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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사실은 이번에 다양한 요리 소재를 섞어서 요리를 만들어볼까 했거든요. 아마 만두보다 마력 수치를 더 높여주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요리를 만드실 생각인데요?”
“글쎄요. 기왕이면 하유리 씨가 좋아하는 면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네요.”
벌써부터 요리를 하는 상상을 하던 여울의 입가에는 흥미로 뒤덮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반면 하유리는 그의 말에 조금 놀란 듯했다.
“제가 면 요리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나요?”
“했어요. 던전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은 여울의 말에 하유리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분명 인천 D-03에서 자신의 기호를 전하기는 했다.
그저 스치듯이 내뱉은 발언을 기억해주는 그의 세심함에 고마울 뿐이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아니요. 하유리 씨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음식을 구매해주는 손님이잖아요. 손님의 역할은 가만히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겁니다.”
“그래도…….”
“정 그렇다면 이따가 살짝만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때까지는 편히 쉬어주세요.”
머뭇거리는 그녀를 억지로 자리에 앉힌 여울은 부엌에 섰다.
‘메뉴는 라면……. 아니, 인스턴트로 때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으니 일본식 라멘을 만들어보자.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해.’
여울은 슬라임이 새로운 요리의 핵심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곧바로 차원 냉장고에서 슬라임을 꺼낸 여울은 조리를 시작했다.
점액질의 신체에 소금 간을 하고 가스 토치로 익히니 색이 변하며 밀가루 반죽과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예상대로야.”
서울 D-06에서 느꼈던 촉감 그대로다.
재료가 갖는 성질에 확신을 가진 여울의 손이 기존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식당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냄비를 준비한 여울은 보스 몬스터의 뼈를 썰어 넣고 온갖 채소들을 욱여넣었다.
국물의 기본이 되는 육수를 만들기 위함이다.
육수는 오래 끓여야 진한 맛이 우러나온다.
하지만 손님을 앉혀놓고 몇 시간씩 육수나 우려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여울은 그녀에게 손짓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여기 냄비에 스킬을 사용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구태여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하유리는 눈치만으로 여울이 원하는 것을 단번에 파악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백색으로 빛나고, 손끝에는 반딧불처럼 생긴 마력의 덩어리가 집중적으로 모여들었다.
“가속.”
스킬이 사용되자 그녀의 손끝에 모여 있던 순백의 덩어리들이 일제히 냄비를 휘감았다.
“시간 비율은 10:1이니 그 점에 유의해주세요. 마력을 거두는 것은 제 의지로 가능하니 말씀해주시고요.”
“감사합니다.”
그녀로부터 조력을 얻은 여울은 라면 위에 얹을 고명, 그리고 차슈의 준비를 서둘렀다.
그 다음에서야 반죽을 넓게 펴고 밀가루를 묻혀 곱게 접었다.
라멘에 사용하기 적당한 크기로 썰어낸 면발을 뜨거운 물에 익히자 제법 그럴싸한 면발이 탄생했다.
‘일단 모양새는 그럴싸하지만 맛은 어떨까.’
차원 메기의 경우엔 혀가 호화로움에 꼬여버릴 만큼 훌륭한 맛이었다.
반면 보스 몬스터인 처형자의 그림자는 지독한 단맛으로 인해 요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몬스터 요리의 맛은 먹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여울은 윤기가 흐르는 면발 하나를 집어 입으로 옮겼다.
‘수분기가 너무 많아.’
면발은 분명 쫄깃쫄깃하고 탱탱하다. 별다른 수타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다.
식감만큼은 최고의 식재료와 최고의 실력으로 뽑아낸 면발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한 점이 없다.
다만 수분기가 너무 많아서 씹으면 밀가루가 아니라 물맛이 강하게 입에 맴돌았다.
‘원재료에 수분이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불로 익히는 도중에 날아갔을 거야. 그렇다면 재료 자체에 흡수력이 높은 건가?’
