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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 1권 (21화)
6장 황보세가 (3)


“천사교요? 오두미교(五斗米敎)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오두미교는 후한 말에 장천사라는 자가 창시한 도교의 일파로 교주였던 장천사의 이름을 따 천사도(天師道)라고도 불리던 종교였다.
입도자에게 다섯 두의 쌀을 바치게 한 데서 오두미교라는 이름이 유례되었는데, 노자를 교조로 삼고 약간은 정치세력적인 색깔도 가지고 있어서 농민 봉기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예전의 오두미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입니다. 오두미교는 노자를 받드는 도교였다면, 이자들은 도교와 불교를 혼합한 독특한 교리를 가지고 있지요. 스스로 미륵의 현신이라고 칭하는 자가 교주인데, 자신이 하늘의 사자이니 자신의 말을 따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런 면에서는 오두미교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관리들의 횡포와 부유한 자들의 착취가 심해 일반 백성들은 죽어 나가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저런 종교가 그 틈을 파고든 것이지요.”
황보인화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 황제인 가정제는 사이비 도사들의 꾐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연단(煉丹)과 양생(養生)에 심취해 있었다.
때문에 환관의 무리가 득세를 하고 조정을 쥐락펴락했다.
윗물이 맑지 못하니 당연히 그 밑도 어지러울 수밖에. 관리들은 관직을 사고팔았으며 그 재물을 만회하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짰다.
이를 참다못한 백성들은 도처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니 천사교와 같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종교들 또한 백성을 선동하고 이용했다.
“후후, 구원이란 건 스스로의 힘으로 얻는 것이지 누군가가 내려주는 것이 아니란 것을 모르는군.”
적산이 조소 어린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요즘 일어나는 민란의 배후에 저들이 있다는 소문도 있소이다. 최근 세가에서도 저들을 조심스럽게 주시하고 있는 중이오.”
황보영호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태산 근처에서 충돌했던 무리들 역시 천사교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일단 교인이 되면 무공을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무슨 수를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이를 먹은 이들도 천사교에 들어가면 한 달도 안 되어 무공을 익히고 펼칠 수 있습니다.”
황보인화의 설명에 진운룡이 눈을 빛냈다.
보통 나이가 든 자일수록 무공을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일뿐더러 아예 배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한데, 몇 년씩 익혀도 쉽지 않은 일을 겨우 한 달 만에 해내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작위적인 수단을 쓰는 것이 분명했다.
진운룡은 열정적으로 연설을 하고 있는 천사교의 사내를 유심히 바라봤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은 이는 천사를 따르거라! 천사께서 너희들에게 강력한 힘을 내리실 것이니! 천사께서 보호하시는 한 그 누구도 너희들을 핍박할 수 없으리라!”
순간, 놀랍게도 사내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군중들이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천사시여!’를 연호했다.
그들의 눈은 아편이라도 피운 것처럼 흐릿하고 광기에 젖어 있었다.
“백성들이 현혹될 만도 하군요.”
소은설이 신기한 표정으로 몸에서 황금빛 광채를 뿜어내는 도포사내를 바라봤다.
“황금빛이라…….”
진운룡이 무언가 석연치 않은 듯 미간을 찡그렸다.
황금빛 광채가 뿜어낼 수 있는 자들은 불교 계통의 심법을 익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데 아무리 봐도 불력(佛力)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때마침 일행이 시킨 요리들이 도착했다.
천사교에게서 관심을 거둔 일행은 즐겁게 식사를 한 후 황보세가로 향했다.
황보세가에 도착한 일행은 우선 천무단주인 황보혁제를 찾아갔다.
황보혁제는 황보세가 삼대 무력 조직 중 하나인 천무단의 단주로 바로 황보영호 남매의 아버지였다.
진운룡들에 대해 전해 들은 황보혁제는 기쁜 마음으로 세 사람을 맞이했다.
“허허, 고맙네. 자식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니, 그것은 곧 나에게 도움을 준 것과 같네. 듣자하니 제남에서 아버지를 찾는다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머물 곳이 필요하겠구만. 다른 곳에 갈 필요 없이 세가에 머물도록 하게.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머물고, 도움이 필요하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이야기하게. 소 소저의 아버지를 찾는 일도 수하들을 시켜 내 알아보도록 하지.”
소은설의 표정이 밝아졌다.
황보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제남에서는 그야말로 거리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호오. 한데, 자네는 참으로 놀라운 신체를 가지고 있군그래. 마치 무공을 위해서 태어난 것 같아.”
황보혁제가 적산에게 흥미를 보였다.
적산이 강호에서 흔히 말하는 천무지체를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무공만 제대로 익혔다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고수가 되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구만.”
황보혁제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적산에게서 느껴지는 공력이 너무도 미약했기에 무공을 정식으로 수련하지 않았다 여긴 것이다.
만일 어렸을 때부터 재대로 무공을 수련했다면 적산의 나이에 공력이 지금처럼 보잘 것 없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님, 진정한 고수는 진 공자입니다!”
황보영호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황보혁제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이 서생 같은 공자가?”
“예, 기운만으로 사람들을 오 장 밖으로 날려 보낼 정도라니까요?”
황보영호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허……. 이거 늙은이가 귀인을 몰라 봤네그려.”
황보혁제가 신기한 눈으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자신도 기운을 느끼지 못할 정도면, 진운룡이 최소한 자신과 비슷하거나 윗줄의 경지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진운룡의 나이를 볼 때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 후기지수들 중 가장 뛰어난 이들이라 해도 간신히 절정에 든 정도.
한데, 황보세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을 가진 황보혁제와 겨룰 수 있는 경지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뛰어난 신성(新星)들의 등장이야말로 정도 무림의 복이라 할 수 있지.”
황보혁제가 기꺼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문대파의 제자가 아닌 것은 아쉬웠으나, 그래도 무림맹 소속으로 공을 세운다면 훗날 충분히 강호의 기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나, 다들 오랜 여행으로 피곤할 테니 오래 붙잡고 있으면 실례인 듯싶으이. 너희가 손님들이 쉬실 수 있도록 숙소로 안내해 드리거라.”
“네, 아버님!”
황보혁제에게 인사를 한 일행은 황보영호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향했다.

