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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돈이 부족해…….”
통장 잔액을 확인한 여울은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최근 며칠간 헌터로 활동하며 여울의 통장에는 제법 많은 돈이 들어왔다.
백야로부터 받은 급여와 하유리에게서 받은 보수.
그리고 고블린의 코어 몇 개를 판매하는 것으로 제법 많은 돈이 쌓였다.
하지만 돈은 쌓이는 족족 병원비와 변제해야 할 빚 따위로 인해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갔다.
거기에 더해 은가람의 대학 등록금을 따로 저금해놓다 보니 어느덧 통장이 텅 비게 되었다.
그렇게 또 생활고가 찾아온 것이다.
“김진우. 그 빌어먹을 자식…….”
이럴 때마다 여울은 면식조차 없는 한 남자를 향해 분노를 불태웠다.
어찌 되었건 돈이 없는 지금 여울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던전에 들어가야겠어.”
돈이 없다면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헌터인 여울의 일은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다.
유니온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적당한 공략대를 검색하던 여울은 유난히 눈에 띄는 문구를 발견했다.
<이카로스 클랜에서 전투원으로 활동하실 용병 모집 중. 랭크무관.>
용병이란 임시로 길드나 클랜에 소속해 부족한 머릿수나 전투력을 보강해주는 헌터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금처럼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용병으로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더군다나 랭크무관이라지 않는가.
F랭크 헌터들이 뭉쳐 만든 클랜보다야 훨씬 안전했다.
하지만 서로 간에 신뢰가 없는 팀은 쉽게 붕괴하고, 쉽게 사건사고와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지…….”
표정을 일그러뜨린 여울은 돈과 위험을 저울질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당장 생활비가 없다면 생계가 위험하다.
여울은 곧장 마우스를 조작했다.
오래되어 1초마다 깜빡거리는 모니터 너머에 ‘신청 완료’라는 붉은 단어가 기록됐다.
* * *
이카로스 클랜은 남자 넷, 여자 하나로 구성된 소규모 클랜이었다.
리더인 김찬규가 D랭크 헌터이며 E랭크가 셋, F랭크가 하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F랭크 헌터의 역할은 서포터였다.
‘전투원은 총 네 명. 용병을 더해야 겨우 여섯 명인가. 여러모로 전투력이 빈약한 팀이네.’
이런 전력으로 용케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구나 싶었다.
“은여울 헌터님. 그리고 박성현 헌터님. 이번 공략 기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김찬규는 슬슬 은퇴를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만큼 흰머리가 희끗한 남자였다.
다만 곰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우람한 덩치가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
그는 여울의 손을 간단하게 덮어버릴 만큼 커다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왔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공략대장.”
“자, 잘 부탁드립니다앗!”
무덤덤한 여울의 인사는 곁에서 들려온 긴장감의 덩어리와도 같은 남성의 외침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박성현.
올해로 20세가 된 D랭크의 헌터다.
이번이 첫 던전 공략인 그는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모양인지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나이보다 상당히 어려 보이는 외모를 한 그가 과연 던전에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심히 염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여울은 그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어차피 길게 이어질 인연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박성현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스물둘이라고 하셨죠? 저는 스물입니다.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앞으로 형이라 부를게요.”
집결지인 카페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으니 박성현이 쪼르르 따라와 맞은편에 앉았다.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이미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이카로스 클랜원들 사이에 파고들 용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와중, 자신과 같은 외톨이 신세의 용병인 여울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접근한 것이리라.
하지만 딱히 박성현과 친해질 생각이 없었던 여울은 그 순진무구한 미소를 매몰차게 무시했다.
“싫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틀 동안이라도 우리 친하게 지내요. 저 D랭크 헌터지만 제법 괜찮은 스킬을 가지고 있거든요. 친해지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아닐 겁니다.”
“와! 타인의 스킬에 이렇게까지 흥미를 갖지 않는 헌터는 난생 처음 봤어요. 설마 다른 사람의 스킬을 간파하는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요?”
“…….”
“아하하! 그런 스킬이 존재할 리가 없겠죠. 농담이에요.”
참으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농담이었다.
이로써 여울은 박성현과 더욱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직감인지 찍기 실력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존재가 꺼려졌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실 거라면 제가 이동하겠습니다.”
