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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그러니까… 다 본 거예요? 하나부터 열까지?”
그 질문에는 부디 부정해 달라는 간절함이 내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간절함을 배신했다.
“요리를 먹은 김진수의 마력이 소폭 상승한 것도, 여울 씨의 모습이 어둠에 휩싸이는 것도 다 지켜봤어요. 마지막에는 보스 몬스터를……. 차원 냉장고라고 했나요? 굉장히 유용해 보이더군요.”
“가람아, 잠깐 나가 있어. 아니, 그만 먹고 할아버지께 가봐.”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여울의 말에 은가람은 부리나케 접시에 있는 만두들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만두를 먹는 것인지 만두에게 삼켜지는지 모를 만큼 허겁지겁 그릇을 비운 그녀는 황급히 짐을 챙겼다.
“그렇지 않아도 다 먹어서 나가보려고 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
그녀는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병원으로 직행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하유리의 신체도 움찔 떨렸다.
호들갑을 떨던 은가람이 퇴장하고 나자 좁은 방 안에 침묵만이 감돌았다.
구름이 해를 가리며 창문으로 쏟아지던 햇살도 사라지고, 깊지 않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 속에서 두 남녀는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침묵을 깨는 여울의 목소리는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하유리다.
‘보스 몬스터의 코어. 하유리도 그 권리를 가지고 있어.’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 것은 순수하게 여울의 노력에 의한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온은 헌터가 소속된 길드, 그리고 같은 공략대원에게도 일부나마 그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해당 법률은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는 결코 쓰러뜨릴 수 없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문제는 서울 D-06에서 코어를 사용해버렸다는 거지.’
공유해야 할 보수는 이미 여울의 뱃속에서 소화가 끝난 상태.
그녀가 돌려달라고 발언하는 순간 여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의 빚을 지게 된다.
온몸의 피를 말리는 듯한 긴장감에 여울은 식은땀을 흘리고 마른침을 삼켰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여울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생각하는 바를 읽어보려 시도했다.
하지만 하유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여울의 경계심을 녹이려는 듯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긴장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코어의 권리를 요구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그 코어에 관한 권리는 전부 여울 씨에게 양도할게요.”
“정말입니까?”
“네. 오히려 여울 씨가 아니었으면 전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 물에 빠진 걸 구해준 사람에게 답례는커녕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여울은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하유리가 인격자라 살았다.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파산 신청서를 작성해야 했을 것이다.
“오늘 제가 방문한 이유는 그 사실을 전해드리고자 함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요.”
“다른 이유요?”
“여울 씨의 능력을 빌려주셨으면 해요.”
하유리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 행위에서 숨길 수 없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제가 가진 능력이라 하면, 마력의 상승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네. 만약 제 마력을 A랭크까지 올려주신다면, 저 역시 여울 씨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하유리의 표정에서 조금 전까지의 여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긴장과 두려움, 간절함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가 남심을 자극했다.
“물론 그냥 부탁드리는 것은 아니에요. 원하신다면 헌터로서의 경험과 지식, 돈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장비, 당신의 노력과 스킬의 가치에 상응하는 보수까지 약속할게요.”
이런 식의 거래가 서투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타인의 약점을 빌미로 협박을 할 줄 모르는 호인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내거는 조건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었다.
‘우선 천천히 생각해보자.’
급한 마음을 달랜 여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의 늪에 잠겨들었다.
여울이 판단하기에 하유리는 상당한 인격자다.
엄청난 가치를 자랑하는 보스 몬스터의 코어, 그 권리의 일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편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고작 이틀 정도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내린 추측에 불과하다.
여울은 아직 하유리가 어떤 인물인지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거절할 경우 내 스킬에 대한 정보를 타인에게 팔아버릴 가능성이 있어.’
만약 저 인품이 꾸며낸 것일 경우, 잃는 것이 너무 많다.
반면 하유리의 제안을 수락할 경우, 하유리가 내거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소의 노력을 희생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만 있다면 비밀의 보장까지 해주는 그녀와의 거래가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관계라면 나쁘지는 않군요. 하지만 알아두실 것이 있습니다. 제 스킬로 마력을 상승시키는 것은 한 시간. 일시적인 것입니다.”
“괜찮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지금까지 보여준 불안에 휩싸인 표정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하유리의 얼굴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녀는 이미 거래가 성립됐다고 여기는 것인지 악수를 청해왔다.
하지만 여울은 쉽사리 하유리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녀와 거래를 하는 것은 좋지만, 기왕이면 서로의 관계에서 조금이나마 우위를 점하고 싶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말씀만 하세요. 이쪽에서 부탁드리는 거니 뭐가 되었건 최대한 응하겠습니다.”
“우선 하나. 어째서 하유리 씨가 제 스킬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그 이유가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이는 곧 하유리의 족쇄가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여울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입을 여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반드시 토벌하고 싶은 몬스터가 있어요.”
“토벌하고 싶은 몬스터요?”
“레비아탄입니다.”
그녀는 다소 가라앉은 음성으로 몬스터의 이름을 말했다.
여울로서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각성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가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여울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몬스터를 종족명이 아니라 개체명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만한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레비아탄이라… 네임드 몬스터인 것 같은데.’
그 이름을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시킨 여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앞으로 3개월 후 대대적인 레비아탄 토벌 계획이 잡혀 있어요. 하지만 토벌대의 스트라이커로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은 최소 A. 지금의 저는 자격미달이죠.”
냉정하게 자신의 자격을 분석하는 그녀의 음성은 확연히 풀이 죽어 있었다.
하유리는 B랭크 헌터. 그 수가 결코 많지 않은 고급인력이다.
그런 그녀가 도전할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한 몬스터라니.
레비아탄이 얼마나 강한 몬스터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거라면… 알겠습니다. 두 번째 조건만 충족시켜 주신다면 하유리 씨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협조하도록 하죠.”
여울은 서랍에서 꺼낸 하얀색의 종이를 내밀었다.
그 종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그녀는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울은 종이의 윗면에 세 글자를 기입했다.
그녀는 하나씩 완성되는 글자를 따라 읽었다.
“계, 약, 서?”
“아까 전에 약속해주셨던 것들을 문서로 남기는 겁니다.”

