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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돌아본 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김진수가 있었다.
“뒤에 부대장님을 붙여. 나이는 동갑일지 몰라도 내가 너보다 상급자다.”
표독스럽게 쏘아붙인 김진수가 여울의 인근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전등이 비춰주는 김진수의 전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면면에서 짙은 피로의 기색이 묻어났다.
왼쪽 팔은 여울과 마찬가지로 부러졌는지 힘없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젠장. 저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전혀 반갑지 않은, 오히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했던 인물과의 반복되는 조우에 여울은 입술을 씹었다.
마지막에 봤던 김진수는 보스 몬스터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런 김진수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곧 보스 몬스터가 들이닥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더군다나 이곳은 막다른 길.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보스 몬스터를 뚫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소리인데.’
결국 마지막 희망은 맛있게 양념을 머금고 있는 몬스터 요리뿐이었다.
만약 이 요리를 먹고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특성을 얻는다면 무사 생환도 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너는 이런 상황에서 태평하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냐?”
거친 숨을 몰아쉬는 김진수가 못마땅한 눈으로 여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상처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B랭크 헌터인 김진수는 무력 면에서 여울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그렇다고 몬스터 요리사에 대한 스킬을 공개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각성자의 스킬은 1인당 1개로 알려져 있다.
반면 여울의 스킬은 하나의 스킬 아래 여러 개의 하위 스킬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각성자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 그 누구도 습득한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스킬이기도 하다.
실험의 대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비장의 한 수가 되는 스킬을 타인에게 떠들고 다니는 바보는 없다.
더군다나 대상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라면 더욱 삼가야지 않겠는가.
“배가 든든해야 도망치는 다리에 힘이 들어갈 것 같아서. 조금 나눠주랴?”
생각 같아서는 한껏 이죽거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극한까지 몰린 김진수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이상 섣부른 자극은 삼가야만 한다.
그를 자극하는 것은 폭탄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
무엇보다 불과 수 시간 전.
김진수는 여울의 요리를 땅에 내팽개치며 온갖 수모를 안겨준 전과가 있다.
자존심 강한 그가 이제 와서 말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여울은 그런 발언을 한 것이다.
“굶어 죽어도 더럽게 맛없는 네 요리는 안 먹어.”
으득!
예상했던 답변에 여울은 이를 갈았다.
김진수의 대답은 여울의 예상대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뜨거운 프라이팬을 무기로 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여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언제 보스 몬스터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
여울은 빠른 조리를 위해 불을 만들고 프라이팬을 달궜다.
프라이팬에 열이 달아오른 것을 확인한 그가 첫 번째 불고기를 올렸다.
치이익!
양념을 입은 고기가 비명을 지르며 익어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붉은색에서 연한 갈색이 되는 육류와는 달리, 보스 몬스터의 고기는 시종일관 검은색을 유지했다.
얼핏 보면 마치 숯덩이 같다.
고기 특유의 향기와 달콤짭짜름한 소스의 냄새가 어우러져 동굴을 채우기 시작했다.
‘향기만 따지면 충분히 합격점이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스의 향일 뿐. 맛은 어떨지…….’
이 거무스름한 고기의 맛이 궁금해진 여울은 입에 고인 침을 삼켰다.
조금 전 먹었던 차원 메기의 오묘하면서도 오감을 자극하는 맛이 재차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익혀야 하는 거지?’
가위로 잘라 단면을 확인해도 보이는 것은 오로지 검은색이다.
결국 여울은 감에 의지해 고기를 구울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여울은 완성된 고기를 접시에 담았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요리사의 본능 때문인지 무심결에 플레이팅을 하던 여울은 멋쩍게 웃었다.
접시의 7할을 불고기가 차지했으며, 나머지 3할에는 초록색의 야채들과 붉은 방울토마토가 자리하며 색조를 더했다.
“완성.”
