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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소설에나 나오는 가상현실게임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만약 부러진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아니었다면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꼬집어봤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얼떨떨하기는 하지만 여울은 요리사의 눈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차원 냉장고를 사용하면 시간이 동결되는 건가? 사용할 때마다 재료 등급이 하락하고.”
재료 등급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게 떨어져서 좋은 점은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스킬이라는 것은 조사하고 실험할수록 흥미가 솟구쳤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에 죽치고 앉아 모든 스킬들을 샅샅이 파헤치고 싶었다.
하지만 차원 메기를 먹고서 얻은 특성에는 제한시간이 있다.
또다시 차원 메기를 복용한다 하더라도 같은 스킬을 얻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제한 시간 동안 수로를 벗어나야 하기에 여울은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을 잠시 뒤로 미뤄뒀다.
나머지는 던전에서 나간 후 알아봐도 늦지 않을 터.
차원 메기를 차원 냉장고에 던져 넣은 여울은 문을 닫았다.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용돌이와 함께 사라지는 차원 냉장고를 확인한 여울은 수면 아래로 몸을 던졌다.
풍덩!
검은색이 가득한 물속에서 천천히 눈을 뜬 여울을 반겨주는 것은 예의 그 차원 메기였다.
‘이놈도 냉장고에 던져놔야겠다.’
메기 매운탕의 감미로운 맛을 떠올리고 입맛을 다신 여울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강렬한 적의를 느낀 걸까.
차원 메기의 지느러미가 사납게 요동쳤다.
그래 봤자 상대는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나약한 몬스터.
여울은 긴장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던전 초짜인 여울은 던전 내부의 어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나아간 앞의 어둠으로부터 붉은색의 무언가가 번뜩였다.
그것이 물고기의 눈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여울의 안색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미, 미친!’
무심코 욕지거리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붉은 안광의 개수가 족히 수십, 수백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무리를 짓는 것.
‘그러고 보니 요리사의 눈으로 확인한 정보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지. 아까 그 두 놈은 단순히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놈들이었구나!’
엄청난 기세로 헤엄쳐 오는 수백 마리의 차원 메기는 심해에서 거대한 백상아리와 마주치는 것만큼이나 두려운 광경이었다.
맞서 싸운다는 발상 따위는 손톱만큼도 떠오르지 않았다.
등을 돌린 여울은 전속력으로 헤엄쳐 도망갔다.
그리고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자신의 오만을 반성했다.
‘스킬을 습득해서 기고만장하고 있었어.’
여울은 이차원 요리라는 스킬을 얻음으로서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어디까지나 기회를 얻었을 뿐, 여전히 여울은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뽀그르르.
아래에서부터 대량의 거품이 올라왔다. 동시에 희미한 녹색의 빛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린 여울은 눈을 크게 뜬 채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바닥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그것은 몸집이 족히 20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생물체였다.
신체를 덮고 있는 녹색의 비늘은 끝없이 점멸을 반복했다.
그 순간 여울은 확신했다.
수로를 통해 무사히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 * *

“헉, 헉…….”
어떻게든 뭍으로 올라온 여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격한 운동을 마친 신체는 대량의 산소를 요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에 젖은 신체는 한없이 무거웠으며 한기로 인해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다수의 차원 메기로부터 겨우 벗어나기는 했지만, 신체 이곳저곳에 물린 상처가 생겼다.
아프고, 힘들고, 괴롭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면에 길이라 부를 수 있는 통로가 뚫려 있다는 것이었다.
이 길이 출구와 연결되어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차원 메기가 우글거리고 거대한 괴물이 서식하는 수로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그리 판단한 여울은 손으로 벽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체력을 너무 썼더니 배고프네.”
허기가 지니 자연히 차원 냉장고에 보관해 둔 차원 메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 어둠 속에서 식재료를 구할 가능성을 따져보니 쉽사리 가방에서 조리 도구를 꺼낼 수가 없었다.
결국 여울은 주린 배를 움켜쥔 채 걸음을 재촉했다.
툭.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발밑에 무언가가 걸렸다.
시선을 떨어뜨리니 기억에 남아있는 신발이 보였다. 백야 제2 공략대의 보급형 전투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으으… 흑흑!”
멀지 않은 곳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두려움으로 범벅이 된 울음을 억지로 참아내며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소리였다.
여울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갔다.
찰박.
조금 진득한 느낌이 드는 웅덩이가 밟혔다.
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딘가 익숙함이 느껴지는 냄새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여울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피 냄새.”
발목을 휘어 감는 액체는 예상대로 새빨간 피였다.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친 여울의 발에 무언가가 밟혔다.
사람의 팔이다.
“아,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사과의 말을 내뱉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피부가 찢겨져나갈 정도로 강하게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비명은커녕 작은 신음조차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손을 빼내려는 아주 미미한 움찔거림조차 없었다.
그 원인을 파악한 여울은 입술을 강하게 씹었다.
그 팔은 누군가의 신체로부터 잘려나간 상태였다.
“제, 제발 살려줘……. 누구든 저 괴물을 어떻게 좀 해주란 말이야…….”
들려오는 작은 흐느낌을 통해 여울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어딘가에 있을 그는 남자였다.
그리고 이 어둠 어딘가에 보스 몬스터가 있다.
“젠장. 길을 잘못 들었네.”