가설을 세운 여울은 검증을 위해 새로운 면을 썰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육수가 완성되기를 기다린 후 그 육수를 이용해 면을 끓였다.
한 가닥을 건져 올려 입에 넣으니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새로운 맛의 세계가 보였다.
‘단순히 국물에 면을 적셔 먹는 것보다 국물의 맛을 더욱 쉽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어.’
다만 그만큼 면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식감이 뒤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찌 되었건 조건은 충족되었다.
여울은 완성된 육수에 추가적인 양념을 가했다.
보스 몬스터의 사골에서 우려낸 검은색의 육수에 붉은색이 덧입혀졌다.
면발은 전과 동일한 조리법으로 끓여냈으며, 체로 탈탈 털어 물기를 최대한 제거했다.
그것을 그릇에 담은 후 위에다가 숙주나물 등의 고명과 차슈를 얹었다.
마지막 장식은 삶은 달걀을 반으로 쪼갠 것이었다.
물론 단순한 삶은 달걀이 아니다. 서울 D-06에서 대량으로 공수한 고블린의 코어다.
노른자가 초록색이라 조금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 위로 육수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완성입니다.”
<몬스터 요리 완성. 슬라임으로 만든 라멘!>
=======================
[정보]
라멘 : 슬라임
슬라임의 신체에 다소의 변형을 일으켜 만든 면으로 끓인 라면.
기타 고명에 다수의 몬스터가 재료로 포함되어 보다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사용재료 : E-, B+, E+
요리기술 : E-
플레이팅 : E+
행운보정 : 없음
기타보정 : 추가재료 2
종합평가 : E+
=======================
완성된 요리의 등급은 상당히 저조했다.
하지만 이차원 요리의 묘미는 먹어보기 전까지 맛과 그 진정한 효능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요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성이 무엇인지, 얼마만큼의 마력을 상승시켜주는지는 먹어봐야만 알 수 있다.
“이건…….”
그릇 안을 확인한 하유리는 아연실색해졌다.
붉다.
붉어도 너무 붉다.
마치 시뻘건 마그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한 줄기 식은땀이 턱선으로 미끄럼틀 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생각했다.
‘이걸 먹으면 목구멍이 타들어가 죽고 말 거야. 나를 암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심지어 냄새만 맡아도 후각이 마비될 것만 같은 강렬함이다.
평범한 때였다면 이런 요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맛있어 보여.’
붉고 진한 국물에 탱탱한 면발. 색색의 채소와 숙주나물, 한 점의 돼지고기는 절로 식욕을 자극했다.
하유리는 미식을 좋아한다.
고집을 부려 던전에 동행시킬 요리사를 고용했을 정도다.
그렇기에 존재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라멘을 먹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할짝.
붉은 혀가 입술을 한 번 훑는 것으로 그녀의 폭력적이기까지 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하유리의 젓가락은 라면 속으로 파고들며 작품의 파괴를 주저하지 않았다.
들어 올린 젓가락에는 적당한 윤기를 발하는 면발과 용암처럼 붉은 빛깔을 입은 숙주나물이 붙들려 있었다.
“후우.”
조심스럽게 입김을 불어 뜨거움을 식힌다.
하지만 너무 식히면 라면의 맛이 떨어진다.
입안이 데지 않을 정도.
그 정확한 온도를 감으로 때려 맞춘 그녀는 망설임 없이 면발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룩!
하유리는 엄청난 기세로 면발을 입에 넣었다.
그 행위는 흡입이라 표현하는 것이 어울렸다.
물론 빨아올리는 면발에 묻은 국물이 사방팔방 튀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보조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런 소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식사방법에 우아함이나 고상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발생한 생생한 사운드가 일대를 지배했다.
후르릅!
“하아!”
그녀가 길게 숨을 토했다.
살짝 눈물을 머금은 그녀는 황급히 물을 찾았다.
알싸한 고통을 호소하는 혀를 찬물로 식혀주며 그녀는 여운을 음미했다.
