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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일련의 행동에 여울은 의문을 품었다.
‘공략대의 선두와 보스 몬스터까지의 간격은 약 20여 미터. 반면에 저 놈의 공격범위는 끽해야 2미터 남짓……. 도저히 공격이 닿을만한 거리가 아닌데?’
그러나 여울을 포함해 모두가 알지 못했을 뿐, 그들은 이미 보스몬스터의 사정거리 내에 진입해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상황파악을 마친 하유리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여울을 덮쳤다.
“어어?”
영문도 모른 채 엉덩방아를 찧은 여울의 신체 위로 하유리의 무게가 더해졌다.
손꼽히는 강자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가벼운 무게에 놀라고 있을 그때였다.
콰드드득!
대기를 찢어발기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의 무언가가 여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푸확!
붉은 무언가가 그 뒤를 따른다.
그 일부는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여울의 뺨에 떨어졌다.
뜨거운 그것의 정체가 피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여울의 표정은 경직됐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여울의 눈에 보인 것은 머리를 잃은 채 허물어져 내리는 세 명의 헌터였다.
“…….”
모두가 말을 잃고 말았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겁던 분위기는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여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참극을 만들어낸 당사자를 눈으로 좇았다.
하지만 왕좌에 낫과 같은 발톱을 가진 보스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솟구쳐 오른 소량의 흙먼지만이 눈에 띌 뿐이다.
“끄아아악!”
갑작스레 들려온 비명이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곳에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그는 어느 공략대원의 머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공중에 떠오른 공략대원의 비명이 높아지고 발버둥이 거세졌다.
하지만 무언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격하게 날뛰던 그의 신체가 축 늘어졌다.
보스 몬스터의 길게 찢어진 입가를 타고 붉은 피와 새하얀 뇌수가 섞인 끔찍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할짝.
시체를 내다 버린 보스 몬스터가 피에 젖은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전신은 검은 주제에 그 혀만큼은 선명한 피처럼 붉다.
그렇기에 더욱 자극적이고 섬뜩했다.
[우오오오!]
귀에 걸릴 듯 길게 찢어진 입으로부터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생명체를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콰득! 콰직!
보스 몬스터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 대신 끔찍한 소음들이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과 수초 전 겁먹은 표정으로 곁에 서 있던 공략대원이 머리를 잃은 채 피 분수를 쏘아 올렸다.
바닥을 구른 머리는 자신의 죽음을 불신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스걱!
보스 몬스터의 발톱이 여성 헌터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 피했다.”
그녀는 환호했다.
꽤나 큰 상처가 생기기는 했지만 죽을 위기를 모면했는데 그게 대수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툭. 데구르르.
그녀의 머리는 보이지 않는 칼날에 잘린 것처럼 몸과 분리되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악!”
“도, 도망쳐! 저런 걸 사냥하겠다고? 그건 미친 소리야!”
저항 따위는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이곳에 있는 공략대원 중에는 보스 몬스터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것조차 허락되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씨발…….”
학살의 장소로부터 달아나던 여울은 작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보스 몬스터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몬스터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죽음을 직감한 여울은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C, D랭크 헌터들도 속수무책으로 죽는데, F랭크인 여울이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려는 그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아직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여동생과 각종 의료기기에 의존해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까 보냐!”
번쩍 눈을 뜬 여울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끝에 닿은 것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보급 받은 단검이었다.
그것을 뽑아 든 그는 정면을 향해 내질렀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공격.
하지만 행운인지 불행인지 칼날은 고속으로 내달리던 보스 몬스터의 푸른 안구와 접촉했다.
콰앙!
“으아아악!”
굉음이 들려온 직후, 오른팔로부터 엄청난 격통이 뒤따랐다.
눈앞에는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보스 몬스터의 입 언저리에서는 부러진 단검의 부스러기가 흩날렸다.
