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5화]



보통의 서포터라면 가방에 의료용품, 비상식량, 식재료 따위를 넣고 던전에 입장한다.
반대로 던전에서 나갈 때는 가져온 대부분의 물자가 소모되고 그 자리에 몬스터의 코어가 가득 차게 된다.
하지만 여울은 다른 서포터들과는 달리 요리사로서 공략에 참여했다.
때문에 여울의 가방에는 조리 도구와 조미료, 사용하고 남은 소량의 채소 따위가 들어있었다.
“이거면 매운탕 정도는 끓일 수 있으려나.”
점심을 걸렀기 때문에 메뉴를 입에 담은 것만으로도 침이 고일만큼 허기가 졌다.
여울은 마지막 만찬을 위해 조리를 서둘렀다.
냄비에 물을 담아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올린 후 불을 켰다. 물이 끓는 동안 생선을 손질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메기는 몬스터잖아. 일반 생선을 손질하듯 해도 되는 건가?”
다른 부분은 몰라도 지느러미 부분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제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다음 과정으로 생선을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내려던 여울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리고는 행동을 멈췄다.
몬스터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생물이다.
때문에 심장인 코어와 분리된 부분은 구심점을 잃고 녹아내린다.
녹아내리는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을 입에 넣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불가피하게 메기를 통째로 조리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무가 없어서 조금 아쉽네.”
여울은 아쉬운 대로 다시마를 넣어 감칠맛을 노렸다.
물이 끓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고춧가루, 고추장,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과 함께 내장만 제거한 메기를 넣었다.
그 다음에는 대파와 미나리, 쑥갓 등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그렇게 모든 작업을 끝마친 여울은 냄비뚜껑을 닫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메기는 민물고기 중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놈이지만, 몬스터 메기는 어떨까 모르겠네.”
최후의 만찬이 최악의 맛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여울의 미간을 좁아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의미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뚜껑을 열자 코를 찌르는 매콤한 향이 울적한 기분을 단번에 상승시켰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붉은 거품이 고춧가루를 토해냈다.
거품을 타고 쑥갓과 대파가 미친 듯이 어깨춤을 춰댄다.
“역시 한국인은 매운 걸 먹어줘야지.”
입맛을 다신 여울은 빠르게 숟가락으로 붉은 국물 한 수저를 떴다.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숟가락에 입김을 후후 불어 열기를 쫓아낸 후 입으로 옮겼다.
후루룩!
그 한 모금에 눈이 번쩍 뜨였다.
“마, 맛있네?”
수중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맛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매운맛에 숨어있는 묘한 달콤함과 얼큰하고 깊은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도저히 지금의 재료로는 만들어낼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설사 재료가 갖추어져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여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의 맛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설마!”
그의 시선이 붉은 탕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메기에게로 향했다.
반드시 시식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몬스터 고기. 아무리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해도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조금 전 혀끝을 희롱한 맛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여울은 젓가락으로 메기의 살을 찔렀다.
높은 탄력을 가진 고무공처럼 깊이 파이던 살이 어느 순간 ‘통!’하고 젓가락의 침입을 허락했다.
요령껏 살점을 분리해 숟가락에 올린 후 국물을 조금 떠올렸다.
새하얀 살점과 새빨간 국물의 조합은 보고만 있어도 그 맛을 유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우물우물.
꿀꺽.
“마, 말도 안 돼. 이게 진짜 메기라고?”
요리를 입에 댄 여울은 가장 먼저 자신의 혀를 의심했다.
매운맛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야들야들한 식감은 메기의 것이 맞다.
하지만 혀를 농락하는 진하고 풍미 깊은 맛은 여울이 알고 있는 메기의 것과 궤를 달리했다.
여울은 불신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확신을 얻으려 몇 번이고 메기의 살점을 탐했다.
와구와구.
탐욕적으로 식사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냄비는 텅 비어있었다.
초라한 뼛조각만이 그곳에 요리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제길.”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몬스터 메기는 세간에 알려진 메기보다 몇 배는 더 맛있다.
아예 다른 생선이라 해도 의심하지 못할 만큼 별차원의 맛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화가 치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매운탕은 맛있었다.
무심코 비명을 지를 만큼 맛있었기에, 그렇기에 느껴지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서는 죽음을 감내해야 한다고? 너무하잖아!”
미식을 추구하는 요리사로서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만약 신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설정 변경을 요청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덕분에 만족스러운 만찬이었어.”
치밀었던 분노가 가시자 찾아온 이성이 다가올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몬스터의 고기에는 정제되지 않은 마력이 있으며 이것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앞으로 10분 내외에 여울의 신체는 내부에서 발생한 마력충돌로 인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 터져버릴 것이다.
여울은 설거지를 하고 심신을 가다듬는 등 사신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1분.
10분.
1시간.
아무리 기다려도 죽음은커녕 그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진즉에 부풀어 올랐어야 할 신체는 여전했으며 기존의 상처 외에 추가적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의문을 느낀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띠링!
요상한 소리가 나더니 허공에 반투명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운탕 : 차원 메기를 먹었습니다.>
<정제된 마력이 신체에 녹아듭니다. 마력이 4만큼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차원 메기의 특성을 신체가 받아들입니다. 수중 호흡 Lv2, 수중 이동 Lv2, 감각 증폭 Lv1.>
<당신은 지금부터 몬스터 요리사입니다.>

