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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매니지먼트(1)
제2장 매니지먼트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가?
생각해 보면 이만큼이나 현대 사회에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 없었다.
인류가 증기기관을 다루게 되기까지는 기원후로도 1800년이나 걸렸다.
한데 그 후로 200년이 채 걸리지 않아 전기를 지배하고 우주 진출까지 하게 됐다.
현대 사회의 발전 속도는 그만큼 무시무시한 것이다.
‘한데 이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전광판을 본 심혁진은 서점을 찾아 비치된 잡지와 서적들을 대강 들춰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가 떠나 있던 20년 동안 이 세상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요즘 가장 핫한 헌터 윤수한!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 패션 페스티벌의 호스트를 맡은 비결은?]
[탑클래스 헌터 커플, 이주신과 황혜린의 불화설 집중 취재.]
[요즘 가장 핫한 신인, B클래스 헌터 채수지의 화장 비결은? #요즘_대세#당신도_될_수_있다.]
“…….”
모든 곳에 헌터가 있었다.
패션 화보나 가십성 잡지, 가판대의 신문은 물론이고 지나가다 볼 수 있는 광고판과 입간판에도 그들이 있었다.
그냥 연예인을 헌터로 치환하여 보더라도 무리가 없을 수준.
심혁진이 알던 시절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멍하니 서 있으려니 특이한 게 눈에 들어왔다.
잡지 코너 앞에서 재잘거리고 있는 여학생들.
손에 들린 기기에서 재생되는 동영상을 얼굴을 맞대고서 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건 화질 한 번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고성능 영상 재생기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여학생이 갑자기 기기를 귓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어, 엄마? 아, 왜! 아, 알았어. 네. 네. 그럴게요.”
‘핸드폰이라고?’
심혁진은 움찔했다.
그가 살던 시기에도 핸드폰은 있었다.
다만 기본적인 통화나 문자만 할 수 있는 접이식 기기였지, 저렇게 넓대대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비슷한 것을 들고 다녔다.
대강 살펴보니 영상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인터넷이나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돌릴 수 있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색감.
기본 흑백에 좀 비싼 게 256색이던 그 시대의 핸드폰과 비교하면 가히 아티팩트급이었다.
새삼 느껴지는 격세지감에 심혁진은 침음했다.
‘20년이라.’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늙지 않았다는 점일까.
심혁진에게 걸려 있는 영구 버프 중 하나인 불로, 이터널 유스 덕분.
빌어먹을 아케론 차원이 그에게 준 몇 안 되는 선물이었다.
심혁진은 좀 더 돌아다니며 이 시대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하여 깨달은 게 있으니, 꽤나 많은 이들이 특정 영상에 심취해 있다는 점이었다.
서점 바깥의 빌딩에 옥외 스크린에서도 같은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몬스터 헌트.
마수 사냥 영상이었다.
[자, 이번 레이드는 펠바스 차원에서 벌어지는데요. 오늘은 특이하게도 두 길드가 동시에 공략에 들어갔죠?]
[예. ‘풍림화산’ 길드와 ‘천안 드래곤즈’ 길드가 그 주인공인데요. 지난 K방송국 인터뷰에서 두 곳의 길드장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이런 공략 경쟁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예, 저희로서는 멋진 이벤트를 만끽하게 되어 좋은 일이지요. 그럼 차원 맵을 보면서 설명을 이어가겠습니다.]
‘이벤트? 좋은 일?’
심혁진은 멍한 눈으로 영상을 응시했다.
그가 기억하는 마수와의 전쟁은 결코 이벤트도, 좋은 일도 아니었다.
아케론 차원에서의 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구에 있던 당시에도 마찬가지.
마수들의 무자비한 공습 앞에 인류는 존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한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마수도, 헌터도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심혁진은 일단 영상을 좀 더 지켜봤다.
펠바스 차원이란 곳은 소규모 차원이었다.
차원 전쟁의 개시와 함께 튀어나온 마수들의 차원은 기존의 물리적 관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학적 관점에서의 차원과는 달리, 그 규모는 한정되어 있었으며 각기 달랐다.
예컨대 심혁진이 진입했던 아케론 차원은 행성 규모.
지구의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용암 행성 전체가 하나의 차원 공간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인지라, 심혁진과 일행들이 곳곳을 누비며 마수들을 때려잡는 데에만 십여 년이 걸렸다.
반면 저 펠바스 차원은 기껏해야 동네 뒷동산 규모.
돌입하고서 좀 달리면 보스 몬스터에게 충분히 도달하고도 남을 지경.
