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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어찌되었건 피해야 할 공격이 늘었을 뿐이다.
여울은 하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횃불을 떨어뜨렸다.
촤악!
물의 화살이 여울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졌다.
여울은 슬쩍 고개를 젖히는 것만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목표를 놓친 물의 화살은 여울의 배후에 있던 횃불을 쏘아 맞혔다.
고정된 자리에서 크게 벗어난 횃불은 우연히 슬라임을 향해 떨어졌다.
[……!]
그러자 슬라임은 여울을 공격하던 모든 행동을 정지하고 급하게 횃불을 피했다.
“피했단 말이지?”
그것을 목격한 여울은 음험하다 못해 흉악하기까지 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슬라임은 여울의 공격을 단 한 차례도 회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다.
그것은 여울의 공격이 자신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슬라임이 불을 피했다.
그것은 곧 불을 이용해 슬라임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몇 개의 횃불을 집어든 여울은 슬라임을 향해 그것을 내던졌다.
이번에도 슬라임은 그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슬라임의 약점, 찾았다!’
남은 것은 그 약점을 악랄하다 여겨질 만큼 괴롭혀주는 것뿐이다.
“흡!”
여울의 손을 떠난 횃불은 마치 표창처럼 회전하며 슬라임에게 박혀 들었다.
[끼이이이익!]
처음으로 슬라임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천적에게 목덜미를 물린 초식동물의 비명 같았다.
치이익!
불꽃이 닿은 부분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슬라임의 푸르던 빛깔이 갈색으로 변하고 수분을 잃어버린 것처럼 고체로 변했다.
괴로움에 몸서리치는 슬라임의 움직임은 전과 비교해 확연히 둔해져 있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휘두른 단검이 고체로 변한 슬라임에 닿았다.
이제까지는 여울의 공격을 모조리 무시했던 슬라임이 지금은 그 특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단검은 손쉽게 슬라임의 신체에 파고들었다.
살점을 가르고 내부를 파낸 단검이 가장 깊숙하게 있던 슬라임의 뇌를 찔렀다.
푸욱!
손끝에 전해지는 섬뜩한 감각과 함께 슬라임이 행동을 정지했다.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이는 여울의 입가에는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의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통로를 막고 있던 슬라임을 격파하는 데 성공한 여울은 복도의 반대쪽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는 미닫이로 추정되는 거대한 문이 여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문을 여닫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문은 여울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열렸다.
문을 열자 내부로부터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왔기에 여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냄새는… 고블린이군.’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약점을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슬라임이었다면 제법 까다로운 전투가 되었을 것이다.
고블린이라면 단두대의 효과를 십분 발휘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진 여울은 주저 없이 정면의 어둠으로 들어갔다.
[크르르…….]
어둠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여울의 예상보다 상당히 낮고 굵다.
여울은 미리 챙겨놨던 횃불 몇 개를 주변에 던졌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행동반경이 좁아지겠지만, 그 이상으로 적의 정체와 머릿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타오르는 불길이 어두운 방 안을 밝혀주었다.
[키익. 키이익!]
예상대로 적은 고블린이었다.
수는 대략 10여 마리.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 고블린들 사이에 챔피언이라 불리는 놈이 둘이나 끼어있다는 것이다.
한 마리는 오크나 오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덩치가 거대했다.
다른 한 마리는 일반 고블린보다 더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뼈로 만든 투구를 쓰고 커다란 나무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몬스터 중에는 마법이라 부를만한 특성을 가진 놈들도 있다고 했어. 저놈이 아마 그런 종류겠지.’
그 외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신경 쓸 적은 두 마리다.
여울은 전투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키에엑!]
이들의 우두머리는 해골을 쓴 고블린인 모양이었다.
놈이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며 소리치자 고블린들이 일제히 여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열 마리가 넘는 괴물이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며 달려드는 모습은 제법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가장 주의해야 할 적은 따로 있었다.
쿵! 쿵!
비록 속도는 다른 고블린보다 느리지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굉음이 울렸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덩치다.
무려 3미터에 달하는 저 괴물의 목에 닿기 위해서는 무언가 수를 내야만 했다.
‘일단은 머릿수를 줄여야겠어.’
여울은 횃불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에 스며들어 모습을 숨겼다.
암시로도 여울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전력으로 질주하던 고블린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느려지기 시작한 놈들의 발이 어느덧 완전히 멈춰 섰다.
고블린들은 두리번대며 여울의 모습을 추적하려 했다.
여울은 그 틈을 노려 고블린들의 목을 잘라냈다.
