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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귀환자(1)
프롤로그
2000년 1월 1일.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기점으로 차원 전쟁이 시작됐다.
세상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이트들.
다원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차원들이 연결되었다.
그러한 격변의 여파로 세상의 물리 법칙이 변하고, 특수 체질의 능력자들이 등장했다.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마수와 이종족들.
이차원의 강대한 존재들은 삽시간에 지구 곳곳을 초토화했고, 각국 정부는 그로기 상태에서 가까스로 반격의 여지를 마련했다.
격변의 소산물인 차원 헌터.
그들을 필두로 반격이 시작됐고, 그것이 곧 차원 전쟁의 서막이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1장 귀환자
[R랭크 레전드리 몬스터의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1200초 후 강림합니다.]
배틀 보조 시스템 ‘미네르바’의 알림을 들으며 심혁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곧 놈과 맞닥뜨린다.
심연급(Abyss Level)차원, 아케론의 지배자.
아포칼립시온.
R랭크란 건 현존 최강급이란 뜻.
레전드리란 수식의 의미야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그런 놈을 궁지까지 몰아넣었다.
심혁진이 포함된 코리안 헌팅 스쿼드의 성과였다.
물론 화룡점정, 마지막 방점을 찍기 전까진 기뻐하기엔 일렀다.
“우리, 여기에 파견된 지 얼마나 됐지?”
“모른다. 네놈 꼬락서니를 보자니 더더욱.”
퉁명스런 분대장, 차상구의 대답이었다.
“뭐 이딴 게 다 있는지. 누군 운빨로 불로불사 스킬 먹고, 누군 뼈 빠지게 고생만 하고 그대로 삭았으니.”
친구의 말에 심혁진은 상태창을 열었다.
====================
[프로필(Profile)]
이름(Name): 심혁진 (男)
클래스(Class): SS랭크 사이킥 마스터(Psychic Master)
====================
우선적으로 보이는 명칭들.
그 아래로 상세한 스탯 및 수치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스탯의 분류는 1차적으로 힘과 지능, 민첩성 같은 것들.
이를 파고들면 세부적으로는 근력과 지구력, 지력과 지혜 등으로 나뉜다.
심혁진은 상태창을 끝까지 내렸다.
밑바닥까지 내리니 차상구가 말한 것이 보였다.
====================
[영구 버프]
불로(Eternal Youth)
만독불침(Immune from Poison)
위장의 대가(Master of Disguise)
====================
“그러게 막타를 잘 쳤어야지. 그리고 불로이긴 해도 불사는 아니라니까.”
“그게 더 부럽다는 거, 알고는 있냐?”
차상구가 작게 물으며 분대원들을 훑었다.
분대원이라고 해봐야 이제는 상하관계가 무의미해진 뒤다.
십여 년을 함께 뺑이치고 구르다 보니 가족보다 끈끈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남은 수는 이제 두 사람을 포함해 넷뿐.
“…….”
차상구의 말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케론은 용암과 유황 연기만 가득한 차원.
숨 쉬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법한 곳이었다.
이곳에 덩그러니 팽개쳐진 그들이었다.
십여 년의 기간 동안 마수들과 사투를 벌여 왔다.
끼니는 이종족과 마수들의 고기로 때우고, 수면은 암혈과 동굴에서 취했다.
놀이? 여가?
사냥이 놀이였고 학살이 여가였다.
원래의 성격과 성향을 떠나 그렇게 살아야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그게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라도 지원이 오리라 믿으며.
허튼 바람이었다.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분대장.”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심혁진은 핀잔을 주었다.
“저 새끼 잡고 나면 보상이 아주 박 터질 거야. 레전드리에 R랭크씩이나 되는 놈이니 역대 최고 수준이겠지. 거기에 귀환 보상도 포함되어 있을 거다.”
“만약에 없으면?”
망할 놈. 분대장이란 놈이 애들 앞에서.