그리고 여울의 오른팔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단검이 안구에 접촉한 순간 뒤로 물러난 보스 몬스터가 단검을 깨물어 부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울의 팔뼈마저 부러뜨릴 만큼 보스 몬스터의 힘은 굉장했다.
무기를 처리한 보스 몬스터는 여울의 머리를 몸과 분리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결국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던 건가.’
자신의 나약함에 분을 느낀 여울은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 발버둥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구원자가 이곳에 있었다.
“하아앗!”
외마디 기합과 함께 하유리의 신체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녀의 검 끝은 보스 몬스터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크오오오!]
보스 몬스터의 입에서부터 터져 나온 고통에 찬 비명이 여울뿐만 아니라 전투를 지켜보던 모두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검을 회수하는 하유리의 입가에도, 자신의 부러진 팔을 붙잡고 있는 여울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보스 몬스터의 공격력과 민첩함은 압도적이다.
만약 거기에 더해 공격조차 통하지 않았다면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유리의 일격을 통해 방어력이 생각보다 저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살아남을 수 있다.
여울은 놓쳤던 희망의 끈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그 순간.
“죽어라아아!”
발작하듯 소리친 김진수의 손에서 보석이 내던져졌다.
그것을 본 하유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개자식!”
예쁘장한 얼굴과는 달리 의외로 입이 거친 그녀가 여지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툭.
보석은 보스 몬스터의 머리를 때렸다. 보스 몬스터의 붉은 눈이 보석으로 향했다.
그 순간 보석은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콰앙!
폭발의 빛은 가장 먼저 보스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그 다음으로는 보스 몬스터와 가까이 있던 하유리가 휩쓸렸다.
김진수가 가진 스킬은 재물폭발.
손에 닿은 물건을 지연폭발 시키는 스킬로, 해당 물건의 가치에 따라 폭발의 파괴력이 결정된다.
그리고 지금 던진 보석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고가의 물건이었다.
“원망하지 마라, 하유리. B랭크 헌터 하나의 희생으로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다면 남는 장사잖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의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폭발 때문에 발생한 연기가 걷혔을 때 보인 것은 김진수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 장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하유리도, 보스 몬스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거세게 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슬쩍 보이는 바닥의 단면은 생각 이상으로 얇았다.
기껏해야 30센티미터 남짓. 그 얇은 발판이 B랭크 헌터의 스킬에 붕괴해버린 것이다.
“쳇. 죽지는 않은 건가……. 그래도 살았으니 다행이지. 으하하하!”
김진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비록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하유리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저 없이 동료를 희생시키는 그의 판단에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너희들도 내 덕에 살았잖아!”
‘……단순한 개자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마 같은 놈이네.’
김진수가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여울은 그를 향한 평가를 수정했다.
하유리는 죽을 운명이었던 여울을 두 번이나 구했다.
은인의 목숨을 강제로 희생시킨 김진수를 향해 분노가 솟구쳤다.
자신에게 힘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김진수의 안면 한복판에 주먹을 박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고작 F랭크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한계가 너무도 한탄스러웠다.
‘내가 만약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다면, 반드시 복수해줄게요.’
가만히 눈을 감은 여울은 하유리의 비참한 최후를 애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그그.
돌연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 생각에 구멍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구멍을 시작으로 퍼진 균열이 방 전체로 넓어지고 있었다.
“설마…….”
범위를 넓히는 균열을 지켜보던 모두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려갔다.
자연히 좋지 않은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르르르!
더 이상 하중을 견디지 못할 만큼 망가진 바닥은 완전히 붕괴해버렸다.
“으아아악!”
발판을 잃은 생존자들의 신형은 저 깊은 곳을 향해 급속도로 추락했다.
풍덩!
여울의 신체를 받아준 것은 차가운 수면이었다.
바닥은 깊고 물살은 강하다.
더군다나 팔이 부러진 그는 자유자재로 수영을 할 수도 없었다.
‘크윽!’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기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벽면에 매달린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보스 몬스터의 푸른 눈동자였다.
* * *
운이 좋았다.