서걱!
어둠에 몸을 숨기고 단두대의 효과를 적극 사용해 기계적으로 목을 베어내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작업이다.
여울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고블린들의 수를 차례차례 줄여나갔다.
하지만 단순한 고블린 무리와 우두머리가 있는 고블린의 무리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키에엑!]
우두머리가 소리치자 고블린들은 여울이 시야 확보를 위해 던져놓은 횃불의 영역으로 도망쳤다.
‘고블린이 어느 정도 두뇌를 쓸 줄 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놈은 유난히 똑똑한 모양이네.’
여울은 곁눈질로 바닥을 굴러다니는 머리의 개수를 헤아렸다.
‘고작 세 개. 절반도 줄이지 못했어. 그렇다면 조금 무리하더라도 적의 머리를 먼저 처리한다.’
여울은 다음 목표를 고블린 리더로 결정했다.
쓰러뜨리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휘체계만 무너뜨리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일 터.
지시를 내리느라 정작 본인은 피하지 못한 듯, 고블린 리더는 아직까지도 어두운 영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둠에 녹아들어 고블린 리더의 뒤를 잡는 데 성공한 여울은 그 가느다란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울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걸로 적의 목을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적의 수준을 너무 낮추어 본 오만이었다.
콰직!
여울과 고블린 리더의 사이에 생겨난 푸른색의 막이 여울의 공격을 막아냈다.
‘마력으로 만든 방패? 젠장! 설마 함정이었나!’
기습이 실패했음을 인지한 순간 여울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고블린 리더의 반응도 여울 못지않게 빨랐다.
지팡이의 끝이 바닥을 때리는 순간.
콰앙!
고블린 리더의 주변으로 강한 폭발이 발생했다.
맹렬한 불꽃이 토해내는 열풍이 여울의 신체를 밀어냈다.
다행이도 불꽃이 직접 닿는 범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불꽃으로 인해 발생한 빛에 여울의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우어어어!]
거대한 덩치의 고블린이 여울을 향해 전력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들켜버린 이상 어쩔 수 없나.’
자신의 상반신만큼이나 거대한 주먹을 여울은 간발의 차이로 회피했다.
온힘을 다한 주먹은 바닥에 내리꽂혀 틀어박혔다.
여울은 회수되지 못한 근육질의 팔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우렁찬 비명과 함께 붉은 피가 솟구쳤다.
‘이만한 덩치니까 한 번으로는 당연히 부족하겠지.’
단검을 회수한 여울은 두 번, 세 번 팔뚝에 상처를 만들었다.
반면 덩치 고블린의 공격은 단 한 차례도 여울에게 적중되지 못했다.
민첩성은 여울의 쪽이 압도적으로 위다.
하지만.
‘단검이 빠지질 않아!’
근력에서는 덩치 고블린 쪽이 압도적이었다.
단검이 박혀 드는 순간, 덩치 고블린이 팔에 힘을 주자 근육이 칼날을 붙잡았다.
아쉽지만 현재 여울의 근력으로는 덩치 고블린의 근력을 이겨내고 단검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여울은 단검에서 손을 놓고 물러나며 뒤쪽으로 차원 냉장고를 오픈했다.
[키이이익!]
뜨거운 무언가가 주변을 밝히며 여울을 향해 날아왔다.
고블린 리더가 쏘아 보낸 거대한 화염의 구체였다.
그와 동시에 퇴로를 차단하듯 고블린 한 마디가 뛰어들었다.
틀림없이 고블린 리더의 지시일 것이다.
완벽한 설계였지만, 여울은 다음 행동을 실행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퇴로를 막을 거면 덩치 고블린으로 했어야지.’
전달되지 않을 조언을 남긴 여울은 자신의 뒤를 잡은 고블린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정면으로 내밀었다.
[키익?!]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화염구를 보고 고블린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송사리에 불과한 고블린에게는 여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만큼의 근력이 없었다.
퍼엉!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졸지에 방패가 된 고블린은 새까만 시체가 되어서야 여울의 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여유시간을 이용해 여울은 차원 냉장고에서 여러 개의 식칼을 꺼냈다.
조금 전 이용한 주방에서 챙겨온 것들이었다.
‘요리 도구를 요리 외의 용도에 사용하는 건 요리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여러 개의 식칼에 마력이 깃들었다.
비록 마력회로가 새겨져 있지 않아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F랭크 몬스터인 고블린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일 것이다.
상당량의 마력을 사용했기에 조금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잠깐 숨을 돌릴 여유도 없이 여울은 스킬을 사용했다.
