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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귀환자(2)



2020년 대한민국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특수관리부에 비상이 걸렸다.
“금일 15시 25분 13초경을 기점으로 R랭크 초차원 에너지 반응이 30초간 관측되었습니다.”
“R랭크? 지금 잘못 말한 거 아니지?”
“분명합니다. 디멘션 옵저버(Dimension Observer) 전원이 R랭크 에너지 반응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포탈인가?”
“그렇습니다.”
“망할.”
특수관리부 소속 차장인 임철수는 볼펜을 잘근거렸다.
R랭크 에너지 반응이라니.
최소 근 5년간은 일어난 적이 없었고, 마지막으로 일어났을 땐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가 증발했다.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은 오지 중에서도 오지에서 나타났기 때문.
한데 이번엔 서울이란다.
가만히 서있는데도 눈앞이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대체 어떤 종류의 마수인데?”
“마수가 아닙니다.”
“아니라고?”
“예. 사람입니다.”
“사람?”
안도감과 함께 의문이 찾아왔다.
아시아에 R랭크 차원문을 열 수 있는 능력자가 있던가?
“일단… 애들 싹 풀어서 관측 지점으로 보내. 지원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전국 랭킹 5위권 내의 길드들에 협조 요청 공문 보내고.”
“이미 보내 두었습니다.”
“뭐야?”
“그게 FM이라서요.”
“……잘났다, 새끼야.”
임철수는 짓이겨진 볼펜을 부하 직원의 뒤통수에 던지고는 재킷을 챙겼다.
“어디 가십니까, 차장님?”
“사람이라며, 지구인이라며. 이차원에서 왔다며. 그럼 적은 아니니 만나라도 봐야지.”
“어딘지는 알고 가십니까?”
“……어딘데?”
“잠실대교 부근입니다.”
“잠깐. 한강 한복판이라고?”
“예. 일단 포탈의 반응 자체는 한강 한복판에서 나타났습니다.”
“알았다.”
임철수는 더 이상 듣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두었다.
어차피 그런 거야 FM 잘 지키는 부하 직원이 할 터였다.
“한데 잠수대교 부근이라고?”
복도를 내달리며 임철수는 표정을 굳혔다.
“그곳이라면 예전에…….”

* * *

촤아아아!
포탈을 넘자마자 심혁진을 맞은 것은 차가운 물살.
하지만 몸을 적시지는 않았다.
무의식중에 펼쳐놓은 사이킥 배리어(Psychic Barrier)에 막힌 것이다.
심혁진은 몸을 띄워 허공으로 향했다.
널찍한 너비의 새파란 강물과 이를 가로지르는 대교가 보였다.
“잠실대교…….”
오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강 한복판에 생겨난 차원 게이트.
그곳으로부터 쏟아져 나온 지옥의 마수들.
마수들이 발하는 열기로 인해 강물이 증발하고, 서울 한복판이 불바다가 되었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택한 것은 특수 전력.
차원 헌터였다.
당시는 그야말로 헌터의 태동기.
재래식 전력인 기갑 부대와 육군 병력이 헌터 및 이능력자들로 대체되어 가던 시기였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정부도 헌터들도 어수룩했다.
일단은 사람들을 구하자고, 저 개자식들을 쳐 죽이고 보자고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심혁진 또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
심혁진은 몸을 날려 한강 둔치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강 건너를 보니 절로 입이 벌어졌다.
“하.”
당시엔 드문드문 있었던 고층 빌딩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마수와 불바다의 흔적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척 봐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다는 게 느껴졌다.
“대체 얼마나…….”
망연히 중얼거리려니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강 둔치는 공원화가 되어 있었다.
멀리로는 수영장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당장 심혁진의 주변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
조깅하는 이들과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이들.
그들 대다수가 심혁진을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아.”
왜 그럴까 생각하던 심혁진이 쓰게 웃었다.
몸에서 풍기는 악취도 악취거니와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선은 자리부터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헌터로서의 버릇이 남아 있다 보니, 입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상태창.”

[심혁진 님의 상태창을 활성화합니다.]

심혁진은 자잘한 스탯들은 건너뛰었다.
“레이드 보상 확인.”

[레이드 보스, 염마신왕 아포칼립시온의 전리품을 확인합니다.]

이윽고 심혁진의 눈앞에 짤막한 목록이 떠올랐다.
심혁진이 보유한 이차원 인벤토리(Inventory)에 저장된 물품 중 새로이 갱신된 전리품들이었다.

====================
미확인 상태의 크리스탈
미확인 상태의 목걸이
아케론 차원의 월드 소울(World Soul)
====================

