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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두 사람의 손이 맞닿는 것과 동시에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조금 전 중년 헌터의 손가락이 향했던 장소였다.
여울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그곳에서 여울은 익숙하지만, 결코 반갑지 않은 얼굴을 마주했다.
“김진수…….”
거만하기 짝이 없으며 이 사달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는 눈물과 콧물을 사정없이 흩뿌리며 내달리고 있었다.
“사, 살려줘. 살려달라고!”
목표 없이 무작정 내달리던 김진수는 두 사람이 있는 장소를 향해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헌터들의 사체와 돌부리에 걸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면서도 김진수는 기어코 두 사람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저놈이 저 몰골로 여기에 있다는 건… 하유리는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김진수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하유리를 향해 스킬을 사용한 악마의 화신이다.
이번에도 하유리는 그를 신뢰했다가 배신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저놈이라면 보나 마나…….’
고작 하루. 여울이 김진수와 함께 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김진수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노라 자부했다.
그렇기에 중년 헌터의 손을 놓은 후 손전등을 껐다.
그를 돕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안전 확보가 우선이었다.
“도망치세요.”
짧은 경고 문구를 남긴 그는 재빠르게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중년의 헌터는 멍청한 소리를 냈다.
서걱.
“끄아아악!”
그 후에는 살을 베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피 분수가 솟구쳤다.
김진수가 중년 헌터의 허벅지를 크게 베어버린 것이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놈이네.’
차갑게 식어버린 여울의 눈동자가 김진수의 모습을 쫓았다.
“으흐흐흐!”
광소를 흘린 김진수는 다시 어둠 너머로 달아났다.
“미, 미친 새끼!”
중년 헌터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성을 냈다.
당장이라도 입을 다물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울은 소리를 내는 대신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여울은 주변에 있던 누군가의 피로 온몸을 적셨다.
그리고 납작 엎드렸다.
[…….]
제삼자의 기척이 바로 근처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게 누구의 것인지는 구태여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보스 몬스터다.
반면 중년 헌터는 아직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 돈 좀 있다고, 힘 좀 있다고 사람을 그렇게…….”
그는 멀어져가는 김진수의 뒤를 향해 신명 나게 욕설을 박아 넣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유로이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은 몹시 제한적이었다.
후욱. 후욱.
보스 몬스터가 내는 거친 숨소리를 비로소 감지하는 데 성공한 중년 헌터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는 슬그머니 자신의 뒤를 확인했다.
자연스러운 어둠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는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끝에는 두 개의 푸른 안광이 자리하고 있다.
중년 헌터와 여울의 눈이 마주쳤다.
“사, 살려…….”
푸확!
공포에 질린 얼굴은 몸과 분리되어 허공으로 솟구쳤다.
중력에 끌려 내려온 머리가 바닥을 구르며 여울의 코앞에 이르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질겁하며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하지만 여울은 담담하게 눈을 감았다.
평화롭고 잔잔한 추억을 떠올리며 거친 고동을 진정시켰다.
최후에는 숨소리마저 억제했다.
[우오오오!]
한바탕 우렁차게 소리를 내지른 보스 몬스터는 김진수가 달아난 방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 순간까지 여울은 석상마냥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심장이 몇 개나 있어도 모자라겠네.”
비로소 안전을 확신한 여울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귀신과 살인자가 난무하는 공포 스릴러 영화가 현실이 된다 해도 지금만큼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도망을 치려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겠지.”
떠나기 전. 여울의 시선이 중년 헌터의 머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는 중년의 헌터뿐만 아니라 이곳에 쓰러져 있는 시체로부터 유품을 회수했다.
그것들을 가방에 넣은 후에는 김진수와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던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유일하게 어둠을 밝혀줄 손전등은 전지에 전력이 얼마 없는지 빛의 세기가 굉장히 미약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여울은 희미하게나마 빛이 존재하는 장소에 도달했다. 조금 전 중년 헌터가 말한 격전의 장소다.
그곳에서 여울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유리다.
‘죽었나?’
그녀가 살아있을 확률은 한없이 낮다.
좌수는 잘려나갔으며,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길게 이어지는 상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가 있는 법이다.
여울은 그녀의 심장박동을 확인했고, 경악했다.
“어떻게 이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을 수 있는 거지?”
미약하지만 분명히 고동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푸른색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그녀의 신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유리가 가지고 있는 스킬인가? 엄청 가지고 싶은 스킬이네.”
어찌 되었건 여울은 하유리를 돕기 위해 그녀를 짐짝처럼 짊어졌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면 주저 없이 버리고 갔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선을 다해 구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유리는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도움을 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리를 떠나려던 여울은 발밑에 굴러다니는 하유리의 팔을 발견했다.
잘려나간 단면이 워낙 깨끗했기에 혹시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팔을 회수한 여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건…….”
피투성이가 된 하유리의 손이 붙들고 있는 것. 그것은 보스 몬스터의 것으로 추정되는 살점이었다.
[이차원 요리]
그 스킬의 효능을 살릴 기회가 조속히 찾아온 것이다.

* * *

시체나 진배없는 하유리를 짊어지고 하염없이 걷던 여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막다른 길이었다.
“망했네.”
지금까지의 노고가 배신당한 것 같아 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무엇보다 F랭크 헌터의 저렴한 체력이 한계를 선언했다.
하지만 여울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가 몇 개나 있지?’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패를 확인했다.
첫 번째 패는 스킬이다.