그 동안 마주치게 될 잡졸들의 숫자 또한 세 자릿수에 불과했다.
마수들의 전투력 역시 그리 높진 않았다.
‘대충 B에서 A급 정도인가.’
굳이 미네르바를 호출해 물을 것도 없었다.
이쯤이야 눈대중만으로도 아는 일.
두 길드는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진형을 짜고 전투에 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심혁진의 눈에는 지루할 따름.
까놓고 말해서 수준이 낮았다.
한데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스크린과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기본.
별것 아닌 중간 보스를 잡았을 뿐인데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허.”
심혁진은 헛웃음을 뱉고선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20년 동안 차원 전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꼬르륵.
심혁진은 우뚝 멈췄다.
그러고 보니 족히 며칠은 굶은 상태.
아케론 차원에선 마수들의 살점을 주로 먹었었다.
육체 강화 각성 패시브 스킬, 운기토납(運氣吐納)을 습득한 덕에 음식 없이도 외부에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기도 했고.
마수들의 살점도 생각보다는 맛이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진짜 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배고픔보다도 맛에 대한 그리움에 미칠 지경이었다.
한 번 의식하니 절로 침이 고였다.
‘어디 보자.’
멀리 볼 것도 없었다.
바로 근처에 패스트푸드점이 떡하니 있었으니까.
M자를 늘려놓은 특유의 로고는 크게 바뀌지도 않았다.
심혁진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인테리어가 세련됐다는 게 가장 먼저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때깔이란 게 심혁진의 기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어쨌든 걸어가서 점원 앞에 섰다.
“여기 메뉴에 있는 걸 전부 시키고 싶은데요.”
“예?”
황당한 주문에 눈을 깜빡이는 여자 점원.
심혁진은 개의치 않고서 이차원 인벤토리를 뒤졌다.
화폐로 쓰일 만한 걸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혹시 여기, 아이템이나 아티팩트도 받아 줍니까?”
“예?”
“마수한테서 나온 물건들, 돈 대신 받아 주냐고요.”
“아… 그게요. 죄송합니다, 손님.”
“알겠습니다.”
심혁진은 일단 가게에서 나왔다.
마수 사냥의 기조가 바뀌었대도 환전소는 남아 있을 터.
아니, 오히려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된 만큼 더더욱 성행할 것이 분명했다.
과연 몇 블록 걷지 않고도 환전소를 찾을 수 있었다.
곧장 안으로 들어선 심혁진은 대기표를 뽑고는 차례를 기다렸다.
느긋하게 기다리자니 차례가 돌아왔다.
“환영합니다, 손님. 헌터 자격으로 오셨나요, 일반인 자격으로 오셨나요?”
“그야 당연히 헌…….”
말끝을 흐린 심혁진이 쓰게 웃었다.
그의 헌터 자격은 사망 처리와 함께 말소됐을 터.
설령 국정원 측에서 복구시켜 두었더라도 계속 헌터 노릇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일반인이라고 해두죠.”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름 경력이 있는 직원인지 더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일반인이신 경우엔 헌터 대비 추가 수수료가 20%가량 붙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 도난품이나 장물로 기록된 물건일 경우엔 추가 조사가 실시될 수 있습니다. 동의하시는지요?”
“예.”
“알겠습니다. 환전하실 물건을 올려 주십시오.”
심혁진은 대충 아무거나 꺼내서 내놓았다.
외관만 보자면 울퉁불퉁한 돌멩이.
하지만 그 실체는 아케론 차원의 중간 보스 중 하나에서 나온 심마석(Heart Stone)이었다.
싸구려는 아니지만 엄청난 보물 또한 아니었다.
그런 중간 보스가 족히 수천 마리나 바글거렸던 게 그 동네였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능숙하게 심마석을 챙기고 들어간 직원.
잠시 기다리자니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소, 손님? 죄송하지만… 대체 이 물건을 어디서 구하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왜요? 도난품이랍니까?”
“아, 아뇨.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템 랭크가…….”
“아마 AAA일 텐데요. 아닙니까?”
“예… 그, 그렇지요.”
냉방이 잘되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는 직원.
왜 저러나 싶어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말을 더듬거리며 설명을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가맹점의 현재 자금만으로는 이 물건을 소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있는 것만이라도 주시죠.”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상관없다고 대답하려던 심혁진은 잠시 멈칫했다.
서울, 그것도 번화가에 자리 잡은 환전소씩이나 되는 곳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어지간히 비싼 물건은 아니라는 뜻.
별 생각 없이 뿌렸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몰랐다.
