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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7화

미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리라(1)

“후웁, 후웁.”
창덕궁 내를 산책하듯 걸으며 마력을 흡수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농축된 마력이 흘러 들어와 머리에 안착했다.
그럴 때마다 스포츠 음료수를 마시듯 상쾌해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답답하리만치 그 속도는 느렸다. 마치 뜨거운 커피를 마실 때 쓰는 납작 빨대[Sip Stick]로 차가운 물을 마실 때처럼 답답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거, 생각보다 너무 더딘데…….”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이곳에서 마력을 흡수했는데도 변화는 미미할 정도라 답답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회귀 전엔 이곳에 개미 떼처럼 많은 각성자가 몰려와 마력을 흡수했음에도 사흘 동안 마력이 동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계산해 그 당시 100명 정도 찾아와 흡수하던 거라고 쳐보자. 그럼 나 혼자선 300일이 넘도록 흡수해도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게 아닌가.
“안 돼. 여기서 거의 1년 가까이 보내야 한다니, 너무 비효율적이야.”
마력 스폿은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 왕릉이나 궁은 하나가 아니니까. 처음 목표는 이곳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마력 스폿을 전부 취할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지고 만다.
“좀 더 효율적인 마력 흡수법이 없을까?”
이대로 무식하게 마력을 흡수할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 근처 나무 벤치에 앉아 고민했다.
언젠가 좀 더 효율적인 마력 흡수법을 누군가에게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김철종 대원, 들었어? 나강철, 그 사람 최근에 또 등급 업했다던데.”
“그야 당연히 알죠. 저희 서포터의 희망인데.”
“역시 알고 있었나? 와, 그 사람 정말 괴짜네. 뛰어난 어택커가 될 거라고 언론에서도 주목받던 천재가 자신은 염동력이 좋다며 서포터를 선택했을 땐 다들 미쳤다고 그랬는데, 어떻게 서포터로 A등급까지 올라간 거지?”
“부리더, 모르세요? 그 사람, 경복궁에 있는 마력 스폿을 거의 독식한 것 때문이잖아요.”
“경복궁? 무슨 소리야? 당시 거기는 나도 가봤는데, 마력 스폿으로 발견된 직후부터 사라지는 이틀간 잠도 자지 않고 수련했지만 거의 변함없었는걸.”
“그야 그렇겠죠. 부리더 같은 어택커와는 달리 서포터는 마력 흡수법 자체가 다르니까요.”
“마력 흡수법이 다르다고?”
“보통은 공기와 섞여 다가오는 마력을 호흡기관을 통해 흡수하잖아요?”
“그렇지.”
“서포터는 염동력으로 마력을 직접 잡아끌어 올 수가 있어요. 그걸 호흡기관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흡수하는 거죠.”
“뭐? 그런 방법이 있었어?”
“그 마력 흡수법, 나강철이 개발한 거예요. 경복궁 마력 스폿은 다른 곳에 비해 더 빨리 바닥났잖아요. 그거 전부 그 사람이 초고속으로 마력을 빨아들여서 그런 것이었을걸요? 그걸 염마력이라고 지었던가? 책에 그렇게 쓰여 있던데.”
“책?”
“그 사람, 최근에 책도 냈어요. ‘서포터의 염마력법’이란 책인데, 못 읽어보셨구나. 베스트셀러인데……. 저도 그거 보고 안 거예요. 그래봐야 지금 와선 아무 의미 없지만요. 하아, 아무도 찾지 못한 마력 스폿 어디 없으려나?”

기억났다, 같은 팀원이던 김철종 대원이 했던 말이.
“분명히 염동력으로 마력을 잡아끌어 와 온몸으로 흡수…랬지?”
잠시 주위를 살펴본 나는 손바닥으로 염동력을 내뻗어보았다. 그러자 확실히 근처의 마력이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을 잡아채 끌어당기는 느낌으로…….
“욱!”
상당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염동력으로 마력을 끌어온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무섭게 근처의 마력이 염동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이것만 본다면 상상 이상으로 마력이 반응해 주니 좋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정작 마력을 붙잡긴 했지만, 그물 한가득 잡힌 물고기처럼 다시 빠져나가려는 마력에 의해 염동력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버거웠던 것이다.
끝내 마력은 구멍이 뚫린 그물 사이로 물고기들이 빠져나가듯 염동력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크윽! 이건… 무리.”
억지로 구멍을 때우듯 염동력을 펼쳐 메꾸는 방식으로 몇 분 동안 악전고투해 봤지만, 결국 염동력을 유지하기도 벅차 잡고 있던 마력들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제길, 뭐가 이렇게 힘들어?”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정신력을 소모했는지,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고작 손바닥으로 흡수하려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데, 나강철이란 자는 이걸 온몸으로 흡수했다는 건가. 그자는 괴물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 게 아냐. 생각해 보면 조금 전, 마력을 붙잡고 있을 때 내가 펼친 염동력의 허술한 부분으로 마력들이 빠져나갔어. 그러니까 이건…….
“내 탓이야.”
허술한 부분이 있다는 건 염동력의 힘이 균등하지 못했다는 거다. 좀 더 촘촘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염동력을 다룰 수 있었더라면 성공했을 터다.
하긴, 당연한 결과겠지. 염동력을 다룰 수 있게 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은 주제에 서포터의 천재라 불린 그자의 방식을 바로 따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부터 욕심이다.
“후우, 좋아.”
어깨를 한 번 쭉 펴 기지개를 켠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볼때기를 짝짝, 소리 나게 두어 번 쳤다.
“우선은 염동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 나는 돌아오는 길에 근처 문구점에서 학 종이를 묶음 상자째로 구매했다. 이것을 어디에 쓰려는 것이냐 하면, 당연히 염동력을 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오늘은 피곤하다며 저녁밥도 마다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피곤하다고 말했으니 방에 불을 켜고 있는 것도 이상해 형광등을 끄고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켰다.
은은한 붉은 조명을 마주하니 집중되는 느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수험생 이후로 사용해 본 적이 없던가. 뭔가 그리운 느낌이네.
그리움에 취해 있는 것도 잠시.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겨 마음을 다잡은 나는 뭉텅이로 산 학 종이를 책상 위에 쏟고 조심스럽게 염동력을 펼쳤다.
작은 학 종이 하나를 공중에 띄워 천천히 학을 접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만 종이를 접긴커녕 찢어지기 일쑤여서 순식간에 그날 책상 바닥엔 찢어진 종이로 가득해졌다.

