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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 1권 (22화)
6장 황보세가 (4)


“오라버니!”
세 사람의 어이없는 모습을 보고 황보인화가 빽 소리를 질렀다.
뜨끔한 황보영천이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무, 물론! 무림오화라 해 봐야 우리 인화만큼 예쁘지는 않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는 내 동생이 아니더냐? 흠흠! 앗! 이거 아름다운 소 소저도 계신데 실례했습니다! 하하하하!”
황보영천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태를 수습하려 애썼다.
사실 소은설도 동그랗고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코를 가져 전체적으로 귀여운 외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찬사를 받을 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다지 꾸미고 다니지도 않기에 아무래도 명문가의 여식들에 비하면 모자람이 있었다.
“어쨌든! 즐거운 자리가 될 겁니다. 게다가 형 된 자의 도리로 동생들을 구해 주신 은인에게 최소한 술 한잔은 대접을 해야 함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설마, 이대로 저를 은혜도 모르는 놈으로 만드시지는 않겠지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로 황보영천이 일행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딱히 귀찮은 자리에 끼고 싶은 마음이 없는 진운룡은 심드렁한 얼굴로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것은 싸움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적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호호, 저희야 초대해 주시면 오히려 감사하죠. 정말 재밌을 것 같네요.”
그때, 소은설이 얼른 진운룡의 옆구리를 치며 눈치를 줬다.
황보세가의 후계자인 황보영천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게 되면 자칫 아버지를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반대로 황보영천까지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아버지를 찾는 일은 이제 희망 정도가 아니라 확신에 가까워지게 된다.
당연히 이런 자리는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참여해야 했다.
“근데, 당신 강해 보이는군?”
그때, 적산이 갑자기 씨익 웃으며 황보영천을 노려봤다.
순간 황보영천의 장난스럽던 표정이 변했다.
“흠,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그렇다면 나와 한판 놀아 보는 건 어때?”
“글쎄요. 저는 적 공자 보다는, 진 공자의 솜씨가 더욱 궁금하군요.”
진운룡을 바라보는 황보영천의 눈에는 호승심이 가득했다.
황보영호가 진운룡의 무위에 대해 워낙에 호들갑을 떤 터라 꼭 한 번 직접 견식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자는 내 거니까 그자와 손을 맞대려면 먼저 나를 이겨야지. 후후후.”
하지만 적산이 그를 막아섰다.
진운룡은 어이없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당사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니 꺼네 내 꺼네 하는 모습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잠시 적산을 바라보던 황보영천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얼핏 느끼기에 적산의 공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적산에게는 느껴지는 것 외에 무언가가 있었다.
자신의 예감이 적산은 결코 별 볼 일 없는 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하하! 좋소이다! 한번 놀아 보도록 합시다!”
우우우우웅!
황보영천이 공력을 끌어 올렸다.
“역시 통하는 게 있군!”
적산도 검을 들어 황보영천을 겨누었다.
진운룡에게 터져 나간 녹슨 철검 대신 제검문에서 얻은 제법 괜찮은 청강검이었다.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황보영천의 공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적산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하여간 사내들이란! 싸울 땐 싸우더라도 일단 숙소에 여장부터 좀 풀자고요!”
소은설이 목소리를 높이자 황보영천이 멋쩍은 표정으로 진기를 거두었다.
“아!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이제 막 제남에 도착하신 분들인데, 너무 내 욕심만 생각했군요. 적 공자 아쉽지만 비무는 일단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지요.”
적산 역시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검을 거두었다.
“그럼 이따가 유시(酉時) 초에 뵙도록 하죠. 영호와 영관이가 모시고 오너라.”
“네, 형님.”
“그나저나 진 공자가 함께 간다면 너무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는 셈이니, 이거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요. 하하하하!”
황보영천의 말에 황보영호 형제도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진운룡을 경계했다.
황보세가의 남자들은 아무래도 남자답게 시원시원한 외모를 가진 반면, 진운룡은 그야말로 옥으로 깎아 놓은 듯한 꽃미남이었다.
“오라버니 농은 그만 하시고 손님들 피곤하시니, 일단 쉬시도록 해 드려요.”
황보인화의 말에 황보영천이 머리를 긁적이며 진운룡 일행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일행은 다시 숙소로 향했다.

