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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매니지먼트(2)
‘젠장.’
임철수는 속으로 욕설을 뇌까렸다.
그가 있는 곳은 다섯 평 남짓한 크기의 자그만 방이었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탁자와 의자.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데서 환환 빛을 쪼이는 스탠드.
그 외엔 아무런 빛도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
전형적인 취조실의 전경이다 보니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나를 취조하겠다고? 자기네 목숨을 구해 준 것도 모르고?’
심혁진을 그냥 보내준 게 문제였다.
천하의 국정원이 쥐뿔도 없는 민간인의 협박을 이기지 못해 그냥 보내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철수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럼 어쩌라고? 그 자리에서 그 인간 가로막다 다 뒈졌어야 한다고?’
임철수가 본 심혁진은 진짜배기였다.
서류상의 기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임철수 앞에서 보여준 판단력과 지성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다.
이게 몰래 카메라가 아닌 이상, 그가 측정 불능 레벨의 헌터라는 건 주지의 사실.
그런 존재가 경고해 왔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지옥도였을 아케론 차원에서 홀로 생환한 사내가, 웃음기 하나 없는 태도로.
보내 주지 않으면 다 뒤집어엎을 거라고.
‘그런 마당에 날더러 뭘 어쩌라고?’
국가 정보원. 이름은 좋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원은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다.
민간 기업의 약진 및 친기업적 국가 정책이 거듭되면서, 차원 사업과 관련된 부서들의 영향력 역시 약화되었다.
국정원 또한 마찬가지.
이미 차원 관련 사업의 상당 부분이 민간 대기업들에 먹혀 버렸다.
최상위 헌터들은 돈을 좇아 고액 계약을 맺어댔다.
잘 버는 것들은 1년에 백억이 우스웠다.
또한 잘 버는 기업은 그 정도 금액을 계약금으로 팍팍 뿌려댈 수 있었다.
그런 마당에 기껏해야 노후 연금이나 떼어 주는 게 딜의 전부인 국가 기관에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런 판국에 분노한 심혁진을 되도 않는 병력만으로 막는다?
국가 유공자 대량 배출이 목적이 아닌 바에야 미친 짓에 불과했다.
그래서 임철수는 심혁진을 보내 줬다.
한데 저들은 생각이 달랐다.
심혁진이 과연 그 정도 레벨의 헌터이겠느냐는 것이었다.
‘멍청한 놈들.’
보이는 게 있어도 믿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걸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없다.
그저 자기네 철밥통 지키기에나 급급할 따름.
그것이 21세기 공무원의 현주소라는 데에 임철수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의 사내가 들어왔다.
국정원 소속 감찰원.
소속 부서가 다르다 보니 동료라는 느낌은 없었다.
한데 좀 분위기가 묘했다.
아무리 감찰이라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지나칠 정도로 무게를 잡는 게 느껴졌다.
‘새끼, 내 짬밥이 얼만데 겁주려고 수작질인지.’
그렇게 생각하던 임철수였으나, 잠시 후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임철수. 41세. 경기도 양주 출신. K대 졸업. 가족은 아내와 딸 두 명으로, 각각 중학생과 초등학생.”
“……뭐야, 당신. 지금 뭐하자는 수작이야.”
“위에서 특별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임철수 차장께서 반드시 지켜 주셔야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이 생략된 경고.
아니, 어조와 내용으로 보건대 이건 그냥 대놓고 하는 협박이었다.
대체 어느 정도 윗선에서 내려온 오더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
검은 양복의 사내가 임철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해하셨습니까?”
“완벽하게. 그러니 말해 주쇼.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요?”
“간단합니다. 오늘 일에 대해 함구하고, 그자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그자가 누군지는 물을 것도 없는 일.
임철수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검은 양복이 술술 설명을 했다.
“오늘 일은 해프닝으로 매듭지어질 겁니다. R랭크 에너지 반응은 기기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였고,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죠.”
“암만 그래도 데이터상 기록이 남을 텐데…….”
“그건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귀하는 그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
“더불어 그자에 대해서 어떠한 의문이나 호기심도 갖지 마십시오.”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면’이 생략된 말.
임철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호기심 해결에 대한 열망이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았다.
더군다나 혼자라면 모를까, 가족까지 걸고넘어진다면야.
“하라는 대로 얌전히 할 테니 그쯤 해두쇼. 내 안 그래도 말 잘 듣는 사람이니까.”
“똑똑한 사람이기도 하지. 우리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했으리라 봅니다.”
“물론이오.”
“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검은 양복이 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가도 좋다는 의미인가 싶어 일어나려던 임철수가 문득 든 생각에 말을 꺼냈다.
