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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헌터는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는 위험한 직업이다.
그럼에도 헌터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간단했다.
희소성과 경제성.
던전에서 출몰하는 몬스터의 사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코어는 신세대 에너지고, 몬스터가 있는 던전은 오직 헌터만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헌터 자체가 매우 희귀하다.
여울은 그런 헌터들 중에서도 최고의 랭크들이 즐비한,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백야에 고용됐다.
물론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 서포터이니 앞장서서 몬스터와 싸울 일은 없다.
그리고 대형 길드이기에 던전 공략의 안정도는 다른 중소길드나 소형 클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주제에 급여는 눈이 빠져나올 정도로 높으며 안전수당, 특별수당까지 계산하면 지금까지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헌터활동을 할 걸 그랬어.’
이렇게 생각한 것이 고작 10분 전이다.
현재 여울의 얼굴은 팔팔하게 날뛰는 애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제길, 망할, 빌어먹을!’
입을 여는 순간 안에서 맴돌던 욕설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토록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있는 도중임에도 말이다.
그 이유는 한 명의 남자 때문이었다.
김진수.
여울과 동갑인 그는 백야 2번 공략대의 부대장이다.
그리고 절망스런 인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나보고 지금 이딴 걸 먹으라고 내놓은 거냐?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와장창!
화려하게 엎어진 접시가 던전의 차디찬 바닥을 구르며 산산이 부서졌다.
최선을 다해 만든 오므라이스는 형편없이 짓이겨졌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여울의 이성도 하염없이 일그러졌다.
“네가 누군지 내가 알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너는 먹을 거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가정교육도 받지 못한 거냐?”
“그러는 네놈은 목숨을 최소 두 개는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 감히 내 앞에서 그런 태도인 걸 보니!”
두 남자는 서로 눈을 마주한 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살의를 풀풀 날리는 두 사람 사이에 다른 공략대원들의 저지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칼부림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바닥을 뒹구는 자는 필연적으로 여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진수는 B랭크 헌터다. F랭크인 여울보다 네 단계나 윗선에 있다.
또한, 백야의 최고 후원기업인 일선의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외동아들이기도 하다.
거기에 잘난 외모까지 더해져 인생의 성공가도를 걸어왔다.
아니, 달려왔다.
그 때문일까. 그의 인성은 놀랄 만큼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이런 걸 먹느니 차라리 굶고 말지. 제대로 된 요리사를 영입해왔다고 들었는데 기껏해야 풋내기 수준이잖아! 어디서 저런 걸 주워 와가지고…….”
“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모양인데, 병원 꼭 가봐라.”
“너는 진짜 밤길 조심해라.”
자신보다 한참은 약한 주제에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여울 때문에 화가 치민 김진수가 괜히 발치에 걸리는 돌멩이를 걷어찼다.
분노에 타오르는 것은 김진수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요리를 모독당한 여울의 손 위에서 날달걀의 껍질이 으스러졌다.
흰자와 노른자, 거기에 소량의 피가 섞여 던전의 바닥을 적셨다.
악과 깡으로 덤벼들기는 했지만 권력, 무력, 재력 그 모든 것이 뒤떨어지는 현실은 패배감을 넘어 비참하기까지 했다.
‘너야말로 밤길에 뚝배기 조심해라.’
여울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밤길에 이 원한을 갚으리라 다짐하며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요리과정은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미안해요.”
공략대장이자 안면이 있는 하유리가 김진수를 대신해 머리를 숙였다.
“일선 기업은 우리 백야의 지분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어서 저런 인간이라도 딱히 처벌할 방법이 없어요. 대신 사과할게요.”
“괜찮습니다. 개한테 물린 셈 치죠.”
“아마 여울 씨의 요리가 맛없어서 저러는 것은 아닐 거예요. 여울 씨를 자기보다 아래로 보고 있는데 정작 여울 씨는 조금도 져주지 않으니 괜히 트집을 잡은 거겠죠.”
“애네요.”
“애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조금은 화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평소보다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야.’
이곳은 던전. 완벽한 요리를 하기에는 환경도, 조건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여울이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요리를 내놓는 것이지, 최고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것은 요리가 아니라 창조의 영역이다.
하지만 자질구레한 변명이 될 것 같아서 여울은 입을 다물었다.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여울 씨가 해주시는 요리는 정말 맛있어요. 저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런 맛은 흉내도 못 내요.”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솔직한 칭찬에 여울의 콧대가 조금 높아졌다.
