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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고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단맛이 너무 강해. 하다못해 소스를 만들 때 설탕을 제외하는 등 단맛을 억제했으면 먹을 만은 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요리를 한 점만 먹어도 특성을 습득할 수 있는지, 아니면 한 접시를 전부 먹어야 하는지 여울은 아직 알지 못한다.
아직은 스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불안을 남기느니 전부 먹는 것이 현명하다.
“이걸 전부…….”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여울은 짜디짠 눈물을 조미료 삼아 지독한 단맛을 자랑하는 불고기를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도중에 몇 번이고 식도를 타고 불고기가 역류할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그 결과 애타게 기다리던 보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불고기 : 처형자의 그림자(E+)를 먹었습니다.>
<정제된 마력이 신체에 녹아듭니다. 요리에 코어가 포함되지 않아 흡수율이 절반으로 하락합니다. 마력이 4만큼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처형자의 그림자의 특성을 신체가 받아들입니다.
어둠 친화 Lv2, 민첩 증폭 Lv1, 단두대 Lv2.>
<레어 식재료 효과로 민첩+3, 정신+2, ‘재빠른 움직임’이 추가로 적용됩니다.>
요리의 효과는 무난하게 적용됐다.
“제발…….”
여울은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다.
부디 지금 얻은 세 개의 특성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평소엔 믿지도 않던 신을 찾았다.
간절함을 담은 짧은 기도를 마친 여울은 특성을 확인했다.
“어둠 친화는 어둠에 신체가 동화되는 특성. 민첩 증폭은 민첩성이 1.2배로 증가. 재빠른 움직임은 사용하지 않아도 적용되는 패시브! 단두대는…….”
특성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펴보던 여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희망은 헛된 희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 이상이다.
‘이 특성만 있으면…….’
“어디 머리라도 다친 거냐? 비명을 지르다가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또 웃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김진수가 관자놀이 부근에서 손가락을 회전시켰다.
하지만 여울에게 있어서는 그의 비하와 조롱보다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김진수의 정면에 놓인 그릇은 텅 비어 있었다.
‘요리는 전부 먹은 건가? 그렇다면…….’
여울은 마력역류 현상을 기대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보스 몬스터의 특성을 얻은 여울은 강해졌고, 마력역류가 발생한 김진수는 약해질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더 이상 그에게 휘둘릴 일도 없다.
오히려 계획대로 지금까지의 수모를 돌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마력역류는커녕 그 비슷한 효과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상하네. 조금이기는 하지만 마력이 상승했어. 어떻게 된 거지?”
아무래도 몬스터의 특성까지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능력치 상승의 버프 효과를 얻은 모양이다.
심지어.
<각성자에게 요리를 대접했습니다. 만족도 : 84점>
<노말 식재료 효과로 인해 일시적으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마력+3, 정신+2, ‘폐활량’ 활성화.>
획득한 버프 외에도 이상한 메시지가 김진수의 머리 위에서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거기서 말하는 만족도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몰랐던 여울은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다.
‘내 스킬로 정제한 마력은 마력회로와 무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모양이네.’
자신이 만든 몬스터 요리를 타인에게도 대접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를 얻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며 언제 인간을 상대로 실험할 기회를 얻겠는가.
하지만 김진수의 힘을 하락시켜 자신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내린다는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 결과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발목을 붙잡으리라 판단한 여울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계획을 수정해야겠는데.’
세워두었던 계획을 수정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김진수가 행동을 보였다.
“배도 채웠고, 휴식도 어느 정도 끝마쳤으니 이동하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이 동굴은 생각보다 넓지 않아. 게다가 완전히 밀폐되어 있지. 이 장소도 곧 그놈에게 발각될 거다.”
말을 하는 도중에 보스 몬스터의 강함을 떠올린 김진수는 여유롭던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유일한 탈출로는 수로! 그걸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우수한 미끼가 있군.”
김진수의 시선이 여울의 등 뒤에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하유리에게로 향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동료들의 목숨을 희생시켜가며 살아남은 김진수가 이번에도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스킬인 재물폭발은 대상의 값어치에 비례해 폭발력이 강해진다. 그리고 조금 전에 알았는데, 인간의 값어치는 꽤 높게 책정되더군.”
‘단순히 미끼로 사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폭탄으로 삼을 생각인 건가!’