“설마 미행 같은 걸 붙이거나 하는 건 아니리라 믿겠소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잠깐. 내게 붙이는 거야 상관없지만 아내와 애들에게까진 그러지 마시오. 암만 중요한 일이라도 그렇게까지 하는 건…….”
“우리가 판단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가보시죠, 임철수 차장.”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축객령에 임철수는 속으로 분노를 삭였다.
‘그나저나… 그자가 진짜배기인 것은 확실한 모양이군.’
마른하늘에서 뚝 떨어진 측정 불가 레벨의 헌터.
임철수가 알기로 그 정도 급의 헌터는 세계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한국 헌터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니, 어쩌면 이미 벌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저 다들 그걸 모를 뿐.
* * *
심혁진은 일단 전철역부터 찾았다.
원래는 버스를 타려 했으나, 지구를 떠나 있는 동안 노선 체계가 완전히 바뀐 뒤였다.
시간을 조금 들이면 숙지할 수야 있을 터.
하지만 관뒀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게 많은데 버스 노선 가지고 골머리 싸매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지하철.
몇 개의 역과 노선이 추가되긴 했으나, 대체로 20년 전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기 있군.’
역을 찾은 심혁진이었지만 바로 들어가진 않았다.
우선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주변을 돌아다녔다.
족히 수년은 갇혀 있다가 풀려난 사람처럼, 내키는 대로 사서 먹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미행자가 곧장 따라 들어왔다.
그 순간 벼락처럼 달라붙는 신형!
스슥!
“……!”
심혁진이었다.
그가 상위 돌격 스킬인 온슬로트(Onslaught)를 사용한 것이었다.
오른 손아귀에 목을 붙들린 미행자는 변변한 반항 한 번 못하고서 벽으로 밀렸다.
꾸구국!
심혁진이 살짝 힘을 주니 미행자의 두 다리가 허공에 들렸다.
자연히 목이 졸리자 미행자가 파랗게 질려선 버둥거렸다.
두 다리로 심혁진을 때리고 두 팔로 목을 쥔 손을 떼어내고자 용을 썼으나 전부 무용지사.
“사, 살려……!”
“안 죽여. 그럴 가치도 없으니까.”
“……!”
“손 놓는다. 근데 시끄럽게 굴면 목 조르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거야. 알겠어?”
미행자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혁진이 손을 놓았다.
땅에 착지한 미행자는 엎드린 채로 밭은기침을 한참이나 토했다.
“허헉, 헉, 허억……!”
심혁진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였다.
물론 외관상 그렇다는 것이니, 실제 나이는 많아 봐야 서른 미만일 터였다.
심혁진은 팔짱을 낀 채 그의 호흡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그럭저럭 대화를 할 수 있을 듯하자 나직이 물었다.
“뭐냐, 너?”
젊은 사내, 미행자는 움찔하며 눈치를 살폈다.
심혁진은 피식 웃고서 말했다.
“좋네. 신중한 거. 근데 신중한 것도 지나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잘 알 거라고 본다.”
“그러니까 저는… 공무원입니다.”
“그건 알아. 국정원에서부터 쭉 미행해 온 거.”
미행자가 움찔했다.
설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냐는 표정.
심혁진으로선 실소만 나올 일이었다.
“너희 스나이퍼 애들 위치도 알았는데 네가 졸졸 따라오는 것 하나 몰랐을까.”
“그, 그런…….”
“내가 알고 싶은 건 누가 널 보냈냐는 거야. 임철수라고 했던가? 분위기상 그 양반이 보냈을 것 같진 않거든.”
“…….”
“이젠 네가 대답해야지. 지금 입 다물고 버티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란 걸 말해 주고 싶군.”
“배, 백남용 부장님께서…….”
“백남용?”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부장인 걸 보면 임철수보단 직급이 높은 모양.
20년 동안 직급 체계가 바뀐 게 아니라면 그러할 터였다.
한마디로 임철수와는 별개로 사람을 썼다는 뜻.
“그래서, 왜 내 뒤를 밟으라고 시켰는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면 알게 만들어줘야지. 이거 한두 방이면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먹을 쥐어 보이니 미행자의 얼굴이 한층 파래졌다.
“아, 아마도!”
“아마도?”
“선생님의 본거지를 확인한 후에 타격대를 보내 제압하려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 아, 나 말이냐?”
“예? 아, 예.”
미행자의 대답에 심혁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선생님 소리 들을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아니. 그게요. 그냥 존경의 표시로…….”
“존경은 무슨 얼어 죽을 존경.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존경을 하고 자빠져?”
“그, 그것이……!”
“됐으니까 자라.”