그렇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몬스터 요리 완성. 처형자의 그림자로 만든 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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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불고기 : 처형자의 그림자
처형자의 그림자의 일부를 도축해 얻은 고기에 간장을 메인으로 만든 소스를 입혀 만든 불고기.
사용재료 : B-(방치)
요리기술 : E-
플레이팅 : E
행운보정 : 없음
능력치 보정 : 없음
종합 평가 :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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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야?”
눈앞에 나타난 반투명한 메시지의 향연에 여울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스킬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이 앞으로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도 확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들을 차분하게 읽고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
김진수의 시선이 여울에게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허공에 손을 휘휘 저어 메시지들을 지워버렸다.
‘봤나?’
여울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 불가사의한 스킬에 대해 뭐라 설명하면 좋을지 두뇌를 맹렬하게 회전시켰다.
하지만 그가 답을 도출하기보다 먼저 김진수가 입을 열었다.
“혼자서 뭘 하는 거야? 드디어 미쳐버린 거냐?”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뭔가를 봤어?”
“제가 만든 요리를 응시하다가 갑자기 허공에 손짓하는 정신이상자는 봤다. 안쓰러운 요리가 조금이라도 맛있어지기를 바라는 의식 같은 건가?”
그의 말투에는 여전히 싸가지의 파편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울은 처음으로 그에게 비난을 당하고도 불쾌함이 아닌 안도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반투명한 메시지는 내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군.’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타인을 속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요리를 먹고 능력을 확보하고 싶었던 여울은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잘 먹겠습니다.”
그가 습관적으로 감사 인사를 내뱉었을 때였다.
“야.”
김진수가 그를 불렀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못 들은 척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자리에서 일어선 김진수가 여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울의 정면에 선 그는 맡겨놓은 물건을 내놓으라는 듯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그거 나 줘.”
“…….”
진심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수로 쥔 젓가락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여기서 보스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그리고 나는 배가 고프지. 그러니 그걸 내놔라.”
그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여울을 노려봤다.
압도적인 강자의 살기에 노출된 여울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떤 효과를 얻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이 타버린 듯한 검은색의 불고기는 여울에게 있어서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걸 냉큼 내놓으라고 하는 김진수가 악의 화신처럼 보였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라면 절반 정도는 나눠줘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여울이 노리는 것은 이차원 요리를 먹음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특성이다.
요리를 전부 먹지 않는다면 특성을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여울에게 있어서 이차원 요리는 아직도 연구가 많이 필요한 분야였다.
하지만 일선 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이자 B랭크 헌터인 김진수는 살아오면서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손에 넣어왔다.
심지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폭력조차 불사할 악인이다.
어설프게 거절했다가는 주먹부터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강해질 가능성을 얻기는 했지만 여울은 아직 약자였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 수가 있잖아.’
손으로 가린 여울의 입술이 음흉한 호선을 그렸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작전을 조속히 실행으로 옮겼다.
“나눠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보다시피 조리에 실패해서 고기가 새까맣게 타버렸어.”
“상관없어. 어차피 네놈이 만든 건 맛을 포기해야 먹을 수 있는 쓰레기니까. 우선은 배를 채우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개… 흠흠! 너나 나나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기왕지사 최후의 만찬 정도는 즐기게 해주마. 새로운 요리를 해줄 테니 조금 기다려.”
그의 말에 김진수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허세가 통한 것이다.
천만다행이도 여울은 보관해놓은 차원 메기를 가지고 있다.
보스 몬스터의 고기에 비하면 비교적 구하기 쉬운 것이 차원 메기였다.
그 정도라면 김진수에게 줘버려도 크게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분. 그 안에 만들어와.”
이쯤 되면 강산이 몇 번을 바뀌어도 그의 건방진 어조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한 주문을 한 김진수는 피로가 쌓였다며 잠깐 눈을 붙였다.
그 틈을 노려 차원 냉장고를 연 여울은 보관해두었던 차원 메기를 꺼냈다.
