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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면접 당일.
고글 맵에 의지해 찾아간 장소는, 한국병원 근처 빌딩의 한편에 위치한 대기실이었다.
이 빌딩은 국내에서도 인지도 높은 길드가 소유하고 있었다.
국내랭킹 3위의 길드인 백야.
가능성 있는 모집 글을 보고 무작정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기분이 가라앉고 나서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대형 길드여서 당황했을 정도였다.
‘이건 역대급으로 망친 수능 성적표를 들고 일류 대학에 원서를 넣는 꼴이잖아.’
보통 이 정도 대형 길드에서는 F랭크는 헌터로 쳐주지도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이 제법 많이 보였다.
얼핏 봐도 스물 이상. 그들 전부가 여울의 경쟁자다.
면접관들도 범상치가 않아 보였다.
좌측에 곰을 연상케 하는 거구의 남성이 있고, 눈부신 미모의 여성이 우측에 포진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나타내는 명찰을 착용하고 있었다.
남성의 이름은 정민철, 여성의 이름은 하유리였다.
긴장이 흐르는 공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정민철이었다.
“우선 저희 길드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의 시선은 손 안의 서류에 꽂혀 있었다.
“저희가 굳이 요리사를 뽑으려고 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은 편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잡음을 뚫고 확실하게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유야 간단합니다. 던전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길드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러운 식사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때문에 심사는 엄격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엄격이라는 단어가 정민철이라는 인물의 첫인상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첫인상과는 달리 순하고 정감이 가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시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준비된 재료를 이용해 저희가 제시하는 요리를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면접의 목표가 요리사를 뽑는 일이다보니 면접 장소는 자연스레 주방으로 선정되었다.
주방에는 무심코 감탄사를 터뜨릴 만큼 다양한 조리기구가 즐비했다.
귀한 식재료들도 가득했다.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야.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지금껏 자금 부족으로 인해 만들지 못했던 요리들을 마음껏 만들 수도 있다.
그리 생각하니 절로 손이 근질거렸다.
여울은 참지 못하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 숨결에 그가 느끼고 있는 흥분의 감정이 섞여 나왔다.
그 때문일까. 준비된 앞치마를 두르는 여울의 모습은 전장으로 나가는 군인과도 같았다.
“여러분이 만드실 요리는 스테이크입니다. 제한시간은 30분이니 유의해주세요.”
“스테이크…….”
심사 요리를 확인한 여울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렵지 않은 메뉴다.
“합격 기준은 하나. 여기에 있는 하유리 헌터를 미소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각성자 랭크 따위는 일체 심사에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약속드리죠.”
“미소?”
상당히 모호한 합격 기준이었다.
하지만 여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은 맛으로 승부하면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각성자 랭크 따위는 일체 평가와 무관하다지 않는가.
이건 전무후무한 절호의 기회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간을 재도록 하겠습니다.”
따분한 얼굴을 한 하유리가 책상에 놓인 타이머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그 혀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르겠지만 만족시켜주마.’
여울은 누군가에게 요리를 평가받는 자리이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의욕이 불타올랐다.
본격적인 요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요리의 메인이 되는 재료를 고르는 일이었다.
‘준비된 고기는 부챗살. 싸고 맛도 좋지만 힘줄 때문에 조리하기는 까다롭지.’
가장 적당한 크기의 고기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의 눈썰미가 무언가를 포착했다.
‘단순히 요리만 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건가.’
고기의 상태가 하나같이 다르다.
어떤 것은 육질이 뛰어나고, 어떤 것은 빛깔이 탁하며, 어떤 것은 간과 숙성이 끝마쳐져 있었다.
결국, 우수한 재료를 고르는 것까지가 시험이라는 소리다.
꼼꼼하게 확인을 마친 여울은 고깃덩어리 하나를 골랐다.
크기는 조금 작지만 밑간과 숙성이 끝마쳐져 있는 녀석이었다.
만족스러운 선택을 마친 후에는 소스 만들기에 착수했다.
스테이크의 맛은 고기의 질, 굽는 방법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을 만큼 소스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높다.
때문에 소스의 종류를 고민하던 여울의 눈이 냉장고 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채를 띄었다.
‘힌트는 이미 던져져 있는 건가.’
입가에 걸린 회심의 미소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목표를 확립한 여울은 조속히 소스 만들기에 착수했다.
나무 도마 위에서 양파, 당근, 셀러리, 베이컨이 작은 크기로 잘려나갔다.
탁탁탁탁!
식칼이 일정한 간격으로 도마를 때렸다.
TV에 나오는 달인만큼은 아니지만 여울의 칼솜씨는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이나 수준급이다.
재료들은 올리브유와 열기를 두른 프라이팬 위에서 볶아줬다.