속으로만 중얼거린 심혁진이 침착하게 말했다.
“구석구석 들쑤시며 뺑이 쳐 봐야지. 별 수 있냐? 여기서 개죽음 당할 순 없잖아.”
차상구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이내 구김살 없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긴, 결혼도 못해 보고 요런 데서 나자빠질 수야 없지!”
“그래.”
바로 그거지, 이놈아.
심혁진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귀환하기만 하면 우린 영웅이 되는 거야. 너 좋다는 여자들도 줄을 설 거다. 뭐, 연령대야 좀 높겠지만.”
“친구란 놈이 말하는 거 보소. 너는 젊은 오빠다 그거지?”
“누가 오십쯤 처먹은 아재 아니랄까 봐. 젊은 오빠가 뭐냐, 젊은 오빠가.”
“그럼 뭐라 하리? 영계? 애새끼?”
[강림 예정 시간이 앞당겨집니다.]
미네르바의 음성이 둘 사이로 파고들었다.
심혁진은 장난기를 지웠다.
“상우야, 버프 준비해. 진욱이는 소모템 다시 점검해 보고.”
“예, 형.”
“알겠습니다.”
나머지 두 분대원, 윤상우와 김진욱이 대답했다.
외관상 심혁진보다 최소 열댓 살은 연상.
그래도 알맹이는 착하고 성실한 동생들이었다.
‘우리가 죽더라도 저 녀석들만은 살려 보내야지.’
사회생활을 하다가 공격대에 지원한 둘과는 달리, 녀석들은 군에 입대했다가 헌터 소질에 눈을 뜸으로서 차출되었다.
안 그래도 서러운 군바리 생활을 하다 온 건데, 이런 곳에서 십여 년을 썩기까지 했다.
저 둘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코끝이 시릴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스킬이랑 오라를 점검해 봐. 이번에 제대로 때려잡고 집으로 돌아가자.”
“예!”
“예엡!”
심혁진의 말에 두 막내들이 대답했다.
이윽고 네 사람의 앞으로 홀로그램 상태창이 나타났다.
배틀 보조 시스템인 미네르바.
각성한 헌터에게 딸려 오는 부산물로써, 마법적인 능력치 산술 시스템이었다.
“버프 걸겠습니다.”
“오케이.”
윤상우는 버퍼(Buffer) 계열 클래스인 배틀 바드(Battle Bard).
그가 음률을 흥얼거리자 일행의 몸 주변을 다색의 빛기둥이 감쌌다.
크루세이더(Crusader) 클래스의 김진욱은 자기 몸뚱이만 한 방패를 바닥에 꽂고서 점검했다.
외관만 보자면 초대형 솥뚜껑처럼 생겼지만, 그 실체는 무려 에픽 레벨의 하이퍼 실드.
비단 김진욱뿐만 아니라 파티원 전원이 최강급의 장비를 두르고 있었다.
이곳 아케론은 심연급 차원.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럴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그들이 투입됐던 당시엔 최고 수준의 차원이었다.
당시 서울에 모인 헌터들 중에서도 최정예가 투입되었던 곳.
그중 살아남은 것이 이들 넷이니, 그 전투력이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맞닥뜨릴 적이 얼마나 강대한지 알고 있었기에.
“혁진아.”
아스트랄 아처(Astral Acher)인 차상구가 활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전에 말한 거 기억나지? 만약에 말이다.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말이지.”
“개새끼야.”
심혁진이 한껏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딴 소리 다시는 하지 말랬지.”
“그래도 말이야. 네가 우리들 중에는.”
“닥치고 집중이나 해. 놈이 곧 온다.”
쿠궁.
쿠구구구.
진동하기 시작하는 아케론 차원.
유황 특유의 뇌를 태울 듯한 독한 냄새가 한층 강해졌다.
곳곳에서 화산들이 터져 나가고, 대지는 마구 갈라져 꿀렁꿀렁 용암을 토해냈다.
