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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우물우물.
“으음! 나쁘지 않네.”
양파즙이 첨가된 고기의 적절한 단맛, 넘치는 육즙, 채소들의 식감, 그리고 알싸함을 더해줄 청양고추까지.
별다른 작업은 하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각자의 맛이 잘 어우러져 먹을 만한 요리가 탄생했다.
나물을 넣은 만두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나물 특유의 돌출된 듯한 아삭아삭함과 씁쓸함이 적당히 어우러져 혀 위에서 춤을 춘다.
“여기서 마력 수치만 올라가면 금상첨화인데.”
하지만 동일한 요리재료로는 마력이 영구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울 D-06에서 입증을 마친 상태.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겨둔 채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로부터 요리의 효과를 읽어 내렸다.

<정제된 마력이 신체에 녹아듭니다. 요리에 코어가 포함되지 않아 흡수율이 절반으로 하락합니다. 마력이 3만큼 상승합니다.>
<처형자의 그림자에 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흡수한 마력을 신체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상승한 마력 수치는 일정 시간 후 사라지게 됩니다.>
<일시적으로 처형자의 그림자의 특성을 신체가 받아들입니다. 어둠 친화 Lv2, 민첩 증폭 Lv1, 단두대 Lv1.>
<레어 식재료 효과로 민첩+2, 정신+1, 체력저하 감소+2가 추가로 적용됩니다.>

“3인가……. 그래도 만두 하나로 마력 수치를 증가시키고 특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네.”
이로써 지난번처럼 갑작스럽게 던전에 말려 들어간다 할지라도 대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즉석에서 발동할 수 있는 1시간짜리 버프가 생긴 것이다.
만족스러운 연구결과를 도출하는 데 성공한 여울은 콧노래를 부르며 어질러진 부엌의 뒷정리를 시작했다.
그가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는 것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렸다.
등장한 인물은 동생인 은가람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뭐야. 벌써?”
여울은 반사적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오후 1시.
대한민국의 고3인 그녀가 귀가하기에는 한참이나 이른 시간이다.
“오늘 개교기념일이야. 원래 안 가도 되는데 공부하려고 잠깐 갔다 왔어.”
평소보다 몇 배는 생기발랄한 얼굴로 손을 흔든 그녀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는 식탁 앞에 앉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배고파.”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냐.”
“빨리 먹고 할아버지 병문안 갈 거란 말이야.”
넌지시 던져진 질책에 여울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돈을 버는 여울과 학업에 열중하는 은가람. 일의 중요성은 우위를 가리기 어렵다.
하지만 여울은 바쁘다는 핑계로 병원에 방문하는 횟수를 확연히 줄였다.
반면 은가람은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꼬박꼬박 병원에 방문했다.
오늘 같은 날도 조금쯤은 쉬고 싶다 생각할 법도 하건만 그녀는 싫은 기색 하나 없었다.
그런 동생을 위해서라면 조금의 수고 정도는 아깝지 않다.
“잠깐 기다려봐. 금방 만들어 줄 테니까.”
“응? 여기 만들어진 만두가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새로 만들 필요가 있나?”
그렇게 말한 은가람이 손을 뻗은 곳에는 여울이 미처 차원 냉장고에 집어넣지 못한 검은색 만두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여울은 경악했다.
“기다려!”
“어? 응, 알았어.”
다행히도 막 젓가락을 들었던 은가람은 여울의 제지에 순순히 따랐다.
갑작스럽게 소리를 질러서인지 꽤나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힐긋 여울의 눈치를 봤다.
“왜 그러는데? 혹시 오빠가 먹으려고 했던 거야?”
“그건 아니지만… 이건 실패작이야.”
여울은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이 만든 몬스터 요리가 각성자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김진수를 통해 검증을 마쳤다.
오히려 대상의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체내에 마력회로가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그 위험천만한 인체실험을 은가람을 상대로 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맛이 문제라면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알다시피 나 아무거나 잘 먹잖아. 혀가 싸구려라.”
“그게 문제가 아니야. 어쨌거나 새로 만들어 줄 테니까 기다려. 절대 그 만두는 건드리지 마.”
은가람이 얌전히 앉아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까지 확인한 여울은 황급히 몬스터 만두를 회수했다.
그것을 은가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 차원 냉장고에 처박고 난 다음에서야 본격적으로 동생을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가람이는 매운 걸 좋아하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의 입맛만큼은 확실하게 꿰고 있는 여울이다.
그는 곧바로 만들 요리의 맛을 결정짓고는 요리에 착수했다.
다행히도 부엌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재료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첫 번째 작업은 냉장고에 보관해 둔 고기를 꺼내 잘게 다지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두부, 김치, 부추, 숙주나물, 삶은 당면 등을 잘게 썬 후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했다.
다진 고기를 첨가하는 것은 가장 마지막이다.
그것들을 커다란 대접에 담은 여울이 은가람을 호출했다.
“자. 네가 먹을 거니까 잘 비비고 예쁘게 빚어.”
“좋아. 실기포함 미술점수 96점, 가정점수 92점, 합계 188점의 실력을 보여주지.”
은가람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적극적으로 여울을 도왔다.
그녀의 도움으로 인해 만두소는 빠르게 만들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사전에 만들어 둔 만두피로 감싸는 것뿐이었다.
만두피를 손에 든 여울은 잠깐 조리를 멈췄다.
“군? 찐? 물?”
“군!”
추가 주문을 받은 여울은 재차 요리를 재개했다.
그녀의 주문대로 군만두를 만들기 위해 만두는 최대한 얇고 넓적한 모양으로 빚어냈다.
“저기, 오빠. 내가 빚은 만두가 너무 못생긴 거 같아.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은가람도 열심히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빚어낸 것은 여울이 만든 것에 비해 한없이 못생겼다.
숙련도의 차이다.
“얼굴도 못생겼는데 만두까지 못생겨서 어떻게 하냐.”
“닥쳐.”
장난기 다분한 조롱으로 그녀의 입을 오리처럼 만드는 데 성공한 여울은 기분 좋게 웃으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둘렀다.
프라이팬이 뜨겁게 달궈지자 그 위에 만두를 올렸다.
코를 자극하는 향기에 벌써부터 흥이 돋은 것인지, 배후로부터 동생의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적당히 한쪽 면이 익었을 때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뒤집어줬다.
만두피가 타기 직전까지 익혀 겉이 바삭바삭하게 만드는 것 역시 동생의 취향을 고려한 조리방법이다.
이윽고 만두가 완전히 구워졌다.
여울은 접시에 키친타월을 깔고 그 위에 만두를 올려놓았다.
“이걸로 완성!”
당연하지만 몬스터 요리가 아니므로 허공에 글자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자, 네가 주문한 김치 군만두 완성이다. 빨리 먹고 할아버지한테 가봐.”
한껏 으스댄 여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식탁에 있어야 할 은가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울이 요리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좁아터진 원룸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은가람은 현관에 서 있었다.
“오빠, 손님 왔어.”
그런 은가람의 곁에는 미라처럼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장발의 여인이 서있었다.
여울은 그녀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하유리…….”
백야 2번 공략대의 대장이었으며 여울과 마찬가지로 백야에서 해고당한 하유리가 그곳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길드 가입 당시 제출한 서류에 주소 같은 것도 적혀 있었지.’
귀찮은 것을 피하기 위해 보스 몬스터와 관련된 모든 것을 기절한 그녀에게 떠넘긴 여울이었다.
찔리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그는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기억보다 한층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은가람은 여울이 만든 군만두를 걸신들린 것처럼 흡입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에서 연거푸 진동이 울렸지만 그녀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신경을 자신의 혀에 집중했다.
“역시 맛있어! 오빠, 앞으로도 결혼하지 말고 나를 위해 평생 요리해주라. 하긴, 여자도 없지?”
“나 지금 칼 들고 있으니까 단어선택 신중하게 해라.”
말과 달리 여울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게에서 사 먹어도 이렇게 맛있지는 않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가게나 차리지 그래?”
“어쩐지 전에 만들어줬을 때보다 더 맛있어진 것 같아. 조금 실력이 늘은 것 같은데?”
“장담하는데 오빠는 결혼하면 분명 신부한테 사랑받을 거야. 다 키워놨는데 남 주기 조금 아깝네.”
밥을 먹는 내내 만면에 미소를 그린 은가람이 칭찬세례를 퍼부었기 때문이었다.
자고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진심에서 우러나온 칭찬의 말은 여울의 뇌리에서 절로 기분 좋은 멜로디가 흐르게 해주었다.
때문에 여울은 달갑지 않은 방문객에게도 영업용 미소를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 하유리 씨가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그녀가 여울의 거주지를 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녀가 이곳에 방문한 이유가 신경 쓰였다.
‘보나 마나 보스 몬스터에 관한 일이겠지.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자신이 쓰러뜨린 걸로 이야기가 되어 있을 테니까.’
던전을 완전 공략한 직후. 여울은 수많은 사람에게 보스 몬스터의 토벌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데다 어차피 F랭크 헌터인 자신이 쓰러뜨렸다 해도 믿어주는 이는 없을 터.
그리 판단한 여울은 거짓말을 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 것은 하유리와 김진수.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망만 다녔습니다.”