김진수가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여울은 독자적인 탈출 루트를 계획했다.
그와 함께한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이런 식으로 희생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사기꾼만큼이나 믿을만한 족속이 못 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마음을 품은 두 남자는 신속히 이동을 시작했다.
여울은 하유리를 등에 업은 채였다.
그 외의 짐은 전부 버려두었다.
어차피 계획이 실패한다면 얌전히 죽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몸을 가볍게 만드는 편이 이득이다.
그들은 좁은 통로를 지나 시체가 즐비한 공간에 도달했다.
김진수가 들고 있던 손전등의 빛이 누군가의 시체를 비췄다.
여울과 이야기를 나눴던, 김진수에 의해 희생된 불쌍한 남자의 시신이었다.
“다행히도 그놈이 이곳에는 없는 모양이야.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빨리 움직여.”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남자의 시체를 보며 김진수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양심이란 것이 진즉에 마모되어버린 모양이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김진수의 걸음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간다면 수로가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조금. 조금만 더 가면 수로가 나온다. 그러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어! 제발 나타나지 마라. 빌어먹을 보스 몬스터!’
수로에만 도착한다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김진수는 표정이 밝아졌다.
반면 여울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수많은 차원 메기와 그 거대한 괴물 물고기……. 차라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육지가 안전해. 역시 내 계획대로 움직이자.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그놈이 나타나야만 해.’
한 명은 보스 몬스터를 거부하고, 한 명은 보스 몬스터를 원하고 있었다.
두 남자의 생각이 정반대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어둠 속의 끈질긴 추적자는 여울의 편을 들어줬다.
[우어어어!]
어둠 속에서 안광이 번뜩이는 것과 동시에 원초적 공포를 자극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에 여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다.’
이로써 조건은 전부 갖추어졌다.
* * *
“짝퉁 요리사. 약속대로 간다.”
보스 몬스터의 등장과 동시에 김진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지금까지 저놈으로 인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실제로 아군을 희생시키지 않았다면 진즉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쫓기는 것도 이제는 마지막이다.
‘하유리는 B랭크 헌터야. 하유리를 재물로 스킬을 사용하면 저놈도 무사하지는 못하겠지. 왜 진즉 이 생각을 못한 거지?’
광기로 번득이는 그의 눈동자가 여울의 등에 업혀 있는 하유리에게 꽂혔다.
자신의 목숨이 풍전등화에 놓여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지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자, 나를 위해 희생해라. 하유리!’
김진수가 손을 뻗었다.
백색의 마력이 실린 그의 손에 닿기만 하면 하유리는 보스 몬스터에게 커다란 타격을 줄 생체폭탄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의 거친 손끝이 하유리의 뺨을 터치하려던 순간이었다.
툭.
무언가가 그의 발에 걸렸다.
“어어?”
전속력으로 달리던 그는 갑작스럽게 걸린 브레이크를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손으로 땅을 짚었지만 반사적으로 뻗은 팔은 하필이면 부러진 팔이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김진수는 두 바퀴를 굴렀다.
“으으…….”
그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바닥 탓에 부상의 크기는 상당했다.
그나마 헌터라서 망정이지, 일반인이었다면 골절 정도는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는 눈을 들어 자신의 발을 건 인물을 노려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짝퉁 요리사!”
은여울.
조금 먼 곳에 멈춰선 그는 어째서인지 전신에 검은 어둠을 두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어둠에 녹아들 것 같은 분위기의 여울은 한없이 차가운 눈으로 김진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뭐긴, 선빵필승이지.”
“무슨 개…….”
성질대로 한바탕 욕 세례를 퍼부으려던 김진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경직되고 말았다.
기름칠이 필요한 기계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새까만 어둠.
그 속에서 번뜩이는 것은 처형자의 안광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내민 손전등의 빛 속에서 보스 몬스터는 크게 앞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 * *
여울은 김진수라는 인물을 구제 불능의 쓰레기로 결론지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을 팔아넘겼고, 지금 계획한 작전 역시 하유리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설사 여기서 무사히 벗어난다 해도 또 위험이 닥치면? 그때는 내 차례겠지.’
이곳에 굴러다니는 시체들처럼 김진수를 위한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수를 쳤다.
그리고 김진수는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여울의 계획대로 행동해줬다.
언제나 가해자의 입장에만 서 있었기 때문일까, 김진수는 여울이 자신을 배신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 했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어.’
