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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귀환자(3)
안 그래도 꽤나 저기압인 심혁진이었다.
귀환한 직후부터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우선은 정부의 대처.
마수 반응은 없었다지만 무려 R랭크 포탈이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다.
근방의 헌터 부대를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이었던 것이다.
한데 나타난 것은 검은 차량 몇 대와 잘 났다고 정장만 빼 입은 요원 나부랭이들.
전투 요원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피라미였다.
에픽 레벨 마수급 인지력을 지닌 심혁진은 그들의 면면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안일하다니.’
애국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답답했다.
그날, 잠실대교 부근에 나타난 포탈은 그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가.
비록 19년이나 지났다지만 도저히 잊혀선 안 될 일이었다.
시민들은 잊더라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됐다.
한데 고작 이 정도의 대응이라니.
그로 인해 안 그래도 불만이 생긴 심혁진이었는데, 국정원의 대응은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임철수의 문제는 아니다.
차장이라고 해봤자 결국은 말단.
그가 뭘 어떻게 주도할 입장은 아니었다.
다만 보고가 올라갔을 텐데도 윗선에서 이제껏 반응이 없다는 게 황당했다.
이는 곧, 그만큼 철저히 심혁진과 동료들을 외면했단 의미였으니.
“그냥 죽은 사람 취급했다는 거군.”
“…….”
심혁진의 혼잣말에 임철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전 아무 것도 검출하지 못한 건 검사기 불량 때문이 아니었다.
심혁진에게 헌터 적성이 없기 때문도 아니었다.
‘검측 가능한 레벨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런 게 가능한 인물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니 절로 아찔해지는 일이었다.
‘망할 윗대가리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임철수의 생각이 옳다면 눈앞의 사내는 이런 데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당장 장관급이 튀어와 지문이 닳도록 받들어 줘야 정상.
표창을 끼얹고 훈장을 얹어 주어도 모자랄 영웅이었다.
삐빅.
때마침 임철수의 인이어 이어폰으로 통신이 들어왔다.
[그자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선배.]
‘고작 신원 확인이라고?’
윗선에서 내려온 전갈은 없었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름은 심혁진. 사망 당시 24세. 당시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던 헌터 길드 소속이었습니다. DNA 검사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사진과 생김새가 일치하는 걸로 봐선 일단 본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름을 알아냈다는 것 말고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다음 순간 임철수는 소름이 돋았다.
‘잠깐, 사망이라고?’
“그런 거군.”
심혁진이 중얼거렸다.
임철수는 다시 한 번 기겁했다.
“서, 설마…….”
“다 들었소. 들렸거든. 헌터에 대한 대비가 형편없군.”
그런 게 아니었다.
헌터들이 지닌 초인적인 능력에 대한 경계로써, 국정원 요원들 간의 통신엔 도청 방지용 특수 파장이 첨가되어 있었다.
거의 모든 헌터에게 통용되는 것으로, 이 통신을 도청할 능력자는 한국 내에도 몇 없었다.
‘한데……!’
임철수가 경악하는 사이.
심혁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잠깐만!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내가 여기에 더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소? 당신네에게 있어 난 이미 죽은 놈인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걸 겁니다. 그러니…….”
“그 망할 포탈이 열렸던 게 11월이었고, 그때 내 나이가 24살이었어.”
순간적으로 주변을 장악하는 강렬한 살기.
임철수는 목이 졸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
“사망 당시 24세라니, 우리가 투입되고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사망 처리를 했다는 거군. 하여간 대단한 나라야. 자기네 치부를 감출 때만은 처리 속도가 귀신같거든.”
“내가 알기로…….”
임철수는 변명하는 기분으로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이 투입된 직후 차원 포탈이 닫혀 버렸습니다. 지원을 보내지 못한 건 아마도 그 때문…….”
“닫힌 포탈을 열려는 시도도 안 했겠지. 괜히 열었다가 마수들이 또 다시 튀어나오면 안 되니까. 그 안에 투입된 우리야 이미 뒈졌을 테니까.”