“특별히 드시고 싶은 메뉴라도 있으신가요? 자신 있는 쪽은 이탈리아 요리지만 한, 중, 일, 프랑스 요리의 기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다면 저는 면 요리를…….”
조금 전보다 밝아진 두 사람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김진수로 인한 불쾌함을 잊어버리려고 일부러 분위기를 띄운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것일까.
여울은 던전의 바닥에 그려져 있던 문양 중에서 아주 자그마한 태양을 밟았다.
그리고 하유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달을 밟았다.
대화를 나누던 두 남녀는 정확하게 서로를 응시하며 문양 위로 무게를 실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여울의 손끝에서 떨어진 피 한 방울이 두 개의 문양 사이에 있던 나선의 중심에 툭 떨어졌다.
그 결과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던 인천 D-03의 숨겨진 문이 열렸다.
그그그그!
땅이 울리고 주변의 지형지물이 변동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비명이 울리고, 진동을 견디지 못해 주저앉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 혼란 속에서 원을 그리며 갈라진 땅 너머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지하를 향해 뻗어있는 계단이었다.
계단을 본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두 번째 문…….”
던전의 완전한 공략으로 향하는 길.
보스룸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 * *
기본적으로 위험이라는 요소가 지천에 깔린 것이 던전이라는 장소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를 꼽으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외칠 것이다.
두 번째 문 너머의 방.
통칭 보스룸.
단순히 던전 내부의 몬스터를 소탕해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기본적인 공략이 아니라, 던전의 완벽한 소멸을 노리는 완전공략을 위해서는 반드시 보스의 사멸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개의 공략대는 완전공략을 기피하고는 한다.
첫 번째 이유는 두 번째 문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며, 두 번째 이유는 보스 몬스터의 강력함 때문이다.
지금껏 던전의 완전공략이 이루어졌다는 보고는 전 세계를 통틀어 7회에 불과했다.
보스 몬스터의 강함은 통상의 몬스터와 비교해 궤를 달리하며, 그것들의 손에 죽은 헌터의 수는 헤아리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그런 연유로 졸지에 두 번째 문을 발견하게 된 하유리는 난색을 표했다.
“반갑지 않은 행운이네. 아쉽지만 이번 공략은 여기에서 멈추겠어.”
차가운 얼굴로 명령을 내리는 그녀에게서 명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백야 2번 공략대장인 하유리가 하는 말이다. 여울은 그녀의 결정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20여 명의 공략대원 대부분은 그녀의 의견에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단 한 명. 김진수의 등장 때문에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다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후퇴? 멍청하긴, 오히려 이건 기회라고!”
그때 여울은 그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에 가득 담겨 있는 욕망을 보았다.
“여기는 고작해야 D급 던전이잖아. 나랑 하유리 둘이서도 충분히 공략 가능한 장소다. 지금의 전력이라면 보스를 쓰러뜨리고 슬레이어 호칭을 따내는 것도 가능해!”
오로지 보스 몬스터를 토벌한 자들만이 자칭할 수 있는 호칭, 슬레이어.
그것을 따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세계에 알려진다는 말이 된다.
“무엇보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 너희들은 지금까지 벌어들이던 급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될 거다. 언제까지 밑바닥 인생을 살 수는 없잖아?”
그의 도발적인 말에 몇몇 이들이 움찔거렸다.
헌터들 중에는 여울처럼 돈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업계에 뛰어든 이들이 제법 존재한다.
그리고 욕망은 사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여기에는 온갖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김진수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레 김진수의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유리의 눈썹이 크게 휘었다.
“확실히 신입들이 던전에 익숙해지게끔 하기 위해 공략 던전의 난이도를 두 단계 낮추기는 했어.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야. 던전의 난이도와 보스의 난이도는 무관하니까.”
하유리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보스 공략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김진수는 하유리보다 실력이 부족하고 지휘관으로서의 재능이 없기 때문에 부대장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재력과 권력 면에서는 하유리보다 우위에 있다.
때문에 두 사람의 영향력은 사실상 동등했다.
그런 이유로 의견이 충돌할 경우 대장의 의견이 아니라 다수결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백야 2번 공략대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공략대원들은 김진수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자, 하유리. 언제나 그랬듯 다수결이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는 김진수를 보며 하유리는 이를 갈았다.
그 모습이 조금 전 요리를 모독당했을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동질감을 느낀 여울도 덩달아 이를 갈았다.