“진욱아, 앞으로. 날 믿고 전진해라.”
“예.”
탱커인 김진욱이 전방의 평지를 향해 걸어갔다.
심혁진은 반쯤 해진 가죽 장갑을 손에 끼웠다.
손등 위치에 마법진이 그려진 물건으로 파티 유일의 SSS랭크 글로브였다.
파직! 파지지직!
하늘에 깔린 시커먼 가스 구름 사이로 뇌전이 작렬했다.
그 아래의 공간이 밟힌 양철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공간 왜곡.
최상위 마수 강림의 전조였다.
[R랭크 레전더리 몬스터, 타이틀 염마신왕(炎魔神王), 아포칼립시온이 강림합니다.]
“가자고, 다들.”
심혁진은 쓰게 웃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싸움이 될 테니.”
* * *
“…….”
심혁진은 눈을 떴다.
흠뻑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그러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진 방패.
화염창에 꿰뚫리던 김진욱.
그 이후로는 심혁진이 탱커 역할을 했던 것이다.
“크으으!”
기억을 더듬던 심혁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놈의 발에 짓이겨지던 윤상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왼팔이 날아가면서까지 시위를 당기던 차상구도.
그리고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심혁진은 시선을 내렸다.
최후의 기력을 모조리 짜내어 일격을 가하던 게 떠올랐다.
지금 보니 SSS급 글로브는 갈가리 찢긴 뒤.
온몸이 쑤시는 걸 보면 죽진 않은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가까스로 떠올렸다.
혼절하기 전, 산산이 소멸해 버리던 아포칼립시온의 모습을.
그들은 마침내 아케론 차원의 주인을 쓰러트린 것이다.
“……혁진아.”
“……!”
번뜩 고개를 든 심혁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렵잖게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차상구였다.
“상구야…….”
“살아있었구나. 그럴 줄 알았지. 하여간 네 녀석 운빨은 따를 수 없다니까.”
“뭔 소리야. 너도 살…….”
살아있지 않느냐고 물으려던 심혁진이 이를 악물었다.
앞서 당한 건 왼팔뿐만이 아니었다.
차상구는 하반신 전체를 잃은 상태였다.
“이리 와. 내 말을 들어. 시간이 없다.”
“상구야.”
“어서.”
“잠깐 기다려. 상우한테 회복 크리스탈이 남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죽은 윤상우의 시체를 찾기만 하면…….
“상우가 어떻게 죽었는지 봤잖아. 소모템이 멀쩡히 남아 있다는 건 불가능해.”
“그딴 약한 소리 말고 기다려 보라니까.”
“혁진아, 친구로서의 마지막 부탁이다.”
저주와도 같은 한마디였다.
심혁진은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쥐었다.
“말해. 듣고 있다.”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하지?”
도저히 못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
“돌아가게 되면… 내 동생, 잘 좀 부탁할게. 도저히 미덥지 못한 놈이야. 나 아니면 혈육도 하나 없고.”
미련한 놈.
그딴 것 말고 다른 것 좀 부탁해 보라는 말이 목구멍 끝에 걸렸다.
곧 죽게 될 차상구에게 무슨 소원이 있을까 싶었다.
그저 살고 싶을 터인데.
“상구야.”
미안하다고 말하려는데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야, 심혁진.”
차상구가 씩 웃었다.
이제 핏기는 완전히 사라진 뒤.
지금껏 숨을 유지하는 게 기적이었다.
“너는 부디 우리 몫까지…….”
* * *
차상구의 시신은 유품만 남긴 채 화장했다.
나머지 둘의 시신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쿠쿵. 쿠구구구.
아케론 차원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차원의 주인이 죽음으로써 공간을 유지하던 마력 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우우웅.
아포칼립시온이 있던 위치에 차원 포탈이 생성되었다.
그들이 작전에 투입되던 날 보았던 포탈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
심혁진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포탈 너머를 향해 발을 디뎠다.
