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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20화

내 능력을 길러 나가(2)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완연한 겨울이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조선 5대 궁궐을 지나 경주 대릉원, 구형왕릉, 석굴암과 불국사 등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마력 스폿은 전부 찾아가 내 것으로 흡수해 버렸다.
처음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에서 마력을 흡수할 당시만 해도 거의 석 달이나 소비하고, 그것을 끝으로 더는 마력을 저장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강철 선생님이 알려준 이론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마력을 고리 형태로 저장한 뒤부터는 마력 흡수와 저장량 효율이 몰라보게 향상되어 불과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스폿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생성한 고리는 총 여덟 개.
뜻밖에 적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사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다섯 개의 고리를 생성할 때만 해도 두 곳의 스폿에서 흡수한 마력만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여섯 개째부턴 아무리 마력을 쏟아부어도 별 진전이 없었다.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는 것처럼 끝도 없이 빨아들이며 네 군데 스폿에서 흡수한 마력으로 겨우 여섯 번째 고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웃긴 건 그 뒤부터였다. 일곱 번째는 그보다 많은 마력량을 필요로 해 거의 열 군데 가까운 스폿에서 얻은 마력을 전부 사용해 만들어냈고, 여덟 개째에 이르러선 한국에 있는 모든 스폿의 마력을 전부 써야 했다.
덕분에 여덟 번째 고리는 지금까지 만든 모든 고리의 총 저장량보다도 많은 양이 저장되었다. 그리고 이 여덟 번째 고리까지 활용해 마력을 운용하면, 그야말로 슈퍼맨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단편적인 힘을 예시로 들자면, 처음 선생님이 반 농담으로 말한, 아파트도 뽑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실험해 보진 않았지만, 마력량과 비례하는 힘의 작용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봤다며, 정신력만 받쳐 준다면 이론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선생님이 말해주었기에 그리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 여섯 번째 고리부터 확연히 차이 나게 마력량을 응축할 수 있었는지 이상하게 여겨 의논해 보았는데… 선생님이 말하길, 마력을 사용하는 출력이 올라간 만큼 예전과 달리 압축하는 효과도 더 뛰어나졌기에 그런 결과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놓으셨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한국에 있는 모든 스폿의 마력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고, 아직도 고리 한 개 정도를 더 만들 수 있을 만큼 여유도 있기에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마력 흡수를 끝낸 나는 현재 마력 운용을 연구하며 훈련하는 중이었다.
“하아앗!”
지금 나는 산속 공터 한복판에서 일곱 개의 고리를 운용해 염마력 혈호를 만들어 재량껏 휘둘러 보고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운용하는 혈호의 개수는 무려 백 개였다. 그것도 평소의 다섯 배 이상 압축한 상태라, 이 염마력 혈호 하나만으로도 B등급 마물쯤은 가볍게 반 토막 낼 수 있을 만한 내구력과 절삭력을 갖춘 상태였다.
한마디로 B등급 마물 정도는 아무리 떼 지어 몰려온다 해도 내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는 뜻.
웃긴 건 이만큼이나 염마력을 운용하는데도 힘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역시 여덟 번째 고리만 운용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네.”
여덟 번째 고리를 운용할 땐 고작 5분도 버티기 힘들었는데, 일곱 번째 고리까지만이라면 한 시간 가까이 운용해도 땀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긴, 여덟 번째 고리를 운용하면 염마력 혈호를 수백 개 정도는 거뜬히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출력이 강해지니 당연할지도.
“뭐, 평소라면 고리 네 개 이상 운용할 일은 없겠네.”
방금 실험한 결과, 괜히 염마력 혈호를 많이 운용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쓸데없이 수만 많아지니 오히려 저들끼리 움직이는 데 방해가 돼 비효율적인 것이다. 최대한도로 운용한다면, 아마 열 개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다른 공격 방법을 마련하든가.
“역시 선생님의 아이디어를 채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새로운 공격 형태에 대해 선생님과 상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반장난식으로 이런 의견을 내줬다. ‘이런 시대에 무슨 칼입니까. 총으로 하죠, 총’이라고.
확실히 총탄처럼 단순히 일자로 쏘는 형태라면 아무리 수가 많아도 서로 방해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속도나 파괴력도 염마력 혈호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할 것이다.
그래, 강하겠지. 진짜 총처럼 쏠 수만 있다면.
아까 혹시나 해서 잠깐 실험해 봤는데, 총탄처럼 염마력을 압축하고 고정하기까진 매우 쉬웠다. 하지만 그다음, 사출하는 게 도무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쏜다기보단 던진다는 느낌이랄까. 한 번은 이미지를 부여해 염마력을 실제 총처럼 만들어도 봤지만, 괜히 정신력 소모만 클 뿐, 실재 화약까진 이미지가 담기지 않아 무쓸모였다.
공터 한가운데 주저앉아 끙끙거리며 골머리를 감싸 쥐었다.
실제 화약을 이미지할 순 없어. 그럼 대신할 만한 건 뭐가 있을까? 발화? 이제 고작 손바닥만 한 크기의 불꽃을 만들어내는 게 최선인데, 가능할 턱이 없지. 그럼 압축한 공기는 어떨까?
그러니까 염마력으로 공기를 압축해 장전, 발포하는 데 사용한다… 꽤나 그럴듯한걸?
모양은 대충 원통형의 화포를 이미지해 만들고, 최대한도로 압축한 공기를 세팅, 그 앞에 염마력 총탄을 장전. 그리고 발…….
꽝!
