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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18화

도움이 되는 인재는 얻는다(3)

다음 날 아침, 마력을 흡수할 여유 공간이 생겼기에 세 번째 마력 스폿으로 선정한 경복궁을 찾았을 때다.
“뭐, 뭐야?”
평소처럼 마력을 흡수하려고 염동력을… 아니, 이제 염마력이라 부르는 게 맞으려나? 쉽게 나도 염마력이라 하자. 마력을 흡수하려고 염마력을 펼쳤는데, 세상에…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기에 기겁했다.
“미친!”
너무 놀라 멍하니 바라만 보는데, 그 펼쳐진 염마력으로 엄청나게 마력들이 몰려들어 급히 정신을 집중했다.
“대체 뭐…냐고오!”
오랜만에 느껴지는 묵직함.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져도 염마력이 풀려 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압력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평소 마력량의 두 배? 세 배? 네 배? 모르겠다. 딱 하나 알 수 있는 건… 범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뿐.
“후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세 시간에 걸쳐 겨우겨우 마력을 전부 흡수하는 데 성공한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식은땀을 닦았다.
지금 고작 이 한 번의 마력 흡수로 경복궁 전체 마력의 10분의 1은 흡수해 버린 것만 같았다.
고작 한 번에 10분의 1이라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어느 정도 마력 흡수 효율도 높아진데다 창덕궁이나 창경궁에 비하면 경복궁은 그렇게 넓은 부지도 아니라서 한 달이나 보름은 걸리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상태라면 일주일? 아니, 빠르면 사흘도 걸리지 않아 전부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설마…….”
이유는 모르겠지만, 원인은 어제 만든 고리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염마력으로 근처에 돌멩이를 하나 들어 실험…….
파삭.
들어 올리기 무섭게 가루처럼 부서지는 돌멩이.
고작 들어 올리려고만 했을 뿐인데, 그 염마력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나버린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실소한 나는 확실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경복궁 북동쪽에 있는, 서녹산이라 불리는 숲에 깊숙이 들어갔다.
그곳에서 대충 들어 올릴 만한 걸 물색해 보던 나는 문득 내 몸집보다도 큰 바위를 발견했다.
“으음, 그래도 설마 저건 무리겠지?”
척 봐도 몇 톤은 나갈 것 같은 바위일뿐더러 반쯤 땅속에 박혀 있는지라 절대로 무리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혹시나 주위에 누군가 있는지 잠시 살펴본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바위에 염마력을 집중시켜 보았다.
염마력이 바위를 감싸 안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봐도 역시 꿈쩍하지 않았다.
거 봐, 역시 무리잖…….
그때였다.
괜한 짓을 했다며 후회하던 차에 머릿속에 있는 첫 번째 고리가 고속으로 휘돌았다. 호응하듯 두 번째 고리도, 세 번째, 네 번째… 그런 식으로 다섯 개의 모든 고리가 휘돌자, 폭발적인 힘이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고리 하나가 휘돌 때마다 기어가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랄까,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하고 있던 와중…….
드드득, 드드드드드드드.
“아…….”
몇 톤이 넘을지 알 수 없는 바위가… 떠올랐다.