“그, 그건…….”
“됐소. 일면식도 없는 당신한테 화풀이할 생각은 없으니.”
“…….”
“당신네에게 있어 나는 망령일 뿐. 그러니 떠나 줘야지. 남아 있어 봤자 땅값만 떨어질 텐데.”
임철수가 뭐라 하기도 전에 심혁진이 문을 열고 나왔다.
대기 중이던 요원들이 복도로 몰려나와서는 그를 가로막았다.
전원 전투 요원.
헌터로서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심혁진은 웃었다.
“막아 보려고?”
“…….”
요원들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대략 ‘죽으려고 환장했나?’ 하는 표정들.
그들에게 있어 심혁진은 아무 것도 아닌 인간.
스탯 검사기에서도 검출된 게 없었고, 제반 지식이 따로 있지도 않았다.
20년 가까이 된 잠실대교 사건과 눈앞의 사내를 연관 짓는다는 건 어려웠다.
“전부 무기 치워!”
급히 따라 나온 임철수가 소리쳤다.
그래도 요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새끼들! 말 안 들을 거냐!”
목이 째져라 호통을 치니 그제야 슬금슬금 장비를 치운다.
심혁진은 냉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냅두지 그러셨습니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
“선생,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따로 얘기를 좀 나누시죠.”
“됐습니다. 솔직히 이곳에 더 남아 있기 싫어서.”
“그럼 밖에서라도 얘기를 좀 하시죠.”
“됐고.”
심혁진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지난 일에 대한 포상은 기대도 안하니까 몇 가지 자료나 좀 갖다 주십쇼.”
“자료… 말입니까?”
“예. 찾을 사람이 있어서. 뭐, 걱정은 마십쇼. 국회의원이나 장관 나리 주소를 갖다 달라는 건 아니니.”
생각만 해도 아찔해질 일.
임철수는 아득한 기분을 애써 다잡았다.
“알고 싶은 게 누구의 정보입니까?”
* * *
임철수가 자료를 가져오는 동안 심혁진은 일단 몸을 씻었다.
범죄자나 감염자에게나 쓰일 법한 세척실 말고, 제대로 된 욕실에서.
옷도 제대로 된 것으로 갈아입었다.
캐주얼한 느낌의 세미 정장이었다.
사실 이차원에서 지낸 세월을 감안하면 그리 더러운 편은 아니었다.
간단한 마나 운용만으로도 몸에 묻은 불순물을 처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제대로 된 시설에서 따스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옷까지 제대로 갈아입으니, 그제야 돌아왔다는 실감이 좀 났다.
“여기 있습니다.”
건물 1층의 카페에서 기다리던 심혁진에게 임철수가 다가왔다.
봉투에 담긴 서류 뭉치가 탁자 위에 놓였다.
“원하신다면 데이터화된 파일을 PDA에 담아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됐습니다. 아직 최신식 기계를 다룰 엄두는 안 나서. 솔직히 PDA가 뭔지도 모르겠고.”
“하긴 그러시겠군요.”
쓴웃음을 짓는 임철수.
이윽고 그가 제 발 저리는 도둑마냥 말했다.
“혹 거슬리시는 부분이 있다면 제 선에서 처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됐습니다.”
심혁진의 시선이 창밖을 훑었다.
“어차피 쟤들이 총 갈겨 봐야 당신네가 더 큰일일 텐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건너편의 건물.
거리로 보자면 대략 500m쯤 되었다.
광학 미채(Camouflage) 장비까지 갖춰 입은 스나이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하도 요란하게 움직여대서.”
국정원 소속 스나이퍼는 고도로 훈련받은 최정예.
최고급 위장 장비까지 갖춘 은신의 대가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시장터 장사꾼인 양 취급하는 심혁진이었다.
임철수는 새삼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데 그자의 정보를 찾으시는 이유가 무언지…….”