20년 만에 대한민국 서울로 귀환하는 순간이었다.
프롤로그
2000년 1월 1일.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기점으로 차원 전쟁이 시작됐다.
세상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이트들.
다원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차원들이 연결되었다.
그러한 격변의 여파로 세상의 물리 법칙이 변하고, 특수 체질의 능력자들이 등장했다.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마수와 이종족들.
이차원의 강대한 존재들은 삽시간에 지구 곳곳을 초토화했고, 각국 정부는 그로기 상태에서 가까스로 반격의 여지를 마련했다.
격변의 소산물인 차원 헌터.
그들을 필두로 반격이 시작됐고, 그것이 곧 차원 전쟁의 서막이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1장 귀환자
[R랭크 레전드리 몬스터의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1200초 후 강림합니다.]
배틀 보조 시스템 ‘미네르바’의 알림을 들으며 심혁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곧 놈과 맞닥뜨린다.
심연급(Abyss Level)차원, 아케론의 지배자.
아포칼립시온.
R랭크란 건 현존 최강급이란 뜻.
레전드리란 수식의 의미야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그런 놈을 궁지까지 몰아넣었다.
심혁진이 포함된 코리안 헌팅 스쿼드의 성과였다.
물론 화룡점정, 마지막 방점을 찍기 전까진 기뻐하기엔 일렀다.
“우리, 여기에 파견된 지 얼마나 됐지?”
“모른다. 네놈 꼬락서니를 보자니 더더욱.”
퉁명스런 분대장, 차상구의 대답이었다.
“뭐 이딴 게 다 있는지. 누군 운빨로 불로불사 스킬 먹고, 누군 뼈 빠지게 고생만 하고 그대로 삭았으니.”
친구의 말에 심혁진은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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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Profile)]
이름(Name): 심혁진 (男)
클래스(Class): SS랭크 사이킥 마스터(Psychic Master)
====================
우선적으로 보이는 명칭들.
그 아래로 상세한 스탯 및 수치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스탯의 분류는 1차적으로 힘과 지능, 민첩성 같은 것들.
이를 파고들면 세부적으로는 근력과 지구력, 지력과 지혜 등으로 나뉜다.
심혁진은 상태창을 끝까지 내렸다.
밑바닥까지 내리니 차상구가 말한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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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버프]
불로(Eternal Youth)
만독불침(Immune from Poison)
위장의 대가(Master of Disg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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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막타를 잘 쳤어야지. 그리고 불로이긴 해도 불사는 아니라니까.”
“그게 더 부럽다는 거, 알고는 있냐?”
차상구가 작게 물으며 분대원들을 훑었다.
분대원이라고 해봐야 이제는 상하관계가 무의미해진 뒤다.
십여 년을 함께 뺑이치고 구르다 보니 가족보다 끈끈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남은 수는 이제 두 사람을 포함해 넷뿐.
“…….”
차상구의 말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케론은 용암과 유황 연기만 가득한 차원.
숨 쉬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법한 곳이었다.
이곳에 덩그러니 팽개쳐진 그들이었다.
십여 년의 기간 동안 마수들과 사투를 벌여 왔다.
끼니는 이종족과 마수들의 고기로 때우고, 수면은 암혈과 동굴에서 취했다.
놀이? 여가?
사냥이 놀이였고 학살이 여가였다.
원래의 성격과 성향을 떠나 그렇게 살아야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그게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라도 지원이 오리라 믿으며.
허튼 바람이었다.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분대장.”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심혁진은 핀잔을 주었다.
“저 새끼 잡고 나면 보상이 아주 박 터질 거야. 레전드리에 R랭크씩이나 되는 놈이니 역대 최고 수준이겠지. 거기에 귀환 보상도 포함되어 있을 거다.”
“만약에 없으면?”
망할 놈. 분대장이란 놈이 애들 앞에서.
속으로만 중얼거린 심혁진이 침착하게 말했다.