* * *

“저기요, 강민혁 군? 확인 차 묻겠는데, 농담…이죠?”
‘저도 농담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표정으로 응수하자, 선생님은 피곤한 듯 안경을 벗고 눈가를 주물렀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젠 초능력자가 아니라 명확하게 슈퍼맨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사실인데.
“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요?”
“뭐, 대충 알 것 같긴 합니다. 출력 문제겠죠.”
“출력이요?”
“이런 거죠. 잘 보세요.”
내가 되묻자 선생님은 교수실 안에 비치된 소형 냉장고 안에서 음료가 채워진 1.5ℓ 페트병을 꺼내더니, 바닥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꾸로 뒤집어 음료를 쏟기 시작했다.
“선생님?”
“자, 이게 평소의 강민혁 군이 내던 출력이라면…….”
돌연 선생님은 쏟던 페트병을 휘돌렸다. 그러자 내부가 소용돌이치며 순식간에 내용물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게 지금의 출력 상태라는 겁니다.”
너무도 쉬운 예시에 나는 멍하니 비어버린 페트병만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그저 꾹꾹 눌러 담듯 쌓은 예전과 다르게 정렬된 마력이 자유롭게 휘돌 수 있게 되면서 출력이 올라갔다는 말이구나.
“그래서 그런 힘이…….”
“그런데 강민혁 군, 그 힘을 쓰고 난 뒤 평소보다 더 지치지는 않던가요?”
“네. 확실히 평소보다 지치는 감이…….”
“역시나, 출력이 올라간 만큼 소모되는 마력량도 명확하게 많아진 것 같군요.”
“그렇다면…….”
“고리 다섯 개를 전부 이용한 힘을 계속 사용하는 건 어렵겠죠.”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나저나 마력을 압축해 고리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오는군요. 만약 단순하게 압축했더라면 그만한 출력은 명확히 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민혁 군, 그 고리는 최대 몇 개까지 만들어 저장할 수 있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열 개 이상은 힘들지 않을까 해요.”
“이야~ 다섯 개로도 그만한 힘을 발휘하는데, 열 개라면… 뭐, 아파트도 뽑아 들겠네요.”
선생님은 농담조로 말했지만, 본인 스스로도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지 뒤늦게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칭찬은 못하겠군요. 아직 정확한 검증도 안 된 가설을 듣고 바로 실행해 버리다니,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지.”
“죄송해요. 시간이 없거든요.”
살짝 눈을 내리깔며 계면쩍어 하자, 선생님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첫 만남 때부터 느낀 겁니다만, 민혁 군은 어쩐지 자신을 너무 내모는 것 같아 보이네요. 대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무슨 일이라… 지금도 가끔 꿈으로 나온다. 동생과 리더가 마물들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며 히햐햐햐 웃는, 개 같은 자식의 얼굴이.
“하긴, 인류가 멸망할 정도의 대사건이니 그럴 만도 하려나요?”
그런 공포와 증오가 뒤섞인 마음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선생님은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다 무거운 분위기가 싫은 듯 말을 돌렸다.
“보면 볼수록 초능력이란 거 탐나네요. 저는 아무리 노력해 봐도 그 마력이란 거 느껴지지 않던데.”
선생님은 이미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매번 실패를 경험한 것인지 목소리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 있었다.
“저야 이미 한 번 경험한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해낼 수 있었지만, 아마 선생님은 어려울 겁니다.”
“그럼 천생 저는 천족이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군요.”
그는 매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차라리 저희가 직접 그 천족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1년 뒤에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처음 등장한다고 했으니, 이미 미국 대통령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만?”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찾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알 수 없고,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그녀가 도와줄지도 미지수예요. 그럴 바엔 그녀가 등장하기 전까지 지금처럼 인재를 확보하고 힘을 기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정론이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쪼개 수색할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그 천족이 적인지 아군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니까요.”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호오?”
내 말에 되레 감탄했다는 듯,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민혁 군은 어째서 그런 결론에 다다랐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의 이론을 들었을 때였어요. 어째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에 대해 의문을 품다가… 혹시 천족이 초능력에 대한 이론을 그런 방식으로 생각 못하게끔 알려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거든요.”
“재미있군요. 저도 비슷합니다. 더불어 커다란 힘이 있으면서도 직접 도와주지 않은 점도 명확하게 미심쩍어요. 마치 먹음직한 먹이 하나를 툭, 던져 놓고 대충 내버려 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거든요.”
난 소홀히 넘겨들을 수 없어 깊이 숙고했다.
선생님도 담배를 꺼내 물고 이리저리 고민하는가 싶더니, 결정했다는 듯 탁자를 툭, 치며 말했다.
“좋아요, 이렇게 하죠. LA에 친분 있는 박사를 몇 알고 있으니 베르디란 천족 수색은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양인 얼굴이라 했으니, 어쩌면 쉽게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는지는 아직도 회의적입니다만…….”
“할애하는 게 아닙니다. 조사하는 김에 겸사겸사죠.”
“그 말씀은…….”
내 의문에 선생님은 사악하게 웃으며 답했다.
“미리미리 우리 쪽으로 끌어와야죠. 외국에 있는 유명한 인재들도.”
나는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그렇게 인재를 전부 빼돌렸다간 마물 침공 때 다른 나라는 전력 부족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제 알 바인가요? 알아서 하겠죠.”
선생님은 아주 시원하게 다른 나라를 버렸다. 정말이지, 이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네.
하긴, 내게 중요한 건 소중한 이들의 행복이지, 미국의 안보가 아니다. 전처럼 나라별로 대처하다 각개격파로 무너질 바엔 차라리 한 점에 집중하는 게 나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후련해졌다. 무심코 걸어둔 자물쇠가 풀려 버린 느낌이랄까.
“그럼 선생님, 아예 판을 크게 벌여볼까요?”
나는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분명 나도 선생님처럼 얼굴이 사악하게 변했으리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유명 랭커들을 전부 포섭하죠. 특히, 각국의 랭커 1위 위주로 알짜배기만 빼온다는 느낌이랄까요?”
“하핫! 과연, 역시 민혁 군은 그렇게 나와야죠.”
선생님은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하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아참! 그런데 강민혁 군, 우선 외국은 둘째 치고… 그 누구냐, 한국의 영웅이라 불렸다는 자만큼은 미리 포섭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윤혁이요?”
확인 차 묻는 말에 선생님은 손가락을 튕기며 끄덕였다.
“그 사람은 무리예요.”
부정적으로 고개를 젓자 선생님은 그 이유의 답을 원하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답해주었다.
“GK 그룹 회장의 큰아들이거든요.”
“GK 그룹이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3대기업 중 하나가 아닙니까?”
“그렇죠. 훗날 각성자가 등장하고 머지않아 그 3대기업 주최하에 헌터 협회가 만들어지거든요. 윤혁은 필시 GK 그룹이 창단한 클랜에서 활동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저희 쪽으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죠.”
“잠시만요. 클랜이라니, 스포츠처럼 클랜이 창단되는 겁니까? 그럼 저희는 무척 곤란하지 않을까요? 대부분 인재는 돈 많은 3대기업에서 창단한 클랜에 들어가고 싶어 할 테니까요.”
“그래서 저희도 그 정도 위치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어요.”
“그 위치까지 올라간다? 설마…….”
난 씩 웃으며 손가락을 세웠다.
“이번엔 3대기업이 아닌, 4대기업이 되게 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