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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잘 먹었습니다.”
들어주는 이 없는 감사를 전한 여울은 들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았다.
양철 그릇의 내부는 설거지를 마친 것처럼 깔끔했다.
혀끝에 남아있는 여운을 즐기던 여울은 곧장 뒷정리를 시작했다.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하는 도중, 여울은 생각했다.
‘언제쯤 시작되려나.’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심장의 떨림이 진정되지를 않았다.
떨림의 원인은 걱정, 그리고 두려움이다.
조금 전 여울이 먹은 것은 보통의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요리가 아니었다.
“몬스터 요리라니, 나도 참 정신 나간 짓을 했네.”
씁쓸한 미소를 짓는 여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생선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생선과는 달랐다.
검은색의 뼈는 칼날 같고, 흉흉한 얼굴에서 엿보이는 이빨은 갈고리처럼 길고 예리했다.
오로지 던전 내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이 생물을 인간들은 이렇게 정의했다.
‘몬스터’라고.
인류의 숙적인 몬스터는 내부에 정제되지 않은 마력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만약 정제되지 않은 마력을 흡수하게 되면 체내에서 마력이 반발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지금 여울은 그 비참하기까지 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은 어떻게 죽느냐의 선택이었어. 그래도 기왕이면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했으니 선택한 거지만.’
막상 죽음의 때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결국 떨어뜨린 식기는 물속 저 깊은 곳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젖은 손을 대충 옷에 비벼 닦은 여울은 커다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
1분.
10분.
1시간.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리던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눈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아까부터 이상한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매운탕 : 차원 메기를 먹었습니다.>
<정제된 마력이 신체에 녹아듭니다. 마력이 4만큼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차원 메기의 특성을 신체가 받아들입니다. 수중 호흡 Lv2, 수중이동 Lv2, 감각 증폭 Lv1.>
<당신은 지금부터 몬스터 요리사입니다.>
=======================
<능력 Page1>
이름 : 은여울
호칭 : 헌터
근력 : 7 / 민첩 : 7
체력 : 6 / 마력 : 6
정신 : 6 / 감각 : 8
보유스킬 : 이차원 요리
종합 랭크 : F
=======================
<능력 Page2>
호칭 : 몬스터 요리사
기술 : 4 / 예술 : 7
행운 : 6 / 미각 : 2
=======================
“이게 뭐야?”
정말이지… 뭐가 뭔지 싶었다.
/[1화]
“오늘도 파리만 날리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주위를 쭉 둘러본 여울은 근심걱정이 한가득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때는 점심시간이며 장소는 레스토랑.
보통은 한창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간이지만, 안타깝게도 여울은 흩날리는 파리만 쫓아내며 지루함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최고의 주방’.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손님이 없는 까닭에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할 것 없는 레스토랑이었다.
당연히 사람을 여럿 고용할 여유도 없다.
그렇기에 여울은 홀서빙 겸 계산 담당 겸 청소 담당 겸 요리사 역할을 겸임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필요했던 여울은 턱을 괸 채 낡은 기종의 스마트 폰만 만지작거렸다.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구경하려 했지만 울적한 기분이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실업. 올해도 여지없이 증가추세.>
<부산에 새로운 B급 던전 발생. 조사 중이던 탐색대 전멸.>
<초대형 몬스터 레비아탄 토벌 작전. 카운트다운. 앞으로 3개월.>
<헌터이자 스타 셰프인 A씨. 사상 최초로 몬스터 요리를 시도. 동물 실험 결과는 참혹한 실패. 마력 정제 실패로 인한 끔찍한 폭사.>
세상이 험해서 그런지 온통 흉흉한 소식뿐이다.
지금 여울에게 필요한 것은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뉴스였다.
딸랑!
땅이 꺼져라 내쉰 한숨은 측면에서 들려온 방울 소리에 휘말려 사라졌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여울은 의자가 쓰러질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우렁찬 인사구나.”