* * *

그녀가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으로 거래는 성립되었다.
그 관계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 여울은 조속히 한 그릇의 요리를 대접했다.
실험을 위해 만든 후 차원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몬스터 만두였다.
그의 행동에는 두 가지 노림수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하유리와의 계약 조건을 이행할 수도 있고. 그 만족도라는 놈의 정체가 뭔지도 조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인천 D-03에서 김진수에게 차원 메기로 만든 매운탕을 대접했을 때, 여울은 만족도라는 문구를 접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미지를 미지로 남겨둘 수는 없는 법.
따라서 여울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공유할 수 있는 하유리를 적극 이용하기로 했다.
“자, 몬스터로 만든 요리입니다.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후유증은 없으니 안심하고 드셔보세요.”
“몬스터…….”
요리 재료가 몬스터라는 점에서 그녀는 조금 거부감을 느꼈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만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냉장고 안쪽은 시공간이 멈춰있기 때문에 요리가 식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그녀는 갓 만든 것처럼 따뜻한 만두 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어떤가요?”
“맛있어요.”
그녀는 담담하게 맛을 평가했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온화했다.
과거 스테이크를 내놓았을 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행복과 공복감을 느끼게 했던 그 표정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지금 만든 만두의 맛이 그 정도 수준의 요리는 되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금이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요리 연구를 위해 효율만을 고려했을 뿐이니……. 아니, 변명은 그만. 일단 반성부터 하자.’
일류 요리사를 꿈꾸는 자가 자신의 요리에 타협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울은 겸허히 그녀가 보내는 무언의 비난을 받아들였다.
그가 기다리던 메시지를 접한 것은 하유리가 한 접시를 완전히 비우고 난 후였다.

<각성자에게 이차원 요리를 대접했습니다. 만족도 : 47점.>
<노말 식재료 효과로 일시적으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마력+3, 민첩+1, 동체 시력+2>

‘47점…….’
기다리던 메시지가 나타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100점 만점으로 추정되는 만족도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여울은 풀이 죽고 말았다.
자신의 요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그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어딘가에 쥐구멍이 있다면 머리를 처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저나 이 만족도는 대체 뭐야?’
별거 아닌 걸로 치부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100점을 노리고 계속 노력해볼까.’
만약 100점의 만족도가 나오면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봐?’
몬스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만져본 적 없는 새롭고 위험천만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지는 요리.
그 미지의 세계가 여울의 요리사로서의 도전 의식에 불을 붙였다.
‘슬라임. 고블린의 코어. 그것들을 이용해서 뭔가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보자.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이용해 하나의 요리를 만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맛있는 요리는 본디 수많은 연구 끝에 탄생하는 것이다.
졸지에 그 과정에 참가하게 된 하유리는 자신의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울 씨. 소량이기는 하지만 마력이 올랐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다만 A랭크 수준의 마력을 갖추기에는 상승량이 부족하네요.”
만연해 있던 미소를 지운 그녀가 이번에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가능성과 조우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렇기에 아쉬움의 크기도 더욱 컸다.
반면 그녀가 이차원 요리를 이용한 도핑으로 A랭크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의 여울에게는 축복이었다.
이렇게 적당한 실험 대상을 달리 또 찾아보기란 몹시 어려울 테니 말이다.
뽑아먹을 만큼 뽑아먹는다.
그리 결단한 여울은 또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러요.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해 도전해보도록 하죠.”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그녀가 감동에 젖은 눈으로 여울의 뒤를 쫓았다.
지독한 오해에서 탄생한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