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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어둠 속에 숨은 여울은 보스 몬스터와 김진수의 처절한 공방을 지켜봤다.
자신이 완전히 버려졌다는 것을 깨달은 김진수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다.
“꺼져! 꺼지란 말이야!”
그는 손에 집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물론 단순한 투척은 아니었다.
그의 손을 거친 것은 모두가 폭탄이 되어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퐁!
동굴 내에 존재하는 것은 대부분이 돌멩이나 흙덩이뿐이다.
그런 것들의 재물 가치는 상당히 낮다.
그에 따라 폭발의 세기도 자연히 애교 수준으로 추락했다.
반면 보스 몬스터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일격필살이라 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푸확!
낫을 닮은 발톱을 휘두를 때마다 피가 튀고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가며 단면에서 뼈가 돌출됐다.
“끄억. 커헉!”
간간히 들려오던 비명도 이제는 폐 속의 공기를 토해내는 정도까지 격하됐다.
앞으로 두 번 정도면 김진수의 목숨은 끊어질 것이다.
‘움직이려면 지금밖에 없어.’
여울은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방해가 되는 하유리를 내려놓았다.
어둠 친화는 여울의 신체를 완전히 가려주었지만 하유리까지 덮어주지는 않는다.
계획의 성공을 위해서는 완전히 어둠 속에 스며들 필요가 있다.
하유리를 내려놓자 흐릿하게나마 확인이 가능하던 그의 모습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작전대로만 하면 돼. 확률은 반반이지만 잘만 되면 나도, 하유리도 살 수 있어.’
그는 차분히 보스 몬스터의 뒤를 점했다.
보스 몬스터는 꺼져가는 김진수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심장은 미친 듯 뛰었지만 그의 머리는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저놈의 눈은 평범한 인간과 똑같아.’
다행히 보스 몬스터는 암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증거로 중년 헌터를 살해한 직후 보스 몬스터는 바로 근처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여울이 아니라 요란을 떠는 김진수의 뒤를 쫓았다.
보스 몬스터가 대상을 발견하는 방법은 소리와 빛.
생김새로 미루어볼 때 후각도 뛰어날 가능성이 있다.
여울이 두른 어둠은 모습을 가려주고 냄새를 차단해준다.
남은 것은 최대한 소리를 죽여 접근하는 것뿐이다.
반대로 여울 역시 어둠 속에서는 보스 몬스터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보이는 것이라곤 이따금 번뜩이는 흉흉한 안광뿐.
그렇기 때문에 여울은 김진수를 미끼로 택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적은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언가에 몰두하느라 움직이지 않는 적을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걸로 보스 몬스터의 위치는 특정했어. 남은 것은 일격을 꽂아 넣는 것뿐…….’
자신의 손을 빤히 내려다보는 여울의 눈빛은 진득한 살기로 번득이고 있었다.
여울이 세운 탈출계획.
그것은 단순하게 미끼를 던져놓고 그 틈을 이용해 도망가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의 죽음.
그로 인한 던전의 완전공략.
그것이 여울이 세운 완전무결한 생존전략이었다.
무대는 만들어졌다.
하지만 긴장감으로 인해 손아귀에 땀이 고였다.
상대는 B랭크 헌터조차 가뿐하게 찢어발기는 괴물이다.
아무리 보스 몬스터의 특성을 손에 넣었다고는 하지만 여울의 실체는 F랭크 헌터에 불과했다.
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압도적인 차이는 고작 자신의 위치를 숨기고 상대의 위치를 특정했다 해서 매울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기습을 위해 살의를 발하는 순간 보스 몬스터는 배후를 돌아보며 발톱을 휘두를 것이고, 여울의 목은 달아날 것이다.
하지만 여울은 이 기습의 성공을 확신했다.
‘보스 몬스터는 사람을 죽이며 쾌락을 느낀다.’
지금까지 보스 몬스터는 살해 후 피를 마시거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괴성을 내지르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보스 몬스터가 살육 후의 쾌감에 취해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이야말로 여울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콰직!
결국 보스 몬스터의 낫이 김진수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다.
치사량이 분명한 피가 흘러나왔다.
그 뒤는 여울의 예상대로였다.