현재 여울은 보스 몬스터의 특성인 어둠 친화의 특혜를 누리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가뜩이나 흐릿하던 존재감을 김진수의 요란함이 완전히 덮어버렸다.
보스 몬스터는 여울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김진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보스 몬스터가 휘두른 손톱을 김진수는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완전하게 피하지 못한 탓에 한쪽 다리가 잘려나갔다.
절단면에서 대량의 피가 튀고 떨어져 나온 다리는 처량하게 바닥을 굴렀다.
그 와중에도 핏발이 선 그의 눈동자는 못 박힌 듯 여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개 같은 새끼가! 감히 내 뒤통수를 쳐?”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김진수가 악의로 점철된 고함을 내질렀다.
“네가 날 배신하고도 무사할 거 같아?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네놈은 물론 네놈의 가족까지 말살시켜주마!”
그는 피를 토하는 기세로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저주의 향연에도 여울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원래 죽은 놈은 말이 없는 법이지.”
여울의 시선이 김진수의 배후로 향했다.
그곳에는 보스 몬스터가 놓쳐버린 사냥감의 마무리를 위해 발톱을 휘두르고 있었다.
크게 휜 칼날 발톱이 단두대처럼 떨어지며 김진수의 등짝에 꽂혀 들었다.
“끄아아악!”
내장이 갈가리 찢긴 그는 피를 토하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분노가 지배하던 표정에도 서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한파처럼 매섭던 눈동자에 물방울이 맺혔다.
급기야 그는 고압적인 태도를 버리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도, 도와줘. 도와주기만 하면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게! 그래, 돈!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어!”
“나보고 너를 믿으라고? 장난이 지나치네.”
김진수의 절박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여울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울은 그를 손톱만큼도 신뢰하지 않았다.
신뢰할 수 없는 인물과의 약속 따위는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연장한 목숨이잖아.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우리를 위해 희생해주라.”
“이, 이… 이런 개… 으아아악!”
분노와 고통, 공포로 얼룩진 비명을 뒤로한 여울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남은 것은 보스 몬스터가 쏟아내는 일방적인 폭력을 김진수가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는 일뿐이었다.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고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단맛이 너무 강해. 하다못해 소스를 만들 때 설탕을 제외하는 등 단맛을 억제했으면 먹을 만은 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요리를 한 점만 먹어도 특성을 습득할 수 있는지, 아니면 한 접시를 전부 먹어야 하는지 여울은 아직 알지 못한다.
아직은 스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불안을 남기느니 전부 먹는 것이 현명하다.
“이걸 전부…….”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여울은 짜디짠 눈물을 조미료 삼아 지독한 단맛을 자랑하는 불고기를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도중에 몇 번이고 식도를 타고 불고기가 역류할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그 결과 애타게 기다리던 보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불고기 : 처형자의 그림자(E+)를 먹었습니다.>
<정제된 마력이 신체에 녹아듭니다. 요리에 코어가 포함되지 않아 흡수율이 절반으로 하락합니다. 마력이 4만큼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처형자의 그림자의 특성을 신체가 받아들입니다.
어둠 친화 Lv2, 민첩 증폭 Lv1, 단두대 Lv2.>
<레어 식재료 효과로 민첩+3, 정신+2, ‘재빠른 움직임’이 추가로 적용됩니다.>
요리의 효과는 무난하게 적용됐다.
“제발…….”
여울은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다.
부디 지금 얻은 세 개의 특성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평소엔 믿지도 않던 신을 찾았다.
간절함을 담은 짧은 기도를 마친 여울은 특성을 확인했다.
“어둠 친화는 어둠에 신체가 동화되는 특성. 민첩 증폭은 민첩성이 1.2배로 증가. 재빠른 움직임은 사용하지 않아도 적용되는 패시브! 단두대는…….”
특성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펴보던 여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희망은 헛된 희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 이상이다.
‘이 특성만 있으면…….’
“어디 머리라도 다친 거냐? 비명을 지르다가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또 웃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김진수가 관자놀이 부근에서 손가락을 회전시켰다.
하지만 여울에게 있어서는 그의 비하와 조롱보다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김진수의 정면에 놓인 그릇은 텅 비어 있었다.
‘요리는 전부 먹은 건가? 그렇다면…….’