심혁진이 수도로 목덜미를 치자 미행자는 혀를 빼물고 혼절했다.
“흐흠, 여기 어디에 있었을 텐데.”
심혁진은 이차원 인벤토리를 뒤져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기억 소거 앰플.
주사를 한 방 놓으면 직전 24시간 동안의 기억이 싹 날아가는 물건이었다.
심혁진은 일회용 주사기를 꺼내어 기억 소거 앰플을 주사했다.
미행자는 최소 반나절은 깨어나지 못할 터였다.
“날은 따뜻하니 얼어 죽을 일은 없겠지.”
일을 마친 심혁진은 곧장 골목을 벗어나 역으로 향했다.
* * *
“여기로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심혁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역세권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지저분한 골목에 자리한 허름한 건물.
임대도 다 나가지 않았을 듯한 모양새에 변변한 간판 하나 달려 있지 않았다.
제대로 찾아온 건가 싶어 국정원에서 받은 서류를 재차 확인했다.
“여기가 304호 맞는데.”
바깥에서 끙끙대봐야 시간만 허비할 따름.
심혁진은 직접 확인해 보고자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편함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304호의 것을 확인해 보니 족히 십여 개는 될 법한 우편물들이 화살처럼 꽂혀 있었다.
하나를 꺼내서 수신인을 확인하고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긴 맞네.”
CS 매니지먼트, 304호의 상호명이었다.
내친 김에 다른 것들도 살펴보니, 대다수가 빚 독촉장에 협박 편지도 여럿이었다.
우편함이 이 정도인데 직접 찾아오는 이들은 어떨까.
사무실에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었지만, 일단은 올라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한달음에 304호로 향한 심혁진은 정신을 집중했다.
‘어디 보자…….’
인지력 스탯이 S랭크에 이를 때 얻게 되는 패시브 지각 능력, 기감(氣感).
각각의 스킬엔 자체 레벨이 존재했는데, 심혁진의 기감 레벨은 70대에 육박했다.
일반적으로 기감 10레벨이면 날아오는 화살을 확인하고 낚아챌 수 있는 수준.
20레벨 기감 보유자는 총탄까지 캐치하는 게 가능했다.
하물며 기감 레벨이 70대에 이르는 심혁진이라면 말할 것도 없는 일.
닫힌 문 너머의 기척을 감지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누가 있다.’
‘젠장.’
임철수는 속으로 욕설을 뇌까렸다.
그가 있는 곳은 다섯 평 남짓한 크기의 자그만 방이었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탁자와 의자.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데서 환환 빛을 쪼이는 스탠드.
그 외엔 아무런 빛도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
전형적인 취조실의 전경이다 보니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나를 취조하겠다고? 자기네 목숨을 구해 준 것도 모르고?’
심혁진을 그냥 보내준 게 문제였다.
천하의 국정원이 쥐뿔도 없는 민간인의 협박을 이기지 못해 그냥 보내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철수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럼 어쩌라고? 그 자리에서 그 인간 가로막다 다 뒈졌어야 한다고?’
임철수가 본 심혁진은 진짜배기였다.
서류상의 기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임철수 앞에서 보여준 판단력과 지성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다.
이게 몰래 카메라가 아닌 이상, 그가 측정 불능 레벨의 헌터라는 건 주지의 사실.
그런 존재가 경고해 왔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지옥도였을 아케론 차원에서 홀로 생환한 사내가, 웃음기 하나 없는 태도로.
보내 주지 않으면 다 뒤집어엎을 거라고.
‘그런 마당에 날더러 뭘 어쩌라고?’
국가 정보원. 이름은 좋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원은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다.
민간 기업의 약진 및 친기업적 국가 정책이 거듭되면서, 차원 사업과 관련된 부서들의 영향력 역시 약화되었다.
국정원 또한 마찬가지.
이미 차원 관련 사업의 상당 부분이 민간 대기업들에 먹혀 버렸다.
최상위 헌터들은 돈을 좇아 고액 계약을 맺어댔다.
잘 버는 것들은 1년에 백억이 우스웠다.
또한 잘 버는 기업은 그 정도 금액을 계약금으로 팍팍 뿌려댈 수 있었다.
그런 마당에 기껏해야 노후 연금이나 떼어 주는 게 딜의 전부인 국가 기관에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런 판국에 분노한 심혁진을 되도 않는 병력만으로 막는다?
국가 유공자 대량 배출이 목적이 아닌 바에야 미친 짓에 불과했다.
그래서 임철수는 심혁진을 보내 줬다.
한데 저들은 생각이 달랐다.
심혁진이 과연 그 정도 레벨의 헌터이겠느냐는 것이었다.