“역시 안 되겠네요. 다른 물건을 환전하겠습니다.”
“아, 네…….”
심혁진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그리고 꺼낸 것은 B랭크의 장비형 아이템.
아케론 차원의 잡졸들이 지니고 다니는 보호구로, 수집품 삼아 챙겨둔 것이었다.
재차 물건을 감정하고 온 직원의 얼굴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빼돌리거나 값을 후려치지 않은 걸 보니 꽤나 정직하구나 싶었다.
“수수료와 세금을 제하고 난 금액 1,420만 1,230원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개인 계좌를 알려 주십시오.”
심혁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20년간 죽은 인간이었는데 계좌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표정만 보고 속내를 읽은 듯 직원이 덧붙였다.
“원하신다면 현금 지불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죠.”
돈 무더기라 해도 이차원 인벤토리에 담으면 그만.
나중에 정리하기는 귀찮겠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직원이 능숙하게 지폐 다발들을 가져왔다.
생각보다 양이 적은데다 색깔 또한 묘했다.
“왜 5천 원짜리만 가득하답니까?”
“어머, 손님. 5천 원권이 아니라 5만 원권이랍니다.”
농담인 줄 알고 살포시 웃는 직원.
지폐를 유심히 쳐다보니 과연 그 말이 옳았다.
지폐 자체의 크기도 미묘하게 작아진 게, 정말 시간이 흐르긴 했다는 게 실감되었다.
잠시 후.
1,400만 원을 인벤토리에 넣고 나머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심혁진이 다시금 패스트푸드점의 문을 열었다.
“여기 있는 메뉴 전부.”
* * *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소금 범벅인 감자튀김의 짠맛도, 탄산이 보글거리는 콜라의 톡 쏘는 맛도 너무나 황홀했다.
심혁진은 앉은 자리에서 족히 10㎏은 됨직한 음식들을 싹 먹어치웠다.
육체 강화 레벨이 일정 수준을 넘어 위장의 소화 능력까지 조절하게 된 덕택.
기분 좋은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자니 주변의 시선이 뒤늦게 느껴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저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것은 바깥.
‘일단 졸졸 뒤따라오는 쥐새끼부터 처리해야겠군.’
심혁진은 느긋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에 그 매니지먼트란 데를 찾아가봐야겠어.’
제2장 매니지먼트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가?
생각해 보면 이만큼이나 현대 사회에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 없었다.
인류가 증기기관을 다루게 되기까지는 기원후로도 1800년이나 걸렸다.
한데 그 후로 200년이 채 걸리지 않아 전기를 지배하고 우주 진출까지 하게 됐다.
현대 사회의 발전 속도는 그만큼 무시무시한 것이다.
‘한데 이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전광판을 본 심혁진은 서점을 찾아 비치된 잡지와 서적들을 대강 들춰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가 떠나 있던 20년 동안 이 세상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요즘 가장 핫한 헌터 윤수한!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 패션 페스티벌의 호스트를 맡은 비결은?]
[탑클래스 헌터 커플, 이주신과 황혜린의 불화설 집중 취재.]
[요즘 가장 핫한 신인, B클래스 헌터 채수지의 화장 비결은? #요즘_대세#당신도_될_수_있다.]
“…….”
모든 곳에 헌터가 있었다.
패션 화보나 가십성 잡지, 가판대의 신문은 물론이고 지나가다 볼 수 있는 광고판과 입간판에도 그들이 있었다.
그냥 연예인을 헌터로 치환하여 보더라도 무리가 없을 수준.
심혁진이 알던 시절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멍하니 서 있으려니 특이한 게 눈에 들어왔다.
잡지 코너 앞에서 재잘거리고 있는 여학생들.
손에 들린 기기에서 재생되는 동영상을 얼굴을 맞대고서 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건 화질 한 번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고성능 영상 재생기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여학생이 갑자기 기기를 귓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어, 엄마? 아, 왜! 아, 알았어. 네. 네. 그럴게요.”
‘핸드폰이라고?’
심혁진은 움찔했다.
그가 살던 시기에도 핸드폰은 있었다.
다만 기본적인 통화나 문자만 할 수 있는 접이식 기기였지, 저렇게 넓대대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비슷한 것을 들고 다녔다.
대강 살펴보니 영상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인터넷이나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돌릴 수 있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색감.
기본 흑백에 좀 비싼 게 256색이던 그 시대의 핸드폰과 비교하면 가히 아티팩트급이었다.
새삼 느껴지는 격세지감에 심혁진은 침음했다.