=======================
<능력 Page1>
이름 : 은여울
호칭 : 헌터
근력 : 7 / 민첩 : 7
체력 : 6 / 마력 : 6
정신 : 6 / 감각 : 8
보유스킬 : 이차원 요리
종합 랭크 : F
=======================
<능력 Page2>
호칭 : 몬스터 요리사
기술 : 4 / 예술 : 7
행운 : 6 / 미각 : 2
=======================

“……이게 뭐야?”
마치 게임 속의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혹시나 싶어 뺨을 꼬집어 봤지만 아프다. 꿈이 아니다.
변한 것은 두 개.
고작 2포인트였던 마력이 6포인트로 늘어나 있었다.
거기에다 지금껏 물음표로 표기되어 있던 스킬에 명확한 이름이 나타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옆에는 기묘하게 생긴 화살표가 존재했다.
화살표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측면으로 반투명한 무언가가 추가로 나타났다.

=======================
<스킬 목록>
-마력 정제 Lv1.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마력을 인간의 마력회로에 맞도록 정제시킨다.
요리과정이 필요.
-몬스터 요리 전문가 Lv1.
만들어내는 요리에 특수한 능력을 담아낸다.
단, 완전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코어가 가진 마력을 사용해야만 한다.
-부위 도축 Lv1.
몬스터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 코어와 떨어지게 되더라도 형태와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게끔 해준다.
-차원 냉장고 Lv1.
식재료를 보관하는 데 유용한 차원의 주머니를 이용할 수 있다.
-특성 흡수 Lv1.
몬스터를 먹을 경우 해당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특성 일부를 흡수하는 것이 가능하다.
흡수한 능력은 일정시간만 사용 가능.
-요리사의 눈 Lv1.
식재료의 상태를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가능하다.
=======================

일반적인 헌터라면 겨우 하나의 스킬만을 보유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다수의 스킬을 보유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전례는 없다.
하지만 여울의 스킬은 다섯 개의 하위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이상 사태다.
다중 스킬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봤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를 실험체로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해당 스킬들 전부가 앞으로도 몬스터 요리를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만 같은 설명문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죽을 때가 돼서 헛것을 보는 모양이네. 아니면 몬스터 메기에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이라도 들어있는 건가?”
여러모로 있을 수 없는 일일뿐이었다.
때문에 여울은 확신을 얻기 위해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보급용 단검으로는 위험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거라며 하유리가 빌려준 단검이었다.
표면에는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단순한 장식처럼 보이는 이것은 마력회로라고 하는데, 무기에 더욱 쉽게 마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 이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정량 이상의 마력을 지녀야 한다.
그 최소 수치는 5.
기존에 2의 마력을 가지고 있던 여울이라면 결코 사용할 수 없는 기능이다.
하지만 지금 여울의 손에 들린 단검의 날은 희미한 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력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다.
“하, 하하.”
더 이상 일련의 현상들을 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여울은 허탈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각오했던 여울은 기상천외한 스킬을 손에 넣었다.
그 스킬은 여울에게 그 어떤 각성자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성장의 가능성까지 부여했다.
이게 앞으로 여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아하하하!”
어둠으로 가득한 던전에 여울의 마른 웃음소리만이 가득 울려 퍼졌다.
차가운 은빛의 바람이 그 웃음소리에 함께 섞여들었다.

* * *

“으아아악!”
웃음소리가 끝난 후 이어지는 것은 자지러지는 비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게 뭐야! 아가미?”
현재 여울의 신체는 인간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모습이었다.
먼저, 점액질의 물질이 피부 위를 덮어 메기처럼 매끈매끈해졌다.
마치 기름을 바른 보디빌더 같았다.
그런데 여기까지만이라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진짜 문제는 삼각근 쪽에 나타난 두 쌍의 커다란 상처였다.
벌어졌다 닫히는 것을 반복하는 이 징그러운 상처의 정체가 아가미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여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느껴지는 감각은 기이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조금이지만 오감도 예민해졌다.
물이 흐르는 소리나 공기의 흐름 따위가 민감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조금 전 나타났던 메시지 대로였다.
“그렇다는 말은…….”
거세게 흐르는 수면을 응시하던 여울은 마른침을 삼켰다.
신체에 나타난 변화가 가져다주는 효과가 사실이라면 물속에서의 호흡이 가능할 것이다.
수중 호흡이 가능하다면 이곳에서의 탈출도 불가능은 아니다.
‘우선은 검증을 해보자.’
그는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수온이 매운탕으로 덥혀놓은 그의 체온을 도로 앗아갔다.
머리까지 물에 들어간 여울은 생각했다.
‘아가미 호흡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당연한 의문이었다.
인간에게 꼬리나 날개가 돋았다 해서 바로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하면서도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아가미가 제멋대로 물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가운 물이 체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여울은 여전히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런데도 숨이 가빠오거나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일은 없었다.
여울은 물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수중 이동의 효과인 것일까, 그토록 강하게 느껴지던 물살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자신감이 들었다.
검증을 끝낸 여울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 능력이라면 살아남을 수 있겠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
그것이 180도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