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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이 타이밍에 마력고갈이라니, 운도 더럽게 없지!’
손날을 거둬들인 여울은 덩치 고블린의 사체로부터 단검을 회수했다.
기습에 실패한 여울의 위치를 파악한 고블린 리더도 나무 지팡이를 무기로 삼았다.
콰득!
두 개의 무기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마력적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충돌. 하지만 더 높은 강도를 가진 무기는 여울의 단검이다.
고블린 리더가 들고 있던 나무지팡이는 부러지기 직전까지 깊게 패였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자 고블린 리더의 지팡이는 이제 지팡이라 부르기 힘든 수준까지 깎여나갔다.
[키익…….]
몽둥이만큼 짧아진 지팡이를 쥔 고블린 리더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퇴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던전.
죽거나, 죽이거나. 두 개의 선택지만이 있는 장소다.
도주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겁을 먹은 고블린 리더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곧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음이 패배감으로 물드는 순간 빈틈은 드러난다.
그 빈틈을 노린 여울은 두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추고 오른손으로 단검을 내질렀다.
왼손으로는 그 밑을 받쳐서 힘을 더했다.
혼신을 다한 일격은 고블린 리더의 턱을 꿰뚫으며 뇌까지 도달했다.
주륵.
칼날에 새겨진 홈을 타고 뇌수 섞인 피가 흘러내렸다.
들어 올렸던 고블린 리더의 팔이 축 늘어지고 신체에서 힘이 빠졌다.
칼을 회수한 여울이 뒤로 물러나자 고블린 리더의 신체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승자의 권리를 취하는 것뿐이다.
* * *
쨍그랑!
벽에 부딪힌 유리컵이 산산이 조각나며 고급 융단 위에 어지러이 흩어졌다.
그 유리컵이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정민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남성은 충분히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김진우.
누구나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3위의 길드인 백야를 좌지우지하는 최고 권력자이자, 개인의 강함도 톱클래스인 A랭크 헌터다.
돈, 권력, 힘. 삼박자를 두루 갖춘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방 안을 초토화시키는 중이었다.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그 자식들을 내 앞으로 데려오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내 동생이 죽는 것을 그저 방관만 한 놈들이다. 진수가 죽었는데 뻔뻔하게 살아서 돌아온 놈들이라고!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죽이지 않으면 진수는 편히 잠들지도 못할 거다!”
“죄송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사전에 준비한 변명거리도 한 가득이다.
하지만 정민철은 변명 따위로 김진우의 분노를 잠재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괜한 말로 오히려 그 불의 크기를 키울 가능성도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로 일관했다.
‘해고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군.’
인천 D-03의 생존자들.
은여울과 하유리.
그 두 사람은 분명 아무 죄도 없을 것이다.
그저 우연히 발생한 사고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정민철은 아직 앞날이 창창하게 남아있는 두 사람을 떠올렸다.
‘불쌍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필이면 마스터에게 찍혀서는…….’
그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진우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두 사람을 위해 애도를 표했다.
* * *
천만다행히도 여울이 헤매게 된 던전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두 마리의 챔피언 고블린을 쓰러뜨린 여울은 전리품을 회수한 후 철저하게 방을 조사했다.
그 결과 구석에 위치한 작은 통로의 끝에 있는 던전의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게이트를 통과하니 던전의 음습한 분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맑고 높은 하늘이 보였다.
“스읍! 하아…….”
맑은 공기가 반가웠던 여울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는 했지만, 내 일확천금의 기회를 날려버린 주동자 놈은 절대 가만 안 둔다.”
자신을 던전 안으로 날려버린 주범으로 추정되는 김진우를 떠올린 여울은 사나운 맹수처럼 이를 갈았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고속치유 스킬로 상처를 회복하자마자 던전에 휘말렸다.
느껴지는 피로감은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 지독했다.
무거운 납덩어리가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여울이 던전에 휘말렸던 장소는 집 근처의 횡단보도 앞이었다.