‘20년이라.’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늙지 않았다는 점일까.
심혁진에게 걸려 있는 영구 버프 중 하나인 불로, 이터널 유스 덕분.
빌어먹을 아케론 차원이 그에게 준 몇 안 되는 선물이었다.
심혁진은 좀 더 돌아다니며 이 시대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하여 깨달은 게 있으니, 꽤나 많은 이들이 특정 영상에 심취해 있다는 점이었다.
서점 바깥의 빌딩에 옥외 스크린에서도 같은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몬스터 헌트.
마수 사냥 영상이었다.
[자, 이번 레이드는 펠바스 차원에서 벌어지는데요. 오늘은 특이하게도 두 길드가 동시에 공략에 들어갔죠?]
[예. ‘풍림화산’ 길드와 ‘천안 드래곤즈’ 길드가 그 주인공인데요. 지난 K방송국 인터뷰에서 두 곳의 길드장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이런 공략 경쟁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예, 저희로서는 멋진 이벤트를 만끽하게 되어 좋은 일이지요. 그럼 차원 맵을 보면서 설명을 이어가겠습니다.]
‘이벤트? 좋은 일?’
심혁진은 멍한 눈으로 영상을 응시했다.
그가 기억하는 마수와의 전쟁은 결코 이벤트도, 좋은 일도 아니었다.
아케론 차원에서의 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구에 있던 당시에도 마찬가지.
마수들의 무자비한 공습 앞에 인류는 존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한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마수도, 헌터도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심혁진은 일단 영상을 좀 더 지켜봤다.
펠바스 차원이란 곳은 소규모 차원이었다.
차원 전쟁의 개시와 함께 튀어나온 마수들의 차원은 기존의 물리적 관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학적 관점에서의 차원과는 달리, 그 규모는 한정되어 있었으며 각기 달랐다.
예컨대 심혁진이 진입했던 아케론 차원은 행성 규모.
지구의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용암 행성 전체가 하나의 차원 공간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인지라, 심혁진과 일행들이 곳곳을 누비며 마수들을 때려잡는 데에만 십여 년이 걸렸다.
반면 저 펠바스 차원은 기껏해야 동네 뒷동산 규모.
돌입하고서 좀 달리면 보스 몬스터에게 충분히 도달하고도 남을 지경.
그 동안 마주치게 될 잡졸들의 숫자 또한 세 자릿수에 불과했다.
마수들의 전투력 역시 그리 높진 않았다.
‘대충 B에서 A급 정도인가.’
굳이 미네르바를 호출해 물을 것도 없었다.
이쯤이야 눈대중만으로도 아는 일.
두 길드는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진형을 짜고 전투에 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심혁진의 눈에는 지루할 따름.
까놓고 말해서 수준이 낮았다.
한데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스크린과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기본.
별것 아닌 중간 보스를 잡았을 뿐인데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허.”
심혁진은 헛웃음을 뱉고선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20년 동안 차원 전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꼬르륵.
심혁진은 우뚝 멈췄다.
그러고 보니 족히 며칠은 굶은 상태.
아케론 차원에선 마수들의 살점을 주로 먹었었다.
육체 강화 각성 패시브 스킬, 운기토납(運氣吐納)을 습득한 덕에 음식 없이도 외부에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기도 했고.
마수들의 살점도 생각보다는 맛이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진짜 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배고픔보다도 맛에 대한 그리움에 미칠 지경이었다.
한 번 의식하니 절로 침이 고였다.
‘어디 보자.’
멀리 볼 것도 없었다.
바로 근처에 패스트푸드점이 떡하니 있었으니까.
M자를 늘려놓은 특유의 로고는 크게 바뀌지도 않았다.
심혁진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인테리어가 세련됐다는 게 가장 먼저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때깔이란 게 심혁진의 기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어쨌든 걸어가서 점원 앞에 섰다.
“여기 메뉴에 있는 걸 전부 시키고 싶은데요.”
“예?”
황당한 주문에 눈을 깜빡이는 여자 점원.
심혁진은 개의치 않고서 이차원 인벤토리를 뒤졌다.
화폐로 쓰일 만한 걸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혹시 여기, 아이템이나 아티팩트도 받아 줍니까?”
“예?”
“마수한테서 나온 물건들, 돈 대신 받아 주냐고요.”
“아… 그게요. 죄송합니다, 손님.”
“알겠습니다.”
심혁진은 일단 가게에서 나왔다.
마수 사냥의 기조가 바뀌었대도 환전소는 남아 있을 터.