“사장님, 저녁에 오신다면서요. 오랜만에 손님인 줄 알았더니, 제대로 속았네.”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자신의 요리 스승이자 동시에 이곳 레스토랑의 사장인 김천수를 보며 여울은 멋쩍게 웃었다.
힐끗 그의 등 너머를 확인해봤지만 손님이 오는 낌새는 없다.
이대로라면 오늘도 손님을 위한 요리는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경영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의사가 있었다.
“전단지라도 뿌리고 와볼까요? 손님인 척 SNS에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을 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요.”
“그게 말이다…….”
비에 젖은 모자를 벗어 물기를 털어낸 노인은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안색은 어둡고 주름진 얼굴에 드리운 미소는 씁쓸하다.
불온함을 관측한 여울은 제발 자신이 느낀 추측이 잘못된 것이기를 빌었다.
하지만 신은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여울에게 여지없이 철퇴를 내렸다.
“여울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 레스토랑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벌써 3개월째 심각한 수준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게다가 내 건강 상태도 영 좋지가 않아서…….”
“그, 그렇긴 하죠.”
노인의 말대로 레스토랑의 상태는 썩 양호하지 않다.
1개월 전 멀지 않은 곳에 분위기 좋고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대형 레스토랑이 개업하면서 손님들을 빼앗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엔 인근 거리에 새로운 던전이 발생했다.
그에 위협을 느낀 손님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노인은 병원을 밥 먹듯이 드나들고 있다.
오늘도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고 왔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울은 언젠가 곧 이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의 직장을 잃는다면 당장 내일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단지를 뿌리든 온라인을 이용하든 적극적인 홍보로 어떻게든 손님을 모으자는 거죠. 건강이 걱정이라면 저만 믿고 사장님은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물론 네 요리 실력이 진즉 나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단다. 하지만 미안하다. 몹쓸 짓이라는 것은 알지만, 오늘까지만 일해 줄 수 있겠니? 아무래도 가게를 정리해야 할 거 같구나.”
“그, 그래도…….”
“정말 미안하다.”
“…….”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아무리 끈덕지게 매달려봤자 돌아오는 것은 예상했던 해고통지였다.
은여울.
22세의 젊은 요리사.
오늘부로 실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알아주는 최고의 셰프가 되겠다는 꿈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 * *
주머니 깊이 손을 찔러 넣은 여울은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바람이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비가 우산을 두드린다.
평소라면 눈을 감고 즐겼을 빗소리가 불쾌함만을 선사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머뭇거리는 손은 좀처럼 문고리를 잡지 못했다.
“명퇴한 가장이나 할 법한 고민을 설마 이 나이에 하게 될 줄이야.”
지금 시간이면 집 안에는 여동생인 은가람이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돌아와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조부를 제외하면 유일한 가족인 동생에게 여울은 해고 소식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낙담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울은 나락 끝까지 추락하려는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일단은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알아보면 되겠지. 그렇게 하면 당장 생활비 정도야 어떻게든 될 거야.”
그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했다.
대충이나마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 여울이 웃는 낯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였다.
툭!
문틈에 끼워져 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여울 앞으로 도착한 청구서였다.
“또 불안한 예감이 드는데…….”
긍정적이었던 마인드는 순식간에 부정적으로 물들었다. 절로 미소가 뒤틀렸다.
방에 들어와 봉투를 뜯는 도중, 미친 듯 떨리는 손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다행히 여동생은 집에 있지 않았다.
여울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청구서의 내용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밀린 병원비를 내놓으라는 독촉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 봉투가 억제하지 못한 한숨을 맞고는 펄럭거렸다.
“할아버지 수술비에 입원비, 검사 비용. 거기에 빚쟁이 놈들 입에 쑤셔 넣을 이자까지 전부 처리하려면 필요한 금액이…….”
재빨리 자신의 통장 잔액을 확인한 여울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통장에 있는 0의 개수가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했다.