하지만 현재 여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던전의 입구인 게이트. 그리고 차라곤 단 한 대도 세워져 있지 않은 주차장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빌딩이 이곳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저건 63빌딩이잖아?”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인천에서 서울에 위치한 던전까지 전이된 것이다.
“망할…….”
여울은 자신의 복장을 살폈다.
던전에서 고블린과 드잡이질을 한 탓에 전신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돌아가는 길이 절대 평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실례합니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던 여울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푸짐한 몸매의 그는 가디언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던전의 관리자인가?’
기본적으로 던전의 소유권은 ‘가디언’이라 불리는 관리자 개인에게 있다.
오로지 가디언만이 소유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들은 던전의 입장료와 수익의 일부를 받는다.
물론 출입하는 헌터, 던전 브레이크까지 남은 일수 따위를 관리하는 의무도 있었다.
이 남자는 이곳 던전의 관리자일 것이다.
“D랭크 가디언 최영우라고 합니다. 이곳 서울 D-06을 관리하고 있죠. 실례지만 쉐도우 슬레이어인 은여울 헌터님 맞으십니까?”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울을 알아봤다.
하지만 이상할 것도 없다.
비록 온라인상에서는 버스충이라 불리며 조롱받고 있지만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각성자들 사이에서 슬레이어는 명예로운 칭호다.
정보에 민감해야 하는 가디언인 만큼 최영우가 여울을 알아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경직된 표정을 지으며 여울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금 전 서울 D-06에서 나오신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서울 D-06의 공략허가는 내려와 있지 않으며, 저는 누군가가 던전에 들어가는 것 역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들어간 자는 없는데 나오는 자가 존재한다.
당연히 던전에서 걸어 나온 여울의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지?’
여울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정황은 충분히 의심을 받을만한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울은 어디까지나, 물론 아직 추정일 뿐이지만 김진우의 계략에 당했을 뿐이지 아무런 죄가 없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유니온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울을 던전에 날려 보낸 상대는 거대 길드의 마스터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을 운영하는 총수가 아끼는 아들이기도 하다.
법은 서민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울은 금빛의 열쇠를 증거로써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열쇠 하나만으로 거대 길드 마스터의 죄를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
끽해야 꼬리 자르기, 심할 경우는 오히려 여울의 안전이 위험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설사 죄를 입증한다 할지라도 김진우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죄의 크기를 줄일 것이다.
말도 안 될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만으로 풀려날 김진우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배알이 뒤틀렸다.
반면 여울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십억을 호가하는 보스 몬스터의 코어를 사용했다.
그만한 대가를 받아내지 않으면 잠을 자도 편히 잔 것 같지가 않을 것이다.
‘응징은 천천히 내 손으로 한다. 어떻게 하면 그 빌어먹을 놈에게 최고의 괴로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네.’
지금은 인내해야할 때다.
그에게는 이차원 요리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마력 수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 손에 있는 한, 시간은 여울의 편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여울은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았는데, 갑자기 던전으로 전이됐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전이계열 아이템을 사용하는 살해 방법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하셨나요?”
“전혀. 보다시피 대인관계 원만한 선량한 시민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물건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어쩌면 범인을 추적하는 데 용이한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던전 안에서 전투 도중 분실했습니다.”
“…….”
입을 닫은 최영우는 여울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하지만 여울은 표정 변화는 고사하고 눈가의 근육조차 움찔거리지 않은 채 최영우의 시선을 받아냈다.
“그보다 졸지에 전투를 벌여야 했던 까닭에 피곤합니다. 어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네요.”
결국 최영우는 여울을 향한 의심의 시선을 거두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최영우의 시선이 던전의 게이트로 향했다.
그가 관리하고 있던 서울 D-06은 신생 던전으로, 난이도가 E로 측정되어 있다.