하지만 F급에 일개 요리사인 여울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만한 힘이 없었다.
“보스 몬스터라…….”
처음으로 하는 던전 공략에서 졸지에 보스 몬스터까지 구경하게 생긴 여울은 싱숭생숭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 * *
꼬르륵.
계단을 밟으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으려니 돌연 배가 울었다.
“배고파.”
이 굶주림의 원인은 두 번째 문의 발견으로 인해 식사 시간이 무기한으로 미뤄졌기 때문이었다.
전투를 앞두고 몸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굶기는 것도 뭔가 아닌 거 같은데…….’
여울이 마음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계단이 끝나고 바닥이 밟혔다.
주변이 상당히 어두웠기 때문에 서포터들은 손전등을 이용해 주변을 대충이나마 밝혔다.
공략대원 전원이 겨우 서 있을 수 있을 만한 좁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문 하나뿐이었다.
“이 문이 열리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만은 알아둬, 이 바보들아.”
하유리의 독설 섞인 최후통첩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은 김진수가 손을 가져다 대자 스르르 열리며 내부를 공개했다.
보스룸으로 향하는 길.
두 번째 문이 완전히 열렸다.
“다들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열린 문틈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애써 준비한 손전등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내부는 지금까지 지나왔던 던전과 같은 장소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호화로운 장소가 펼쳐져 있었다.
백색의 기둥이 천장을 떠받들고 있었으며, 붉은색의 석재가 길을 만들고 있다.
곳곳에 예술적 가치가 높은 그림이나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고, 반구를 이루는 천장에는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하는 조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략대는 차분히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반면 여울은 문 앞에 멈춰선 채 열려있는 거대한 석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여울 씨, 뭐하고 계세요?”
그 행동에 의문을 느낀 하유리가 질문을 던졌다.
그에 여울은 멋쩍게 웃으며 문을 툭툭 건드렸다.
“영화나 게임 같은 곳에서 보면 보스가 나오기 전에 문이 닫혀서 퇴로가 차단되잖아요.”
“풋.”
두 번째 문 너머로 들어온 이후 시종일관 일그러져있던 하유리의 표정이 처음으로 다림질됐다.
“확실히 그게 정석이기는 한데… 그래도 뒤쪽에서 적들이 튀어나오면 꼼짝없이 먼저 죽을 것 같네요.”
“이런.”
여울은 부리나케 그녀의 등 뒤로 따라붙었다.
이 위험천만한 장소에서는 하유리의 곁 이상으로 안전한 장소는 없다.
조금씩 나아가던 공략대가 홀의 중심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그그그!
배후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진입한 석문이 빠른 속도로 닫히고 있었다.
“……돗자리 펴도 되겠어요.”
“그러게요. 이런 예감은 좀 빗나가도 좋은데.”
여울의 허탈한 웃음소리에 섞여 묵직한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돌길의 끝. 몇 개의 계단 위에 돌을 깎아 만든 커다란 왕좌가 놓여 있었다.
그 위로 어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보스가 행차하셨군. 저놈을 쓰러뜨리면 나도 슬레이어가 되는 건가?”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을 뽐낸 김진수가 가방에서 아름다운 보석을 꺼내 들었다.
그 행동을 시작으로 모두가 전투준비를 서둘렀다.
빠른 속도로 모여드는 어둠으로 인해 밝은 홀은 일식을 맞이한 하늘처럼 어두워졌다.
모여든 어둠은 하나의 형체를 이뤄냈다.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것은 마치 거대한 늑대의 그림자에 푸른 불꽃으로 눈과 입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다.
앞쪽의 발톱은 낫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본 적이 없는 몬스터야. 어떤 공격을 해올지 모르니 주의하도록 해.”
전투태세를 갖춘 하유리의 지시에는 미약하게나마 두려움이 묻어났다.
[…….]
보스 몬스터가 뒷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앞다리를 크게 굽혔다.
“곧 공격이 들어올 거다! 우선은 산개. 침착하게 회피한 후 둘러싸!”
명령이 내려지자 전투원들은 일제히 흩어져 적을 포위했다.
오랜 시간 서로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인지 그들의 표정에는 서로를 향한 신뢰가 넘쳤다.
“적의 무기를 잘 살펴! 사정거리는 약 2.5미터. 그 안쪽은 전부 범위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그것만 주의하면…….”
하유리의 명령이 전부 하달되기도 전에 보스 몬스터가 앞발을 휘둘렀다.
