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 거침없이
23화

지키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서(2)

“리더…….”
전방 공격수 박하린. A등급 어택커, ‘검은 궤적’이란 칭호가 붙은 속검사이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랭크 50위권 안에 든 천재이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리더다.
리더는 항상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검은 가죽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위장 때문이라든가, 조금이라도 연기를 마시지 않으려고 쓰고 다닌 게 아니다.
단순히 얼굴에 난 자상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나는 우연히 딱 한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자면, 심각할 정도로 칼로 난도질당해 마치 할머니의 주름처럼 튼 살이 울퉁불퉁했고, 여기저기 꿰맨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뿐인가. 콧날은 인공 실리콘으로 대체되어 조금만 만져도 모양이 변했으며, 입술도 뭉텅이로 잘린 탓에 반은 붉은색이 아니라 그냥 피부색이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처다 보니 리더는 언제나 작전을 나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결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그래서 세간에서 불리는 별명이 ‘검은 마스크’. 물론 리더의 실력과 명성을 존중해 붙여진 이명이 아니라, 공포 괴담에 나오던 빨간 마스크에서 유래된 장난질이었다.
그밖에도 어린아이를 돌보는 보모라든가, 바퀴벌레들의 왕이라든가, 심지어 신출내기 헌터만 골라 먹는 변태 마녀 같은 성희롱 섞인 말도 간간이 들렸다.
나는 둘째 치더라도 리더를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기에 다른 헌터와 싸운 적도 많았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 역시 항상 궁금해했다. 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지에 대해서.
그러다 임무 중 우연히 마스크가 찢어져 리더의 맨얼굴을 본 적이 있다. 상상도 못할 만큼 끔찍한 상처로 가득한 그 얼굴을.
당시 경악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 본 리더는 울 것 같은 눈으로 힘겹게 말했다. ‘흉측하지?’라고.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연약한 리더의 모습은 나 역시 처음 봤기에.
나는 그날, 드디어 리더에게서 왜 얼굴이 그리된 건지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마물에게 당한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을 만큼 흉측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사람이 한 짓이란다.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손톱으로 할퀸 듯한 상처들은 전부 스토커에게 커터 칼로 난도질당한 상처라는 말을.
그 스토커는 오래전부터 매번 우편함에 꽃바구니나 연애편지를 넣어놓았다 했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오거나 쫓아다니는 행동은 하지 않아 이러다 제풀에 지쳐 포기하겠지 싶어 경찰에 신고하진 않았다는데, 그런 안일한 대처가 큰 사달로 이어져 버린 것이었단다.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 그 남자를 죽여 버리려고 했지만, 리더는 그런 나를 말렸다. 이제는 다 잊었다며, 그 남자도 이미 교도소에서 벌을 받고 있노라고.
끝나긴 뭐가 끝났는가. 자신은 아직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주제에, 민얼굴만 보이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불안 증세를 보이는 주제에.
그런 리더의 얼굴이 지금은 멀쩡했다.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해도 복구가 불가능하던 그 상처가 없었다.
그래, 아직 그 범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저기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 리더의 목소리에 뒤늦게 제정신을 차렸다.
“리더라니, 무슨 소리죠?”
“아!”
아차, 나도 모르게 리더라고 부른 모양이다. 어서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다정하던, 나를 믿고 의지해 주던 그 리더가 너무도 차가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어 말문을 잇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어물쩍거리고 있자, 리더의 눈초리가 자못 사나워졌다.
“당신이죠?”
“네?”
“모른 척하지 마세요. 매번 우편함에 꽃바구니 넣어놓는 거, 당신 맞죠?”
너무 황당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뇨. 아니에요.”
“뭐가 아니에요, 그렇게 당황하면서.”
이런, 이번에도 크게 오해를 산 모양이다. 하아, 난 왜 항상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말 아니에요. 물론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아, 미치겠네. 절대로 스토커는 아닙니다.”
“저는 스토커냐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망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바보, 멍청이!
그렇게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리더는 턱짓으로 근처 카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리 와요.”
“네, 네?”
“이리 오라고요.”
“네…….”
무섭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과거, 명령을 따르던 습관이 배어 있어서 그런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리더를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내부엔 나뭇결이 살아 있는 의자와 오래된 뻐꾸기시계, 고풍스런 그림이 그려진 액자라든가 조형물 등이 가득해 앤티크 특유의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꽤 멋들어지지만, 이런 곳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 어색하기만 하다.
“뭐 마실 거예요?”
“네?”
한창 멋쩍게 서 있던 나에게 돌연 리더가 물었다.
나는 쩔쩔매며 손을 저었다.
“아뇨, 저는 괜찮…….”
“뭐 마실 거냐고요.”
“…아메리카노로 하겠습니다.”
진짜 무섭다. 과거, 공황 상태에 빠진 나를 일깨우기 위해 화냈을 때보다 대략 세 배는 더.
“저기 앉아 있어요.”
리더가 직접 지시한 자리에 소녀처럼 다소곳이 앉았다.
아아, 좌불안석이라는 말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로구나.
한동안 엉덩이를 떼었다 붙이며 안절부절못하고 기다리기를 몇 분. 문득 카운터에 서 있는 리더를 돌아보았다.
지금 리더는 핑크빛 원피스에 청재킷을 걸치고, 남색 계통의 미니 크로스백을 멘 차림이었다. 내가 알던 리더는 항상 검은 바탕의 심플한 전투복 차림이라 지금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지만, 동시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과연 스토커가 따라붙을 만하다고 생각될 만큼.