이차원 요리라는 이 기상천외하고도 독특한 스킬은 다양한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두 번째 패는 조금 전 습득한 보스 몬스터의 살점이다.
그것은 코어와 분리되면 녹아 사라지는 특성 때문에 조금 전보다 확연하게 크기가 작아져 있었다.
보통이라면 거들떠도 안 볼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몬스터 요리사인 여울에게는 보물이나 진배없었다.
이 두 개를 어떻게든 활용하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전신이 그림자로 이루어진 보스 몬스터의 고기. 촉감은 말랑말랑하며 기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 만지고 있으면 검은색의 진득한 무언가가 묻어나왔다.
코를 가져다 대면 희미하게 달콤한 냄새가 났다.
“차원 메기를 먹었을 때는 일시적으로나마 차원 메기의 특성을 얻을 수 있었어. 그렇다면 이걸 먹으면…….”
그 강력하기 짝이 없는 보스 몬스터의 특성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 특성을 이용하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질책한 여울은 조리에 앞서 고깃덩어리의 정보를 살폈다.
“요리사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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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처형자의 그림자 - 몬스터. 랭크 A
마력을 품은 어둠이 뭉쳐 만들어진 몬스터.
무형물처럼 생겼으나 실체를 가지고 있다.
재료등급 : B
기타사항 : 방치(녹아내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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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차원 메기의 정보를 확인했을 때와 틀은 똑같아.’
확인 결과 보스 몬스터의 이름과 근원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딱히 약점이 공개되는 것도 아니기에 전투에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요리해야 하지?”
차원 메기의 경우, 대체적인 생김새가 일반 메기와 같았기에 비교적 간단하게 조리방법을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검은색의 덩어리는 육류가 맞는지조차 의심이 드는 촉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한 같은 육류라 할지라도 종류별로 적절한 조리법이 존재함을 감안하면 함부로 손을 대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굽자.”
모를 때는 간단하게 굽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여울은 재빨리 조리를 시작했다.
식수로 식재료를 씻은 후 칼을 이용해 적당히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그냥 먹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 가지고 있는 조미료들을 사용해 간단한 불고기 소스를 만들었다.
“간장이랑 설탕이 있어서 다행이야. 배나 키위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깊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 하나에 의존한 채 조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여겨졌기 때문일까. 여울은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장 먼저 양파와 파를 잘게 썰었다.
믹서가 있으면 유용하게 사용했겠지만 아쉬운 대로 칼질만을 이용해 재료를 섬세하게 잘라내는 수밖에 없었다.
타다다닥!
“어라?”
조리를 하던 여울은 돌연 의문을 표했다.
도마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가 전보다 더 빨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팔이 부러진 여울은 한 손으로 조리를 하는 중이다.
당연하게도 그 실력은 평소보다 엉성해야 정상.
하지만 칼솜씨가 엉성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향상되어 있었다.
의아함을 느낀 여울은 실험을 위해 추가적으로 마늘을 썰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착각이 아니야.”
그토록 연습을 반복해도 더 이상 늘지 않던 칼솜씨가 어째서인지 소소하게나마 증가해 있었다.
‘설마.’
혹시나 싶어 양파 쪼가리를 입으로 옮겼다.
양파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알싸함 속에 감춰진 묘한 단맛.
그리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입안에 맴돌았다.
전과 비교해 느껴지는 맛의 풍부함은 격이 달랐다.
미각만이 아니었다.
요리하는 데 사용하는 모든 감각이 전과 비교해 확연하게 예민해져 있었다.
“원인은 그건가.”
여울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현 사태의 원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보통의 헌터들은 자신이 보유한 근력, 마력 따위의 능력들을 수치화시켜 표시해 놓은 능력 페이지를 보유하고 있다.
경험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헌터의 강함은 능력 페이지에 표기된 수치와 동일하다 봐도 무방하다.
여울 또한 하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능력 페이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과는 달리 여울은 스킬의 습득과 동시에 두 번째 능력 페이지를 갖게 되었다.
기술, 그리고 미각.
그것이 지금 여울이 느끼고 있는 이질감과 실력 및 미각 향상의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나는 헌터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요리사로서의 능력도 키울 수 있다는 건가?’
움찔.
폭발하듯 터져 나온 환희의 감정이 여울의 입술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억제하려 했지만 억제하지 못한 얼굴 근육이 결국 함박웃음을 피어나게 했다.
이는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복권 1등에 당첨된 것만큼이나 지독한 행운이다.
뛰어난 기술과 섬세한 미각은 요리사를 높은 경지로 이끌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울은 그것을 손에 넣었고, 앞으로 추가적인 발전의 여지까지 갖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놓아야만 했던 일류 셰프를 향한 꿈이 재차 품 안으로 날아오는 듯했다.
‘기뻐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요리에 집중하자.’
억만금을 손에 쥐어도 죽으면 말짱 도루묵인 것처럼,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어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여울은 멈춰있던 손을 재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곱게 다진 재료들에 간장, 설탕, 후춧가루 등을 섞어 소스를 만들던 여울의 입에서는 절로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이것만 넣어주면…….”
참기름과 깨를 넣고 골고루 섞어 만든 소스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놨던 보스 몬스터의 고기가 섞였다.
여울은 양념이 고루 배도록 마무리 작업에 한창 열중했다.
하지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측면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누군가 했더니 짝퉁 요리사잖아? 게다가 하유리도 살아있는 모양이고. 명줄 하나는 끈질긴 여자네.”
사람의 심기를 긁어대는 말투와 목소리. 여울은 이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김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