* * *

“어라? 영호, 영관이가 아니냐? 태산에 다녀온다더니 벌써 돌아온 것이냐?”
일행이 숙소로 향하는데 나이가 스물 중반쯤 되어 보이는 시원시원한 외모를 가진 청년 하나가 반가운 얼굴로 아는 체를 했다.
“영천 형님!”
황보영호와 황보영관 역시 기쁜 얼굴로 청년에게 마주 인사했다.
“흥! 오라버니 저는 안 보이시나 봐요?”
황보인화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콧방귀를 뀌자 청년이 난감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오! 우리 귀여운 인화도 있었구나!”
영천이라 불린 청년의 정체는 바로 현 황보세가의 후계자이자 현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들을 뜻하는 강호십룡(江湖十龍) 중 하나인 황보영천이었다.
“뜻밖의 습격을 받아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분들이 없었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했습니다.”
황보영관이 그동안의 일을 설명하고, 진운룡 일행과 황보영천을 서로 소개시켜 줬다.
특히 진운룡의 활약과 무위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형님도 진 공자의 신위를 직접 보셨다면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입니다!”
황보영호까지 거들고 나서자 황보영천이 흥미로운 눈으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황보영관과 영호 형제도 후기지수 중에서는 결코 무공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 이들이었다.
아무리 과장이라 해도 이들이 이 정도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진운룡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게다가 아무리 감각을 끌어 올려도 진운룡에게서 한 줌의 공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곧 진운룡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지하기 힘들 정도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진운룡을 호기심 어린 얼굴로 살피던 황보영천이 자신의 사촌 동생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찌 되었든 무사해서 참으로 다행이구나. 동생들을 대신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소은설이 하오문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황보영천은 별로 개의치 않고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황보영천은 본래 성격이 호탕하고 사람을 가리지 않는 담백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 마침 잘됐군요.”
진운룡 일행에게 감사 인사를 한 황보영천이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갑자기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황보영호와 영관 형제가 궁금한 얼굴로 황보영천을 바라봤다.
“마침 모용세가와 제갈세가의 자녀분들이 방문해 저녁에 함께 술자리를 하기로 했던 차인데, 젊은 사람들끼리 친교도 나누고 회포도 풀 겸 함께하시지요.”
“제갈세가와 모용세가요?”
“그렇다니까? 게다가 말이지…….”
황보영천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무림오화(武林五花) 중 한 명인 모용주란도 왔다구. 정말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끝내 준다니까?!”
황보영천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저, 정말요?”
황보영호와 황보영관이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