그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여울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팔이 부러져 수영이 불가능했던 여울은 모두와 떨어지게 되었다.
강한 물살에 어찌할 도리도 없이 떠내려가는 도중, 가방이 무언가에 걸렸다.
확인해보니 넓고 평평한 바위 끝에 돌출된 뾰족한 곳에 주머니 부분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사, 살았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였다.
“으악!”
어떻게든 바위 위로 올라가기 위해 꼼지락거리고 있으려니 허벅지로부터 통증이 밀려왔다.
확인해보니 수면 아래로 자신의 허벅지를 물고 있는 커다란 물고기가 보였다.
언제나 식용으로만 생각했던 생선에게 살점을 뜯기고 있다는 현실이 충격과 함께 분노를 선사했다.
“생선 주제에!”
그 분노를 힘으로 승화시킨 여울은 단번에 바위 위로 올라갔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물고기의 아가미에 손을 집어넣은 여울이 강하게 잡아당겼다.
소량의 살점이 뜯겨 나가며 물고기가 떨어져 나왔다.
바위 위에서 펄떡거리고 있는 물고기의 정체는 메기였다.
다만 지느러미 부분이 유연한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이곳은 던전이다. 그리고 던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은 오로지 몬스터뿐이다.
물에서 살아가는 메기의 정체가 몬스터라 생각하니,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보스 몬스터가 떠올랐다.
갈 곳을 잃은 분노는 자연스레 메기에게로 향했다.
“죽어!”
주먹만 한 돌멩이를 쥔 여울은 메기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메기의 머리에서 피가 튀었다. 싱싱하던 움직임도 급격하게 둔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울은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돌멩이를 내리쳤다.
메기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붉게 변한 돌멩이를 내던진 여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흥분이 가라앉자 잊고 있던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왔다.
“배고프다.”
그리고 잊고 있던 허기도 함께 찾아왔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는 했지만, 현재 여울이 처한 상황은 결코 다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선 장소부터가 문제다.
동굴처럼 위가 막혀 있어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주변이 어두웠다.
팔은 부러졌고, 신체 곳곳에는 떠내려 오는 동안 치이며 생긴 상처가 가득했다.
지상보다 기온이 현저하게 낮은데다가 옷도 젖었고, 상처로부터 피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떨어진 체온 탓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물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만큼 흐름이 강하고, 그 안에는 인간을 먹이로 아는 몬스터 물고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하로 떨어진 것은 백야 2번 공략대만이 아니다.
보스 몬스터.
그 강대한 힘을 가진 살육자 역시 이 어둠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근심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네.”
하나하나 위험요소를 꼽아보던 여울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에는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한 공포와 후회의 기색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던전 따위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구조는 기대하기 어렵겠지.”
본디 공략대와의 소식이 두절될 경우, 유니온에서는 추가로 공략대를 파견한다.
그들은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 지구상에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는다.
뿐만 아니라 던전 내부에 생존자가 있으면 그들을 구출하는 역할도 겸한다.
헌터는 귀중한 인력자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공략에 실패했을 경우에 해당한다.
보스룸. 즉 두 번째 문이 개방되었을 경우 지구와 연결되어 있는 첫 번째 문은 완전히 폐쇄된다.
그러니 살아남을 방법은 오로지 하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때까지 버티고 버텨 지구상으로 쏟아지는 몬스터 틈에 섞여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 방법에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조금 전 백야 2번 공략대가 던전을 소탕했으니 브레이크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1일.”
여울은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하지만 내 체력으로는 11일을 버티는 건 불가능해. 부상도 있고 식량도 없을뿐더러, 11일을 버틴다 해도 몬스터들 사이를 뚫고 출구까지 향할 능력도 없어.”
분석은 끝났다.
분석 결과 여울이 할 수 있는 일은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도,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육체는 아직 생존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꼬르륵.
배가 울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것도 괜찮겠지.”
여울의 시선이 머리통이 짓이겨진 메기에게로 향했다.
