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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어둠 속에서는 여울 역시 상대의 모습을 간파할 수 없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상당히 요란스럽게 움직여주는 덕에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여울은 가장 소란을 피우고 있는 고블린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었다.
손이 닿기도 전에 넘실거리던 기류가 먼저 고블린의 목에 닿았다.
그 순간.
서걱!
예리한 소리와 함께 여지없이 고블린의 머리와 몸이 분리됐다.
고블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자신이 죽은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 표정에서는 일말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한 놈.’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고블린 하나를 퇴치하는 데 성공한 여울은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여울의 모습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고블린들은 동료의 죽음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때문에 여울은 너무도 손쉽게 다음 사냥감을 노릴 수 있었다.
서걱! 툭. 서걱! 툭.
살아 움직이는 몬스터의 목을 마치 기계처럼 베어냈다.
그렇게 다섯 마리의 목을 몸과 이별시켰을 때였다.
[키에엑!]
비로소 동료의 죽음을 인지한 고블린이 비명을 질렀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파악한 고블린들은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뭉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수를 줄여놔야겠어.’
여울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민첩 증대의 효과를 살려 화살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일격에 한 놈의 생명을 빼앗았다.
전과는 달리 단두대의 확률도 100%다.
실패를 가정할 필요가 없으니 사냥의 효율도 압도적이었다.
결국 절반 가까이의 희생을 낳고서야 고블린들은 한데 뭉칠 수 있었다.
그들은 여울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을 향해 괴성을 내지르며 적의를 발산했다.
‘조금 귀찮게 됐지만…….’
어차피 저놈들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여울은 고블린 무리를 향해 주저 없이 몸을 던졌다.
가장 외곽에 서 있던 고블린의 목부터 차례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쌓이고 쌓인 죽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짙은 혈향이 코를 찔렀다.
[키이익!]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계속해서 동료들이 죽어 나가자 멍청한 고블린들도 여울의 모습을 암시(暗視)로는 꿰뚫을 수 없음을 인지했다.
그들은 어둠을 향해 마구잡이로 손을 휘둘렀다.
애먼 공격이 동료들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미친 듯이 팔을 휘둘러댔다.
아직 전투경험이 미숙한데다가 암시를 갖지 못한 여울에게는 다수가 행하는 마구잡이식 공격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촤악!
날카로운 고블린의 손톱은 여울이 입고 있던 얇은 의복을 찢고 피부를 꿰뚫었다.
여울의 피와 고블린이 흘린 피가 한데 뭉쳐 흘러내렸다.
‘쳇!’
혀를 차는 것으로 통증을 무시한 여울은 계속해서 고블린을 쓰러뜨렸다.
입가에는 큼지막한 미소를 드리운 채.
계속해서 살육을 진행해갔다.
‘이 특성이 있으면…….’
압도적인 힘 앞에서 맥없이 쓰러지는 고블린들을 보며 여울은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의 정체는 폭발적인 희열이었다.
‘사냥할 수 없는 몬스터 따위는 없어!’
이 던전의 공략 따위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 *

“후우…….”
어두운 방까지 따라온 고블린들을 전부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 여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했다.
물론 그냥 휴식을 취한 것은 아니다.
특성이 유지되는 것은 고작 한 시간.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을 휴식에 사용하는 것이 낭비라 여긴 여울은 고블린들의 사체를 모아두고 코어를 뽑아냈다.
고블린의 고기는 도축하지 않았다.
인간과 유사한 부분이 있는 생김새에 이족보행을 하는 몬스터를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동일한 몬스터로 마력을 반복해 높일 수 없다면 가장 효율이 높은 코어로 흡수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나저나, 동영상으로 봤을 때는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도축 작업도 의외로 어렵네.”
코어는 몬스터의 심장이 된다.
따라서 코어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가죽과 근육을 잘라내고 뼈를 부숴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상처 없이 빼내야만 한다.
그것은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었다.
“어째서 전투원들이 서포터를 데리고 다니는지 이제야 알겠다.”
겨우 두 개의 코어를 뽑아냈을 뿐인데 정신적인 피로가 상당했다.
이래서야 전혀 휴식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지금껏 사용할 일이 없어 까맣게 잊고 있던 스킬을 떠올린 여울은 멋쩍게 웃었다.
“부위 도축.”
코어도 몬스터의 신체 일부라면 그것을 효율적으로 도려내는 부위 도축이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스킬을 사용하자 대상으로 삼은 고블린의 신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빛의 선이 고블린의 신체를 분류하고 있었다.
“이 선이 고기를 부위별로 분류하고 있는 건가?”
여울은 빛의 선을 따라 단검을 꽂아 넣었다.
스킬의 효과 때문일까.
조금 전과 비교해 전혀 힘들이지 않고 고블린의 사체를 잘라낼 수 있었다.
게다가 부위 도축의 효과는 단순히 도축의 편리함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여울이 정확하게 열세 번째 코어를 뽑아냈을 때였다.