그러고 보면 과거에도 얼굴을 가렸을 뿐이지, 모델 같은 몸매와 강하고 차분한 분위기 때문에 리더를 좋아하는 뭇 남성도 많았다. 당시만 해도 그 정도였는데, 얼굴까지 완벽한 지금은 어느 정도겠는가.
“여기요.”
한참 리더에 대해 생각하던 그때, 점원에게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온 리더가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커피 한 잔을 건넸다.
“그…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이며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커피를 건네받았다.
떠, 떨지 마라, 내 손.
“…….”
그로부터 어째선지 리더는 말이 없었다. 커피는 마시지도 않고, 그저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위가 아프다. 차가운 커피 잔에 맺힌 이슬처럼 내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긴장감에 심장이 멈춰 버릴 것 같아. 제발 뭐라도 말해줘!
“하아…….”
길디긴 정적을 깨듯 언제까지고 다물려 있을 줄로만 여겨지던 리더의 입에서 차디찬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유나 묻죠. 왜 그러신 거예요?”
나 역시 스토커가 왜 그러는 건지 알고 싶다고는 말하지 못하기에 그저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
“지금 겁박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미소로 심정을 전달하는 데 또 실패한 모양이다.
“하하…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냥 입 다물고 있자. 응, 그게 좋겠어.
“하아, 제게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혹시 과거에 저와 만난 적이라도 있던 건가요?”
물론 만났다며, 우린 항상 서로의 등을 맡기는 사이였다고도 말할 수 없기에…….
“그, 글쎄요…….”
대충 얼버무렸다.
“지금 저랑 장난해요?”
대답이 썩 맘에 들지 않았는지 리더의 눈살이 험악하게 찌푸려졌다. 문제는 그런 모습까지도 아름답다고 느껴 버리는 나라고 할까.
미치겠네. 리더의 얼굴이 도무지 적응 안 돼.
“저기요, 제 눈 똑바로 보세요.”
“무립니다…….”
“뭐라고요?”
“아뇨, 네.”
자세를 똑바로 하고 리더를 올려다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검은 생머리에 절로 눈이 간다. 똑바로 나를 향한 커다란 눈에도, 자신 있게 오뚝 선 코에도, 요염하게 다물린 입술에도… 제길, 이건 진짜 무리야.
“뭐 해요, 똑바로 보라니까요.”
리더, 제발 살려주십쇼…….
가까스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마 지금 내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겠지.
리더는 내가 곤혹스러워한다는 걸 알곤 만족스럽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젠장, 진정해라, 내 심장아.
“저기요, 본인이 당사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매번 우편함에 꽃바구니를 넣어놓는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안 좋겠죠?”
그야 당연히 좋지 않죠. 네, 좋을 리가 없어요.
긍정에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리더는 테이블을 탕, 내려쳤다.
“그걸 아는 분이 왜 그런 거예요!”
그, 그러게 말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애초에 저는 소심한 남자를 매우 싫어합니다. 적어도 사내대장부라면 당당하게 행동할 줄 알아야죠. 뭐예요, 그게.”
여기는 어디일까? 나는 왜 이런 자리에서 설교를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보니까 정신도 멀쩡한 것 같고, 얼굴도 잘생긴 분이 뭐가 아쉬워서 스토커 같은 짓을 하는 거죠?”
우연히 리더를 발견해 그저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붙잡았을 뿐인데 잘생겼다는 소리나 듣… 응?
“네?”
내가 놀란 얼굴로 되묻자, 뒤늦게 당혹한 리더가 어설프게 내 시선을 피했다.
“그냥 객관적으로 한 말이에요, 객관적으로.”
“아, 네에…….”
“우쭐해하지 마세요.”
별로 우쭐하지 않았는데요…….
“아무튼, 핸드폰 줘봐요.”
“네? 저기, 저는 딱히 도촬 같은 건…….”
“도촬도 했어요?”
리더의 눈이 도끼처럼 변했다. 아무래도 잘못 짚은 모양이다.
“일단 줘보세요.”
“네에…….”
공손히 핸드폰을 건네주자, 리더는 잔뜩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이리저리 조작하는가 싶더니―분명 사진 데이터를 살펴본 게 틀림없다―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엄마, 나야. 이 번호? 있잖아, 그 꽃바구니 스토커. 그래, 그 사람 번호야. 응, 지금 붙잡아서 얘기 나누고 있어. 그러니까 일단 번호 저장시켜 놔. 또 그런 짓 하면 신고하게.”
아, 경찰에 신고할 목적으로 가져간 거구나. 그러면서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철저함까지… 역시 리더다.
“응응, 괜찮아. 해코지할 것 같은 사람은 아니… 어? 지금 우편함에? 진짜? 조금 전에? 확실해? 그럴 리가… 이 사람은 지금 나랑 얘기 나누고 있는데…….”
이러다 정말 스토커로 낙인찍힐 것 같… 응?
“아, 알았어. 일단 끊어봐. 저기… 당신 꽃바구니 스토커 아니에요?”
“아닌…데요.”
머무적거리며 대답하자, 리더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데 왜 범인인 척하고 있어요?”
“저는 계속 아니라고 했는데요…….”
“그럼 아까 왜 저 붙잡았어요?”
“저, 그게… 제가 아는 누구랑 닮아서 그만…….”
“…….”
“…….”
얼마나 정적이 흘렀을까, 지금까지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뒤늦게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하는 리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