“부위 도축.”
추가로 스킬을 사용하자 덩치 고블린의 신체에 빛나는 선이 생겨났다.
부위 도축은 단단한 부위를 보다 쉽게 가를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다.
그걸 살아있는 적에게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
그 호기심의 결과는 놀라웠다.
여울은 무기로 변모시킨 식칼들을 덩치 고블린의 신체에 차례차례 꽂아 넣었다.
빛나는 선이 생겨난 부위.
그중에서도 급소라 부를만한 곳을 집요하게 노렸다.
푸확! 촤악!
그 단단한 근육에 너무도 쉽게 칼날이 틀어박혔다.
마치 두부를 가르는 것 같았다.
[우어어어!]
괴로움에 몸을 비틀던 덩치 고블린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허리를 굽힌 덩치 고블린은 마치 망나니를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보였다.
“죽어라.”
떨어진 것은 망나니의 검이 아니라 여울의 손날.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피 분수가 솟구치고 덩치 고블린의 머리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닥을 뒹굴었다.
[키이익!]
두려움을 모르고 몸을 던지던 일반 고블린들도 전부 같은 신세가 됐다.
남아있는 것은 화염을 사용하는 고블린 리더뿐.
부하들을 모두 잃은 고블린 리더는 명백히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콰앙! 콰앙!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여울을 찾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화염구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방 안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그래도 여울은 초조해하지 않았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특성을 사용하는 데도 마나가 소모된다.’
그리고 소모되는 양은 특성의 종류와 위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민첩 증대나 어둠 친화같은 경우는 소모가 미미한 수준이지만, 단두대는 제법 많은 마력을 잡아먹었다.
고블린 리더가 사용하는 화염 역시 마력 소모가 적지는 않을 터.
여울은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키익?]
고블린 리더가 손을 뻗었지만 화염이 쏘아지지 않았다.
자신의 마력이 고갈되었음을 깨달은 고블린 리더로부터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전해져왔다.
‘지금이다!’
기회를 잡은 여울이 어둠으로부터 뛰쳐나갔다.
그의 손에는 단두대를 사용한 증거로 검은 기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손날이 고블린 리더의 목에 닿기 직전.
강한 어지럼증과 함께 검은 기류가 사라졌다.
어찌되었건 피해야 할 공격이 늘었을 뿐이다.
여울은 하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횃불을 떨어뜨렸다.
촤악!
물의 화살이 여울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졌다.
여울은 슬쩍 고개를 젖히는 것만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목표를 놓친 물의 화살은 여울의 배후에 있던 횃불을 쏘아 맞혔다.
고정된 자리에서 크게 벗어난 횃불은 우연히 슬라임을 향해 떨어졌다.
[……!]
그러자 슬라임은 여울을 공격하던 모든 행동을 정지하고 급하게 횃불을 피했다.
“피했단 말이지?”
그것을 목격한 여울은 음험하다 못해 흉악하기까지 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슬라임은 여울의 공격을 단 한 차례도 회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다.
그것은 여울의 공격이 자신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슬라임이 불을 피했다.
그것은 곧 불을 이용해 슬라임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몇 개의 횃불을 집어든 여울은 슬라임을 향해 그것을 내던졌다.
이번에도 슬라임은 그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슬라임의 약점, 찾았다!’
남은 것은 그 약점을 악랄하다 여겨질 만큼 괴롭혀주는 것뿐이다.
“흡!”
여울의 손을 떠난 횃불은 마치 표창처럼 회전하며 슬라임에게 박혀 들었다.
[끼이이이익!]
처음으로 슬라임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천적에게 목덜미를 물린 초식동물의 비명 같았다.
치이익!
불꽃이 닿은 부분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슬라임의 푸르던 빛깔이 갈색으로 변하고 수분을 잃어버린 것처럼 고체로 변했다.
괴로움에 몸서리치는 슬라임의 움직임은 전과 비교해 확연히 둔해져 있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휘두른 단검이 고체로 변한 슬라임에 닿았다.
이제까지는 여울의 공격을 모조리 무시했던 슬라임이 지금은 그 특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단검은 손쉽게 슬라임의 신체에 파고들었다.
살점을 가르고 내부를 파낸 단검이 가장 깊숙하게 있던 슬라임의 뇌를 찔렀다.
푸욱!
손끝에 전해지는 섬뜩한 감각과 함께 슬라임이 행동을 정지했다.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이는 여울의 입가에는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의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통로를 막고 있던 슬라임을 격파하는 데 성공한 여울은 복도의 반대쪽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는 미닫이로 추정되는 거대한 문이 여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문을 여닫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문은 여울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열렸다.