“대강 알 것 아닙니까? 내가 누굴 찾는지.”
“그야 그렇지요.”
임철수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괜히 시치미를 떼 봤자 통할 리도 없었다.
“차상욱. 현재 나이 43세. 아케론 차원 공격대 소속 분대장인 차상구의 동생이지요.”
“잘 아시네. 근데 그 이상 파고들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류 봉투가 심혁진의 손아귀에서 번쩍 하고 사라졌다.
이차원 인벤토리라는 것을 실감한 임철수가 침음을 흘렸다.
헌터 전용 장비 중에서도 최고가를 다투는 물건이었던 까닭이다.
“그럼 이만.”
심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만하면 다시는 정부랑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 점 좀 윗분들한테 잘 얘기해 주십쇼.”
“그것이…….”
“예. 뭐, 그쪽이 말한다고 들을 양반들이 아니긴 하죠.”
심혁진은 피식 웃었다.
“미행이니 뭐니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붙여 봤자 소용도 없을 테고. 차상욱 쪽으로도 손을 쓸 생각일랑 버리십쇼.”
“그래서 말입니다만, 그 차상욱은 지금…….”
“더 할 얘기 없습니다. 웬만하면 다시 보지 맙시다.”
심혁진은 국정원 본청의 정문으로 태연히 걸어 나갔다.
사방에 배치된 요원들과 지휘 본부에서 앞 다투어 통신을 보내 왔다.
[선배, 제압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야, 임철수!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미행이라도 붙일까요?]
“……망할!”
임철수는 인이어 이어폰을 뽑아서 내팽개쳤다.
순간의 판단 착오로 국정원 본부가 폭삭 가라앉을 수도 있었다는 걸, 저들이 알 리 없었다.
* * *
“뭐지?”
30분 뒤, 청계산로 부근.
심혁진은 서류를 펼쳐놓고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명 수배 중이라고?”
차상구의 소원이었다.
미덥지 않은 동생 놈을 찾아서 자기 대신 형 노릇을 좀 해달라고.
그때까지도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사람 구실 시켜 달라고.
친구의 유일한 혈육.
거기에다 마지막 소원이었다.
고아 출신인 심혁진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지명 수배자라고?”
꽤나 눈에 밟히는 동생이란 얘기는 자주 들었다.
안 그래도 치기 어린 성격에다 험하게 자란 탓에, 어려서부터 사고도 많이 치고 불량한 것들과도 어울렸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예 지명 수배 중일 줄이야.
임철수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
일단은 상세한 내역부터 살폈다.
대체 무슨 일로 수배를 당한 걸까?
“……배임 및 횡령?”
기분이 묘했다.
살인이나 강도 같은 게 아니라서 안도해야 할까?
일단은 내역을 좀 더 살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었다.
“뭐야, 이거?”
제법 복잡한 법률 용어와 전문 용어가 난무했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본인이 세운 회사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하고는 잠적.
고소인은 차상욱 본인의 딸이었다.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구만.”
자기 회사 돈을 빼돌리고 튄 놈이나, 그걸 고소해서 수배까지 당하게 만든 딸이나.
보통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법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는지라, 심혁진이 아는 것과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하진 않았지만 일단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심혁진은 좀 더 서류를 읽어 내렸다.
그리고 그 회사의 실체를 깨달았다.
“길드 매니지먼트?”
심혁진으로선 생소한 이름.
길드가 뭔지는 알고 있다.
현대 사회, 그것도 차원 전쟁이 개시된 이래로 변형된 사전적 의미 또한.
한데 매니지먼트가 붙으니 생소한 느낌이었다.
“무슨 연예 기획사도 아니고.”
그렇게 중얼거리자마자 멈칫하는 심혁진.
고개를 들어 대로변을 보니, 빌딩의 옥외 스크린을 통해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유튜브 조회수 최단기간 2억 돌파! 떠오르는 신예 헌터 채수지의 사인회가 홍대 드림 마당에서 열립니다!]