‘매워. 하지만 생각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아. 그 속에 감춰진, 묘하게 뚜렷한 단맛을 찾아내는 즐거움까지 있어. 몬스터의 뼈로 국물을 우려냈기 때문인가?’
맵고 뜨거운 국물과 탱탱한 면발. 그리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일품인 숙주나물.
그 조합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런 하유리를 지켜보던 여울은 무심코 입맛을 다셨다.
‘행복해 보이네.’
전에도 그랬지만 하유리는 표정만으로 자신의 혀가 느끼는 모든 것을 전해주고 있었다.
식사에 열중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만든 요리가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맛있게 보였다.
“스읍! 하아… 매워.”
살짝 벌어진 입안에서 알싸한 고통을 호소하는 혀가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미간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으며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다.
손등으로 땀을 대충 닦아낸 그녀는 코를 훌쩍이면서도 다음 면발을 집어 들었다.
어느덧 그릇의 절반이 비워졌다.
그걸 아쉽게 바라보던 하유리가 그릇을 통째로 들더니 가장자리에 입을 대고 국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호쾌하게 열린 식도가 요동쳤다.
입가를 타고 흐른 국물이 빛을 반사하며 요염하게 빛났다.
“후아!”
내부를 불로 지지는 듯한 화끈한 매운맛이 그녀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맛있어.”
기름 묻은 입술을 붉은 혀가 훔친다.
입술은 초승달보다 더욱 매끄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이 표현하는 것은 행복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건…….”
국물에 절반이 잠겨 있는 돼지고기 고명을 집어 든 하유리가 눈을 빛냈다.
지독하게 단맛이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의 고기.
지금까지 대충 구워서 라면에 얹어주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경이로운 단맛을 잡아내기 위해 여울이 택한 방법은, 고기를 잘게 다지고 매운맛을 내는 채소와 조미료를 섞어 구워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기름지며 안쪽은 강한 단맛과 매운맛, 거기에 아삭아삭한 식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지그시 눈을 감은 그녀는 혀를 희롱하는 맛을 마음껏 즐겼다.
‘몬스터 주제에 맛있잖아.’
몬스터를 이용해 만든 요리는 끔찍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탁!
“잘 먹었습니다.”
그녀가 그릇을 내려놨다.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워낸 접시는 그녀가 느끼는 만족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미칠 듯 혀가 아렸지만 지금은 그 고통마저도 행복으로 다가왔다.
행복의 뒤를 잇는 만족감.
그녀의 미소에서 그 감정을 발견한 여울은 그녀 못지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준다.
요리사로서 그 이상의 즐거움은 없었다.
“만족하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결과는 어떤가요?”
“그야 맛있었어요. 여태까지 먹어본 라멘 중 최고라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그건 고맙네요. 하지만 제가 물은 건 마력 쪽입니다.”
“아!”
그제야 여울이 하고자 했던 말의 요지를 파악한 그녀가 황급히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녀의 능력 수치를 실시간으로 갱신하고 있는 헌터 자격증의 배후에는 여지없이 변화가 나타나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체내에서 배회하는 마력의 양이 상승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까워요. 앞으로 조금, 정말 조금이면 됐을 텐데.”
부족하기는 하지만 이렇게만 하면 그녀가 원하는 목표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울 역시 이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방금 만든 라멘은 겨우 E+등급이었어요. 더 좋은 요리재료를 구하고 스킬숙련도를 상승시키면 보다 높은 등급의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높은 등급의 요리는 더 많은 양의 마력 수치를 제공해 줄 것이 분명하다.
여울이 제시한 희망에 하유리도 미소를 되찾았다.
“지금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하유리가 악수를 청해왔다.
이번에는 여울도 주저 없이 그녀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각성자에게 이차원 요리를 대접했습니다. 만족도 : 96점.>
<노말, 레어 식재료 효과로 일시적으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마력+6, 민첩+4, 근력+1, 감각+2, ‘고통차단’ 부여.>
<높은 만족도(95점 이상)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습득합니다.>
또 새로운 뭔가가 나왔다.