[우오오오!]
보스 몬스터는 두 팔을 크게 벌린 채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지금이다!’
여울은 땅을 박찼다.
신발은 진즉 벗어두었기에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F랭크 헌터의 움직임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속도로 보스 몬스터에게 접근한 여울은 뛰어올랐다.
그때, 보스 몬스터가 눈치를 챈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미 여울의 곧게 뻗은 손날이 보스 몬스터의 뒷목에 닿아 있었다.
‘제발, 죽어라!’
남은 것은 손에 넣은 보스 몬스터의 특성에 기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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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 Lv2]
그림자에 휩싸인 신체 일부에 처형의 능력을 부여한다.
처형의 능력은 접촉한 상대의 목을 반드시 도려낸다.
-절반의 특성만을 습득했습니다. 목을 도려낼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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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여울이 습득한 세 번째 특성이자 동시에 모든 것을 내건 마지막 희망이었다.
절반의 확률.
그것에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있었다.
성공한다면 이 힘없어 보이는 손날이 보스 몬스터의 목을 가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반격을 시작한 보스 몬스터의 낫이 여울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이것은 생존을 건 도박이었다.
“제발……!”
툭.
“빌어먹을 개똥같은 인생.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어.”
그의 간절함은 결국 하늘에 닿지 못했다.
그의 손날은 단순한 손짓으로 변모해버렸으며, 공격권은 보스 몬스터가 갖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는 보스 몬스터의 거대한 발톱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그 속도는 여울이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여울은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을 쳤다.
‘못 죽어. 반드시 살아남는다!’
그는 눈앞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향해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어차피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믿을 것은 직감뿐이다.
‘노리는 곳은 아마 목!’
여울은 땅에 발이 닿는 것과 동시에 크게 몸을 뒤틀었다.
푸확!
“크윽……!”
신체에 엄청난 격통이 따르며 눈앞에 붉은 꽃이 피어났다.
하지만 이 고통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어깨에서 가슴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상처는 생겼을지언정 여울의 목은 아직 몸과 붙어있었다.
그는 온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툭.
그 손끝이 보스 몬스터의 목에 닿았다.
동시에 보스 몬스터의 발톱이 여울의 목을 노리고 허공을 내달렸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강제로 살점을, 뼈를 밀며 파고들었다.
크게 휘둘러진 그의 손은 검은색의 진득한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툭. 데구르르.
무언가가 굴러와 여울의 발끝을 건드렸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듯 흉흉하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보스 몬스터의 머리였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든 여울은 머리를 잃은 채 서서히 무너지는 보스 몬스터의 신체를 볼 수 있었다.
솟구친 피분수가 주변을 더욱 어둡게 물들였다.
“이겼다…….”
여울의 입가가 슬그머니 호선을 그렸다.

* * *

“기존의 인천 D-03은 D등급 던전이었어. 하지만 보스 몬스터의 등장으로 인해 추정난이도는 B까지 상승했다.”
“이곳의 보스는 미확인이니까 위험도를 한 단계 더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던전 난이도는 A랭크인가…….”
부하인 한소연과 의견을 공유하던 유해성은 작게 혀를 찼다.
두 번째 문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첫 번째 문, 게이트는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붉은 고치로 인해 폐쇄된다.
핵폭탄으로도 부술 수 없는 고치가 사라지는 경우는 보스 몬스터가 퇴치되거나, 던전에 마력이 가득 차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할 때뿐이다.
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없다시피 했다.
유해성이 이곳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김진수라면 모를까, 하유리는 제법 괜찮은 인재였는데 아깝게 됐네.”
“대장. 고치가 옅어지고 있어요.”
한소연의 보고가 있자 유해성은 몸을 일으켰다.
손에 들고 있던 값비싼 커피를 내려놓은 그가 게이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게이트를 둘러싸고 있던 고치의 두께가 상당히 얇아져 있었다.
이제 곧 고치가 깨지고 몬스터들이 파도처럼 밀려 나올 것이다.
‘어차피 쏟아져 나올 놈들은 고블린 뿐일 테니, 한 장소에 몰아서…….’