문을 열자 내부로부터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왔기에 여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냄새는… 고블린이군.’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약점을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슬라임이었다면 제법 까다로운 전투가 되었을 것이다.
고블린이라면 단두대의 효과를 십분 발휘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진 여울은 주저 없이 정면의 어둠으로 들어갔다.
[크르르…….]
어둠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여울의 예상보다 상당히 낮고 굵다.
여울은 미리 챙겨놨던 횃불 몇 개를 주변에 던졌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행동반경이 좁아지겠지만, 그 이상으로 적의 정체와 머릿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타오르는 불길이 어두운 방 안을 밝혀주었다.
[키익. 키이익!]
예상대로 적은 고블린이었다.
수는 대략 10여 마리.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 고블린들 사이에 챔피언이라 불리는 놈이 둘이나 끼어있다는 것이다.
한 마리는 오크나 오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덩치가 거대했다.
다른 한 마리는 일반 고블린보다 더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뼈로 만든 투구를 쓰고 커다란 나무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몬스터 중에는 마법이라 부를만한 특성을 가진 놈들도 있다고 했어. 저놈이 아마 그런 종류겠지.’
그 외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신경 쓸 적은 두 마리다.
여울은 전투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키에엑!]
이들의 우두머리는 해골을 쓴 고블린인 모양이었다.
놈이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며 소리치자 고블린들이 일제히 여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열 마리가 넘는 괴물이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며 달려드는 모습은 제법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가장 주의해야 할 적은 따로 있었다.
쿵! 쿵!
비록 속도는 다른 고블린보다 느리지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굉음이 울렸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덩치다.
무려 3미터에 달하는 저 괴물의 목에 닿기 위해서는 무언가 수를 내야만 했다.
‘일단은 머릿수를 줄여야겠어.’
여울은 횃불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에 스며들어 모습을 숨겼다.
암시로도 여울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전력으로 질주하던 고블린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느려지기 시작한 놈들의 발이 어느덧 완전히 멈춰 섰다.
고블린들은 두리번대며 여울의 모습을 추적하려 했다.
여울은 그 틈을 노려 고블린들의 목을 잘라냈다.
서걱!
어둠에 몸을 숨기고 단두대의 효과를 적극 사용해 기계적으로 목을 베어내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작업이다.
여울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고블린들의 수를 차례차례 줄여나갔다.
하지만 단순한 고블린 무리와 우두머리가 있는 고블린의 무리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키에엑!]
우두머리가 소리치자 고블린들은 여울이 시야 확보를 위해 던져놓은 횃불의 영역으로 도망쳤다.
‘고블린이 어느 정도 두뇌를 쓸 줄 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놈은 유난히 똑똑한 모양이네.’
여울은 곁눈질로 바닥을 굴러다니는 머리의 개수를 헤아렸다.
‘고작 세 개. 절반도 줄이지 못했어. 그렇다면 조금 무리하더라도 적의 머리를 먼저 처리한다.’
여울은 다음 목표를 고블린 리더로 결정했다.
쓰러뜨리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휘체계만 무너뜨리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일 터.
지시를 내리느라 정작 본인은 피하지 못한 듯, 고블린 리더는 아직까지도 어두운 영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둠에 녹아들어 고블린 리더의 뒤를 잡는 데 성공한 여울은 그 가느다란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울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걸로 적의 목을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적의 수준을 너무 낮추어 본 오만이었다.
콰직!
여울과 고블린 리더의 사이에 생겨난 푸른색의 막이 여울의 공격을 막아냈다.
‘마력으로 만든 방패? 젠장! 설마 함정이었나!’
기습이 실패했음을 인지한 순간 여울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고블린 리더의 반응도 여울 못지않게 빨랐다.
지팡이의 끝이 바닥을 때리는 순간.
콰앙!
고블린 리더의 주변으로 강한 폭발이 발생했다.
맹렬한 불꽃이 토해내는 열풍이 여울의 신체를 밀어냈다.
다행이도 불꽃이 직접 닿는 범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불꽃으로 인해 발생한 빛에 여울의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우어어어!]
거대한 덩치의 고블린이 여울을 향해 전력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들켜버린 이상 어쩔 수 없나.’
자신의 상반신만큼이나 거대한 주먹을 여울은 간발의 차이로 회피했다.
온힘을 다한 주먹은 바닥에 내리꽂혀 틀어박혔다.
