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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16화

도움이 되는 인재는 얻는다(1)

“강해질 수 있게 도와달라라… 선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군요.”
하긴, 이렇게 말하면 다소 이해하기 어렵겠지.
납득한 나는 좀 더 설명을 풀었다.
“실은 최근에 초능력 연마에 한계가 왔어요.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나름대로 이래저래 생각은 해보았지만,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전문가에게 직접 상담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찾아온 겁니다.”
“아하, 이제 좀 명확하군요.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제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건 그저 이론일 뿐이라는 게 걸리는군요. 실제 초능력과는 많이 다를 수 있을 텐데, 그다지 도움이 될지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긍정할 줄은 차마 몰랐는지 오히려 당황하는 그.
“확신이 있어서 찾아온 거 아니었습니까?”
“아닌데요?”
뭔가 서로의 이해가 어긋난 걸까? 한동안 그와 나는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고, 결국엔 그가 곤란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첫인상은 완벽하게 사전 준비를 마치고 온, 명석한 느낌의 이미지였는데… 어째 대충입니다?”
“하, 하하…….”
난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준비도 없이 정면 돌파한 겁니까? 혹시 어디서 생각이 없다거나 무모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 자주 듣지 않나요?”
난 그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 그래도 충분히 도와주실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있었어요. 과거의 교수님은 한국에서 촉망받는 초능력 연구가였으니까요.”
“과…거?”
“저는 미래에서 왔거든요.”
어라,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을까? 그는 가슴을 쥐어짜며 ‘제발 좀’이라고 신경질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혹시… 그런 얘기 말고도 말을 가려서 하라는 충고도 자주 듣지 않나요?”
나는 다시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이 사람, 무서워.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잖아.
“아무튼, 그 미래에서 왔다는 말. 아까 1년과 연관된 얘기인 것 같군요.”
“네. 어, 말…해도 될까…요?”
다소 눈치를 살피며 물어보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그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정황을 전부 설명하는 게 좋았다. 게다가 어차피 1년 뒤에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니, 무엇보다도 미래를 감춰야 할 의미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미리 알면 알수록 좋지 않겠는가. 그만큼 나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앞으로 1년 후, 저 같은 초능력자의 시대가 열려요. 그때가 되면…….”
그에게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각성자의 시대가 열리며, 마물의 침공이 일어나고, 최후의 인류가 멸망하는 일들까지도…….
특히 최후의 인류가 멸망해 버린 일에 관해 설명할 땐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곤혹스러워했다.
“이건… 도통 믿을 수 없는 얘기뿐이로군요.”
그는 뒤로 말끔히 넘긴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렸다. 며칠은 자지 못한 사람처럼 눈 밑이 거무스름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걸 믿으라는 거 자체가… 그냥 소설 설정이라고 말해주는 게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리까지 찾아와 초능력을 보여주며 괜한 소리를 할 이유가 없으니…….”
그는 고민하듯 입에 물린 담배를 위아래로 흔드는가 싶더니, 이내 탐탁지 않다는 듯이 손가락을 세우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미래에서 왔다고 했으니 앞으로 일어날 일도 전부 알고 있을 테죠? 그중 큰 사건 하나만 알려주세요. 그럼 명확하게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거라면… 아마 조만간 연예인 김지원이 성폭행 관련 의혹에 연루돼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날 거예요.”
“김지원이라면 지금 한창 잘나가는 연예인 아닙니까. 그게 진짜라면… 하아, 인류가 멸망한다는 소리를 믿어야 한다니…….”
제발 자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투로 중얼거리던 그는 피곤함을 덜어내려는 듯 안경을 벗고 미간을 주물렀다.
“그런데 저의 무엇을 믿고 이리 성급하게 얘기를 진행한 거죠? 제가 거절하고 이 일들을 언론에 퍼트릴 수도 있는데.”
“교수님은 그러지 않으실 분이란 거 잘 알고 있으니까요.”
2차 침공 당시에도 그는 수많은 각성자를 살리기 위해 저 홀로 브레스를 막다가 버티지 못해 죽었다고 했다.
그뿐인가. 잘나가는 집안, 심지어 오랫동안 물리학 교수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음에도 헌터가 되어 집안 재산을 탕진할 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인류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자다.
그런 정의로운 사람이 나를 팔고 저 혼자 잘살겠다고 할까?
만약 그런 사람이었더라면 이같이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비밀을 전부 털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 미래의 저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습니까?”
내 대답에서 무언가 느껴진 바가 있는지 그는 조심스럽게 물어왔고, 나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특별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저 딱 한 번 우연히 마주쳐 한마디 주고받은 정도죠.”
“그런…가요. 혹시 괜찮다면 그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어, 별 대단찮은 것이었는데요.”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갑자기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나는 난처함에 볼을 쓰다듬었다.
“정말 별것 아니었는데… 그, 부끄럽지만… 당시에 저는 초능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어 조루 능력자라고 불렸어요. 그때도 아마 주위 헌터들에게 놀림당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던 차에 교수님이 지나가셨죠.”
“거기서 저는 놀림당하는 강민혁 씨를 위로하던가요?”
“전혀요. ‘자네는 명확한 연구감이니, 죽지 말게’라 말하며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가던걸요.”
살짝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당시의 배려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행동이 부끄러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군요. 저는 그런… 큭, 확실히 저 맞군요. 네, 접니다. 저라면 그렇게밖에 말하지 않을 겁니다. 네, 그렇고말고요.”
그는 웃음을 참으며 계속 중얼거리다 결정했다는 듯 콧김을 훅 뿜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강민혁 씨를 믿기로 하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떨어뜨린 핸드폰을 집어 들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놀랍게도 액정 화면에는 ‘녹음 중’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어, 언제부터?”
“경찰에 연락하려 할 때부터요. 혹시 몰라 켜두었었죠.”
난 너무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설마 경찰에 연락하려던 것부터 놀라 바닥에 떨어트린 것까지… 전부 녹음하는 걸 감추기 위한 연기였다는 거야?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저 남자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하지만 이상하다. 왜 이제 와서…….
“이제 와서 녹음하던 걸 밝힌 이유가 뭐죠?”
“강민혁 씨를 믿겠다는 저의 작은 성의입니다.”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녹음된 데이터를 지우며 답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가 내 얘기를 끝까지 믿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아마 미래에 있을 일들까지 전부 녹음되었을 테니, 언론에 알리기만 해도 무척이나 곤란해졌을 것이다.
“강민혁 씨는 명석해 보이지만, 자신이 믿는 사람에 한해 다소 방심하는 경향이 있군요. 혹시라도 다른 이를 포섭할 때도 이 같은 식이라면 언젠가 곤란해질 경우가 생길 겁니다. 명심하세요.”
“확실히… 충고 감사합니다.”
정말 저분에겐 못 당하겠군.
“자, 그럼 앞으로 서로의 연구와 능력을 돕는 조력자로서 잘 부탁합니다.”
“아뇨, 그 부분 정정해야겠어요.”
손을 내민 그가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조언자’로서 잘 부탁합니다, 선생님.”
내가 짓궂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그는 소리 내 크게 웃었다.
그렇게 나는 든든한 조력자 겸 조언자를 얻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엄청나… 진짜 선생님은 천재야.”
이른 아침, 난 침대에 앉은 채로 중얼거렸다.
손가락 끝에 불꽃을 만들어낸 상태로.
믿을 수 있겠는가. 지금 내가 유니크 능력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발화 능력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만들어놓고도 믿기지 않아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며 어제 선생님이 했던 말을 상기해 냈다.