한 줄기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보스 몬스터.
홀에서 마주했던 그 강함을 떠올리자 생존 본능이 경종을 울려댔다.
지금이라도 등을 돌려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물 속 역시 안전하지는 않다.
수백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차원 메기도 문제지만, 수면 깊은 곳에서 봤던 그 거대한 괴물은 보스 몬스터만큼이나 위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위험한 건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라는 건데. 그렇다면.’
여울의 시선이 어둠 깊은 곳.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혼자보다는 여럿일 경우가 생존율은 올라갈 것이다.
“누, 누구야!”
발소리를 들은 상대방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걸음을 멈춘 여울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다행이 눈앞의 남자가 내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적어도 바로 지척에 보스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울은 안심하고 목소리를 냈다.
“요리사로서 공략에 참가한 은여울입니다.”
“사, 살아있었구나!”
여울은 이 남자의 이름은커녕 대화조차 나눈 적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리 반갑게 여울을 맞이해주는 이유는 닥쳐오는 죽음을 홀로 맞이해야 한다는 지독한 공포가 원인일 것이다.
가까이에서 본 헌터는 듬성듬성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성이었다.
눈가는 촉촉하고 콧물 때문에 인중 부분이 번드르르하다.
그는 어떻게든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인지 몇 번이고 꼬꾸라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대충 상황파악은 되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에 중년 헌터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쳤다.
“바닥이 무너지고 떨어진 우리들은 부대장의 지휘 하에 어떻게든 한데 뭉칠 수 있었어.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하유리 대장까지 발견했지.”
“그건 다행이군요.”
하유리에게 목숨의 빚을 진 여울은 그녀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조금이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너를 제외하고 전원이 모였어.”
“그러고 보니…….”
흐릿한 기억을 뒤적여보니 김진수가 자신을 중심으로 뭉치라며 소리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팔이 부러진 여울은 수영을 할 수 없었고, 지시를 따르지 못한 채 물살에 휩쓸렸다.
‘운이 없었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네.’
만약 물에 떠내려가 혼자 고립되지 않았다면 몬스터 요리사라는, 마력 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스킬을 습득하기란 요원했을 것이다.
아마 높은 확률로 이곳에 굴러다니는 시신 중 한 구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출구를 탐색하고 있었는데 그놈이 나타났어. 생각해보면 하유리 대장을 찾았을 때 그놈도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어야 했는데!”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한 던전 내부에 가득 울렸다.
그가 말하는 그놈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그놈이 우리를 덮쳤다. 이처럼 어둠이 가득한 장소에서는 그놈을 발견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그는 떨면서도 그 때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짙은 어둠 속에서 어둠 그 자체로 만들어낸 듯한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
그렇지 않아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는데 지리적 이점까지 적의 손을 들어줬다.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싸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백야 제2 공략대는 손전등의 미약한 빛에 의지한 채 그저 도망쳤고, 이곳에 이르렀다.
전투원 중 대부분은 사망한 상태였다.
여울을 포함해 넷. 이것이 현재 생존해 있는 백야 제2 공략대원의 수였다.
“저 앞으로 가면 희미하게나마 빛이 있는 장소가 나와. 그곳에서 하유리 대장과 김진수 부대장이 보스 몬스터와 싸우고 있을 거다.”
헌터의 손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여울의 눈에는 그저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장소다.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동안 우리는 도망치자. 너도 상대해 봐서 알잖아! 그 괴물은 우리들 힘으로는 쓰러뜨릴 수 없는 놈이야.”
“일리 있는 의견이네요.”
여울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여울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돈을 버는 것이며, 그의 성격은 정의로움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분명히 하유리에게는 목숨 빚을 졌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녀를 돕고 싶었다.
하지만 여울은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았다.
‘F랭크 헌터인 나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겠지.’
스스로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여울은 탈출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현재 여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이 칠흑과도 같은 어둠을 밝혀줄 빛이다.
“손전등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 내 것은 떨어뜨려서 고장 났다. 네 거는?”
“물에 떠내려갈 때 잃어버렸습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할 여울이 아니다. 그는 주변의 시체를 더듬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가 없는 시체의 주머니를 샅샅이 살펴보고, 머리가 잘려나간 시체를 뒤집어 철저하게 확인했다.
혹시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맥을 짚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헛된 희망에 그쳤다.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시체의 손에서 손전등을 발견한 여울은 만면에 미소를 그렸다.
“발견했습니다. 다행히도 고장이 난 것 같지는 않네요.”
“아… 응.”
손전등을 켜보며 웃고 있는 여울을 응시하던 중년의 헌터는 못 볼 것을 봤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리사. 너 던전 공략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냐?”
“그렇습니다만.”
“그런 것 치고는 뭐라고 할까…….”
그는 말을 흐렸다.
이곳에 있는 시체는 하나같이 처참하게 찢기고 잘려나간 것뿐이었다.
살인사건에 익숙한 강력계 형사조차 구역질을 할 만큼 잔혹한 공간이다.
그 속에서 타인의 피를 뒤집어쓴 채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젊은 남자의 모습은 중년의 헌터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여울은 흐릿하게 웃었다.
“겁먹고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 그것도 그러네. 손전등도 찾았겠다, 이곳에서 탈출하자.”
“네.”
여울이 손을 뻗어 중년의 헌터를 일으켜준 직후였다.
“으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