비바람에 젖어 있던 청구서가 이대로 녹아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돈. 돈이 문제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조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보다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울의 박봉으로는 그것들을 감당하기는커녕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빚을 갚는 것조차 벅찼다.
심지어 오늘로서 여울은 실업자가 되었다. 그 박봉마저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 해도 시간이 걸릴뿐더러, 그의 스펙으로는 빚과 병원비를 동시에 감당할 만큼 많은 급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겨우 최저임금이나 보장받는 아르바이트는 논의할 가치도 없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어두운 미래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퇴로는 완전히 막혔다.
일류 셰프를 향한 꿈은 반납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게 되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이것뿐인가.”
미간을 좁힌 여울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언제나 신분증 뒤쪽에 겹치도록 숨겨둔 금속제 카드.
거기에는 여울의 사진과 함께 몇 개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은여울.
각성자.
쉽게 말하자면 그는 길드, 혹은 클랜에 소속되기만 한다면 자유자재로 던전에 드나드는 것이 허용된 인간이다.
던전.
그 단어가 갖는 울림은 언제나 가슴을 떨리게 한다.
인류가 원하는 온갖 귀한 자원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 마력이라는 미지의 힘이 존재하는 황금의 땅이 던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대적하기 어려운, 강한 힘을 가진 몬스터라 불리는 괴물이 득실거리는 죽음의 땅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황금을 취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표본과도 같다.
가능한 한 길고 끈덕지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여울에게 있어서 던전은 금기의 땅이나 진배없었다.
무엇보다 각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다.
톡! 톡!
여울의 손끝이 자격증에 그려진 십자가 형태의 마크를 두드렸다.
해당 자격증을 배부한 각성자 연합 유니온의 마크다.
마크는 한 차례 빛을 뿜어내더니 카드의 뒷면에 새로운 문자를 기록했다.
=======================
<능력>
이름 : 은여울
분류 : 헌터
근력 : 7 / 민첩 : 7
체력 : 6 / 마력 : 2
정신 : 6 / 감각 : 8
보유 스킬 : ???
종합 랭크 : F
=======================
F랭크 헌터.
그것이 여울의 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각인이다.
헌터로서의 삶을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후우.”
보고만 있어도 갑갑한 문구를 차마 직시하지 못한 여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각성자의 능력을 세밀하게 분석해 수치화시켜놓은, 이른바 능력치라 불리는 화면은 언제나 그에게 두통을 선사했다.
보통 성인 남성의 평균치가 5로 측정됨을 감안하면, 어디서 각성자라고 명함을 내밀기에도 민망한 능력치다.
‘이런 능력치로 던전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각성자의 강함은 마력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한 육체적 단련으로는 강함의 한계를 넘어설 방도가 없다.
하지만 높은 마력은 각성자의 신체에 스며들어 육체 능력마저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각성자 랭크는 마력 수치의 고저에 따라 정해진다.
다만, 마력의 최대치는 각성과 동시에 정해지며 임의로 상승시키는 것은 몹시 요원했다.
심지어 그 어려운 방법조차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거금이 든다.
즉, 여울은 아무리 노력해도 F랭크 헌터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마음을 굳게 다잡은 여울이 스마트 폰을 꺼냈다.
유니온에서 운영하는 구인 사이트에 접속한 여울은 헌터인력을 구하는 클랜과 길드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신규 헌터를 구하는 클랜과 길드의 수는 많았다.
문제는 그들이 요구하는 헌터랭크가 최소 D 이상이라는 것이다.
단순 작업을 하는 서포터조차 E랭크가 요구됐다.
물론 F랭크 헌터를 구하는 클랜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우는 대부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F랭크 헌터들이 모여 만든 클랜이었다.
힘도 경험도 없는 F랭크들이 모인 집단에 속해봤자 아무런 메리트도 없다.
결국 늘어가는 것은 한숨이었다.
그렇게 여울이 열 번째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하나의 문구가 유난히도 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랭크 무관. 우수한 요리 실력을 가진 서포터 모집 중.>
“이거다!”
