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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게임을 즐기던 여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언짢음에 휩싸여 있었다.
거울을 보면 자신이 아니라 야차의 얼굴이 보일 거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 이유는, 이른 아침부터 기자들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여울 헌터님! 도대체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백야의 2번 공략대 중 생존자는 단 둘이라 들었습니다. 이에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보스 몬스터는 어떻게 쓰러뜨리신 거죠? 그리고 F랭크인 은여울 씨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은 겁니까? 그리고 코어는…….”
그들은 쉬지 않고 질문 공세를 던져댔다.
만약 간호사가 그들을 필사적으로 내쫓지 않았다면 이 현세의 지옥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을 것이다.
“환자분은 지금 안식을 취해야 합니다. 다들 나가요!”
기자들은 전직 격투기 선수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우람한 체격의 간호사에게 떠밀려 병실로부터 쫓겨났다.
겨우 되찾은 고요함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짜증이 가시자 잠시 잊고 있던 감정이 심상에서 재차 부각되었다.
“후후.”
고요함을 깨뜨리는 것은 여울이 흘린 작은 웃음소리였다.
“후후후후.”
병원비는 그가 소속된 백야에서 지급해줬다.
다만 1인실이 아니라 4인실.
세계 8번째 슬레이어가 된 자신에게 이런 푸대접이나 한다는 게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했지만, 그런 건 사소하다 해도 좋았다.
‘이것’에 비한다면 말이다.
주체하지 못한 웃음소리에 같은 병실을 쓰던 사람들의 이목이 여울에게 꽂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젊은이는 헌터님이라고 했지?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가?”
허리디스크로 입원한 옆자리의 노인이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여울에게 말을 붙였다.
그에 여울은 억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완벽한 미소로 화답했다.
“네. 굉장히 좋은 일이 있었죠.”
그 좋은 일이란 현재 여울의 차원 냉장고 안에 고이 잠들어 있다.
단두대의 효과로 인해 머리를 잘린 보스 몬스터의 사체는 시간의 흐름이 동결된 공간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의 사체에는 아직 도축하지 않은 코어가 있다.
‘현재까지 세상에 단 일곱 개밖에 풀리지 않은 보스 몬스터의 코어! 그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의사에게서는 안정을 취하란 말을 들었지만, 심장이 미친 것처럼 뛰어대는 까닭에 안정을 취할 수가 없었다.
보스 몬스터의 코어.
정확한 시세가 매겨진 물건은 아니지만 그 값은 의심할 것도 없이 천문학적인 수치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여울은 남들에게는 ‘보스 몬스터의 코어는 미처 회수하지 못했다.’라고 진술했다.
때문에 정규 루트로는 코어를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울은 어둠의 루트를 전혀 알지 못할뿐더러, 그쪽으로의 판매는 당연히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익을 분배하는 것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완전히 내 통장으로 돈을 집어넣는 편이 나아.’
본래라면 코어의 수익금은 여울이 소속되어 있는 백야, 그리고 하유리와 분배해야만 한다.
그것이 전투 기여도와는 무관하게 네임드, 챔피언, 보스 몬스터의 코어의 권리에 대한 법률이다.
그러나 목숨을 건 도박까지 해가며 겨우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는데, 밥상을 차려다가 다른 사람 입에 넣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코어를 판매한다면 돈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어.’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것이고, 그만큼 여유를 얻게 될 것이다.
먹고 사는 것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유까지 누릴 수 있다.
그것은 곧 여울의 삶의 질을 끌어올려 줄 터였다.
‘만약 그렇게 되면 다시 요리를 시작할까? 스승님의 레스토랑을 인수해서 나만의 레스토랑을 개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으려니 돌연 던전에서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몬스터를 가지고 요리를 할 때의 기억이었다.
그의 스킬은 헌터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요리사로서의 능력도 상승시켜줬다.
심지어 요리를 먹는 것으로 그 능력을 보다 더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돈 때문에 여울이 놓아야만 했던 꿈. 그것은 자타공인 최고의 셰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여울의 수준은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에 불과하다.
아무리 자비로운 평가를 해도 최고는커녕 그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때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는 그가 만든 요리가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여울이 보고 있는 목표는 그보다 더욱, 아득하게 높은 곳에 있었다.
“잉? 이번에는 무슨 걱정거리라도 떠오른 겐가?”
한참 싱글벙글하던 여울이 돌연 심각한 얼굴을 하자, 옆자리의 노인이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여울은 얼굴에 급조한 미소를 만들었다.
“별거 아닙니다만… 사실 안정적인 삶과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입니다.”
“흐음…….”
노인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서울의 한국병원에 입원 중인 조부의 건강하던 때를 연상케 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네… 라고 자네가 보통의 젊은이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걸세. 하지만 자네는 헌터님이 아닌가.”
노인의 시선이 여울에게서 벗어나 창밖의 먼 곳으로 향했다.
그 눈빛에서 숨길 수 없는 그리움이 묻어났다.
“잘 생각하고 많이 고민하시게. 돈, 명예, 꿈, 가족. 자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말일세.”
“감사합니다.”
인생의 선배가 남긴 충고에 여울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 * *

여울이 처음으로 요리를 한 것은 11살 때였다.
던전 브레이크로 양친을 여읜 여울 남매는 사고 소식을 들은 조부에게 맡겨지기 전까지 단둘이 생활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을 때. 여울은 처음 그녀를 달래기 위해 요리를 했다.
메뉴는 누구나 심플하게 만들 수 있는 달걀 간장밥.
하지만 어렸던 여울이 만든 밥은 떡인지 죽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계란은 탔고, 간장은 너무 많이 넣어 심각하게 짰다.
그럼에도 동생은 이렇게 말해줬다.