“……얼씨구.”
안 그래도 꽤나 저기압인 심혁진이었다.
귀환한 직후부터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우선은 정부의 대처.
마수 반응은 없었다지만 무려 R랭크 포탈이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다.
근방의 헌터 부대를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이었던 것이다.
한데 나타난 것은 검은 차량 몇 대와 잘 났다고 정장만 빼 입은 요원 나부랭이들.
전투 요원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피라미였다.
에픽 레벨 마수급 인지력을 지닌 심혁진은 그들의 면면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안일하다니.’
애국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답답했다.
그날, 잠실대교 부근에 나타난 포탈은 그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가.
비록 19년이나 지났다지만 도저히 잊혀선 안 될 일이었다.
시민들은 잊더라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됐다.
한데 고작 이 정도의 대응이라니.
그로 인해 안 그래도 불만이 생긴 심혁진이었는데, 국정원의 대응은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임철수의 문제는 아니다.
차장이라고 해봤자 결국은 말단.
그가 뭘 어떻게 주도할 입장은 아니었다.
다만 보고가 올라갔을 텐데도 윗선에서 이제껏 반응이 없다는 게 황당했다.
이는 곧, 그만큼 철저히 심혁진과 동료들을 외면했단 의미였으니.
“그냥 죽은 사람 취급했다는 거군.”
“…….”
심혁진의 혼잣말에 임철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전 아무 것도 검출하지 못한 건 검사기 불량 때문이 아니었다.
심혁진에게 헌터 적성이 없기 때문도 아니었다.
‘검측 가능한 레벨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런 게 가능한 인물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니 절로 아찔해지는 일이었다.
‘망할 윗대가리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임철수의 생각이 옳다면 눈앞의 사내는 이런 데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당장 장관급이 튀어와 지문이 닳도록 받들어 줘야 정상.
표창을 끼얹고 훈장을 얹어 주어도 모자랄 영웅이었다.
삐빅.
때마침 임철수의 인이어 이어폰으로 통신이 들어왔다.
[그자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선배.]
‘고작 신원 확인이라고?’
윗선에서 내려온 전갈은 없었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름은 심혁진. 사망 당시 24세. 당시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던 헌터 길드 소속이었습니다. DNA 검사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사진과 생김새가 일치하는 걸로 봐선 일단 본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름을 알아냈다는 것 말고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다음 순간 임철수는 소름이 돋았다.
‘잠깐, 사망이라고?’
“그런 거군.”
심혁진이 중얼거렸다.
임철수는 다시 한 번 기겁했다.
“서, 설마…….”
“다 들었소. 들렸거든. 헌터에 대한 대비가 형편없군.”
그런 게 아니었다.
헌터들이 지닌 초인적인 능력에 대한 경계로써, 국정원 요원들 간의 통신엔 도청 방지용 특수 파장이 첨가되어 있었다.
거의 모든 헌터에게 통용되는 것으로, 이 통신을 도청할 능력자는 한국 내에도 몇 없었다.
‘한데……!’
임철수가 경악하는 사이.
심혁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잠깐만!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내가 여기에 더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소? 당신네에게 있어 난 이미 죽은 놈인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걸 겁니다. 그러니…….”
“그 망할 포탈이 열렸던 게 11월이었고, 그때 내 나이가 24살이었어.”
순간적으로 주변을 장악하는 강렬한 살기.
임철수는 목이 졸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
“사망 당시 24세라니, 우리가 투입되고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사망 처리를 했다는 거군. 하여간 대단한 나라야. 자기네 치부를 감출 때만은 처리 속도가 귀신같거든.”
“내가 알기로…….”
임철수는 변명하는 기분으로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이 투입된 직후 차원 포탈이 닫혀 버렸습니다. 지원을 보내지 못한 건 아마도 그 때문…….”