머릿속으로 몰살 계획을 세운 유해성은 손 위로 마력을 모았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쏟아져 나왔다.
붉은 고치가 걷힌다면 S랭크 각성자의 강대한 힘이 고블린들을 일망타진할 것이다.
하지만 점점 옅어지는 고치를 응시하던 유해성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째서 몬스터가 보이지 않는 거지?’
지금쯤이면 고치의 벽을 때리고 있어야 할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의 표면에 생긴 미세한 균열이 보였다.
워낙 드문 현상이었기 때문에 유해성 정도 되는 인물도 현 상황을 금방 간파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겉멋만으로 S랭크 각성자가 된 것이 아니다.
유해성은 금세 균열의 원인을 파악했다.
그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보스를 잡았다고?”
지금까지 단 일곱 차례.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가 토벌되고 완전공략이 이루어졌을 때, 게이트가 저런 모습을 보였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설마 백야의 2번 공략대에 내가 파악하지 못한 실력자가 있다는 건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유해성은 다시 한 번 공략대의 명단을 살폈다.
하지만 유해성이 놓친 부분은 없었다.
그의 기준에서 보자면 하나같이 보잘것없는 자들이다.
기껏해야 하유리와 김진수.
두 사람만이 이름을 외울 가치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천운이 따른다 해도 하유리와 김진수의 힘으로는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2차 각성……. 아니, 그건 말도 안 돼.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모든 추론은 불가능으로 결론이 맺어졌다.
결국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유해성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고치의 정면에 섰다.
게이트의 균열은 점점 커져 있었고, 이제는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콰직, 콰드득!
게이트가 짓뭉개지고 주변의 대지에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만들어졌다.
그 후에는 강렬한 폭발이 발생했다.
콰앙!
폭음과 함께 게이트가 부서지면서 주변으로 눈부신 백색의 빛을 흩뿌렸다.
주변이 온통 백색으로 물든 와중에 잘게 부서진 적색의 고치가 눈처럼 떨어졌다.
그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는 중상자가 걸어 나왔다.
조금 준수한 수준의 외모.
딱 평균 정도의 신장과 체격.
흘러나오는 마력의 세기도 지극히 미미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F. 기껏해야 E에 턱걸이 하는 수준일 것이다.
그 남자의 등에는 유해성이 눈여겨봤던 인물 중 하나인 하유리가 정신을 잃은 채 업혀 있었다.
생존자는 두 사람뿐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 외의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몬스터가 아니라 생존자가 나왔다고? 말도 안 돼…….”
“그렇다는 말은 던전의 완전 공략에 성공했다는 말이잖아!”
던전 브레이크에 대처하기 위해 모였던 가디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류가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단 일곱 차례밖에 해내지 못한 던전의 완전공략.
그 카운트를 8로 바꿔버린 인물들이 저곳에 있었다.
‘미치겠군.’
유해성은 속으로 광소를 터뜨렸다.
그가 결단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을 저 두 사람은 해낸 것이다.
‘한 명은 하유리. 하지만 다른 한 명은 누구지?’
기억에 없는 인물이다.
유해성은 다시 한 번 공략대의 명단을 보고 나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은여울. 헌터 랭크는… F라고?!”
쟁쟁한 실력을 갖춘 헌터들을 제치고 고작 F랭크 헌터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그는 쉬이 믿기가 어려웠다.
느껴지는 마력의 수준이 미미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던전 내에서 상대가 대량의 마력을 소모했기에 적어 보이는 것뿐, 최대치는 상당할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상대는 F랭크 헌터.
제대로 된 각성자 취급도 받지 못하는 밑바닥이다.
유해성은 자신의 곁에 있던 한소연의 뺨을 꼬집었다.
상상 이상의 힘이 실렸기에 그녀가 펄쩍 뛰었다.
“아파아아!”
“젠장, 꿈은 아니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지, 어떻게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 것인지.
궁금한 것은 산처럼 많았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이 있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 슬레이어가 탄생했단 말이지?”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얻을 수 있는 명예로운 칭호.
슬레이어.
그것을 갖게 될 새로운 헌터들이 국내에서 출현했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F랭크.”
역사상 최초로 F랭크 슬레이어가 탄생한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