일련의 행동에 여울은 의문을 품었다.
‘공략대의 선두와 보스 몬스터까지의 간격은 약 20여 미터. 반면에 저 놈의 공격범위는 끽해야 2미터 남짓……. 도저히 공격이 닿을만한 거리가 아닌데?’
그러나 여울을 포함해 모두가 알지 못했을 뿐, 그들은 이미 보스몬스터의 사정거리 내에 진입해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상황파악을 마친 하유리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여울을 덮쳤다.
“어어?”
영문도 모른 채 엉덩방아를 찧은 여울의 신체 위로 하유리의 무게가 더해졌다.
손꼽히는 강자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가벼운 무게에 놀라고 있을 그때였다.
콰드드득!
대기를 찢어발기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의 무언가가 여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푸확!
붉은 무언가가 그 뒤를 따른다.
그 일부는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여울의 뺨에 떨어졌다.
뜨거운 그것의 정체가 피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여울의 표정은 경직됐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여울의 눈에 보인 것은 머리를 잃은 채 허물어져 내리는 세 명의 헌터였다.
“…….”
모두가 말을 잃고 말았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겁던 분위기는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여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참극을 만들어낸 당사자를 눈으로 좇았다.
하지만 왕좌에 낫과 같은 발톱을 가진 보스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솟구쳐 오른 소량의 흙먼지만이 눈에 띌 뿐이다.
“끄아아악!”
갑작스레 들려온 비명이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곳에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그는 어느 공략대원의 머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공중에 떠오른 공략대원의 비명이 높아지고 발버둥이 거세졌다.
하지만 무언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격하게 날뛰던 그의 신체가 축 늘어졌다.
보스 몬스터의 길게 찢어진 입가를 타고 붉은 피와 새하얀 뇌수가 섞인 끔찍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할짝.
시체를 내다 버린 보스 몬스터가 피에 젖은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전신은 검은 주제에 그 혀만큼은 선명한 피처럼 붉다.
그렇기에 더욱 자극적이고 섬뜩했다.
[우오오오!]
귀에 걸릴 듯 길게 찢어진 입으로부터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생명체를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콰득! 콰직!
보스 몬스터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 대신 끔찍한 소음들이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과 수초 전 겁먹은 표정으로 곁에 서 있던 공략대원이 머리를 잃은 채 피 분수를 쏘아 올렸다.
바닥을 구른 머리는 자신의 죽음을 불신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스걱!
보스 몬스터의 발톱이 여성 헌터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 피했다.”
그녀는 환호했다.
꽤나 큰 상처가 생기기는 했지만 죽을 위기를 모면했는데 그게 대수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툭. 데구르르.
그녀의 머리는 보이지 않는 칼날에 잘린 것처럼 몸과 분리되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악!”
“도, 도망쳐! 저런 걸 사냥하겠다고? 그건 미친 소리야!”
저항 따위는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이곳에 있는 공략대원 중에는 보스 몬스터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것조차 허락되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씨발…….”
학살의 장소로부터 달아나던 여울은 작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보스 몬스터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몬스터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죽음을 직감한 여울은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C, D랭크 헌터들도 속수무책으로 죽는데, F랭크인 여울이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려는 그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아직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여동생과 각종 의료기기에 의존해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까 보냐!”
번쩍 눈을 뜬 여울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끝에 닿은 것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보급 받은 단검이었다.
그것을 뽑아 든 그는 정면을 향해 내질렀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공격.
하지만 행운인지 불행인지 칼날은 고속으로 내달리던 보스 몬스터의 푸른 안구와 접촉했다.
콰앙!
“으아아악!”
굉음이 들려온 직후, 오른팔로부터 엄청난 격통이 뒤따랐다.
눈앞에는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보스 몬스터의 입 언저리에서는 부러진 단검의 부스러기가 흩날렸다.