여울은 마력역류 현상을 기대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보스 몬스터의 특성을 얻은 여울은 강해졌고, 마력역류가 발생한 김진수는 약해질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더 이상 그에게 휘둘릴 일도 없다.
오히려 계획대로 지금까지의 수모를 돌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마력역류는커녕 그 비슷한 효과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상하네. 조금이기는 하지만 마력이 상승했어. 어떻게 된 거지?”
아무래도 몬스터의 특성까지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능력치 상승의 버프 효과를 얻은 모양이다.
심지어.
<각성자에게 요리를 대접했습니다. 만족도 : 84점>
<노말 식재료 효과로 인해 일시적으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마력+3, 정신+2, ‘폐활량’ 활성화.>
획득한 버프 외에도 이상한 메시지가 김진수의 머리 위에서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거기서 말하는 만족도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몰랐던 여울은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다.
‘내 스킬로 정제한 마력은 마력회로와 무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모양이네.’
자신이 만든 몬스터 요리를 타인에게도 대접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를 얻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며 언제 인간을 상대로 실험할 기회를 얻겠는가.
하지만 김진수의 힘을 하락시켜 자신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내린다는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 결과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발목을 붙잡으리라 판단한 여울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계획을 수정해야겠는데.’
세워두었던 계획을 수정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김진수가 행동을 보였다.
“배도 채웠고, 휴식도 어느 정도 끝마쳤으니 이동하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이 동굴은 생각보다 넓지 않아. 게다가 완전히 밀폐되어 있지. 이 장소도 곧 그놈에게 발각될 거다.”
말을 하는 도중에 보스 몬스터의 강함을 떠올린 김진수는 여유롭던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유일한 탈출로는 수로! 그걸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우수한 미끼가 있군.”
김진수의 시선이 여울의 등 뒤에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하유리에게로 향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동료들의 목숨을 희생시켜가며 살아남은 김진수가 이번에도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스킬인 재물폭발은 대상의 값어치에 비례해 폭발력이 강해진다. 그리고 조금 전에 알았는데, 인간의 값어치는 꽤 높게 책정되더군.”
‘단순히 미끼로 사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폭탄으로 삼을 생각인 건가!’
김진수가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여울은 독자적인 탈출 루트를 계획했다.
그와 함께한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이런 식으로 희생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사기꾼만큼이나 믿을만한 족속이 못 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마음을 품은 두 남자는 신속히 이동을 시작했다.
여울은 하유리를 등에 업은 채였다.
그 외의 짐은 전부 버려두었다.
어차피 계획이 실패한다면 얌전히 죽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몸을 가볍게 만드는 편이 이득이다.
그들은 좁은 통로를 지나 시체가 즐비한 공간에 도달했다.
김진수가 들고 있던 손전등의 빛이 누군가의 시체를 비췄다.
여울과 이야기를 나눴던, 김진수에 의해 희생된 불쌍한 남자의 시신이었다.
“다행히도 그놈이 이곳에는 없는 모양이야.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빨리 움직여.”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남자의 시체를 보며 김진수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양심이란 것이 진즉에 마모되어버린 모양이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김진수의 걸음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간다면 수로가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조금. 조금만 더 가면 수로가 나온다. 그러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어! 제발 나타나지 마라. 빌어먹을 보스 몬스터!’
수로에만 도착한다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김진수는 표정이 밝아졌다.
반면 여울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수많은 차원 메기와 그 거대한 괴물 물고기……. 차라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육지가 안전해. 역시 내 계획대로 움직이자.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그놈이 나타나야만 해.’
한 명은 보스 몬스터를 거부하고, 한 명은 보스 몬스터를 원하고 있었다.
두 남자의 생각이 정반대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어둠 속의 끈질긴 추적자는 여울의 편을 들어줬다.
[우어어어!]
어둠 속에서 안광이 번뜩이는 것과 동시에 원초적 공포를 자극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에 여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다.’
이로써 조건은 전부 갖추어졌다.
* * *
“짝퉁 요리사. 약속대로 간다.”
보스 몬스터의 등장과 동시에 김진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지금까지 저놈으로 인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실제로 아군을 희생시키지 않았다면 진즉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쫓기는 것도 이제는 마지막이다.
‘하유리는 B랭크 헌터야. 하유리를 재물로 스킬을 사용하면 저놈도 무사하지는 못하겠지. 왜 진즉 이 생각을 못한 거지?’