거기에 토마토 페이스트, 밀가루와 적포도주가 추가됐다.
그 다음으로 냉장고 위에 준비되어 있던 유리병이 등판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진한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갈색 육수 소스.
모든 갈색 소스의 모체가 되는 것으로, 오븐에 구운 쇠고기와 뼈를 이용해 만든 소스다.
촤아악!
넓게 뿌려진 갈색의 액체가 열기를 입자, 주변으로 풍기는 소스의 향기가 더욱 진해졌다.
거기에 통후추와 월계수 잎까지 넣었다.
남은 것은 내용물이 타지 않도록 주의하며 중간 불로 졸이는 것뿐.
“이 정도 양이면 제한시간 내에 반으로 졸겠지. 다음에는…….”
드디어 메인재료를 다룰 차례.
여울은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버튼을 돌렸다.
화륵!
맹렬한 불꽃이 차가운 쇳덩이를 가열하기 시작했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는 동안 키친타월을 꺼낸 여울은 고기 표면의 물기를 완벽하게 닦아냈다.
어느 정도 프라이팬이 달궈진 것을 확인한 여울은 불 조절은 하지 않은 채 고깃덩어리를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았다.
우선은 씨어링. 고기의 표면을 태우듯 구워내는 작업이다.
치이익!
갑작스러운 열기에 놀란 고깃덩어리가 비명을 질렀다.
철판 위에 고기가 눌어붙는 것도 잠시. 이내 녹아내린 지방이 식용유의 역할을 대신해준다.
고기 익는 냄새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주방 안을 가득 채웠다.
열려 있던 창문으로 대부분은 빠져나갔지만, 이 폭력적인 냄새 전부를 내쫓는 데는 다소 규모가 부족했다.
할짝.
무심한 듯 요리과정을 지켜보던 하유리가 입맛을 다시는 장면을 여울은 놓치지 않았다.
‘씨어링은 이 정도면 충분해.’
불의 세기를 조절한 여울은 완성될 요리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버터와 마늘을 추가했다.
고기가 익는 냄새에 진한 버터 향이 녹아내리며 섞여들어 자연스레 침샘을 자극했다.
고기의 표면은 집게를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바삭바삭함이 전해져왔다.
색은 연한 갈색이며 중간중간 더 진한 색조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여울은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고기의 굽는 정도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다.
‘미디움 레어로 하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소고기는 레어일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하지만, 피를 많이 보는 헌터라는 직업 상 다량의 핏기는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마무리 작업은 측면을 익혀 고기의 붉은 부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잘 익은 고기는 바로 접시 위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호일에 감싸진 채 방치됐다.
“그 작업에는 뭔가 의미가 있는 건가요?”
돌아다니며 요리과정을 지켜보던 정민철이 호기심을 느끼고 질문을 던졌다.
주변에 경쟁자들이 있지만 딱히 비법 같은 것이 아니기에 여울은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레스팅입니다.”
“레스팅이요?”
“고기를 구우면 육즙이 뭉쳐있게 되거든요. 이때 가만히 방치해두면 뭉쳐있던 육즙이 고루 퍼지게 됩니다. 호일은 열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고요.”
“그런가요. 기대되는군요.”
“네, 기대해주세요.”
면접관에게 보내는 그의 미소에는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가는 정민철을 무언으로 배웅한 여울은 자신의 요리에 집중했다.
‘남은 시간은… 충분해.’
레스팅이 진행되는 동안 여울은 소스의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마침 소스는 알맞게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처음과 비교해 향과 색이 진하고 점성이 높아졌다.
그것을 고운 체로 걸러내자 목표로 했던 데미글라스 소스가 완성됐다.
“됐다.”
이제는 완성품을 접시에 담아내는 단계다.
하얀 접시 위에 레스팅을 마친 고기가 올려지고, 그 위에 소스가 듬뿍 부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먹음직스러웠지만 여울은 만족하지 못했다.
‘요리는 눈, 코, 혀로 즐기는 것이다.’
스승에게서 배운 말을 떠올린 여울은 접시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야채로 초록색을 더하고, 반을 자른 방울토마토로 강렬한 색채를 더해주니 접시가 더욱 풍성해졌다.
“완성.”
땡!
그의 작은 목소리가 요리의 완성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30분의 시간제한이 종료됐다.
“시간 종료입니다. 모두 행동을 멈춰주세요. 요리에 손을 대는 사람, 요리가 완성되지 않은 사람은 탈락 처리하겠습니다.”
단호함이 담긴 정민철의 외침에 따라 요리사들의 행동이 일시에 정지했다.
움직이는 자들은 두 명의 심사관들뿐이었다.
그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요리부터 맛을 보기 시작했다.
여울의 차례는 맨 마지막이었다.
“맛있네요.”