그리고 여울의 오른팔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단검이 안구에 접촉한 순간 뒤로 물러난 보스 몬스터가 단검을 깨물어 부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울의 팔뼈마저 부러뜨릴 만큼 보스 몬스터의 힘은 굉장했다.
무기를 처리한 보스 몬스터는 여울의 머리를 몸과 분리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결국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던 건가.’
자신의 나약함에 분을 느낀 여울은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 발버둥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구원자가 이곳에 있었다.
“하아앗!”
외마디 기합과 함께 하유리의 신체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녀의 검 끝은 보스 몬스터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크오오오!]
보스 몬스터의 입에서부터 터져 나온 고통에 찬 비명이 여울뿐만 아니라 전투를 지켜보던 모두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검을 회수하는 하유리의 입가에도, 자신의 부러진 팔을 붙잡고 있는 여울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보스 몬스터의 공격력과 민첩함은 압도적이다.
만약 거기에 더해 공격조차 통하지 않았다면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유리의 일격을 통해 방어력이 생각보다 저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살아남을 수 있다.
여울은 놓쳤던 희망의 끈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그 순간.
“죽어라아아!”
발작하듯 소리친 김진수의 손에서 보석이 내던져졌다.
그것을 본 하유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개자식!”
예쁘장한 얼굴과는 달리 의외로 입이 거친 그녀가 여지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툭.
보석은 보스 몬스터의 머리를 때렸다. 보스 몬스터의 붉은 눈이 보석으로 향했다.
그 순간 보석은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콰앙!
폭발의 빛은 가장 먼저 보스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그 다음으로는 보스 몬스터와 가까이 있던 하유리가 휩쓸렸다.
김진수가 가진 스킬은 재물폭발.
손에 닿은 물건을 지연폭발 시키는 스킬로, 해당 물건의 가치에 따라 폭발의 파괴력이 결정된다.
그리고 지금 던진 보석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고가의 물건이었다.
“원망하지 마라, 하유리. B랭크 헌터 하나의 희생으로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다면 남는 장사잖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의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폭발 때문에 발생한 연기가 걷혔을 때 보인 것은 김진수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 장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하유리도, 보스 몬스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거세게 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슬쩍 보이는 바닥의 단면은 생각 이상으로 얇았다.
기껏해야 30센티미터 남짓. 그 얇은 발판이 B랭크 헌터의 스킬에 붕괴해버린 것이다.
“쳇. 죽지는 않은 건가……. 그래도 살았으니 다행이지. 으하하하!”
김진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비록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하유리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저 없이 동료를 희생시키는 그의 판단에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너희들도 내 덕에 살았잖아!”
‘……단순한 개자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마 같은 놈이네.’
김진수가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여울은 그를 향한 평가를 수정했다.
하유리는 죽을 운명이었던 여울을 두 번이나 구했다.
은인의 목숨을 강제로 희생시킨 김진수를 향해 분노가 솟구쳤다.
자신에게 힘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김진수의 안면 한복판에 주먹을 박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고작 F랭크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한계가 너무도 한탄스러웠다.
‘내가 만약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다면, 반드시 복수해줄게요.’
가만히 눈을 감은 여울은 하유리의 비참한 최후를 애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그그.
돌연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 생각에 구멍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구멍을 시작으로 퍼진 균열이 방 전체로 넓어지고 있었다.
“설마…….”
범위를 넓히는 균열을 지켜보던 모두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려갔다.
자연히 좋지 않은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르르르!
더 이상 하중을 견디지 못할 만큼 망가진 바닥은 완전히 붕괴해버렸다.
“으아아악!”
발판을 잃은 생존자들의 신형은 저 깊은 곳을 향해 급속도로 추락했다.
풍덩!
여울의 신체를 받아준 것은 차가운 수면이었다.
바닥은 깊고 물살은 강하다.
더군다나 팔이 부러진 그는 자유자재로 수영을 할 수도 없었다.
‘크윽!’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기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벽면에 매달린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보스 몬스터의 푸른 눈동자였다.
* * *
운이 좋았다.