<완벽한 도축 성공! 코어의 등급이 1단계 상승합니다.>

요리를 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재료등급이 상승했다.
물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남아있는 사체 전부를 도축했지만 높은 등급의 코어를 도축한 것은 그 1회뿐이었다.
“실패한 것을 제외하면 코어는 전부 19개 정도인가.”
고작해야 F랭크 몬스터의 코어지만 일단은 코어다.
만약 이를 판매한다면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19개는 여울이 자신의 능력향상을 위해 사용하고도 충분히 남는 양이었다.
역시 헌터는 돈이 된다.
물론 소모한 보스 몬스터의 코어에 비하면 19개 코어의 가치는 실로 미미하다.
본전을 뽑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완전히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단검에 묻은 피를 옷자락으로 대충 닦아낸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몬스터 무리를 찾아볼까?”
전투가, 돈을 뽑아낼 수 있는 그 순간이 굉장히 기대됐다.
“아, 하지만 그 전에.”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 여울은 부리나케 횃불을 들고 식당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식당을 벗어난 여울의 손에는 예의 그 열쇠가 들려 있었다.
“보석이 빠져버려서 찾느라 한참이나 헤맸네. 일단 아무렇게나 끼워 넣기는 했지만, 고장 나지는 않았겠지?”

* * *

단두대가 있으면 상대가 어떤 적이라도 간단하게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고작 몇 분 전이었다.
하지만 현재 여울은 눈앞에 적을 두고 그 생각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무적의 특성은 없다는 건가.”
단두대는 확실히 사기라 해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경이로운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완전무결이라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두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격이 상대방의 목에 닿지 않으면 안 된다.
[우우우우.]
꾸물꾸물.
그리고 눈앞에 있는 몬스터에게는 목이 없다.
현재 여울은 점액질의 몬스터와 마주하고 있었다.
상대는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지 못했으며 시시각각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여울은 해당 몬스터와 조우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이름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슬라임?”
그 외에는 해당 몬스터를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목이 없는 놈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지금껏 여울의 전투는 오로지 단두대의 특성을 이용해 적의 목을 베어버리는 식일뿐이었다.
하지만 목이 없는 슬라임에게는 그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장소도 여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슬라임은 복도 한가운데를 틀어막고 있었으며 복도에 장식된 횃불은 빛을 만들어낸다.
그 빛은 어둠 친화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결국 남아있는 것은 민첩 증대뿐인가.’
과연 이것만으로 강함의 수준조차 알 수 없는 슬라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저놈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던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이 던전은 오로지 하나의 통로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통로를 틀어막고 있는 슬라임을 퇴치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가볼까.”
여울이 각오를 다잡는 것과 동시에 슬라임의 공격이 날아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슬라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여울은 주저 없이 몸을 던졌다.
콰앙!
슬라임이 신체를 변형해 휘두른 채찍은 여울이 서 있던 자리를 강하게 두드렸다.
바닥이 깊게 파일 만큼 강력한 일격이다.
슬라임은 여러 개의 촉수를 흔들어대며 여울을 위협했다.
단검을 뽑아 든 여울은 신속히 앞으로 내달렸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역수로 쥔 단검을 강하게 내리꽂았다.
단검의 표면에는 희미한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촤악!
단검이 슬라임의 신체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단검을 뽑아드는 순간 갈라졌던 부위가 다시 붙었다.
‘설마 물리 공격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건가? 아니면 재생력?’
만약 전자라면 물리 공격 외에는 수단이 없던 여울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촤악!
분노한 슬라임이 촉수를 휘둘렀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촉수의 끝부분이 모닝스타와 비슷한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침착하게 공격 루트를 파악한 여울은 좌측으로 뛰어 공격을 회피했다.
쾅! 콰앙!
슬라임의 모닝스타가 여울이 지나간 자리를 내리쳤다.
자잘하게 부서진 돌파편이 뺨을 스쳤다.
찢어진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피를 닦아낼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휘익!
매섭게 쏘아지는 촉수의 끝이 이번에는 칼날 모양이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 여울의 눈앞으로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죽겠네.’
높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는 마력을 둘러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E랭크에 도달했을 뿐인 여울은 그 정도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말이지 위험천만한 전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미소가 흘러나왔다.
‘일단은 환경을 내가 전투하기에 좋은 쪽으로 바꾸자.’
현재는 활용할 수 없는 어둠 친화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빛을 지워낼 필요가 있었다.
여울은 단검을 휘둘러 벽면의 횃불을 쳐냈다.
떨어진 횃불은 통로의 양쪽에 흐르는 수로에 떨어져 연기를 토하며 맥없이 꺼져버렸다.
그렇게 몇 개인가 횃불을 지우니 주변이 제법 어두워졌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복도를 완전히 어둠에 잠기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이 주변만큼은…….’
촤악!
다음 횃불을 향해 이동하던 여울의 어깨를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손을 가져다 대니 살짝 벌어진 상처로부터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횃불을 꺼뜨리는 도중에도 슬라임의 촉수에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여울은 조금 더 주의 깊게 슬라임의 행동을 살폈다.
그 결과 슬라임으로부터 빠져나온 작은 촉수 하나가 수로에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당 촉수는 꿀렁거리며 수로의 물을 흡수해댔다.
그리고는 그렇게 빨아올린 물을 입으로 화살처럼 쏘아냈다.
‘이 수로. 내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