“……보통 초면에 이 정도까지는 안 하지 않아요?”
하지만 여울이 매몰차게 거절하면 할수록 그는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오히려 더욱 끈덕지게 달라붙어 여울을 귀찮게 해댔다.
‘뭐지? 무시당하고 매도되는 걸 즐기는 변태인가?’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는 지금 장비점검을 해야 합니다. 만약 방해한다면.”
말끝을 흐린 여울이 서슬 퍼런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차마 뒤에 이어지는 말이 무엇이냐고 물을 용기가 없었던 박성현은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며 침묵했다.
비로소 원하던 고요함을 얻은 여울은 테이블 위에 장비를 늘어놓고 점검을 시작했다.
언제나 애용하고 있는 단검과 이번 공략을 위해 새로 맞춘 싸구려 방어복이었다.
헌데 그것들을 꺼내놓는 순간 봉해두었던 박성현의 입이 풀려났다.
“어어? 그 단검. 일선에서 제조한 멘탈이터잖아요! 게다가 그립부분에 박혀 있는 레드스톤. 1세대의 증거라고요!”
“뭐요?”
속사포로 쏟아지는 박성현의 말에 여울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박성현은 두 눈을 단검에 못 박아둔 채 콧김을 뿜어댔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검은색의 멘탈이터는 2세대에요. 일선에서 최강의 무기를 만들려다 실패한 20자루의 붉은 단검이 1세대고요. 이건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물건인데, 도대체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그야말로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여울은 그제야 자신의 단검을 보다 주의 깊게 살폈다.
마력회로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미묘한 붉은빛이 감돌고 있으며 손잡이 부분에는 투박한 적색의 돌이 박혀 있다.
하유리가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며 양도해 준 것이라 보급품 정도로 가치가 없는 물건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희소성이 언급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비싼 겁니까?”
“비싸죠. 성능은 2세대보다 떨어지지만 아까 말씀 드렸듯이 그 가치는 희소성에 있으니까요. 게다가 멘탈이터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는데…….”
엄청난 기세로 자신의 지식을 토해내던 박성현이 돌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머리와 눈알을 동시에 굴려대던 박성현이 다소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싶다면 저랑 친하게 지내주세요. 우선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도록 하죠.”
“됐습니다.”
어차피 단검에 대한 거라면 본래 주인인 하유리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엄청난 수다로 인해 사람을 귀찮게 굴 것이 분명한 박성현에게는 구태여 매달릴 필요가 없다.
단검을 회수한 여울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박성현이 엄청난 목소리로 떠들어댄 탓인지 커피숍 내의 시선이 전부 여울의 테이블로 향해 있었다.
특히 이카로스 클랜원들의 시선은 단검에 못 박힌 듯 꽂혀 있었다.
이카로스는 저랭크 헌터들이 모여 만든 소규모 클랜이다. 당연히 장비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1세대 멘탈이터라는 귀한 무기를 영접하게 되었으니 눈이 돌아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귀찮게 됐네.’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본 여울은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제 능력은 그것뿐만이 아니니까요.”
“…….”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으스대는 박성현을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이미 이카로스의 공략대원은 전부 모여 있다.
그들 역시 여울과 마찬가지로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라 하릴없이 커피만 들이켜고 있었다.
당장 던전에 들어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움직이지 않고 미적거리는 것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여울의 예상은 훌륭하게 들어맞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예상 외로 차가 막혀버려서요.”
한 명의 남자가 카페에 들어오며 김찬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날카로운 인상과 호리호리한 장신이 유난히 눈에 띄는 남자다.
김찬규는 여울과 박성현에게 그 남자를 소개했다.
“아하하, 사전에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가 이번에 공략할 대전 D-01의 최소인원 제한이 여덟 명이더군요. 그래서 급하게 한 분을 추가로 고용했습니다.”
“E랭크 헌터 정명운이라고 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 잘 해보죠.”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여울은 그와 악수를 나누며 별 생각 없이 요리사의 눈을 발동했다.
인간에게도 눈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익숙해질 겸 처음 접하는 각성자에게는 반드시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이 눈에 보였다.
‘호오, 이게 다 뭐라냐.’
여울의 입가에 초승달과 같이 길게 찢어진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를 타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울은 고개를 숙였다.
“정명운 씨, 진심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저야말로.”