“닫힌 포탈을 열려는 시도도 안 했겠지. 괜히 열었다가 마수들이 또 다시 튀어나오면 안 되니까. 그 안에 투입된 우리야 이미 뒈졌을 테니까.”
“그, 그건…….”
“됐소. 일면식도 없는 당신한테 화풀이할 생각은 없으니.”
“…….”
“당신네에게 있어 나는 망령일 뿐. 그러니 떠나 줘야지. 남아 있어 봤자 땅값만 떨어질 텐데.”
임철수가 뭐라 하기도 전에 심혁진이 문을 열고 나왔다.
대기 중이던 요원들이 복도로 몰려나와서는 그를 가로막았다.
전원 전투 요원.
헌터로서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심혁진은 웃었다.
“막아 보려고?”
“…….”
요원들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대략 ‘죽으려고 환장했나?’ 하는 표정들.
그들에게 있어 심혁진은 아무 것도 아닌 인간.
스탯 검사기에서도 검출된 게 없었고, 제반 지식이 따로 있지도 않았다.
20년 가까이 된 잠실대교 사건과 눈앞의 사내를 연관 짓는다는 건 어려웠다.
“전부 무기 치워!”
급히 따라 나온 임철수가 소리쳤다.
그래도 요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새끼들! 말 안 들을 거냐!”
목이 째져라 호통을 치니 그제야 슬금슬금 장비를 치운다.
심혁진은 냉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냅두지 그러셨습니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
“선생,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따로 얘기를 좀 나누시죠.”
“됐습니다. 솔직히 이곳에 더 남아 있기 싫어서.”
“그럼 밖에서라도 얘기를 좀 하시죠.”
“됐고.”
심혁진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지난 일에 대한 포상은 기대도 안하니까 몇 가지 자료나 좀 갖다 주십쇼.”
“자료… 말입니까?”
“예. 찾을 사람이 있어서. 뭐, 걱정은 마십쇼. 국회의원이나 장관 나리 주소를 갖다 달라는 건 아니니.”
생각만 해도 아찔해질 일.
임철수는 아득한 기분을 애써 다잡았다.
“알고 싶은 게 누구의 정보입니까?”
* * *
임철수가 자료를 가져오는 동안 심혁진은 일단 몸을 씻었다.
범죄자나 감염자에게나 쓰일 법한 세척실 말고, 제대로 된 욕실에서.
옷도 제대로 된 것으로 갈아입었다.
캐주얼한 느낌의 세미 정장이었다.
사실 이차원에서 지낸 세월을 감안하면 그리 더러운 편은 아니었다.
간단한 마나 운용만으로도 몸에 묻은 불순물을 처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제대로 된 시설에서 따스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옷까지 제대로 갈아입으니, 그제야 돌아왔다는 실감이 좀 났다.
“여기 있습니다.”
건물 1층의 카페에서 기다리던 심혁진에게 임철수가 다가왔다.
봉투에 담긴 서류 뭉치가 탁자 위에 놓였다.
“원하신다면 데이터화된 파일을 PDA에 담아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됐습니다. 아직 최신식 기계를 다룰 엄두는 안 나서. 솔직히 PDA가 뭔지도 모르겠고.”
“하긴 그러시겠군요.”
쓴웃음을 짓는 임철수.
이윽고 그가 제 발 저리는 도둑마냥 말했다.
“혹 거슬리시는 부분이 있다면 제 선에서 처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됐습니다.”
심혁진의 시선이 창밖을 훑었다.
“어차피 쟤들이 총 갈겨 봐야 당신네가 더 큰일일 텐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건너편의 건물.
거리로 보자면 대략 500m쯤 되었다.
광학 미채(Camouflage) 장비까지 갖춰 입은 스나이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하도 요란하게 움직여대서.”
국정원 소속 스나이퍼는 고도로 훈련받은 최정예.
최고급 위장 장비까지 갖춘 은신의 대가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시장터 장사꾼인 양 취급하는 심혁진이었다.