‘멍청한 놈들.’
보이는 게 있어도 믿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걸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없다.
그저 자기네 철밥통 지키기에나 급급할 따름.
그것이 21세기 공무원의 현주소라는 데에 임철수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의 사내가 들어왔다.
국정원 소속 감찰원.
소속 부서가 다르다 보니 동료라는 느낌은 없었다.
한데 좀 분위기가 묘했다.
아무리 감찰이라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지나칠 정도로 무게를 잡는 게 느껴졌다.
‘새끼, 내 짬밥이 얼만데 겁주려고 수작질인지.’
그렇게 생각하던 임철수였으나, 잠시 후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임철수. 41세. 경기도 양주 출신. K대 졸업. 가족은 아내와 딸 두 명으로, 각각 중학생과 초등학생.”
“……뭐야, 당신. 지금 뭐하자는 수작이야.”
“위에서 특별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임철수 차장께서 반드시 지켜 주셔야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이 생략된 경고.
아니, 어조와 내용으로 보건대 이건 그냥 대놓고 하는 협박이었다.
대체 어느 정도 윗선에서 내려온 오더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
검은 양복의 사내가 임철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해하셨습니까?”
“완벽하게. 그러니 말해 주쇼.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요?”
“간단합니다. 오늘 일에 대해 함구하고, 그자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그자가 누군지는 물을 것도 없는 일.
임철수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검은 양복이 술술 설명을 했다.
“오늘 일은 해프닝으로 매듭지어질 겁니다. R랭크 에너지 반응은 기기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였고,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죠.”
“암만 그래도 데이터상 기록이 남을 텐데…….”
“그건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귀하는 그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
“더불어 그자에 대해서 어떠한 의문이나 호기심도 갖지 마십시오.”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면’이 생략된 말.
임철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호기심 해결에 대한 열망이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았다.
더군다나 혼자라면 모를까, 가족까지 걸고넘어진다면야.
“하라는 대로 얌전히 할 테니 그쯤 해두쇼. 내 안 그래도 말 잘 듣는 사람이니까.”
“똑똑한 사람이기도 하지. 우리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했으리라 봅니다.”
“물론이오.”
“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검은 양복이 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가도 좋다는 의미인가 싶어 일어나려던 임철수가 문득 든 생각에 말을 꺼냈다.
“설마 미행 같은 걸 붙이거나 하는 건 아니리라 믿겠소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잠깐. 내게 붙이는 거야 상관없지만 아내와 애들에게까진 그러지 마시오. 암만 중요한 일이라도 그렇게까지 하는 건…….”
“우리가 판단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가보시죠, 임철수 차장.”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축객령에 임철수는 속으로 분노를 삭였다.
‘그나저나… 그자가 진짜배기인 것은 확실한 모양이군.’
마른하늘에서 뚝 떨어진 측정 불가 레벨의 헌터.
임철수가 알기로 그 정도 급의 헌터는 세계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한국 헌터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니, 어쩌면 이미 벌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저 다들 그걸 모를 뿐.
* * *
심혁진은 일단 전철역부터 찾았다.
원래는 버스를 타려 했으나, 지구를 떠나 있는 동안 노선 체계가 완전히 바뀐 뒤였다.
시간을 조금 들이면 숙지할 수야 있을 터.
하지만 관뒀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게 많은데 버스 노선 가지고 골머리 싸매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지하철.
몇 개의 역과 노선이 추가되긴 했으나, 대체로 20년 전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기 있군.’
역을 찾은 심혁진이었지만 바로 들어가진 않았다.
우선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주변을 돌아다녔다.
족히 수년은 갇혀 있다가 풀려난 사람처럼, 내키는 대로 사서 먹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미행자가 곧장 따라 들어왔다.
그 순간 벼락처럼 달라붙는 신형!
스슥!
“……!”
심혁진이었다.
그가 상위 돌격 스킬인 온슬로트(Onslaught)를 사용한 것이었다.
오른 손아귀에 목을 붙들린 미행자는 변변한 반항 한 번 못하고서 벽으로 밀렸다.
꾸구국!
심혁진이 살짝 힘을 주니 미행자의 두 다리가 허공에 들렸다.
자연히 목이 졸리자 미행자가 파랗게 질려선 버둥거렸다.
두 다리로 심혁진을 때리고 두 팔로 목을 쥔 손을 떼어내고자 용을 썼으나 전부 무용지사.
“사, 살려……!”
“안 죽여. 그럴 가치도 없으니까.”
“……!”
“손 놓는다. 근데 시끄럽게 굴면 목 조르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거야. 알겠어?”