헌터는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는 위험한 직업이다.
그럼에도 헌터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간단했다.
희소성과 경제성.
던전에서 출몰하는 몬스터의 사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코어는 신세대 에너지고, 몬스터가 있는 던전은 오직 헌터만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헌터 자체가 매우 희귀하다.
여울은 그런 헌터들 중에서도 최고의 랭크들이 즐비한,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백야에 고용됐다.
물론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 서포터이니 앞장서서 몬스터와 싸울 일은 없다.
그리고 대형 길드이기에 던전 공략의 안정도는 다른 중소길드나 소형 클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주제에 급여는 눈이 빠져나올 정도로 높으며 안전수당, 특별수당까지 계산하면 지금까지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헌터활동을 할 걸 그랬어.’
이렇게 생각한 것이 고작 10분 전이다.
현재 여울의 얼굴은 팔팔하게 날뛰는 애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제길, 망할, 빌어먹을!’
입을 여는 순간 안에서 맴돌던 욕설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토록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있는 도중임에도 말이다.
그 이유는 한 명의 남자 때문이었다.
김진수.
여울과 동갑인 그는 백야 2번 공략대의 부대장이다.
그리고 절망스런 인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나보고 지금 이딴 걸 먹으라고 내놓은 거냐?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와장창!
화려하게 엎어진 접시가 던전의 차디찬 바닥을 구르며 산산이 부서졌다.
최선을 다해 만든 오므라이스는 형편없이 짓이겨졌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여울의 이성도 하염없이 일그러졌다.
“네가 누군지 내가 알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너는 먹을 거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가정교육도 받지 못한 거냐?”
“그러는 네놈은 목숨을 최소 두 개는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 감히 내 앞에서 그런 태도인 걸 보니!”
두 남자는 서로 눈을 마주한 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살의를 풀풀 날리는 두 사람 사이에 다른 공략대원들의 저지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칼부림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바닥을 뒹구는 자는 필연적으로 여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진수는 B랭크 헌터다. F랭크인 여울보다 네 단계나 윗선에 있다.
또한, 백야의 최고 후원기업인 일선의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외동아들이기도 하다.
거기에 잘난 외모까지 더해져 인생의 성공가도를 걸어왔다.
아니, 달려왔다.
그 때문일까. 그의 인성은 놀랄 만큼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이런 걸 먹느니 차라리 굶고 말지. 제대로 된 요리사를 영입해왔다고 들었는데 기껏해야 풋내기 수준이잖아! 어디서 저런 걸 주워 와가지고…….”
“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모양인데, 병원 꼭 가봐라.”
“너는 진짜 밤길 조심해라.”
자신보다 한참은 약한 주제에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여울 때문에 화가 치민 김진수가 괜히 발치에 걸리는 돌멩이를 걷어찼다.
분노에 타오르는 것은 김진수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요리를 모독당한 여울의 손 위에서 날달걀의 껍질이 으스러졌다.
흰자와 노른자, 거기에 소량의 피가 섞여 던전의 바닥을 적셨다.
악과 깡으로 덤벼들기는 했지만 권력, 무력, 재력 그 모든 것이 뒤떨어지는 현실은 패배감을 넘어 비참하기까지 했다.
‘너야말로 밤길에 뚝배기 조심해라.’
여울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밤길에 이 원한을 갚으리라 다짐하며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요리과정은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미안해요.”
공략대장이자 안면이 있는 하유리가 김진수를 대신해 머리를 숙였다.
“일선 기업은 우리 백야의 지분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어서 저런 인간이라도 딱히 처벌할 방법이 없어요. 대신 사과할게요.”
“괜찮습니다. 개한테 물린 셈 치죠.”
“아마 여울 씨의 요리가 맛없어서 저러는 것은 아닐 거예요. 여울 씨를 자기보다 아래로 보고 있는데 정작 여울 씨는 조금도 져주지 않으니 괜히 트집을 잡은 거겠죠.”
“애네요.”
“애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조금은 화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평소보다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야.’
이곳은 던전. 완벽한 요리를 하기에는 환경도, 조건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여울이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요리를 내놓는 것이지, 최고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것은 요리가 아니라 창조의 영역이다.
하지만 자질구레한 변명이 될 것 같아서 여울은 입을 다물었다.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여울 씨가 해주시는 요리는 정말 맛있어요. 저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런 맛은 흉내도 못 내요.”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솔직한 칭찬에 여울의 콧대가 조금 높아졌다.