임철수는 새삼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데 그자의 정보를 찾으시는 이유가 무언지…….”
“대강 알 것 아닙니까? 내가 누굴 찾는지.”
“그야 그렇지요.”
임철수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괜히 시치미를 떼 봤자 통할 리도 없었다.
“차상욱. 현재 나이 43세. 아케론 차원 공격대 소속 분대장인 차상구의 동생이지요.”
“잘 아시네. 근데 그 이상 파고들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류 봉투가 심혁진의 손아귀에서 번쩍 하고 사라졌다.
이차원 인벤토리라는 것을 실감한 임철수가 침음을 흘렸다.
헌터 전용 장비 중에서도 최고가를 다투는 물건이었던 까닭이다.
“그럼 이만.”
심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만하면 다시는 정부랑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 점 좀 윗분들한테 잘 얘기해 주십쇼.”
“그것이…….”
“예. 뭐, 그쪽이 말한다고 들을 양반들이 아니긴 하죠.”
심혁진은 피식 웃었다.
“미행이니 뭐니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붙여 봤자 소용도 없을 테고. 차상욱 쪽으로도 손을 쓸 생각일랑 버리십쇼.”
“그래서 말입니다만, 그 차상욱은 지금…….”
“더 할 얘기 없습니다. 웬만하면 다시 보지 맙시다.”
심혁진은 국정원 본청의 정문으로 태연히 걸어 나갔다.
사방에 배치된 요원들과 지휘 본부에서 앞 다투어 통신을 보내 왔다.
[선배, 제압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야, 임철수!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미행이라도 붙일까요?]
“……망할!”
임철수는 인이어 이어폰을 뽑아서 내팽개쳤다.
순간의 판단 착오로 국정원 본부가 폭삭 가라앉을 수도 있었다는 걸, 저들이 알 리 없었다.
* * *
“뭐지?”
30분 뒤, 청계산로 부근.
심혁진은 서류를 펼쳐놓고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명 수배 중이라고?”
차상구의 소원이었다.
미덥지 않은 동생 놈을 찾아서 자기 대신 형 노릇을 좀 해달라고.
그때까지도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사람 구실 시켜 달라고.
친구의 유일한 혈육.
거기에다 마지막 소원이었다.
고아 출신인 심혁진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지명 수배자라고?”
꽤나 눈에 밟히는 동생이란 얘기는 자주 들었다.
안 그래도 치기 어린 성격에다 험하게 자란 탓에, 어려서부터 사고도 많이 치고 불량한 것들과도 어울렸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예 지명 수배 중일 줄이야.
임철수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
일단은 상세한 내역부터 살폈다.
대체 무슨 일로 수배를 당한 걸까?
“……배임 및 횡령?”
기분이 묘했다.
살인이나 강도 같은 게 아니라서 안도해야 할까?
일단은 내역을 좀 더 살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었다.
“뭐야, 이거?”
제법 복잡한 법률 용어와 전문 용어가 난무했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본인이 세운 회사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하고는 잠적.
고소인은 차상욱 본인의 딸이었다.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구만.”
자기 회사 돈을 빼돌리고 튄 놈이나, 그걸 고소해서 수배까지 당하게 만든 딸이나.
보통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법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는지라, 심혁진이 아는 것과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하진 않았지만 일단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심혁진은 좀 더 서류를 읽어 내렸다.
그리고 그 회사의 실체를 깨달았다.
“길드 매니지먼트?”
심혁진으로선 생소한 이름.
길드가 뭔지는 알고 있다.
현대 사회, 그것도 차원 전쟁이 개시된 이래로 변형된 사전적 의미 또한.
한데 매니지먼트가 붙으니 생소한 느낌이었다.
“무슨 연예 기획사도 아니고.”
그렇게 중얼거리자마자 멈칫하는 심혁진.
고개를 들어 대로변을 보니, 빌딩의 옥외 스크린을 통해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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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