“사실은 이번에 다양한 요리 소재를 섞어서 요리를 만들어볼까 했거든요. 아마 만두보다 마력 수치를 더 높여주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요리를 만드실 생각인데요?”
“글쎄요. 기왕이면 하유리 씨가 좋아하는 면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네요.”
벌써부터 요리를 하는 상상을 하던 여울의 입가에는 흥미로 뒤덮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반면 하유리는 그의 말에 조금 놀란 듯했다.
“제가 면 요리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나요?”
“했어요. 던전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은 여울의 말에 하유리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분명 인천 D-03에서 자신의 기호를 전하기는 했다.
그저 스치듯이 내뱉은 발언을 기억해주는 그의 세심함에 고마울 뿐이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아니요. 하유리 씨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음식을 구매해주는 손님이잖아요. 손님의 역할은 가만히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겁니다.”
“그래도…….”
“정 그렇다면 이따가 살짝만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때까지는 편히 쉬어주세요.”
머뭇거리는 그녀를 억지로 자리에 앉힌 여울은 부엌에 섰다.
‘메뉴는 라면……. 아니, 인스턴트로 때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으니 일본식 라멘을 만들어보자.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해.’
여울은 슬라임이 새로운 요리의 핵심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곧바로 차원 냉장고에서 슬라임을 꺼낸 여울은 조리를 시작했다.
점액질의 신체에 소금 간을 하고 가스 토치로 익히니 색이 변하며 밀가루 반죽과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예상대로야.”
서울 D-06에서 느꼈던 촉감 그대로다.
재료가 갖는 성질에 확신을 가진 여울의 손이 기존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식당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냄비를 준비한 여울은 보스 몬스터의 뼈를 썰어 넣고 온갖 채소들을 욱여넣었다.
국물의 기본이 되는 육수를 만들기 위함이다.
육수는 오래 끓여야 진한 맛이 우러나온다.
하지만 손님을 앉혀놓고 몇 시간씩 육수나 우려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여울은 그녀에게 손짓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여기 냄비에 스킬을 사용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구태여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하유리는 눈치만으로 여울이 원하는 것을 단번에 파악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백색으로 빛나고, 손끝에는 반딧불처럼 생긴 마력의 덩어리가 집중적으로 모여들었다.
“가속.”
스킬이 사용되자 그녀의 손끝에 모여 있던 순백의 덩어리들이 일제히 냄비를 휘감았다.
“시간 비율은 10:1이니 그 점에 유의해주세요. 마력을 거두는 것은 제 의지로 가능하니 말씀해주시고요.”
“감사합니다.”
그녀로부터 조력을 얻은 여울은 라면 위에 얹을 고명, 그리고 차슈의 준비를 서둘렀다.
그 다음에서야 반죽을 넓게 펴고 밀가루를 묻혀 곱게 접었다.
라멘에 사용하기 적당한 크기로 썰어낸 면발을 뜨거운 물에 익히자 제법 그럴싸한 면발이 탄생했다.
‘일단 모양새는 그럴싸하지만 맛은 어떨까.’
차원 메기의 경우엔 혀가 호화로움에 꼬여버릴 만큼 훌륭한 맛이었다.
반면 보스 몬스터인 처형자의 그림자는 지독한 단맛으로 인해 요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몬스터 요리의 맛은 먹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여울은 윤기가 흐르는 면발 하나를 집어 입으로 옮겼다.
‘수분기가 너무 많아.’
면발은 분명 쫄깃쫄깃하고 탱탱하다. 별다른 수타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다.
식감만큼은 최고의 식재료와 최고의 실력으로 뽑아낸 면발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한 점이 없다.
다만 수분기가 너무 많아서 씹으면 밀가루가 아니라 물맛이 강하게 입에 맴돌았다.
‘원재료에 수분이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불로 익히는 도중에 날아갔을 거야. 그렇다면 재료 자체에 흡수력이 높은 건가?’