하지만 던전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다가 보수마저 기대할 수 없어 방문하는 공략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즉 던전 내부에는 상당한 수의 몬스터가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
‘그걸 전부 쓰러뜨린 건가? 혼자서?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분명 쉐도우 슬레이어 은여울은 F랭크 헌터라고 들은 것 같은데?’
* * *
서울 D-06에서 있었던 사건은 여울에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의 전투방식이 몬스터로부터 훔쳐온 특성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것.
또 다른 점은 그 특성을 얻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너무도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특성을 얻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재료로 요리를 해서 직접 섭취해야만 한다.
즉, 즉효성이 너무 떨어진다.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울은 한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한 입 사이즈의 요리를 만들어서 차원 냉장고에 보관해야겠어. 요리의 등급이 한 단계 하락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이를 위해 여울이 생각한 메뉴는 만두였다.
맛도 좋고 먹기도 편하므로 여울이 바라는 역할을 톡톡히 완수해줄 것이다.
그리고 우선은 마력이 상승하는 메커니즘을 파악해야한다.
마력의 상승이 한 접시가 기준인지. 아니면 일정량을 섭취해야 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히 먹었다는 인식만으로도 가능한 것인지를 알아야 스킬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두소에는 보스 몬스터의 고기를 첨가했으며 그 외의 것은 일반적으로 만드는 만두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했다.
물론 특유의 과도한 단맛을 잡아내기 위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뭘 어떻게 섞어야 맛있는 만두를 만들 수 있을까…….”
매운 맛을 내는 청양 고추나 씁쓸하면서도 식감을 보태줄 봄나물을 보태는 등,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양파의 즙이 섞이면 돌출적인 단맛을 어느 정도 잡아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열 개의 시제품 만두가 완성됐다.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만두를 먹을 때마다 마력 수치가 상승하는 것.
반대로 최악의 경우라 한다면 열 개의 만두 전부를 먹어야 마력 수치가 상승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잘 먹겠습니다.”
여울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만두 하나를 입으로 옮겼다.
뜨거운 만두를 깨물자 얇은 만두피 아래에 숨어있던 만두소가 뛰쳐나왔다.
‘이 타이밍에 마력고갈이라니, 운도 더럽게 없지!’
손날을 거둬들인 여울은 덩치 고블린의 사체로부터 단검을 회수했다.
기습에 실패한 여울의 위치를 파악한 고블린 리더도 나무 지팡이를 무기로 삼았다.
콰득!
두 개의 무기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마력적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충돌. 하지만 더 높은 강도를 가진 무기는 여울의 단검이다.
고블린 리더가 들고 있던 나무지팡이는 부러지기 직전까지 깊게 패였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자 고블린 리더의 지팡이는 이제 지팡이라 부르기 힘든 수준까지 깎여나갔다.
[키익…….]
몽둥이만큼 짧아진 지팡이를 쥔 고블린 리더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퇴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던전.
죽거나, 죽이거나. 두 개의 선택지만이 있는 장소다.
도주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겁을 먹은 고블린 리더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곧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음이 패배감으로 물드는 순간 빈틈은 드러난다.
그 빈틈을 노린 여울은 두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추고 오른손으로 단검을 내질렀다.
왼손으로는 그 밑을 받쳐서 힘을 더했다.
혼신을 다한 일격은 고블린 리더의 턱을 꿰뚫으며 뇌까지 도달했다.
주륵.
칼날에 새겨진 홈을 타고 뇌수 섞인 피가 흘러내렸다.
들어 올렸던 고블린 리더의 팔이 축 늘어지고 신체에서 힘이 빠졌다.
칼을 회수한 여울이 뒤로 물러나자 고블린 리더의 신체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승자의 권리를 취하는 것뿐이다.
* * *
쨍그랑!
벽에 부딪힌 유리컵이 산산이 조각나며 고급 융단 위에 어지러이 흩어졌다.
그 유리컵이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정민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남성은 충분히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김진우.
누구나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3위의 길드인 백야를 좌지우지하는 최고 권력자이자, 개인의 강함도 톱클래스인 A랭크 헌터다.