순간, 귀가 쩌렁 울리는 소음과 함께 염마력 총탄이 발사되었다. 그 총탄은 앞에 있는 나무를 꿰뚫고, 그다음의 나무도, 그 뒤로도 계속 나아가며 끝내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는 덤불 속에서 펑! 터져 흙이 흩날렸다.
“미쳤네…….”
다이너마이트라도 터트린 것처럼 뻥 뚫린 구멍을 본 나는, 할 말을 잃고 뒷목을 잡았다.
지금 네 개의 고리를 운용해 사용한 결과가 이 정도인데, 만약 여덟 개 고리를 운용한다면?
응, 이건 안 돼. 봉인해 두자.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재밌다. 어쩌면 다른 곳에 응용할 수도 있겠는걸? 그래, 예를 들자면 총탄 대신 나에게 써서…….
생각하던 도중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어쩌면…….

“우와아아아아아악!”
지금 나는 하늘을 나는 중이다. 그러니까, 양 손바닥과 발바닥에 응축한 공기를 터트리며 말이다. 마치 영화 속 아이언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게 생각보다 균형을 잡기 어려워 몇 번이나 실수해 추락하거나 날아가던 새와 부딪칠 뻔하는 등 위험천만한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자유자재로 곡예를 부리며 날아다니는 게 가능해졌다.
몸 주위에 제트기 형태로 염마력을 이미지해 고정시키고, 여덟 개의 고리를 운용해 압축한 공기를 연속으로 터트리면 마하의 속도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네, 선생님.”
[강민혁 군? 아, 다름이 아니라… 음, 뭔가요? 통화음이 별로 좋지 않네요.]
“아, 그게… 지금 좀 날고 있어서요.”
[…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지 멍청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나는 이걸 어찌 설명해 줘야 하나 살짝 고민하다 귀찮아져서 선생님이 있을 교수실로 방향을 잡고 날아갔다.
“그냥 가서 직접 보여 드릴게요.”
[그거 설마… 지금 날아서 온다는 말은 아니겠죠? 저기요, 강민혁 군? 대학교 근처에 유령이 나타난다든가 하는, 이상한 소문 듣고 싶지 않으니, 평범하게 오세요. 명확히 말합니다. 평범히…….]
“벌써 거의 다 도착했는데요?”
[이런 또라이 같은……!]
저 멀리 창가에 얼굴을 내민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여 살짝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그 건물 옥상에 안착했다.
아직 안전하게 착지하는 건 익숙하지 않아 쿵, 하는 소리가 울리고 말았지만… 뭐, 괜찮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옥상 문을 열고 등장했다.
“허억, 허억… 이런 미친, 하아, 하아… 진짜 날아왔… 후우.”
선생님, 그러다 숨넘어가겠어요.
“선생님이 저번에 총처럼 공격하는 방법은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셨잖아요. 여러 고민 끝에 화약 대신 공기를 압축해 터트리는 방식으로 비슷한 공격이 가능하게 됐거든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알아냈어요. 저 자신도 총탄처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하아, 하아… 후우…….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인간 포탄이 되어 날아왔다는 말인가요?”
“어때요? 괜찮아 보이죠?”
‘괜찮기는 개뿔’이란 말을 중얼거렸지만, 딱히 나한테 한 말은 아닌지 선생님은 손을 휘저었다.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네요. 우선 방향은 어찌 조종합니까? 매번 공기를 압축해 터트려서요? 몸에 충격은 안 전해집니까? 아아, 염마력 갑옷으로 보호했겠군요. 하지만 거기에 소비되는 마력은요? 그러다 지쳐 버리면 공중에서 자유낙하하게요? 그전에, 지금처럼 착륙할 때도 매번 쾅쾅! 포탄이라도 떨어진 소리를 내면 참으로 눈에 띄지 않겠습니다?”
현란하리만큼 까대는 말에 난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그 방식은 정말 긴박할 때 말고는 금지입니다. 알겠습니까?”
“네에…….”
오랜만에 바이크를 탄 것 같은 스릴감이 느껴져 자주 애용할 생각이었는데… 쩝.
“그런데 아까 전화는 무슨 볼일로?”
“아참, 별건 아니고요. 2억을 투자했다는 곳에서 아직 소식이 없던데… 정말 괜찮은가 해서요.”
“아, 그러고 보니 슬슬 소식이 올 때네요.”
잊어 먹고 있어서 손뼉을 치며 답하자 선생님은 못 미덥다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민혁 군이 알려준 대로 주식 투자한 곳이 성공해 빌려준 금액은 충당하고도 남았으니 괜찮긴 하지만…….”
선생님은 ‘그래도 2억은 좀 아깝네요’라고 뒷말을 흐리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동안 나하고 선생님은 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 투자에 힘을 쏟았다.
로또 번호나 경마, 경륜 같은 도박에 대해선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곧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던 온라인 게임에 갑자기 수많은 유저가 유입되면서 주식이 폭등한 게임 회사라든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가격이 오르는 비트코인이라든가, 인터넷과 언론에 거론될 정도로 커다랗던 사건들은 기억하고 있기에 주식 투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봐야 아직은 몇 달 되지 않아 이익은 미미한 정도였지만.
그런데 선생님은 대체 얼마나 투자했기에 벌써 빌려준 2억을 다 충당하고도 남는다는 거람?
“안심하고 있을 게 아니에요. 저번에 알려준 주식은 슬슬 다시 떨어질 테니, 조만간 회수하셔야…….”
당부하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딱히 전화 올 사람은 없을 텐데…….
“누구세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봐요.”
액정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실소한 나는 거 보란 듯이 핸드폰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