아니, 오히려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된 만큼 더더욱 성행할 것이 분명했다.
과연 몇 블록 걷지 않고도 환전소를 찾을 수 있었다.
곧장 안으로 들어선 심혁진은 대기표를 뽑고는 차례를 기다렸다.
느긋하게 기다리자니 차례가 돌아왔다.
“환영합니다, 손님. 헌터 자격으로 오셨나요, 일반인 자격으로 오셨나요?”
“그야 당연히 헌…….”
말끝을 흐린 심혁진이 쓰게 웃었다.
그의 헌터 자격은 사망 처리와 함께 말소됐을 터.
설령 국정원 측에서 복구시켜 두었더라도 계속 헌터 노릇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일반인이라고 해두죠.”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름 경력이 있는 직원인지 더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일반인이신 경우엔 헌터 대비 추가 수수료가 20%가량 붙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 도난품이나 장물로 기록된 물건일 경우엔 추가 조사가 실시될 수 있습니다. 동의하시는지요?”
“예.”
“알겠습니다. 환전하실 물건을 올려 주십시오.”
심혁진은 대충 아무거나 꺼내서 내놓았다.
외관만 보자면 울퉁불퉁한 돌멩이.
하지만 그 실체는 아케론 차원의 중간 보스 중 하나에서 나온 심마석(Heart Stone)이었다.
싸구려는 아니지만 엄청난 보물 또한 아니었다.
그런 중간 보스가 족히 수천 마리나 바글거렸던 게 그 동네였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능숙하게 심마석을 챙기고 들어간 직원.
잠시 기다리자니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소, 손님? 죄송하지만… 대체 이 물건을 어디서 구하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왜요? 도난품이랍니까?”
“아, 아뇨.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템 랭크가…….”
“아마 AAA일 텐데요. 아닙니까?”
“예… 그, 그렇지요.”
냉방이 잘되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는 직원.
왜 저러나 싶어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말을 더듬거리며 설명을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가맹점의 현재 자금만으로는 이 물건을 소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있는 것만이라도 주시죠.”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상관없다고 대답하려던 심혁진은 잠시 멈칫했다.
서울, 그것도 번화가에 자리 잡은 환전소씩이나 되는 곳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어지간히 비싼 물건은 아니라는 뜻.
별 생각 없이 뿌렸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몰랐다.
“역시 안 되겠네요. 다른 물건을 환전하겠습니다.”
“아, 네…….”
심혁진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그리고 꺼낸 것은 B랭크의 장비형 아이템.
아케론 차원의 잡졸들이 지니고 다니는 보호구로, 수집품 삼아 챙겨둔 것이었다.
재차 물건을 감정하고 온 직원의 얼굴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빼돌리거나 값을 후려치지 않은 걸 보니 꽤나 정직하구나 싶었다.
“수수료와 세금을 제하고 난 금액 1,420만 1,230원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개인 계좌를 알려 주십시오.”
심혁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20년간 죽은 인간이었는데 계좌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표정만 보고 속내를 읽은 듯 직원이 덧붙였다.
“원하신다면 현금 지불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죠.”
돈 무더기라 해도 이차원 인벤토리에 담으면 그만.
나중에 정리하기는 귀찮겠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직원이 능숙하게 지폐 다발들을 가져왔다.
생각보다 양이 적은데다 색깔 또한 묘했다.
“왜 5천 원짜리만 가득하답니까?”
“어머, 손님. 5천 원권이 아니라 5만 원권이랍니다.”
농담인 줄 알고 살포시 웃는 직원.
지폐를 유심히 쳐다보니 과연 그 말이 옳았다.
지폐 자체의 크기도 미묘하게 작아진 게, 정말 시간이 흐르긴 했다는 게 실감되었다.
잠시 후.
1,400만 원을 인벤토리에 넣고 나머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심혁진이 다시금 패스트푸드점의 문을 열었다.
“여기 있는 메뉴 전부.”
* * *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소금 범벅인 감자튀김의 짠맛도, 탄산이 보글거리는 콜라의 톡 쏘는 맛도 너무나 황홀했다.
심혁진은 앉은 자리에서 족히 10㎏은 됨직한 음식들을 싹 먹어치웠다.
육체 강화 레벨이 일정 수준을 넘어 위장의 소화 능력까지 조절하게 된 덕택.
기분 좋은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자니 주변의 시선이 뒤늦게 느껴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저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것은 바깥.
‘일단 졸졸 뒤따라오는 쥐새끼부터 처리해야겠군.’
심혁진은 느긋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에 그 매니지먼트란 데를 찾아가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