광기로 번득이는 그의 눈동자가 여울의 등에 업혀 있는 하유리에게 꽂혔다.
자신의 목숨이 풍전등화에 놓여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지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자, 나를 위해 희생해라. 하유리!’
김진수가 손을 뻗었다.
백색의 마력이 실린 그의 손에 닿기만 하면 하유리는 보스 몬스터에게 커다란 타격을 줄 생체폭탄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의 거친 손끝이 하유리의 뺨을 터치하려던 순간이었다.
툭.
무언가가 그의 발에 걸렸다.
“어어?”
전속력으로 달리던 그는 갑작스럽게 걸린 브레이크를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손으로 땅을 짚었지만 반사적으로 뻗은 팔은 하필이면 부러진 팔이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김진수는 두 바퀴를 굴렀다.
“으으…….”
그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바닥 탓에 부상의 크기는 상당했다.
그나마 헌터라서 망정이지, 일반인이었다면 골절 정도는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는 눈을 들어 자신의 발을 건 인물을 노려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짝퉁 요리사!”
은여울.
조금 먼 곳에 멈춰선 그는 어째서인지 전신에 검은 어둠을 두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어둠에 녹아들 것 같은 분위기의 여울은 한없이 차가운 눈으로 김진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뭐긴, 선빵필승이지.”
“무슨 개…….”
성질대로 한바탕 욕 세례를 퍼부으려던 김진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경직되고 말았다.
기름칠이 필요한 기계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새까만 어둠.
그 속에서 번뜩이는 것은 처형자의 안광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내민 손전등의 빛 속에서 보스 몬스터는 크게 앞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 * *
여울은 김진수라는 인물을 구제 불능의 쓰레기로 결론지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을 팔아넘겼고, 지금 계획한 작전 역시 하유리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설사 여기서 무사히 벗어난다 해도 또 위험이 닥치면? 그때는 내 차례겠지.’
이곳에 굴러다니는 시체들처럼 김진수를 위한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수를 쳤다.
그리고 김진수는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여울의 계획대로 행동해줬다.
언제나 가해자의 입장에만 서 있었기 때문일까, 김진수는 여울이 자신을 배신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 했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어.’
현재 여울은 보스 몬스터의 특성인 어둠 친화의 특혜를 누리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가뜩이나 흐릿하던 존재감을 김진수의 요란함이 완전히 덮어버렸다.
보스 몬스터는 여울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김진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보스 몬스터가 휘두른 손톱을 김진수는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완전하게 피하지 못한 탓에 한쪽 다리가 잘려나갔다.
절단면에서 대량의 피가 튀고 떨어져 나온 다리는 처량하게 바닥을 굴렀다.
그 와중에도 핏발이 선 그의 눈동자는 못 박힌 듯 여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개 같은 새끼가! 감히 내 뒤통수를 쳐?”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김진수가 악의로 점철된 고함을 내질렀다.
“네가 날 배신하고도 무사할 거 같아?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네놈은 물론 네놈의 가족까지 말살시켜주마!”
그는 피를 토하는 기세로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저주의 향연에도 여울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원래 죽은 놈은 말이 없는 법이지.”
여울의 시선이 김진수의 배후로 향했다.
그곳에는 보스 몬스터가 놓쳐버린 사냥감의 마무리를 위해 발톱을 휘두르고 있었다.
크게 휜 칼날 발톱이 단두대처럼 떨어지며 김진수의 등짝에 꽂혀 들었다.
“끄아아악!”
내장이 갈가리 찢긴 그는 피를 토하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분노가 지배하던 표정에도 서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한파처럼 매섭던 눈동자에 물방울이 맺혔다.
급기야 그는 고압적인 태도를 버리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도, 도와줘. 도와주기만 하면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게! 그래, 돈!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어!”
“나보고 너를 믿으라고? 장난이 지나치네.”
김진수의 절박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여울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울은 그를 손톱만큼도 신뢰하지 않았다.
신뢰할 수 없는 인물과의 약속 따위는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연장한 목숨이잖아.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우리를 위해 희생해주라.”
“이, 이… 이런 개… 으아아악!”
분노와 고통, 공포로 얼룩진 비명을 뒤로한 여울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남은 것은 보스 몬스터가 쏟아내는 일방적인 폭력을 김진수가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는 일뿐이었다.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