미행자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혁진이 손을 놓았다.
땅에 착지한 미행자는 엎드린 채로 밭은기침을 한참이나 토했다.
“허헉, 헉, 허억……!”
심혁진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였다.
물론 외관상 그렇다는 것이니, 실제 나이는 많아 봐야 서른 미만일 터였다.
심혁진은 팔짱을 낀 채 그의 호흡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그럭저럭 대화를 할 수 있을 듯하자 나직이 물었다.
“뭐냐, 너?”
젊은 사내, 미행자는 움찔하며 눈치를 살폈다.
심혁진은 피식 웃고서 말했다.
“좋네. 신중한 거. 근데 신중한 것도 지나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잘 알 거라고 본다.”
“그러니까 저는… 공무원입니다.”
“그건 알아. 국정원에서부터 쭉 미행해 온 거.”
미행자가 움찔했다.
설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냐는 표정.
심혁진으로선 실소만 나올 일이었다.
“너희 스나이퍼 애들 위치도 알았는데 네가 졸졸 따라오는 것 하나 몰랐을까.”
“그, 그런…….”
“내가 알고 싶은 건 누가 널 보냈냐는 거야. 임철수라고 했던가? 분위기상 그 양반이 보냈을 것 같진 않거든.”
“…….”
“이젠 네가 대답해야지. 지금 입 다물고 버티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란 걸 말해 주고 싶군.”
“배, 백남용 부장님께서…….”
“백남용?”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부장인 걸 보면 임철수보단 직급이 높은 모양.
20년 동안 직급 체계가 바뀐 게 아니라면 그러할 터였다.
한마디로 임철수와는 별개로 사람을 썼다는 뜻.
“그래서, 왜 내 뒤를 밟으라고 시켰는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면 알게 만들어줘야지. 이거 한두 방이면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먹을 쥐어 보이니 미행자의 얼굴이 한층 파래졌다.
“아, 아마도!”
“아마도?”
“선생님의 본거지를 확인한 후에 타격대를 보내 제압하려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 아, 나 말이냐?”
“예? 아, 예.”
미행자의 대답에 심혁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선생님 소리 들을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아니. 그게요. 그냥 존경의 표시로…….”
“존경은 무슨 얼어 죽을 존경.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존경을 하고 자빠져?”
“그, 그것이……!”
“됐으니까 자라.”
심혁진이 수도로 목덜미를 치자 미행자는 혀를 빼물고 혼절했다.
“흐흠, 여기 어디에 있었을 텐데.”
심혁진은 이차원 인벤토리를 뒤져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기억 소거 앰플.
주사를 한 방 놓으면 직전 24시간 동안의 기억이 싹 날아가는 물건이었다.
심혁진은 일회용 주사기를 꺼내어 기억 소거 앰플을 주사했다.
미행자는 최소 반나절은 깨어나지 못할 터였다.
“날은 따뜻하니 얼어 죽을 일은 없겠지.”
일을 마친 심혁진은 곧장 골목을 벗어나 역으로 향했다.
* * *
“여기로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심혁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역세권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지저분한 골목에 자리한 허름한 건물.
임대도 다 나가지 않았을 듯한 모양새에 변변한 간판 하나 달려 있지 않았다.
제대로 찾아온 건가 싶어 국정원에서 받은 서류를 재차 확인했다.
“여기가 304호 맞는데.”
바깥에서 끙끙대봐야 시간만 허비할 따름.
심혁진은 직접 확인해 보고자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편함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304호의 것을 확인해 보니 족히 십여 개는 될 법한 우편물들이 화살처럼 꽂혀 있었다.
하나를 꺼내서 수신인을 확인하고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긴 맞네.”
CS 매니지먼트, 304호의 상호명이었다.
내친 김에 다른 것들도 살펴보니, 대다수가 빚 독촉장에 협박 편지도 여럿이었다.
우편함이 이 정도인데 직접 찾아오는 이들은 어떨까.
사무실에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었지만, 일단은 올라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한달음에 304호로 향한 심혁진은 정신을 집중했다.
‘어디 보자…….’
인지력 스탯이 S랭크에 이를 때 얻게 되는 패시브 지각 능력, 기감(氣感).
각각의 스킬엔 자체 레벨이 존재했는데, 심혁진의 기감 레벨은 70대에 육박했다.
일반적으로 기감 10레벨이면 날아오는 화살을 확인하고 낚아챌 수 있는 수준.
20레벨 기감 보유자는 총탄까지 캐치하는 게 가능했다.
하물며 기감 레벨이 70대에 이르는 심혁진이라면 말할 것도 없는 일.
닫힌 문 너머의 기척을 감지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