비 오는 날의 하늘처럼 우중충하던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활짝 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들어주는 이 없는 감사를 전한 여울은 들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았다.
양철 그릇의 내부는 설거지를 마친 것처럼 깔끔했다.
혀끝에 남아있는 여운을 즐기던 여울은 곧장 뒷정리를 시작했다.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하는 도중, 여울은 생각했다.
‘언제쯤 시작되려나.’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심장의 떨림이 진정되지를 않았다.
떨림의 원인은 걱정, 그리고 두려움이다.
조금 전 여울이 먹은 것은 보통의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요리가 아니었다.
“몬스터 요리라니, 나도 참 정신 나간 짓을 했네.”
씁쓸한 미소를 짓는 여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생선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생선과는 달랐다.
검은색의 뼈는 칼날 같고, 흉흉한 얼굴에서 엿보이는 이빨은 갈고리처럼 길고 예리했다.
오로지 던전 내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이 생물을 인간들은 이렇게 정의했다.
‘몬스터’라고.
인류의 숙적인 몬스터는 내부에 정제되지 않은 마력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만약 정제되지 않은 마력을 흡수하게 되면 체내에서 마력이 반발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지금 여울은 그 비참하기까지 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은 어떻게 죽느냐의 선택이었어. 그래도 기왕이면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했으니 선택한 거지만.’
막상 죽음의 때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결국 떨어뜨린 식기는 물속 저 깊은 곳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젖은 손을 대충 옷에 비벼 닦은 여울은 커다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
1분.
10분.
1시간.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리던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눈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아까부터 이상한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매운탕 : 차원 메기를 먹었습니다.>
<정제된 마력이 신체에 녹아듭니다. 마력이 4만큼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차원 메기의 특성을 신체가 받아들입니다. 수중 호흡 Lv2, 수중이동 Lv2, 감각 증폭 Lv1.>
<당신은 지금부터 몬스터 요리사입니다.>
=======================
<능력 Page1>
이름 : 은여울
호칭 : 헌터
근력 : 7 / 민첩 : 7
체력 : 6 / 마력 : 6
정신 : 6 / 감각 : 8
보유스킬 : 이차원 요리
종합 랭크 : F
=======================
<능력 Page2>
호칭 : 몬스터 요리사
기술 : 4 / 예술 : 7
행운 : 6 / 미각 : 2
=======================
“이게 뭐야?”
정말이지… 뭐가 뭔지 싶었다.
/[1화]
“오늘도 파리만 날리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주위를 쭉 둘러본 여울은 근심걱정이 한가득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때는 점심시간이며 장소는 레스토랑.
보통은 한창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간이지만, 안타깝게도 여울은 흩날리는 파리만 쫓아내며 지루함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최고의 주방’.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손님이 없는 까닭에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할 것 없는 레스토랑이었다.
당연히 사람을 여럿 고용할 여유도 없다.
그렇기에 여울은 홀서빙 겸 계산 담당 겸 청소 담당 겸 요리사 역할을 겸임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필요했던 여울은 턱을 괸 채 낡은 기종의 스마트 폰만 만지작거렸다.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구경하려 했지만 울적한 기분이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실업. 올해도 여지없이 증가추세.>
<부산에 새로운 B급 던전 발생. 조사 중이던 탐색대 전멸.>
<초대형 몬스터 레비아탄 토벌 작전. 카운트다운. 앞으로 3개월.>
<헌터이자 스타 셰프인 A씨. 사상 최초로 몬스터 요리를 시도. 동물 실험 결과는 참혹한 실패. 마력 정제 실패로 인한 끔찍한 폭사.>
세상이 험해서 그런지 온통 흉흉한 소식뿐이다.
지금 여울에게 필요한 것은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뉴스였다.
딸랑!
땅이 꺼져라 내쉰 한숨은 측면에서 들려온 방울 소리에 휘말려 사라졌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여울은 의자가 쓰러질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우렁찬 인사구나.”