그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여울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팔이 부러져 수영이 불가능했던 여울은 모두와 떨어지게 되었다.
강한 물살에 어찌할 도리도 없이 떠내려가는 도중, 가방이 무언가에 걸렸다.
확인해보니 넓고 평평한 바위 끝에 돌출된 뾰족한 곳에 주머니 부분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사, 살았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였다.
“으악!”
어떻게든 바위 위로 올라가기 위해 꼼지락거리고 있으려니 허벅지로부터 통증이 밀려왔다.
확인해보니 수면 아래로 자신의 허벅지를 물고 있는 커다란 물고기가 보였다.
언제나 식용으로만 생각했던 생선에게 살점을 뜯기고 있다는 현실이 충격과 함께 분노를 선사했다.
“생선 주제에!”
그 분노를 힘으로 승화시킨 여울은 단번에 바위 위로 올라갔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물고기의 아가미에 손을 집어넣은 여울이 강하게 잡아당겼다.
소량의 살점이 뜯겨 나가며 물고기가 떨어져 나왔다.
바위 위에서 펄떡거리고 있는 물고기의 정체는 메기였다.
다만 지느러미 부분이 유연한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이곳은 던전이다. 그리고 던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은 오로지 몬스터뿐이다.
물에서 살아가는 메기의 정체가 몬스터라 생각하니,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보스 몬스터가 떠올랐다.
갈 곳을 잃은 분노는 자연스레 메기에게로 향했다.
“죽어!”
주먹만 한 돌멩이를 쥔 여울은 메기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메기의 머리에서 피가 튀었다. 싱싱하던 움직임도 급격하게 둔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울은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돌멩이를 내리쳤다.
메기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붉게 변한 돌멩이를 내던진 여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흥분이 가라앉자 잊고 있던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왔다.
“배고프다.”
그리고 잊고 있던 허기도 함께 찾아왔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는 했지만, 현재 여울이 처한 상황은 결코 다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선 장소부터가 문제다.
동굴처럼 위가 막혀 있어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주변이 어두웠다.
팔은 부러졌고, 신체 곳곳에는 떠내려 오는 동안 치이며 생긴 상처가 가득했다.
지상보다 기온이 현저하게 낮은데다가 옷도 젖었고, 상처로부터 피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떨어진 체온 탓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물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만큼 흐름이 강하고, 그 안에는 인간을 먹이로 아는 몬스터 물고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하로 떨어진 것은 백야 2번 공략대만이 아니다.
보스 몬스터.
그 강대한 힘을 가진 살육자 역시 이 어둠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근심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네.”
하나하나 위험요소를 꼽아보던 여울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에는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한 공포와 후회의 기색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던전 따위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구조는 기대하기 어렵겠지.”
본디 공략대와의 소식이 두절될 경우, 유니온에서는 추가로 공략대를 파견한다.
그들은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 지구상에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는다.
뿐만 아니라 던전 내부에 생존자가 있으면 그들을 구출하는 역할도 겸한다.
헌터는 귀중한 인력자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공략에 실패했을 경우에 해당한다.
보스룸. 즉 두 번째 문이 개방되었을 경우 지구와 연결되어 있는 첫 번째 문은 완전히 폐쇄된다.
그러니 살아남을 방법은 오로지 하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때까지 버티고 버텨 지구상으로 쏟아지는 몬스터 틈에 섞여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 방법에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조금 전 백야 2번 공략대가 던전을 소탕했으니 브레이크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1일.”
여울은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하지만 내 체력으로는 11일을 버티는 건 불가능해. 부상도 있고 식량도 없을뿐더러, 11일을 버틴다 해도 몬스터들 사이를 뚫고 출구까지 향할 능력도 없어.”
분석은 끝났다.
분석 결과 여울이 할 수 있는 일은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도,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육체는 아직 생존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꼬르륵.
배가 울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것도 괜찮겠지.”
여울의 시선이 머리통이 짓이겨진 메기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