여울은 회수되지 못한 근육질의 팔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우렁찬 비명과 함께 붉은 피가 솟구쳤다.
‘이만한 덩치니까 한 번으로는 당연히 부족하겠지.’
단검을 회수한 여울은 두 번, 세 번 팔뚝에 상처를 만들었다.
반면 덩치 고블린의 공격은 단 한 차례도 여울에게 적중되지 못했다.
민첩성은 여울의 쪽이 압도적으로 위다.
하지만.
‘단검이 빠지질 않아!’
근력에서는 덩치 고블린 쪽이 압도적이었다.
단검이 박혀 드는 순간, 덩치 고블린이 팔에 힘을 주자 근육이 칼날을 붙잡았다.
아쉽지만 현재 여울의 근력으로는 덩치 고블린의 근력을 이겨내고 단검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여울은 단검에서 손을 놓고 물러나며 뒤쪽으로 차원 냉장고를 오픈했다.
[키이이익!]
뜨거운 무언가가 주변을 밝히며 여울을 향해 날아왔다.
고블린 리더가 쏘아 보낸 거대한 화염의 구체였다.
그와 동시에 퇴로를 차단하듯 고블린 한 마디가 뛰어들었다.
틀림없이 고블린 리더의 지시일 것이다.
완벽한 설계였지만, 여울은 다음 행동을 실행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퇴로를 막을 거면 덩치 고블린으로 했어야지.’
전달되지 않을 조언을 남긴 여울은 자신의 뒤를 잡은 고블린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정면으로 내밀었다.
[키익?!]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화염구를 보고 고블린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송사리에 불과한 고블린에게는 여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만큼의 근력이 없었다.
퍼엉!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졸지에 방패가 된 고블린은 새까만 시체가 되어서야 여울의 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여유시간을 이용해 여울은 차원 냉장고에서 여러 개의 식칼을 꺼냈다.
조금 전 이용한 주방에서 챙겨온 것들이었다.
‘요리 도구를 요리 외의 용도에 사용하는 건 요리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여러 개의 식칼에 마력이 깃들었다.
비록 마력회로가 새겨져 있지 않아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F랭크 몬스터인 고블린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일 것이다.
상당량의 마력을 사용했기에 조금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잠깐 숨을 돌릴 여유도 없이 여울은 스킬을 사용했다.
“부위 도축.”
추가로 스킬을 사용하자 덩치 고블린의 신체에 빛나는 선이 생겨났다.
부위 도축은 단단한 부위를 보다 쉽게 가를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다.
그걸 살아있는 적에게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
그 호기심의 결과는 놀라웠다.
여울은 무기로 변모시킨 식칼들을 덩치 고블린의 신체에 차례차례 꽂아 넣었다.
빛나는 선이 생겨난 부위.
그중에서도 급소라 부를만한 곳을 집요하게 노렸다.
푸확! 촤악!
그 단단한 근육에 너무도 쉽게 칼날이 틀어박혔다.
마치 두부를 가르는 것 같았다.
[우어어어!]
괴로움에 몸을 비틀던 덩치 고블린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허리를 굽힌 덩치 고블린은 마치 망나니를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보였다.
“죽어라.”
떨어진 것은 망나니의 검이 아니라 여울의 손날.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피 분수가 솟구치고 덩치 고블린의 머리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닥을 뒹굴었다.
[키이익!]
두려움을 모르고 몸을 던지던 일반 고블린들도 전부 같은 신세가 됐다.
남아있는 것은 화염을 사용하는 고블린 리더뿐.
부하들을 모두 잃은 고블린 리더는 명백히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콰앙! 콰앙!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여울을 찾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화염구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방 안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그래도 여울은 초조해하지 않았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특성을 사용하는 데도 마나가 소모된다.’
그리고 소모되는 양은 특성의 종류와 위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민첩 증대나 어둠 친화같은 경우는 소모가 미미한 수준이지만, 단두대는 제법 많은 마력을 잡아먹었다.
고블린 리더가 사용하는 화염 역시 마력 소모가 적지는 않을 터.
여울은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키익?]
고블린 리더가 손을 뻗었지만 화염이 쏘아지지 않았다.
자신의 마력이 고갈되었음을 깨달은 고블린 리더로부터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전해져왔다.
‘지금이다!’
기회를 잡은 여울이 어둠으로부터 뛰쳐나갔다.
그의 손에는 단두대를 사용한 증거로 검은 기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손날이 고블린 리더의 목에 닿기 직전.
강한 어지럼증과 함께 검은 기류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