“특별히 드시고 싶은 메뉴라도 있으신가요? 자신 있는 쪽은 이탈리아 요리지만 한, 중, 일, 프랑스 요리의 기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다면 저는 면 요리를…….”
조금 전보다 밝아진 두 사람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김진수로 인한 불쾌함을 잊어버리려고 일부러 분위기를 띄운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것일까.
여울은 던전의 바닥에 그려져 있던 문양 중에서 아주 자그마한 태양을 밟았다.
그리고 하유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달을 밟았다.
대화를 나누던 두 남녀는 정확하게 서로를 응시하며 문양 위로 무게를 실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여울의 손끝에서 떨어진 피 한 방울이 두 개의 문양 사이에 있던 나선의 중심에 툭 떨어졌다.
그 결과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던 인천 D-03의 숨겨진 문이 열렸다.
그그그그!
땅이 울리고 주변의 지형지물이 변동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비명이 울리고, 진동을 견디지 못해 주저앉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 혼란 속에서 원을 그리며 갈라진 땅 너머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지하를 향해 뻗어있는 계단이었다.
계단을 본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두 번째 문…….”
던전의 완전한 공략으로 향하는 길.
보스룸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 * *
기본적으로 위험이라는 요소가 지천에 깔린 것이 던전이라는 장소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를 꼽으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외칠 것이다.
두 번째 문 너머의 방.
통칭 보스룸.
단순히 던전 내부의 몬스터를 소탕해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기본적인 공략이 아니라, 던전의 완벽한 소멸을 노리는 완전공략을 위해서는 반드시 보스의 사멸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개의 공략대는 완전공략을 기피하고는 한다.
첫 번째 이유는 두 번째 문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며, 두 번째 이유는 보스 몬스터의 강력함 때문이다.
지금껏 던전의 완전공략이 이루어졌다는 보고는 전 세계를 통틀어 7회에 불과했다.
보스 몬스터의 강함은 통상의 몬스터와 비교해 궤를 달리하며, 그것들의 손에 죽은 헌터의 수는 헤아리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그런 연유로 졸지에 두 번째 문을 발견하게 된 하유리는 난색을 표했다.
“반갑지 않은 행운이네. 아쉽지만 이번 공략은 여기에서 멈추겠어.”
차가운 얼굴로 명령을 내리는 그녀에게서 명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백야 2번 공략대장인 하유리가 하는 말이다. 여울은 그녀의 결정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20여 명의 공략대원 대부분은 그녀의 의견에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단 한 명. 김진수의 등장 때문에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다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후퇴? 멍청하긴, 오히려 이건 기회라고!”
그때 여울은 그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에 가득 담겨 있는 욕망을 보았다.
“여기는 고작해야 D급 던전이잖아. 나랑 하유리 둘이서도 충분히 공략 가능한 장소다. 지금의 전력이라면 보스를 쓰러뜨리고 슬레이어 호칭을 따내는 것도 가능해!”
오로지 보스 몬스터를 토벌한 자들만이 자칭할 수 있는 호칭, 슬레이어.
그것을 따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세계에 알려진다는 말이 된다.
“무엇보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 너희들은 지금까지 벌어들이던 급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될 거다. 언제까지 밑바닥 인생을 살 수는 없잖아?”
그의 도발적인 말에 몇몇 이들이 움찔거렸다.
헌터들 중에는 여울처럼 돈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업계에 뛰어든 이들이 제법 존재한다.
그리고 욕망은 사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여기에는 온갖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김진수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레 김진수의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유리의 눈썹이 크게 휘었다.
“확실히 신입들이 던전에 익숙해지게끔 하기 위해 공략 던전의 난이도를 두 단계 낮추기는 했어.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야. 던전의 난이도와 보스의 난이도는 무관하니까.”
하유리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보스 공략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김진수는 하유리보다 실력이 부족하고 지휘관으로서의 재능이 없기 때문에 부대장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재력과 권력 면에서는 하유리보다 우위에 있다.
때문에 두 사람의 영향력은 사실상 동등했다.
그런 이유로 의견이 충돌할 경우 대장의 의견이 아니라 다수결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백야 2번 공략대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공략대원들은 김진수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자, 하유리. 언제나 그랬듯 다수결이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는 김진수를 보며 하유리는 이를 갈았다.
그 모습이 조금 전 요리를 모독당했을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동질감을 느낀 여울도 덩달아 이를 갈았다.