돈, 권력, 힘. 삼박자를 두루 갖춘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방 안을 초토화시키는 중이었다.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그 자식들을 내 앞으로 데려오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내 동생이 죽는 것을 그저 방관만 한 놈들이다. 진수가 죽었는데 뻔뻔하게 살아서 돌아온 놈들이라고!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죽이지 않으면 진수는 편히 잠들지도 못할 거다!”
“죄송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사전에 준비한 변명거리도 한 가득이다.
하지만 정민철은 변명 따위로 김진우의 분노를 잠재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괜한 말로 오히려 그 불의 크기를 키울 가능성도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로 일관했다.
‘해고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군.’
인천 D-03의 생존자들.
은여울과 하유리.
그 두 사람은 분명 아무 죄도 없을 것이다.
그저 우연히 발생한 사고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정민철은 아직 앞날이 창창하게 남아있는 두 사람을 떠올렸다.
‘불쌍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필이면 마스터에게 찍혀서는…….’
그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진우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두 사람을 위해 애도를 표했다.
* * *
천만다행히도 여울이 헤매게 된 던전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두 마리의 챔피언 고블린을 쓰러뜨린 여울은 전리품을 회수한 후 철저하게 방을 조사했다.
그 결과 구석에 위치한 작은 통로의 끝에 있는 던전의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게이트를 통과하니 던전의 음습한 분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맑고 높은 하늘이 보였다.
“스읍! 하아…….”
맑은 공기가 반가웠던 여울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는 했지만, 내 일확천금의 기회를 날려버린 주동자 놈은 절대 가만 안 둔다.”
자신을 던전 안으로 날려버린 주범으로 추정되는 김진우를 떠올린 여울은 사나운 맹수처럼 이를 갈았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고속치유 스킬로 상처를 회복하자마자 던전에 휘말렸다.
느껴지는 피로감은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 지독했다.
무거운 납덩어리가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여울이 던전에 휘말렸던 장소는 집 근처의 횡단보도 앞이었다.
하지만 현재 여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던전의 입구인 게이트. 그리고 차라곤 단 한 대도 세워져 있지 않은 주차장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빌딩이 이곳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저건 63빌딩이잖아?”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인천에서 서울에 위치한 던전까지 전이된 것이다.
“망할…….”
여울은 자신의 복장을 살폈다.
던전에서 고블린과 드잡이질을 한 탓에 전신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돌아가는 길이 절대 평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실례합니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던 여울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푸짐한 몸매의 그는 가디언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던전의 관리자인가?’
기본적으로 던전의 소유권은 ‘가디언’이라 불리는 관리자 개인에게 있다.
오로지 가디언만이 소유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들은 던전의 입장료와 수익의 일부를 받는다.
물론 출입하는 헌터, 던전 브레이크까지 남은 일수 따위를 관리하는 의무도 있었다.
이 남자는 이곳 던전의 관리자일 것이다.
“D랭크 가디언 최영우라고 합니다. 이곳 서울 D-06을 관리하고 있죠. 실례지만 쉐도우 슬레이어인 은여울 헌터님 맞으십니까?”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울을 알아봤다.
하지만 이상할 것도 없다.
비록 온라인상에서는 버스충이라 불리며 조롱받고 있지만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각성자들 사이에서 슬레이어는 명예로운 칭호다.
정보에 민감해야 하는 가디언인 만큼 최영우가 여울을 알아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경직된 표정을 지으며 여울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금 전 서울 D-06에서 나오신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서울 D-06의 공략허가는 내려와 있지 않으며, 저는 누군가가 던전에 들어가는 것 역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들어간 자는 없는데 나오는 자가 존재한다.
당연히 던전에서 걸어 나온 여울의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지?’
여울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정황은 충분히 의심을 받을만한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울은 어디까지나, 물론 아직 추정일 뿐이지만 김진우의 계략에 당했을 뿐이지 아무런 죄가 없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유니온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울을 던전에 날려 보낸 상대는 거대 길드의 마스터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을 운영하는 총수가 아끼는 아들이기도 하다.