가설을 세운 여울은 검증을 위해 새로운 면을 썰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육수가 완성되기를 기다린 후 그 육수를 이용해 면을 끓였다.
한 가닥을 건져 올려 입에 넣으니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새로운 맛의 세계가 보였다.
‘단순히 국물에 면을 적셔 먹는 것보다 국물의 맛을 더욱 쉽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어.’
다만 그만큼 면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식감이 뒤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찌 되었건 조건은 충족되었다.
여울은 완성된 육수에 추가적인 양념을 가했다.
보스 몬스터의 사골에서 우려낸 검은색의 육수에 붉은색이 덧입혀졌다.
면발은 전과 동일한 조리법으로 끓여냈으며, 체로 탈탈 털어 물기를 최대한 제거했다.
그것을 그릇에 담은 후 위에다가 숙주나물 등의 고명과 차슈를 얹었다.
마지막 장식은 삶은 달걀을 반으로 쪼갠 것이었다.
물론 단순한 삶은 달걀이 아니다. 서울 D-06에서 대량으로 공수한 고블린의 코어다.
노른자가 초록색이라 조금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 위로 육수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완성입니다.”
<몬스터 요리 완성. 슬라임으로 만든 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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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라멘 : 슬라임
슬라임의 신체에 다소의 변형을 일으켜 만든 면으로 끓인 라면.
기타 고명에 다수의 몬스터가 재료로 포함되어 보다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사용재료 : E-, B+, E+
요리기술 : E-
플레이팅 : E+
행운보정 : 없음
기타보정 : 추가재료 2
종합평가 :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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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요리의 등급은 상당히 저조했다.
하지만 이차원 요리의 묘미는 먹어보기 전까지 맛과 그 진정한 효능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요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성이 무엇인지, 얼마만큼의 마력을 상승시켜주는지는 먹어봐야만 알 수 있다.
“이건…….”
그릇 안을 확인한 하유리는 아연실색해졌다.
붉다.
붉어도 너무 붉다.
마치 시뻘건 마그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한 줄기 식은땀이 턱선으로 미끄럼틀 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생각했다.
‘이걸 먹으면 목구멍이 타들어가 죽고 말 거야. 나를 암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심지어 냄새만 맡아도 후각이 마비될 것만 같은 강렬함이다.
평범한 때였다면 이런 요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맛있어 보여.’
붉고 진한 국물에 탱탱한 면발. 색색의 채소와 숙주나물, 한 점의 돼지고기는 절로 식욕을 자극했다.
하유리는 미식을 좋아한다.
고집을 부려 던전에 동행시킬 요리사를 고용했을 정도다.
그렇기에 존재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라멘을 먹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할짝.
붉은 혀가 입술을 한 번 훑는 것으로 그녀의 폭력적이기까지 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하유리의 젓가락은 라면 속으로 파고들며 작품의 파괴를 주저하지 않았다.
들어 올린 젓가락에는 적당한 윤기를 발하는 면발과 용암처럼 붉은 빛깔을 입은 숙주나물이 붙들려 있었다.
“후우.”
조심스럽게 입김을 불어 뜨거움을 식힌다.
하지만 너무 식히면 라면의 맛이 떨어진다.
입안이 데지 않을 정도.
그 정확한 온도를 감으로 때려 맞춘 그녀는 망설임 없이 면발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룩!
하유리는 엄청난 기세로 면발을 입에 넣었다.
그 행위는 흡입이라 표현하는 것이 어울렸다.
물론 빨아올리는 면발에 묻은 국물이 사방팔방 튀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보조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런 소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식사방법에 우아함이나 고상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발생한 생생한 사운드가 일대를 지배했다.
후르릅!
“하아!”
그녀가 길게 숨을 토했다.
살짝 눈물을 머금은 그녀는 황급히 물을 찾았다.
알싸한 고통을 호소하는 혀를 찬물로 식혀주며 그녀는 여운을 음미했다.