“맛있어!”

그 한 마디에 양친을 잃은 슬픔이 조금은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9살 소녀의 순수한 미소가 깊게 패였던 마음의 상처에 새살을 불어넣었다.
여울이 요리에 열중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요리를 하는 것이 즐거웠고, 누군가가 그것을 먹고 맛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좋았다.
상념에 젖어있던 여울은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던전에 들어가자.’
던전에서 이차원 요리 스킬을 통해 헌터로서의 능력을 높인다.
그리고 요리사로서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미각, 기술 따위의 능력을 상승시킨다.
이것을 위해 던전이라는 위험을 무릅쓸 각오를 안았다.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
“…….”
곁에서 들려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여울을 생각의 늪에서 건져 올렸다.
눈을 뜨니 10년을 훌쩍 자라버린 동생의 토라진 얼굴이 보였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귀여운 외모.
인근 여고의 교복을 입은 채 팔짱을 끼고 입술을 한계까지 내밀고 있는 그녀가 세 살 터울의 여동생인 은가람이다.
“이야기는 다 들었어.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헌터가 됐다며?”
부친을 닮아 사나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여울을 매섭게 노려봤다.
다만 두 눈은 퉁퉁 불어 있었으며 토끼처럼 새빨갰다.
여울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밤새 눈물을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관해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주시지.”
그녀가 쏘아내는 기세가 제법 살벌하다.
“나 환자인데 나중에 하면 안 될까?”
일부러 고통에 찬 표정을 지은 여울은 부러진 팔과 가슴의 붕대를 강조하며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살이 통할만 한 상대가 아니다.
“입은 멀쩡하잖아.”
“그건 그렇지.”
단호한 은가람의 태도에 결국 여울은 두 손을 들었다.
‘자, 이제 저 고집불통을 어떻게 설득한담.’
여울이 던전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물론 보스 몬스터의 코어라는 물건을 손에 넣은 여울은 더 이상 돈 때문에 목숨을 걸고 던전에 들어갈 이유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이유가 생겼다.
헌터로서, 그리고 요리사로서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던전에 들어갈 각오를 다진 이상, 여동생을 설득해야만 했다.
여울은 은가람을 응시했다.
‘아무리 가람이라도 스킬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는 편이 좋겠지. 가람이가 의도치 않았다 할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새어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스킬에 관해서는 비밀로 한 채 그녀를 이해시키는 중대한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각을 정리한 여울은 입을 열었다.
“사실 일하던 레스토랑이 망했어.”
“알아. 어제 오빠가 집에 안 돌아와서 찾아가 봤더니 영업을 그만둔다고 하더라.”
“하지만 할아버지 병원비에 빚까지 갚아야 하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헌터 일을 하기로 한 거야.”
여기까지는 조금의 각색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평생을 함께 자라온 남매지간이다. 어지간한 거짓말로는 상대를 속일 수 없다.
여울이 노리는 것은 진실 속에 숨겨진 하나의 거짓으로 그녀를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유가 겨우 돈 때문이었어?”
그녀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하지만 겉과 속이 표리일체 하는 여울과는 달리 은가람은 마음이 여리고 울보다.
그런 은가람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여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고작이라니. 돈의 유무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너도 알잖아?”
“그래봤자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아. 그런 거라면 내가 아르바이트를 할게.”
“그거로는 어림도 없어. 어쨌거나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백야에 가입하게 됐고, 벌어들이는 돈도 상당하니까 넌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돈 벌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오늘 같은 일이 없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해?”
처참한 몰골로 병원에 실려 온 여울의 모습을 떠올린 은가람은 또다시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꺾일 것 같았지만 여울은 고개를 저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만약 여울이 평범한 F랭크 헌터였다면 인천 D-03사건으로 마음이 꺾여 헌터 자격증을 반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가진 스킬인 이차원 요리는 무궁한 성장의 길을 제시해주었다.
분명하게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 포기하기에는 여울이 가진 욕망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다.
때문에 여울은 은가람에게 한 가지 거짓을 고했다.
“어찌 되었건 이미 늦었어. 나는 백야와 장기 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을 파기하면 그만한 페널티를 져야만 해.”
“페널티라니?”
그녀가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음성으로 질문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마도 1년 이하의 징역. 그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금액이 적당할까 고민하던 여울은 그녀가 평생 만져본 적 없는 금액을 내뱉었다.
“1억 이하의 벌금. 지불할 방법이 없으니 결국은 은팔찌 신세겠지.”
“…우씨.”
평생을 돈 때문에 시달려 왔던 그녀는 빚이라는 단어에 몹시 취약하다.
결국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반협박에 가까웠지만, 여울은 결국 여동생으로부터 던전의 출입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안전을 누구보다 생각해주는 동생을 속였기 때문일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울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