첫 번째 요리를 먹은 정민철은 웃으며 남자의 실력을 칭찬했다.
그에 희망을 감지하고 밝게 웃는 남자였지만, 그 표정이 망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탁!
고기 한 점을 먹은 하유리가 무언으로 식기를 내려놓은 후 씹던 고기를 휴지에 뱉어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맛있네요.”
계속되는 심사 속에서 정민철은 로봇마냥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쯤 되면 심사관으로서의 자격이 의심될 지경이다.
반면.
“폐기물.”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그럭저럭.”
“독극물.”
하유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서슴없이 독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언어가 한 자루 창이 되어 요리사들의 가슴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어째서 합격 기준이 하유리를 웃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혀는 지독하리만치 까다롭다.
주눅이 들 법도 하지만 여울은 당당하게 허리를 편 채 서 있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이걸로 안 된다면 답은 둘 중 하나야. 저 여자의 입맛이 어지간히 특이하거나. 나한테 요리의 재능이 없거나. 후자일 리는 없으니 당연히 답은 전자겠지.’
이윽고 여울의 차례가 왔다.
가까이에서 본 하유리는 마치 움직이는 정교한 인형처럼 보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예의상 건넨 인사에 돌아오는 대답은 지극히 짧은 한마디였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포크로 스테이크를 찍고 나이프로 잘라냈다.
단면을 타고 육즙이 살포시 흘러내리며 갈색의 소스와 어우러진다.
갇혀있던 열기가 방출되며 수줍게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폭발적인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자 하유리의 무표정이 조금 흔들렸다.
“…….”
그녀가 크게 썰어낸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물었다.
그러더니 해바라기 씨를 머금은 햄스터처럼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씹는 맛을 즐기던 그녀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나타났다.
감았던 눈이 번쩍 뜨이더니 이내 스르르 감긴다.
“하아…….”
지그시 감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내뱉는 한숨에 열기가 더해진다.
상기된 얼굴. 입술은 자연스러운 호선을 그린다.
그녀는 표정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여실히 표현해냈다.
마치 지금까지의 무표정이 거짓말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네.’
여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표정만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보고 있자면 입안에 흥건하게 군침이 고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요동치는 목젖이 여럿 보였다.
“감사합니다.”
짧게 감사를 표한 그녀가 두 번째 조각을 입으로 옮겼다.
그녀가 한 사람의 요리를 두 번 이상 먹는 것은 심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어지는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일순간이지만 그녀의 배후에 반짝이는 꽃밭이 피어나는 환각마저 보일 정도였다.
‘됐다.’
그녀의 표정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여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처음으로 보는 하유리의 미소. 그것은 곧 시험의 합격을 의미한다.
하유리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을 지켜보던 정민철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저도 한 입…….”
손을 뻗은 정민철은 스테이크 한 점을 가져가려다 하유리의 사나운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꿋꿋이 송곳 같은 시선을 견뎌내며 한 조각을 입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다소 작다고 여겨졌던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으음! 이건, 기대 이상이군요. 쩝쩝. 겉은 튀긴 것처럼 바삭바삭한데 속은 부드러워요. 풍부한 육즙은 고기가 헤엄을 칠 정도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입니다. 게다가 힘줄! 사소한 실수로도 질겨질 수 있는 부분인데 나쁘지 않아요. 훌륭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접시를 탐했다.
하지만 이미 하유리가 접시를 들고 멀찍이 도망가 버린 후다.
“소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만든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만족스럽습니다. 풍미가 깊고 고기의 맛을 폭력적일 만큼 끌어올리고 있어요.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완벽합니다.”
“감사합니다.”
연거푸 이어지는 칭찬세례에 여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주위로부터 부러움의 시선이 꽂혀들었다.
억제하려 노력했지만 숨길 수 없는 쾌감에 입술이 마구 뒤틀렸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희가 준비한 함정도 무엇 하나 빠짐없이 피해가셨군요. 이건 가산점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여울을 향해 정민철이 솥뚜껑처럼 크고 두꺼운 손을 내밀었다.
“은여울 셰프님. 부디 저희 백야 2번 공략대의 전속 요리사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정민철은 그토록 여울이 원하던 말을 뱉어냈다.
내밀어진 손. 이것은 여울이 자신의 손으로 쟁취한 기회다.
그에 응해 손을 내밀던 여울은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백야에 속해있는 동안에는 최고의 요리를 대접해드리죠.”
그렇게 여울은 F랭크 각성자임에도 불구하고 백야 2번 공략대의 전속 요리사가 되었다.
여울은 날개는 없지만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이 기쁜 소식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정민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럼 내일. 인천 D-03을 공략할 예정이니 셰프님도 참가해주세요.”
“내일이요?”
갑작스러운 선고는 고대하던 던전의 첫 나들이 공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