“사장님, 저녁에 오신다면서요. 오랜만에 손님인 줄 알았더니, 제대로 속았네.”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자신의 요리 스승이자 동시에 이곳 레스토랑의 사장인 김천수를 보며 여울은 멋쩍게 웃었다.
힐끗 그의 등 너머를 확인해봤지만 손님이 오는 낌새는 없다.
이대로라면 오늘도 손님을 위한 요리는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경영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의사가 있었다.
“전단지라도 뿌리고 와볼까요? 손님인 척 SNS에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을 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요.”
“그게 말이다…….”
비에 젖은 모자를 벗어 물기를 털어낸 노인은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안색은 어둡고 주름진 얼굴에 드리운 미소는 씁쓸하다.
불온함을 관측한 여울은 제발 자신이 느낀 추측이 잘못된 것이기를 빌었다.
하지만 신은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여울에게 여지없이 철퇴를 내렸다.
“여울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 레스토랑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벌써 3개월째 심각한 수준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게다가 내 건강 상태도 영 좋지가 않아서…….”
“그, 그렇긴 하죠.”
노인의 말대로 레스토랑의 상태는 썩 양호하지 않다.
1개월 전 멀지 않은 곳에 분위기 좋고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대형 레스토랑이 개업하면서 손님들을 빼앗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엔 인근 거리에 새로운 던전이 발생했다.
그에 위협을 느낀 손님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노인은 병원을 밥 먹듯이 드나들고 있다.
오늘도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고 왔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울은 언젠가 곧 이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의 직장을 잃는다면 당장 내일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단지를 뿌리든 온라인을 이용하든 적극적인 홍보로 어떻게든 손님을 모으자는 거죠. 건강이 걱정이라면 저만 믿고 사장님은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물론 네 요리 실력이 진즉 나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단다. 하지만 미안하다. 몹쓸 짓이라는 것은 알지만, 오늘까지만 일해 줄 수 있겠니? 아무래도 가게를 정리해야 할 거 같구나.”
“그, 그래도…….”
“정말 미안하다.”
“…….”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아무리 끈덕지게 매달려봤자 돌아오는 것은 예상했던 해고통지였다.
은여울.
22세의 젊은 요리사.
오늘부로 실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알아주는 최고의 셰프가 되겠다는 꿈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 * *
주머니 깊이 손을 찔러 넣은 여울은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바람이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비가 우산을 두드린다.
평소라면 눈을 감고 즐겼을 빗소리가 불쾌함만을 선사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머뭇거리는 손은 좀처럼 문고리를 잡지 못했다.
“명퇴한 가장이나 할 법한 고민을 설마 이 나이에 하게 될 줄이야.”
지금 시간이면 집 안에는 여동생인 은가람이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돌아와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조부를 제외하면 유일한 가족인 동생에게 여울은 해고 소식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낙담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울은 나락 끝까지 추락하려는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일단은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알아보면 되겠지. 그렇게 하면 당장 생활비 정도야 어떻게든 될 거야.”
그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했다.
대충이나마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 여울이 웃는 낯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였다.
툭!
문틈에 끼워져 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여울 앞으로 도착한 청구서였다.
“또 불안한 예감이 드는데…….”
긍정적이었던 마인드는 순식간에 부정적으로 물들었다. 절로 미소가 뒤틀렸다.
방에 들어와 봉투를 뜯는 도중, 미친 듯 떨리는 손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다행히 여동생은 집에 있지 않았다.
여울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청구서의 내용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밀린 병원비를 내놓으라는 독촉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 봉투가 억제하지 못한 한숨을 맞고는 펄럭거렸다.
“할아버지 수술비에 입원비, 검사 비용. 거기에 빚쟁이 놈들 입에 쑤셔 넣을 이자까지 전부 처리하려면 필요한 금액이…….”
재빨리 자신의 통장 잔액을 확인한 여울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통장에 있는 0의 개수가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했다.