* * *

황보영호의 안내를 받은 진운룡 일행은 이미 낮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는 천미각에 도착했다.
진운룡으로서는 그다지 마땅치 않은 자리였다.
어차피 그에게는 한참 애송이에 불과한 후기지수들이었다.
함께 어울리는 게 그다지 흥이 날 리 없었다.
하지만 소은설의 성화를 못 이겨 결국 따라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숙소에 남겠다던 적산도 진운룡이 온다고 하자 얼른 뒤를 쫓아왔다.
“아! 어서 오십시오! 이쪽입니다!”
오층에 오르자 뒤쪽 창가에 자리를 잡은 황보영천이 일행을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황보영천 옆에는 이미 다섯 명의 선남선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두 귀티가 흐르는 외모에 고급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척 봐도 명문가의 자제들임을 알 수 있었다.
“자! 다들 인사들 나누도록 하지요. 이쪽은…….”
황보영천이 먼저 모용세가와 제갈세가 후기지수들을 소개했다.
제갈세가에서는 제갈무진과 제갈성진 형제가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현 가주인 제갈휘의 둘째와 셋째 아들로 둘 다 제갈세가의 다음 대 가주 후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제갈무진은 첫째인 제갈영진에 못지않은 자질과 머리를 가지고 있어 강력한 차기 가주 후보였다.
야심도 상당했고, 무공 실력도 뛰어났다.
모용세가의 후기지수는 모용제와 모용후 그리고 모용주란 세 사람이었다.
모용세가에서는 단연 모용주란의 존재가 돋보였다.
과연 무림오화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화려한 듯하면서도 품격이 있었고, 청초한 듯하면서도 관능적인 아름다움이 혼재하고 있었다.
황보영호와 황보영관 형제는 이미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이야! 이거 무림오화 중 한 분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황보영호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이쪽은 제 사촌 동생들인 황보영호와 황보영관입니다. 그리고 세 분은 동생들의 손님이십니다. 이번에 동생들이 큰일을 당할 뻔한 것을 구해 주셨지요.”
황보영천의 소개에 후기지수들의 시선이 진운룡과 소은설 적산에게로 향했다.
“여기 이 귀여운 아가씨는 하오문의 소은설 소저십니다.”
하오문이란 말에 몇몇 후기지수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황보영천의 손님이라는 말 때문에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하오문은 강호에서, 특히 정파의 명문 출신들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곳이 아니었다.
문도들의 이력 자체가 도둑이나 소매치기, 기녀 등 범죄자나 하류인생들이었기에 정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파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하오문 출신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은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반응을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물론, 자신이나 아버지는 결코 세상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었으나, 하오문도들 중 상당수가 범죄자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황보영천이 재빨리 나머지 사람들을 소개해 화제를 돌렸다.
“흠흠! 소 낭자 옆에 야성미가 철철 넘쳐나는 열혈청년은 적산 공자, 그리고 그 옆에 이 황보영천이 질투가 느껴질 정도로 잘생기신 분은 바로 진운룡 공자입니다! 이거 무슨 사내가 저리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게 생겼을까요? 하하하!”
황보영천의 다소 과장된 소개에 후기지수들의 관심이 진운룡에게로 향했다.
진운룡은 남자가 보기에도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모용주란 역시 진운룡에게 눈길을 줬다.
그녀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게다가 참고로 진 공자는 대단한 고수입니다.”
후기지수들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진운룡에게서는 전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오, 무림십룡에 올라 있는 황보 공자께서 고수라 인정하실 정도면 보통 실력은 아니신 모양인데,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계실까 무척 궁금하군요.”
약간은 도전적인 말투로 제갈무진이 말했다.
제갈무진은 무림십룡에 들지 못하는 것에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무림십룡 중 하나이자 자신의 친형인 제갈영진에 비해 결코 밀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제갈영진이 제갈세가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인해 무림십룡에 들 수 있었다고 여겼다.
그런 이유로 그 무림십룡 중 하나인 황보영천이 인정하는 사내, 그것도 명문대파의 제자도 아닌 진운룡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진운룡의 수려한 외모는 그의 신경을 더욱 건드렸다. 모용주란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기분이 나빴다.
“물론, 저도 동생에게 듣기만 해서 직접 진 공자의 실력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