무언가 불온한 것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
정명운은 의아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자, 이제 사람도 다 모였으니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이대로라면 던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날이 져버릴 것 같군요. 전원, 출정준비!”
김찬규의 우렁찬 외침이 한적한 카페에 넓고 크게 울렸다.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던 일반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찬규에게 꽂혀들었다.
그 속에서 김찬규는 상당히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의 이목을 즐기는 타입이군.’
그 모습을 본 여울은 작게 혀를 찼다.
이능을 가진 헌터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따금 이런 식으로 동경의 시선을 즐기는 헌터가 존재한다.
개인의 취향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지만 말려드는 것은 피하고 싶었던 여울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부터 대전 D-01을 공략한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손발이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말려드는 대사를 내뱉은 김찬규는 주변인들의 환성을 받으며 카페를 나섰다.
카페로부터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
차들이 오가지 않는 도로의 한복판에서 던전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섬뜩한 빛을 내며 나선을 그리고 있었다.
대전의 유일한 던전, 난이도 E의 대전 D-01이었다.
* * *
던전은 기본적으로 미궁의 형태를 띠고 있다.
기다란 복도가 미로처럼 꼬여 있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방들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채 헌터들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따금씩 개방된 형태를 가진 던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전 D-01은 그 희소한 케이스 중 하나였다.
“이런 형태의 던전도 있구나.”
난생처음 본 개방형 던전의 모습에 여울은 입을 벌린 채 연거푸 감탄했다.
검은색의 달이 걸린 낮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자라난 종유석들.
그리고 이파리 무성한 나무들이 바다처럼 깔려 있다.
그 신비로운 광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마저도 결국은 던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뀌익! 뀌익!]
멀리서 몬스터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서부터 나무줄기를 부숴가며 돌파해오는 몬스터 무리가 보였다.
유난히도 거대한 어금니를 가진, 멧돼지와 비슷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저것들은 대전 D-01의 마스코트 격인 놈으로, 브루탈 보어라는 개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법 여러 차례 이 던전을 공략한 것인지 정보를 나열하는 김찬규의 태도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그가 자신의 무기를 꺼내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투준비!”
“돈이 부족해…….”
통장 잔액을 확인한 여울은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최근 며칠간 헌터로 활동하며 여울의 통장에는 제법 많은 돈이 들어왔다.
백야로부터 받은 급여와 하유리에게서 받은 보수.
그리고 고블린의 코어 몇 개를 판매하는 것으로 제법 많은 돈이 쌓였다.
하지만 돈은 쌓이는 족족 병원비와 변제해야 할 빚 따위로 인해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갔다.
거기에 더해 은가람의 대학 등록금을 따로 저금해놓다 보니 어느덧 통장이 텅 비게 되었다.
그렇게 또 생활고가 찾아온 것이다.
“김진우. 그 빌어먹을 자식…….”
이럴 때마다 여울은 면식조차 없는 한 남자를 향해 분노를 불태웠다.
어찌 되었건 돈이 없는 지금 여울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던전에 들어가야겠어.”
돈이 없다면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헌터인 여울의 일은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다.
유니온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적당한 공략대를 검색하던 여울은 유난히 눈에 띄는 문구를 발견했다.
<이카로스 클랜에서 전투원으로 활동하실 용병 모집 중. 랭크무관.>
용병이란 임시로 길드나 클랜에 소속해 부족한 머릿수나 전투력을 보강해주는 헌터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금처럼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용병으로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더군다나 랭크무관이라지 않는가.
F랭크 헌터들이 뭉쳐 만든 클랜보다야 훨씬 안전했다.
하지만 서로 간에 신뢰가 없는 팀은 쉽게 붕괴하고, 쉽게 사건사고와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지…….”
표정을 일그러뜨린 여울은 돈과 위험을 저울질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당장 생활비가 없다면 생계가 위험하다.
여울은 곧장 마우스를 조작했다.
오래되어 1초마다 깜빡거리는 모니터 너머에 ‘신청 완료’라는 붉은 단어가 기록됐다.
* * *
이카로스 클랜은 남자 넷, 여자 하나로 구성된 소규모 클랜이었다.
리더인 김찬규가 D랭크 헌터이며 E랭크가 셋, F랭크가 하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F랭크 헌터의 역할은 서포터였다.