비바람에 젖어 있던 청구서가 이대로 녹아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돈. 돈이 문제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조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보다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울의 박봉으로는 그것들을 감당하기는커녕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빚을 갚는 것조차 벅찼다.
심지어 오늘로서 여울은 실업자가 되었다. 그 박봉마저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 해도 시간이 걸릴뿐더러, 그의 스펙으로는 빚과 병원비를 동시에 감당할 만큼 많은 급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겨우 최저임금이나 보장받는 아르바이트는 논의할 가치도 없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어두운 미래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퇴로는 완전히 막혔다.
일류 셰프를 향한 꿈은 반납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게 되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이것뿐인가.”
미간을 좁힌 여울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언제나 신분증 뒤쪽에 겹치도록 숨겨둔 금속제 카드.
거기에는 여울의 사진과 함께 몇 개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은여울.
각성자.
쉽게 말하자면 그는 길드, 혹은 클랜에 소속되기만 한다면 자유자재로 던전에 드나드는 것이 허용된 인간이다.
던전.
그 단어가 갖는 울림은 언제나 가슴을 떨리게 한다.
인류가 원하는 온갖 귀한 자원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 마력이라는 미지의 힘이 존재하는 황금의 땅이 던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대적하기 어려운, 강한 힘을 가진 몬스터라 불리는 괴물이 득실거리는 죽음의 땅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황금을 취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표본과도 같다.
가능한 한 길고 끈덕지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여울에게 있어서 던전은 금기의 땅이나 진배없었다.
무엇보다 각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다.
톡! 톡!
여울의 손끝이 자격증에 그려진 십자가 형태의 마크를 두드렸다.
해당 자격증을 배부한 각성자 연합 유니온의 마크다.
마크는 한 차례 빛을 뿜어내더니 카드의 뒷면에 새로운 문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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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이름 : 은여울
분류 : 헌터
근력 : 7 / 민첩 : 7
체력 : 6 / 마력 : 2
정신 : 6 / 감각 : 8
보유 스킬 : ???
종합 랭크 :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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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랭크 헌터.
그것이 여울의 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각인이다.
헌터로서의 삶을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후우.”
보고만 있어도 갑갑한 문구를 차마 직시하지 못한 여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각성자의 능력을 세밀하게 분석해 수치화시켜놓은, 이른바 능력치라 불리는 화면은 언제나 그에게 두통을 선사했다.
보통 성인 남성의 평균치가 5로 측정됨을 감안하면, 어디서 각성자라고 명함을 내밀기에도 민망한 능력치다.
‘이런 능력치로 던전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각성자의 강함은 마력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한 육체적 단련으로는 강함의 한계를 넘어설 방도가 없다.
하지만 높은 마력은 각성자의 신체에 스며들어 육체 능력마저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각성자 랭크는 마력 수치의 고저에 따라 정해진다.
다만, 마력의 최대치는 각성과 동시에 정해지며 임의로 상승시키는 것은 몹시 요원했다.
심지어 그 어려운 방법조차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거금이 든다.
즉, 여울은 아무리 노력해도 F랭크 헌터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마음을 굳게 다잡은 여울이 스마트 폰을 꺼냈다.
유니온에서 운영하는 구인 사이트에 접속한 여울은 헌터인력을 구하는 클랜과 길드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신규 헌터를 구하는 클랜과 길드의 수는 많았다.
문제는 그들이 요구하는 헌터랭크가 최소 D 이상이라는 것이다.
단순 작업을 하는 서포터조차 E랭크가 요구됐다.
물론 F랭크 헌터를 구하는 클랜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우는 대부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F랭크 헌터들이 모여 만든 클랜이었다.
힘도 경험도 없는 F랭크들이 모인 집단에 속해봤자 아무런 메리트도 없다.
결국 늘어가는 것은 한숨이었다.
그렇게 여울이 열 번째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하나의 문구가 유난히도 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랭크 무관. 우수한 요리 실력을 가진 서포터 모집 중.>
“이거다!”
비 오는 날의 하늘처럼 우중충하던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활짝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