하지만 F급에 일개 요리사인 여울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만한 힘이 없었다.
“보스 몬스터라…….”
처음으로 하는 던전 공략에서 졸지에 보스 몬스터까지 구경하게 생긴 여울은 싱숭생숭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 * *
꼬르륵.
계단을 밟으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으려니 돌연 배가 울었다.
“배고파.”
이 굶주림의 원인은 두 번째 문의 발견으로 인해 식사 시간이 무기한으로 미뤄졌기 때문이었다.
전투를 앞두고 몸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굶기는 것도 뭔가 아닌 거 같은데…….’
여울이 마음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계단이 끝나고 바닥이 밟혔다.
주변이 상당히 어두웠기 때문에 서포터들은 손전등을 이용해 주변을 대충이나마 밝혔다.
공략대원 전원이 겨우 서 있을 수 있을 만한 좁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문 하나뿐이었다.
“이 문이 열리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만은 알아둬, 이 바보들아.”
하유리의 독설 섞인 최후통첩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은 김진수가 손을 가져다 대자 스르르 열리며 내부를 공개했다.
보스룸으로 향하는 길.
두 번째 문이 완전히 열렸다.
“다들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열린 문틈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애써 준비한 손전등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내부는 지금까지 지나왔던 던전과 같은 장소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호화로운 장소가 펼쳐져 있었다.
백색의 기둥이 천장을 떠받들고 있었으며, 붉은색의 석재가 길을 만들고 있다.
곳곳에 예술적 가치가 높은 그림이나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고, 반구를 이루는 천장에는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하는 조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략대는 차분히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반면 여울은 문 앞에 멈춰선 채 열려있는 거대한 석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여울 씨, 뭐하고 계세요?”
그 행동에 의문을 느낀 하유리가 질문을 던졌다.
그에 여울은 멋쩍게 웃으며 문을 툭툭 건드렸다.
“영화나 게임 같은 곳에서 보면 보스가 나오기 전에 문이 닫혀서 퇴로가 차단되잖아요.”
“풋.”
두 번째 문 너머로 들어온 이후 시종일관 일그러져있던 하유리의 표정이 처음으로 다림질됐다.
“확실히 그게 정석이기는 한데… 그래도 뒤쪽에서 적들이 튀어나오면 꼼짝없이 먼저 죽을 것 같네요.”
“이런.”
여울은 부리나케 그녀의 등 뒤로 따라붙었다.
이 위험천만한 장소에서는 하유리의 곁 이상으로 안전한 장소는 없다.
조금씩 나아가던 공략대가 홀의 중심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그그그!
배후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진입한 석문이 빠른 속도로 닫히고 있었다.
“……돗자리 펴도 되겠어요.”
“그러게요. 이런 예감은 좀 빗나가도 좋은데.”
여울의 허탈한 웃음소리에 섞여 묵직한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돌길의 끝. 몇 개의 계단 위에 돌을 깎아 만든 커다란 왕좌가 놓여 있었다.
그 위로 어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보스가 행차하셨군. 저놈을 쓰러뜨리면 나도 슬레이어가 되는 건가?”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을 뽐낸 김진수가 가방에서 아름다운 보석을 꺼내 들었다.
그 행동을 시작으로 모두가 전투준비를 서둘렀다.
빠른 속도로 모여드는 어둠으로 인해 밝은 홀은 일식을 맞이한 하늘처럼 어두워졌다.
모여든 어둠은 하나의 형체를 이뤄냈다.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것은 마치 거대한 늑대의 그림자에 푸른 불꽃으로 눈과 입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다.
앞쪽의 발톱은 낫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본 적이 없는 몬스터야. 어떤 공격을 해올지 모르니 주의하도록 해.”
전투태세를 갖춘 하유리의 지시에는 미약하게나마 두려움이 묻어났다.
[…….]
보스 몬스터가 뒷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앞다리를 크게 굽혔다.
“곧 공격이 들어올 거다! 우선은 산개. 침착하게 회피한 후 둘러싸!”
명령이 내려지자 전투원들은 일제히 흩어져 적을 포위했다.
오랜 시간 서로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인지 그들의 표정에는 서로를 향한 신뢰가 넘쳤다.
“적의 무기를 잘 살펴! 사정거리는 약 2.5미터. 그 안쪽은 전부 범위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그것만 주의하면…….”
하유리의 명령이 전부 하달되기도 전에 보스 몬스터가 앞발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