“구석구석 들쑤시며 뺑이 쳐 봐야지. 별 수 있냐? 여기서 개죽음 당할 순 없잖아.”
차상구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이내 구김살 없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긴, 결혼도 못해 보고 요런 데서 나자빠질 수야 없지!”
“그래.”
바로 그거지, 이놈아.
심혁진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귀환하기만 하면 우린 영웅이 되는 거야. 너 좋다는 여자들도 줄을 설 거다. 뭐, 연령대야 좀 높겠지만.”
“친구란 놈이 말하는 거 보소. 너는 젊은 오빠다 그거지?”
“누가 오십쯤 처먹은 아재 아니랄까 봐. 젊은 오빠가 뭐냐, 젊은 오빠가.”
“그럼 뭐라 하리? 영계? 애새끼?”
[강림 예정 시간이 앞당겨집니다.]
미네르바의 음성이 둘 사이로 파고들었다.
심혁진은 장난기를 지웠다.
“상우야, 버프 준비해. 진욱이는 소모템 다시 점검해 보고.”
“예, 형.”
“알겠습니다.”
나머지 두 분대원, 윤상우와 김진욱이 대답했다.
외관상 심혁진보다 최소 열댓 살은 연상.
그래도 알맹이는 착하고 성실한 동생들이었다.
‘우리가 죽더라도 저 녀석들만은 살려 보내야지.’
사회생활을 하다가 공격대에 지원한 둘과는 달리, 녀석들은 군에 입대했다가 헌터 소질에 눈을 뜸으로서 차출되었다.
안 그래도 서러운 군바리 생활을 하다 온 건데, 이런 곳에서 십여 년을 썩기까지 했다.
저 둘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코끝이 시릴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스킬이랑 오라를 점검해 봐. 이번에 제대로 때려잡고 집으로 돌아가자.”
“예!”
“예엡!”
심혁진의 말에 두 막내들이 대답했다.
이윽고 네 사람의 앞으로 홀로그램 상태창이 나타났다.
배틀 보조 시스템인 미네르바.
각성한 헌터에게 딸려 오는 부산물로써, 마법적인 능력치 산술 시스템이었다.
“버프 걸겠습니다.”
“오케이.”
윤상우는 버퍼(Buffer) 계열 클래스인 배틀 바드(Battle Bard).
그가 음률을 흥얼거리자 일행의 몸 주변을 다색의 빛기둥이 감쌌다.
크루세이더(Crusader) 클래스의 김진욱은 자기 몸뚱이만 한 방패를 바닥에 꽂고서 점검했다.
외관만 보자면 초대형 솥뚜껑처럼 생겼지만, 그 실체는 무려 에픽 레벨의 하이퍼 실드.
비단 김진욱뿐만 아니라 파티원 전원이 최강급의 장비를 두르고 있었다.
이곳 아케론은 심연급 차원.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럴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그들이 투입됐던 당시엔 최고 수준의 차원이었다.
당시 서울에 모인 헌터들 중에서도 최정예가 투입되었던 곳.
그중 살아남은 것이 이들 넷이니, 그 전투력이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맞닥뜨릴 적이 얼마나 강대한지 알고 있었기에.
“혁진아.”
아스트랄 아처(Astral Acher)인 차상구가 활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전에 말한 거 기억나지? 만약에 말이다.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말이지.”
“개새끼야.”
심혁진이 한껏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딴 소리 다시는 하지 말랬지.”
“그래도 말이야. 네가 우리들 중에는.”
“닥치고 집중이나 해. 놈이 곧 온다.”
쿠궁.
쿠구구구.
진동하기 시작하는 아케론 차원.
유황 특유의 뇌를 태울 듯한 독한 냄새가 한층 강해졌다.
곳곳에서 화산들이 터져 나가고, 대지는 마구 갈라져 꿀렁꿀렁 용암을 토해냈다.
“진욱아, 앞으로. 날 믿고 전진해라.”