메뉴는 조금 전 자신이 먹었던 것과 동일한 차원 메기 매운탕.
“으흐흐흐.”
요리를 하는 내내 여울의 입가에서 흉악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차원 메기 매운탕은 기껏 익혀놓은 불고기가 차갑게 식을 때 즈음이 되서야 완성됐다.
“조금 마음에 안 드네. 완성도가 너무 낮아.”
앞서 두 번의 요리로 조미료와 야채가 부족해졌다는 점.
요리를 먹게 될 대상이 끔찍하게 싫은 인간이라는 점이 요리의 완성도를 저하시켰다.
실제 메시지로 표기되는 것도 종합평가가 F-였다. 이른바 더 이상 아래가 없는 최하위 등급이다.
만들고 나서야 요리사로서 수치를 느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노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김진수를 깨웠다.
“김진수. 요리가 다 됐다.”
“가져와.”
잠에서 깬 그는 여전히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보통 때라면 웃는 낯으로 ‘네 손발은 장식이냐.’라고 비꼬았을 여울이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웃는 낯으로 요리를 그의 코앞까지 대령했다.
그 미소는 김진수가 생선살을 입에 옮기고 씹어 삼키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이 생선. 정체가 뭐지? 독특한 맛이 있네. 하지만 전체적으로 맛이 없다는 건 변하지 않았어.”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김진수를 보면서도 여울의 미소가 깨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속내는 온갖 음침한 감정들을 부풀리고 있었다.
‘뒈져라. 뒈져라. 뒈져라!’
여울이 그에게 만들어 준 것은 몬스터인 차원 메기로 만든 매운탕이다.
그리고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정제되지 않은 마력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물론 여울이 가진 스킬인 몬스터 요리사 중에는 마력을 정제하는 스킬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여울은 그 스킬에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 의문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 간단하게 배운 지식 중 하나에서 기인했다.
‘마력이 흐르는 마력회로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이 세간에 알려진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리고 여울은 조금 전 차원 메기 매운탕을 복용함으로써 정제된 마력을 흡수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부작용도 없었다.
‘이는 즉 내 스킬로 정제된 마력은 내 마력회로에 맞춰져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자신의 마력회로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정제된 마력을 복용한 김진수는…….’
일단은 정제된 마력이므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마력역류 현상으로 상당 부분의 마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김진수는 더 이상 힘으로 여울을 핍박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때는 지금까지의 원한을 모조리 갚아주마. 최후에는 미끼로 사용해주지. 하지만 그 전에, 나도 배를 좀 채울까.’
그제야 여울의 시선이 불고기로 향했다.
자신에게 남겨진 최후의 보루.
그것을 입에 옮기는 여울의 태도는 신을 받드는 신자처럼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잘 먹겠습니다.”
우물우물.
그것을 씹는 순간, 여울은 신세계를 목격했다.
머릿속으로 설탕 섞인 꿀물 속을 헤엄치는 초콜릿과 잼 따위의 망상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달잖아!”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한 듯한 김진수의 시선조차 무시한 채 절규했다.
육질은 부드럽고, 씹으면 온화하게 육즙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불고기 특유의 짜고 달달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달다.
미친 듯이 달다.
녹인 캐러멜을 섞은 아이스크림조차 이보다는 덜할 것이다.
간장에 포함된 짭조름함은 폭발적인 단맛에 완전히 파묻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으에에에.”
여울은 물로 열심히 입을 헹궜다.
이런 건 요리라 부르는 것조차 수치스럽다.
비로소 여울은 깨달았다.
차원 메기 매운탕이 놀랄 만큼 맛있었던 것은 단순히 행운일 뿐이었다.
여울이 만드는 것은 몬스터 요리.
마력이라는 신비로운 힘을 품고 있는 이계의 생물이 일반적인 식재료와 동일한 맛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동일한 조리법을 사용한 것이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