법은 서민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울은 금빛의 열쇠를 증거로써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열쇠 하나만으로 거대 길드 마스터의 죄를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
끽해야 꼬리 자르기, 심할 경우는 오히려 여울의 안전이 위험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설사 죄를 입증한다 할지라도 김진우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죄의 크기를 줄일 것이다.
말도 안 될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만으로 풀려날 김진우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배알이 뒤틀렸다.
반면 여울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십억을 호가하는 보스 몬스터의 코어를 사용했다.
그만한 대가를 받아내지 않으면 잠을 자도 편히 잔 것 같지가 않을 것이다.
‘응징은 천천히 내 손으로 한다. 어떻게 하면 그 빌어먹을 놈에게 최고의 괴로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네.’
지금은 인내해야할 때다.
그에게는 이차원 요리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마력 수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 손에 있는 한, 시간은 여울의 편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여울은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았는데, 갑자기 던전으로 전이됐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전이계열 아이템을 사용하는 살해 방법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하셨나요?”
“전혀. 보다시피 대인관계 원만한 선량한 시민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물건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어쩌면 범인을 추적하는 데 용이한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던전 안에서 전투 도중 분실했습니다.”
“…….”
입을 닫은 최영우는 여울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하지만 여울은 표정 변화는 고사하고 눈가의 근육조차 움찔거리지 않은 채 최영우의 시선을 받아냈다.
“그보다 졸지에 전투를 벌여야 했던 까닭에 피곤합니다. 어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네요.”
결국 최영우는 여울을 향한 의심의 시선을 거두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최영우의 시선이 던전의 게이트로 향했다.
그가 관리하고 있던 서울 D-06은 신생 던전으로, 난이도가 E로 측정되어 있다.
하지만 던전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다가 보수마저 기대할 수 없어 방문하는 공략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즉 던전 내부에는 상당한 수의 몬스터가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
‘그걸 전부 쓰러뜨린 건가? 혼자서?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분명 쉐도우 슬레이어 은여울은 F랭크 헌터라고 들은 것 같은데?’
* * *
서울 D-06에서 있었던 사건은 여울에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의 전투방식이 몬스터로부터 훔쳐온 특성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것.
또 다른 점은 그 특성을 얻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너무도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특성을 얻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재료로 요리를 해서 직접 섭취해야만 한다.
즉, 즉효성이 너무 떨어진다.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울은 한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한 입 사이즈의 요리를 만들어서 차원 냉장고에 보관해야겠어. 요리의 등급이 한 단계 하락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이를 위해 여울이 생각한 메뉴는 만두였다.
맛도 좋고 먹기도 편하므로 여울이 바라는 역할을 톡톡히 완수해줄 것이다.
그리고 우선은 마력이 상승하는 메커니즘을 파악해야한다.
마력의 상승이 한 접시가 기준인지. 아니면 일정량을 섭취해야 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히 먹었다는 인식만으로도 가능한 것인지를 알아야 스킬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두소에는 보스 몬스터의 고기를 첨가했으며 그 외의 것은 일반적으로 만드는 만두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했다.
물론 특유의 과도한 단맛을 잡아내기 위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뭘 어떻게 섞어야 맛있는 만두를 만들 수 있을까…….”
매운 맛을 내는 청양 고추나 씁쓸하면서도 식감을 보태줄 봄나물을 보태는 등,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양파의 즙이 섞이면 돌출적인 단맛을 어느 정도 잡아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열 개의 시제품 만두가 완성됐다.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만두를 먹을 때마다 마력 수치가 상승하는 것.
반대로 최악의 경우라 한다면 열 개의 만두 전부를 먹어야 마력 수치가 상승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잘 먹겠습니다.”
여울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만두 하나를 입으로 옮겼다.
뜨거운 만두를 깨물자 얇은 만두피 아래에 숨어있던 만두소가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