“예.”
탱커인 김진욱이 전방의 평지를 향해 걸어갔다.
심혁진은 반쯤 해진 가죽 장갑을 손에 끼웠다.
손등 위치에 마법진이 그려진 물건으로 파티 유일의 SSS랭크 글로브였다.
파직! 파지지직!
하늘에 깔린 시커먼 가스 구름 사이로 뇌전이 작렬했다.
그 아래의 공간이 밟힌 양철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공간 왜곡.
최상위 마수 강림의 전조였다.
[R랭크 레전더리 몬스터, 타이틀 염마신왕(炎魔神王), 아포칼립시온이 강림합니다.]
“가자고, 다들.”
심혁진은 쓰게 웃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싸움이 될 테니.”
* * *
“…….”
심혁진은 눈을 떴다.
흠뻑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그러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진 방패.
화염창에 꿰뚫리던 김진욱.
그 이후로는 심혁진이 탱커 역할을 했던 것이다.
“크으으!”
기억을 더듬던 심혁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놈의 발에 짓이겨지던 윤상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왼팔이 날아가면서까지 시위를 당기던 차상구도.
그리고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심혁진은 시선을 내렸다.
최후의 기력을 모조리 짜내어 일격을 가하던 게 떠올랐다.
지금 보니 SSS급 글로브는 갈가리 찢긴 뒤.
온몸이 쑤시는 걸 보면 죽진 않은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가까스로 떠올렸다.
혼절하기 전, 산산이 소멸해 버리던 아포칼립시온의 모습을.
그들은 마침내 아케론 차원의 주인을 쓰러트린 것이다.
“……혁진아.”
“……!”
번뜩 고개를 든 심혁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렵잖게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차상구였다.
“상구야…….”
“살아있었구나. 그럴 줄 알았지. 하여간 네 녀석 운빨은 따를 수 없다니까.”
“뭔 소리야. 너도 살…….”
살아있지 않느냐고 물으려던 심혁진이 이를 악물었다.
앞서 당한 건 왼팔뿐만이 아니었다.
차상구는 하반신 전체를 잃은 상태였다.
“이리 와. 내 말을 들어. 시간이 없다.”
“상구야.”
“어서.”
“잠깐 기다려. 상우한테 회복 크리스탈이 남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죽은 윤상우의 시체를 찾기만 하면…….
“상우가 어떻게 죽었는지 봤잖아. 소모템이 멀쩡히 남아 있다는 건 불가능해.”
“그딴 약한 소리 말고 기다려 보라니까.”
“혁진아, 친구로서의 마지막 부탁이다.”
저주와도 같은 한마디였다.
심혁진은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쥐었다.
“말해. 듣고 있다.”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하지?”
도저히 못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
“돌아가게 되면… 내 동생, 잘 좀 부탁할게. 도저히 미덥지 못한 놈이야. 나 아니면 혈육도 하나 없고.”
미련한 놈.
그딴 것 말고 다른 것 좀 부탁해 보라는 말이 목구멍 끝에 걸렸다.
곧 죽게 될 차상구에게 무슨 소원이 있을까 싶었다.
그저 살고 싶을 터인데.
“상구야.”
미안하다고 말하려는데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야, 심혁진.”
차상구가 씩 웃었다.
이제 핏기는 완전히 사라진 뒤.
지금껏 숨을 유지하는 게 기적이었다.
“너는 부디 우리 몫까지…….”
* * *
차상구의 시신은 유품만 남긴 채 화장했다.
나머지 둘의 시신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쿠쿵. 쿠구구구.
아케론 차원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차원의 주인이 죽음으로써 공간을 유지하던 마력 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우우웅.
아포칼립시온이 있던 위치에 차원 포탈이 생성되었다.
그들이 작전에 투입되던 날 보았던 포탈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
심혁진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포탈 너머를 향해 발을 디뎠다.
20년 만에 대한민국 서울로 귀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