아포칼립시온이 소멸하는 순간 그 소유권이 심혁진에게로 옮겨진 물건들.
크리스탈과 목걸이의 경우엔 정밀한 확인이 필요했다.
“흐음.”
크리스탈은 차원 헌터에게 유용한 여러 능력을 지닌 소모성 아이템이었다.
간단히는 상처 회복에서부터 크게는 스탯 상승과 스킬 부여에 이르기까지.
아직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R랭크 보스에게서 나온 크리스탈인 만큼 그 보너스 능력은 어마어마할 터였다.
목걸이 역시 최소 SS랭크 이상의 장비품일 터.
담겨 있는 능력에 따라 능히 천문학적인 가격이 매겨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월드 소울.
각 차원의 주인들에게만 허락된 것으로, 쉽게 말해 해당 차원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표식이었다.
한마디로 아케론 차원이 심혁진의 것이 된 셈.
앞서 붕괴된 것은 아포칼립시온이 입맛대로 구현한 공간이었고, 심혁진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바꾸는 게 가능했다.
지금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심혁진은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려니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도 울렸다.
이윽고 시커멓게 선팅을 한 차량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거기서 정장 차림의 요원들이 쏟아져 나와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포위망을 펼쳤다.
심혁진은 그 과정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딱히 긴장감이 들진 않았다.
그저 평화롭다는 생각만 들 뿐.
좋은 말로 사람들을 구슬리며 조악하게 스크럼이나 짜는 모습이라니… 저 얼마나 태평하기 짝이 없느냔 말이다.
일단은 기다려 보았다.
직급이 높아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주춤주춤 다가왔다.
“국가정보원 소속 임철수라고 합니다. 음, 일단 함께 좀 가주시겠습니까?”
심혁진은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포탈 반응이 아마도 R랭크였을 텐데, 아닙니까?”
“예? 어, 음, 맞습니다.”
“근데 이게 전부입니까?”
임철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아니, 그것이… 마수 반응은 없었다고…….”
한숨을 불러일으키는 한 마디.
아무리 차원 포탈이 전조 하나 없이 나타났다지만 이건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내가 싹 다 불살라 버릴 생각이었으면 어쩔 거였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상대는 말단 요원.
차장이라고 해봤자 뭐 얼마나 대단한 권력이 있겠는가.
말씨름을 해봐야 입만 아플 것이다.
“가죠. 가서 얘기합시다.”
심혁진의 말에 임철수는 안도했다.
“그러시죠. 그 전에 한 가지 절차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간단한 확인 절차입니다.”
임철수의 뒤로 길쭉한 기계 장치를 쥔 요원이 다가섰다.
스탯 검사기임을 간파한 심혁진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소용없을걸.’
마스터 오브 디스가이즈, 위장의 대가.
심혁진이 보유한 3대 영구 버프 중 하나로, 검색 및 탐지 스킬에 대한 면역력을 부여하는 능력이었다.
물론 그 면역이란 게 완벽하진 않았다.
다만 심혁진의 인지력보다 낮은 수준이라면 얄짤없었다.
이깟 장난감이 통할 리 만무했다.
“어?”
심혁진을 살펴본 요원이 멍한 소리를 냈다.
“뭔데 그래?”
“차장님, 그게 말입니다.”
검사기를 확인한 임철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심혁진은 그가 어떻게 나오나 느긋하게 지켜봤다.
그래도 머저리는 아닌지, 임철수는 예의를 잃지 않은 태도로 말했다.
“일단 가시죠.”

* * *

심혁진은 시커먼 밴에 동승하여 국정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위압적이면서도 세련된 구조의 건물이 그를 맞았다.
심혁진은 지하로 안내되었다.
척 봐도 연구동이다 싶은 공간.
방사능 지대에서나 쓰일 법한 세척실이 심혁진을 맞았다.
“안 씻을 겁니다.”
심혁진이 딱 잘라 말하자 임철수는 난감해 했다.
“이게 필수 절차인지라 꼭 해주셨음 하는데…….”
“독이나 방사능에 노출된 적도 없고 질환도 딱히 없습니다. 환자 취급받기 싫으니 넘어가죠.”
“……그럽시다.”
심혁진은 딱 봐도 취조실인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것도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 우선은 귀하가 넘어온 포탈 말입니다만…….”
임철수가 운을 떼려니 요원 하나가 서류를 들고 들어섰다.
서류를 확인한 임철수가 휘둥그레졌다.
“2001년 11월 13일 화요일…….”
“잠실대교 부근에 생성된 이차원 포탈, 아케론 차원으로의 포탈이었죠.”
심혁진이 받아치자 임철수가 꿀꺽 침을 삼켰다.
“아케론 차원…….”
“정부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 판단했고, 거점 타격을 위해 정예 헌터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소위 자살 특공대란 거였죠.”
서류상의 설명과 대부분 일치하는 내용.
심혁진이 그 특공대원의 일원이었음은 물어볼 필요도 없어 보였다.
심혁진은 의자에 상체를 기대며 말했다.
“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다 얘기했습니다. 이제 그쪽과 이 나라 차례입니다.”
“예……?”
“지금, 몇 년도입니까?”
“……2020년입니다만.”
심혁진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근 20년.
10년을 훌쩍 넘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실로 기나긴 시간이었다.
“그 기간 동안 나와 내 동료들은 아케론 차원에서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니 묻지요. 대한민국 정부는 지원 병력을 파견했습니까? 파견하려는 시도는 있었습니까?”
“그, 그것은…….”
임철수의 말문이 막혔다.
잠실대교 이차원 공습 사건.
그렇게 알려져 있는 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상세한 사정을 아는 이 또한 많지 않았다.
그저 많은 사상자가 있었고, 어찌어찌 정부에 의해 봉합됐다는 정도만 알 뿐.
다들 사후 처리야 어련히 알아서 했겠거니 생각했다.
차장급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장직인 임철수가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알 법한 사람을 불러 주시죠.”
“알 법한 사람……?”
“차관, 장관, 뭐가 됐든 급이 되는 공무원이 있을 것 아닙니까.”
평소라면 코웃음부터 나올 이야기.
하지만 지금의 임철수로선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일단은 상부에 보고를 올릴 겁니다. 선생의 요구 사항도 같이 전달하지요. 그 다음엔 위에서도 답변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기다려라?”
“예. 일단은 그러는 게…….”
“싫다면?”
“예?”
“싫다면 어쩔 거냐고.”
심혁진은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물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