‘매워. 하지만 생각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아. 그 속에 감춰진, 묘하게 뚜렷한 단맛을 찾아내는 즐거움까지 있어. 몬스터의 뼈로 국물을 우려냈기 때문인가?’
맵고 뜨거운 국물과 탱탱한 면발. 그리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일품인 숙주나물.
그 조합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런 하유리를 지켜보던 여울은 무심코 입맛을 다셨다.
‘행복해 보이네.’
전에도 그랬지만 하유리는 표정만으로 자신의 혀가 느끼는 모든 것을 전해주고 있었다.
식사에 열중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만든 요리가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맛있게 보였다.
“스읍! 하아… 매워.”
살짝 벌어진 입안에서 알싸한 고통을 호소하는 혀가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미간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으며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다.
손등으로 땀을 대충 닦아낸 그녀는 코를 훌쩍이면서도 다음 면발을 집어 들었다.
어느덧 그릇의 절반이 비워졌다.
그걸 아쉽게 바라보던 하유리가 그릇을 통째로 들더니 가장자리에 입을 대고 국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호쾌하게 열린 식도가 요동쳤다.
입가를 타고 흐른 국물이 빛을 반사하며 요염하게 빛났다.
“후아!”
내부를 불로 지지는 듯한 화끈한 매운맛이 그녀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맛있어.”
기름 묻은 입술을 붉은 혀가 훔친다.
입술은 초승달보다 더욱 매끄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이 표현하는 것은 행복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건…….”
국물에 절반이 잠겨 있는 돼지고기 고명을 집어 든 하유리가 눈을 빛냈다.
지독하게 단맛이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의 고기.
지금까지 대충 구워서 라면에 얹어주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경이로운 단맛을 잡아내기 위해 여울이 택한 방법은, 고기를 잘게 다지고 매운맛을 내는 채소와 조미료를 섞어 구워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기름지며 안쪽은 강한 단맛과 매운맛, 거기에 아삭아삭한 식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지그시 눈을 감은 그녀는 혀를 희롱하는 맛을 마음껏 즐겼다.
‘몬스터 주제에 맛있잖아.’
몬스터를 이용해 만든 요리는 끔찍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탁!
“잘 먹었습니다.”
그녀가 그릇을 내려놨다.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워낸 접시는 그녀가 느끼는 만족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미칠 듯 혀가 아렸지만 지금은 그 고통마저도 행복으로 다가왔다.
행복의 뒤를 잇는 만족감.
그녀의 미소에서 그 감정을 발견한 여울은 그녀 못지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준다.
요리사로서 그 이상의 즐거움은 없었다.
“만족하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결과는 어떤가요?”
“그야 맛있었어요. 여태까지 먹어본 라멘 중 최고라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그건 고맙네요. 하지만 제가 물은 건 마력 쪽입니다.”
“아!”
그제야 여울이 하고자 했던 말의 요지를 파악한 그녀가 황급히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녀의 능력 수치를 실시간으로 갱신하고 있는 헌터 자격증의 배후에는 여지없이 변화가 나타나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체내에서 배회하는 마력의 양이 상승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까워요. 앞으로 조금, 정말 조금이면 됐을 텐데.”
부족하기는 하지만 이렇게만 하면 그녀가 원하는 목표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울 역시 이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방금 만든 라멘은 겨우 E+등급이었어요. 더 좋은 요리재료를 구하고 스킬숙련도를 상승시키면 보다 높은 등급의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높은 등급의 요리는 더 많은 양의 마력 수치를 제공해 줄 것이 분명하다.
여울이 제시한 희망에 하유리도 미소를 되찾았다.
“지금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하유리가 악수를 청해왔다.
이번에는 여울도 주저 없이 그녀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각성자에게 이차원 요리를 대접했습니다. 만족도 : 96점.>
<노말, 레어 식재료 효과로 일시적으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마력+6, 민첩+4, 근력+1, 감각+2, ‘고통차단’ 부여.>
<높은 만족도(95점 이상)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습득합니다.>
또 새로운 뭔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