‘전투원은 총 네 명. 용병을 더해야 겨우 여섯 명인가. 여러모로 전투력이 빈약한 팀이네.’
이런 전력으로 용케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구나 싶었다.
“은여울 헌터님. 그리고 박성현 헌터님. 이번 공략 기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김찬규는 슬슬 은퇴를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만큼 흰머리가 희끗한 남자였다.
다만 곰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우람한 덩치가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
그는 여울의 손을 간단하게 덮어버릴 만큼 커다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왔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공략대장.”
“자, 잘 부탁드립니다앗!”
무덤덤한 여울의 인사는 곁에서 들려온 긴장감의 덩어리와도 같은 남성의 외침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박성현.
올해로 20세가 된 D랭크의 헌터다.
이번이 첫 던전 공략인 그는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모양인지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나이보다 상당히 어려 보이는 외모를 한 그가 과연 던전에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심히 염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여울은 그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어차피 길게 이어질 인연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박성현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스물둘이라고 하셨죠? 저는 스물입니다.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앞으로 형이라 부를게요.”
집결지인 카페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으니 박성현이 쪼르르 따라와 맞은편에 앉았다.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이미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이카로스 클랜원들 사이에 파고들 용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와중, 자신과 같은 외톨이 신세의 용병인 여울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접근한 것이리라.
하지만 딱히 박성현과 친해질 생각이 없었던 여울은 그 순진무구한 미소를 매몰차게 무시했다.
“싫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틀 동안이라도 우리 친하게 지내요. 저 D랭크 헌터지만 제법 괜찮은 스킬을 가지고 있거든요. 친해지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아닐 겁니다.”
“와! 타인의 스킬에 이렇게까지 흥미를 갖지 않는 헌터는 난생 처음 봤어요. 설마 다른 사람의 스킬을 간파하는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요?”
“…….”
“아하하! 그런 스킬이 존재할 리가 없겠죠. 농담이에요.”
참으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농담이었다.
이로써 여울은 박성현과 더욱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직감인지 찍기 실력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존재가 꺼려졌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실 거라면 제가 이동하겠습니다.”
“……보통 초면에 이 정도까지는 안 하지 않아요?”
하지만 여울이 매몰차게 거절하면 할수록 그는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오히려 더욱 끈덕지게 달라붙어 여울을 귀찮게 해댔다.
‘뭐지? 무시당하고 매도되는 걸 즐기는 변태인가?’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는 지금 장비점검을 해야 합니다. 만약 방해한다면.”
말끝을 흐린 여울이 서슬 퍼런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차마 뒤에 이어지는 말이 무엇이냐고 물을 용기가 없었던 박성현은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며 침묵했다.
비로소 원하던 고요함을 얻은 여울은 테이블 위에 장비를 늘어놓고 점검을 시작했다.
언제나 애용하고 있는 단검과 이번 공략을 위해 새로 맞춘 싸구려 방어복이었다.
헌데 그것들을 꺼내놓는 순간 봉해두었던 박성현의 입이 풀려났다.
“어어? 그 단검. 일선에서 제조한 멘탈이터잖아요! 게다가 그립부분에 박혀 있는 레드스톤. 1세대의 증거라고요!”
“뭐요?”
속사포로 쏟아지는 박성현의 말에 여울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박성현은 두 눈을 단검에 못 박아둔 채 콧김을 뿜어댔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검은색의 멘탈이터는 2세대에요. 일선에서 최강의 무기를 만들려다 실패한 20자루의 붉은 단검이 1세대고요. 이건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물건인데, 도대체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그야말로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여울은 그제야 자신의 단검을 보다 주의 깊게 살폈다.
마력회로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미묘한 붉은빛이 감돌고 있으며 손잡이 부분에는 투박한 적색의 돌이 박혀 있다.
하유리가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며 양도해 준 것이라 보급품 정도로 가치가 없는 물건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희소성이 언급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비싼 겁니까?”
“비싸죠. 성능은 2세대보다 떨어지지만 아까 말씀 드렸듯이 그 가치는 희소성에 있으니까요. 게다가 멘탈이터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는데…….”
엄청난 기세로 자신의 지식을 토해내던 박성현이 돌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머리와 눈알을 동시에 굴려대던 박성현이 다소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싶다면 저랑 친하게 지내주세요. 우선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도록 하죠.”