“단순히 염동력만을 일으켰을 땐 몸 주변에 떠 있을 뿐이지만, 명확한 이미지를 부여하면 강도도, 절삭력도 갖출 수 있다라… 그건 마치 정신력으로 염동력에 성질을 부여한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제가 염동력에 성질을 부여했다고요?”
“아까 실험한 결과를 보세요. 무게 측정에서 그냥 염동력을 일으켰을 땐 변동이 없지만, 의식을 집중해 강도를 높이면 무게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죠? 즉, 명확하게 염동력에 없던 질량이 생겨났다는 얘기입니다.”
“그건 염동력이 가진 자체 성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까 어떤 각성자는 불을 다루고, 물, 바람 같은 걸 다루는 자도 있었다고 말했죠? 그것 모두 염동력에 또 다른 성질을 부여한 예시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에요. 그런 특별한 능력은 극소수밖에 사용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국가에서는 그런 자들을 유니크 능력자라고 불렀습니다.”
“그거 확실한가요? 정말 그런 능력을 여러 개 동시에 다루는 자는 아무도 없었나요? 혹은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갖춘 자가 복수로 나타나지는 않았고요?”
나는 그 물음에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 내달렸다.
분명 선생님의 말씀대로 소수지만 물과 불을 동시에 다루던 능력자도 있고, 적지만 복수로도 존재했다.
그렇다면 유니크한 능력이라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그동안 나는 염동력 자체에 강도를 가지는 성질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염동력을 사용한 모든 서포터들의 상식이었으니까.
그런데 만약 염동력에 강도를 부여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기에 모든 이들이 사용할 수 있고, 불이나 물 같은 특별한 성질을 부여하는 건 어렵기에 소수만 사용할 수 있던 것이라고 한다면 전부 앞뒤가 들어맞는다.
“하, 왜 나는 지금껏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못했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껏 나는 이런 간단한 발상조차 못하고 당연하다고만 생각해 왔다.
어째서? 단순히 내가 생각이 없었다?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리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그럴 리가. 잠깐만. 처음 각성자가 등장한 이후, 마력을 머리나 단전에 안착시키는 법과 서포터, 어택커 등 모든 초능력을 체계적으로 나눠 정립시킨 사람은 누구였지?
“베르디…….”
베르디였다. 각성자가 된 후, 마력 흡수부터 모든 이론을 정립시켜 준 자는 천족 베르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