 굳혔다.
“우리 사무실 사정, 알고는 계시죠?”
“우편함 모양새가 화려하긴 하더군요. 조금 전의 녀석들도 그렇고.”
“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돈 한 푼이 아까운 상황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의 동정에 기댈 생각은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큰아버지, 백부지요.”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분이에요. 모르는 사람과 다를 바 없어요.”
“하지만…….”
“그만 가 주세요. 그분께도 다신 연락하지 말아 달라 전해 주시고요.”
“그렇게는 못합니다.”
심혁진의 말에 차수린의 표정이 한층 굳었다.
“저기요, 지금 무슨…….”
“죽었습니다, 차상구.”
“예?”
차수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여전히 도움 받을 생각은 없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심혁진.”
“좋아요, 심혁진 씨. 아무리 큰아버지의 유언이라 해도 저는 도움을 구걸할 생각이 없습니다.”
“상구는 죽어가면서 그쪽을 돌봐 달라 부탁했습니다. 난 그 부탁을 꼭 들어줘야겠고.”
정확히는 동생, 즉 그녀의 아버지를 돌봐 달라고 한 것.
하지만 그거야 남은 혈육이 차상욱 한 명뿐인 줄 알았기에 그리 한 부탁이다.
또 다른 혈육인 차수린을 돌본다고 해서 약속을 못 지키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 회사 공금을 횡령해서 달아난 놈보다는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쪽이 더 마음에 들었고.
한편 심혁진의 말에 차수린은 혼란스러운 반응이었다.
“큰아버지가 저를 돌봐 달라고 하셨다고요?”
“뭐, 얼추 그렇습니다.”
“얼추 그렇다니, 그게 무슨……?”
부우우웅!
요란한 진동음이 대화를 깨고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책상으로 다가간 차수린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네, 차 대표입니다. 아, 네. 김창준 헌터님. 네… 네? 아뇨.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네? 하지만 그건 이미 사전에 통보를 했었고 김창준 님께서도 동의하셨… 네? 자, 잠시만요.”
3분 남짓한 통화 동안 시시각각 변해가는 차수린의 표정.
물론 철저히 안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였다.
통화를 끊은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새끼!”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심혁진이 물으니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심혁진 씨가 관여하실 문제가 아니에요.”
“얘기해서 손해 볼 건 없잖습니까. 어차피 이 상황에 밑져야 본전인데.”
“밑지는 것도 자릴 보고 해야죠. 본전이 아니라 쪽박일 수도 있는 거니까.”
“흐흠.”
심혁진은 팔짱을 꼈다.
딱히 답답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나름대로 야무진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조금 전 그것들, 사채업자 아닙니까?”
“…….”
“장도리까지 몰래 준비해뒀다는 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뜻인데, 어찌 됐든 내 덕에 무사히 넘겼다는 건 인정할 거라 봅니다.”
“그래요. 그건 인정해요.”
“기왕 도움 받은 김에 좀 더 믿어 보시죠.”
“그러니까 대체 왜…….”
“친구놈 유언이라서요. 불쌍한 놈이라서요. 20년을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간 놈이 남긴 마지막 부탁이라서요. 알겠습니까?”
“그게 무슨……?”
“설명을 하라면 해드리죠. 근데 그 전에 무슨 일인지 얘기나 들어 봅시다.”
“알겠어요.”
한숨을 내쉰 차수린이 말했다.
“여기, CS 매니지먼트가 뭐하는 곳인지는 알고 계시죠?”
“길드 매니지먼트인지 뭔지 하는 데라고 듣긴 했습니다.”
“그럼 다 아시는 거네요.”
“아뇨. 그게…….”
심혁진은 작게 혀를 찼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대략적으로라도 설명을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네?”
“길드 매니지먼트란 게 뭔지 말입니다.”
얼떨떨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차수린.
어디 머나먼 오지에라도 다녀왔나 보다 지레 짐작하는 그녀였다.
“차원 전쟁에 의해 헌터라는 직종이 급부상한 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심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활동하던 초창기와 너무나도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헌터라는 직종이 짭짤하다는 것.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세간의 시선이었다.
헌터란 곧 목숨을 담보로 한 지극히 위험한 직업.
문자 그대로 전장에 나서는 용병과 같았다.
한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예전처럼 마수를 사냥하긴 하는데 임하는 태도는 정반대였다.
비장함 대신 안일함이 팽배했고, 위험성 대신 오락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마치 게임이라도 대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