“됐습니다.”
어차피 단검에 대한 거라면 본래 주인인 하유리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엄청난 수다로 인해 사람을 귀찮게 굴 것이 분명한 박성현에게는 구태여 매달릴 필요가 없다.
단검을 회수한 여울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박성현이 엄청난 목소리로 떠들어댄 탓인지 커피숍 내의 시선이 전부 여울의 테이블로 향해 있었다.
특히 이카로스 클랜원들의 시선은 단검에 못 박힌 듯 꽂혀 있었다.
이카로스는 저랭크 헌터들이 모여 만든 소규모 클랜이다. 당연히 장비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1세대 멘탈이터라는 귀한 무기를 영접하게 되었으니 눈이 돌아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귀찮게 됐네.’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본 여울은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제 능력은 그것뿐만이 아니니까요.”
“…….”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으스대는 박성현을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이미 이카로스의 공략대원은 전부 모여 있다.
그들 역시 여울과 마찬가지로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라 하릴없이 커피만 들이켜고 있었다.
당장 던전에 들어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움직이지 않고 미적거리는 것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여울의 예상은 훌륭하게 들어맞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예상 외로 차가 막혀버려서요.”
한 명의 남자가 카페에 들어오며 김찬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날카로운 인상과 호리호리한 장신이 유난히 눈에 띄는 남자다.
김찬규는 여울과 박성현에게 그 남자를 소개했다.
“아하하, 사전에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가 이번에 공략할 대전 D-01의 최소인원 제한이 여덟 명이더군요. 그래서 급하게 한 분을 추가로 고용했습니다.”
“E랭크 헌터 정명운이라고 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 잘 해보죠.”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여울은 그와 악수를 나누며 별 생각 없이 요리사의 눈을 발동했다.
인간에게도 눈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익숙해질 겸 처음 접하는 각성자에게는 반드시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이 눈에 보였다.
‘호오, 이게 다 뭐라냐.’
여울의 입가에 초승달과 같이 길게 찢어진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를 타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울은 고개를 숙였다.
“정명운 씨, 진심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저야말로.”
무언가 불온한 것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
정명운은 의아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자, 이제 사람도 다 모였으니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이대로라면 던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날이 져버릴 것 같군요. 전원, 출정준비!”
김찬규의 우렁찬 외침이 한적한 카페에 넓고 크게 울렸다.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던 일반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찬규에게 꽂혀들었다.
그 속에서 김찬규는 상당히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의 이목을 즐기는 타입이군.’
그 모습을 본 여울은 작게 혀를 찼다.
이능을 가진 헌터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따금 이런 식으로 동경의 시선을 즐기는 헌터가 존재한다.
개인의 취향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지만 말려드는 것은 피하고 싶었던 여울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부터 대전 D-01을 공략한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손발이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말려드는 대사를 내뱉은 김찬규는 주변인들의 환성을 받으며 카페를 나섰다.
카페로부터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
차들이 오가지 않는 도로의 한복판에서 던전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섬뜩한 빛을 내며 나선을 그리고 있었다.
대전의 유일한 던전, 난이도 E의 대전 D-01이었다.
* * *
던전은 기본적으로 미궁의 형태를 띠고 있다.
기다란 복도가 미로처럼 꼬여 있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방들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채 헌터들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따금씩 개방된 형태를 가진 던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전 D-01은 그 희소한 케이스 중 하나였다.
“이런 형태의 던전도 있구나.”
난생처음 본 개방형 던전의 모습에 여울은 입을 벌린 채 연거푸 감탄했다.
검은색의 달이 걸린 낮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자라난 종유석들.
그리고 이파리 무성한 나무들이 바다처럼 깔려 있다.
그 신비로운 광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마저도 결국은 던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뀌익! 뀌익!]
멀리서 몬스터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서부터 나무줄기를 부숴가며 돌파해오는 몬스터 무리가 보였다.
유난히도 거대한 어금니를 가진, 멧돼지와 비슷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저것들은 대전 D-01의 마스코트 격인 놈으로, 브루탈 보어라는 개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법 여러 차례 이 던전을 공략한 것인지 정보를 나열하는 김찬규의 태도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그가 자신의 무기를 꺼내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투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