그 한 마디로 몰려드는 날파리들을 전부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그 거짓말로 인한 여파가 밀려왔다.
하지만 여울은 본인의 정보를 내주지 않은 채 그녀를 이해시킬 자신이 있었다.
‘하유리가 쓰러진 직후 김진수가 보스 몬스터와 동귀어진 했다고 하면 어떻게든…….’
“우선 제 스킬에 대해 설명 드리고 싶네요.”
여울이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는 사이, 하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돌연 헌터의 귀중한 자산이 되는 스킬을 공개하겠다는 말에 여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이었기 때문에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가지런히 모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가 가진 스킬은 시간 조작. 작은 범위, 혹은 저 자신의 시간을 늦추거나 빠르게 감거나 할 수 있어요. 던전에서는 제 시간을 최대한으로 느리게 만들었던 거예요.”
그렇게 말하던 그녀는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분명 잘려나갔을 팔은 멀쩡하게 신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잘려나간 팔의 시간을 멈춰두었기 때문에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는 순간까지 그녀의 팔은 갓 잘려나간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저에게 적용되는 시간의 흐름을 극도로 늦춘 까닭에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을 뿐이지…….”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쉬지 않고 눈동자를 움직이며 여울의 안색을 살피던 그녀의 상태는 어떻게 봐도 B랭크 헌터의 것이 아니었다.
던전 내에서 적과 싸우던 당당한 하유리의 모습만 기억하던 여울로서는 그 모습이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요?”
여울은 컵에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따라주며 하유리를 재촉했다.
그것으로 목을 축인 하유리는 길게 숨을 뱉어낸 후 입을 열었다.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듣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해요.”
“…….”
여울의 손에서 물병이 떨어졌다.
콰직!
“으아아! 오, 오빠?!”
플라스틱 물병이 깨지고 차가운 보리차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하유리는 화들짝 놀라 움찔거렸고, 은가람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여울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으며, 심장은 100미터를 전력 질주한 것처럼 격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만큼 하유리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