다음 날부터 아침엔 체육관, 점심부턴 집에 돌아와 종이학 접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종이 찢기 연습이라 불려도 무방할 만큼 처참하게 찢었지만, 그것도 점차 익숙해져 이틀째 되는 날 처음으로 학을 한 마리 접을 수 있었고, 그다음 날엔 열 마리, 또 그다음 날에는 100마리…….
그쯤 되자 염동력으로 동시에 학을 두 마리씩 접기 시작해, 또 그게 익숙해지자 세 마리씩, 그다음은 네 마리씩…….
그렇게 차례대로 훈련의 강도를 높여 나갔다.
“엄마, 오빠는?”
“방에 있을걸?”
“또? 요즘 방구석에 처박혀서 뭐 한데? 문도 잠가놓고.”
“글쎄다? 할 일이 있나 보지.”
“할 일이 있긴 개뿔. 저 인간, 일 쉰다더니 백수 생활 만끽하려고 그런 거 아냐?”
“얘는, 그게 오빠한테 할 소리니.”
문밖에서 대화하는 모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와 지친 몸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아니면 있잖아… 혹시 그거 아닐까?”
“그거라니?”
“저 나이 때의 남성은 성욕이 왕성할 때라고 하잖아. 항상 문을 잠가놓는 것도 이상해. 어쩌면 지금도 야동 보면서 자…….”
“자, 뭐?”
“그러니까 자… 하, 하핫… 오빠, 언제 나왔어?”
난 귀여운 척 웃어넘기려 하는 현주에게 싱긋 웃어주곤 들고 있던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머리에 던졌다.
“꺅! 아, 뭐야. 놀랬잖아.”
“됐고, 가져라. 선물이다.”
“응? 우와, 학이네? 이게 전부 몇 개야? 오빠가 접은 거야?”
난 현주에게 답해주는 대신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늦을지도 모르니 저녁은 됐어요.”
“응, 그래.”

그렇게 어머니의 배웅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선 나는 곧바로 창덕궁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기 무섭게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역시 평일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적한 산책로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천천히 염동력을 펼쳐 보았다. 전처럼 손바닥이 아니라 머리, 어깨, 손 할 것 없이 온몸으로 말이다.
그러자 부채꼴 모양으로 방사한 염동력에 반응해 어마어마하게 마력이 몰려들었다. 난 그 마력들을 감싸듯 잡아챘다.
“흡!”
절로 숨이 삼켜질 정도의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처럼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새어 나가는 마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대로 와라. 내게로 와!
그물을 잡아당기듯 염동력을 나에게로 불러들였다. 그러자 함께 딸려오는 마력 덩어리. 저항은 심했지만, 끝까지 놓아주지 않고 내 몸 가까이 불러들이자 끝내 마력은 염동력과 함께 자연스럽게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
“세, 세상에… 이 정도라니…….”
주체 못할 희열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건 상상 이상이다. 단 한 번 염동력으로 마력을 흡수했을 뿐인데 일주일간 호흡으로 흡수한 양보다도 더 많이 저장된 것 같았다.
온몸에 활발히 뛰어다니는 마력을 느끼며 한동안 여운을 즐기던 나는 주먹을 꽉 그러쥐며…….
“이거라면 할 수 있겠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로부터 본격적인 마력 흡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번 마력을 흡수하는 것도 버거웠지만, 마력이 몸 안에 흡수될수록 염동력도 강해지는지 점차 시간이 단축되었다.
하나 반대로 염동력을 다루는 건 더 힘들어져만 갔다. 예전엔 망치로 못을 박았는데, 이젠 해머로 못을 박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염동력을 다루는 연습도 빼먹지 않았다.
물론 다시 방에서 학 종이를 접는 방식은 효율이 떨어지기에 창덕궁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전환했다.
예를 들어 가볍게 조깅하듯 달리며 근처 모래 알갱이를 한 움큼 가져와 허공에 동그라미나 네모 같은 간단한 도형을 만들어본다든지, 손마디만 한 돌멩이로 정해둔 목표에 던져 맞추는 사격 연습이라든지…….
이게 또 재미있어 사람이 없는 곳에선 벌컨포처럼 우수수 던져 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다른 물체의 도움 없이 염동력 본연의 힘만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잡아채거나, 때리거나, 베어본다든가 해보았다.
특히나 염동력을 날카로운 칼처럼 벼려내 절삭력을 높인 상태로 떨어지는 낙엽을 베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해내기 위해 일주일간 뼈가 빠지게 고생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덕분에 알아낸 것이 있었다. 절삭력을 높이기 위해선 염동력에 명확한 이미지, 그러니까 얼렁뚱땅 날카롭게 염동력을 만드는 게 아니라 ‘검 모양이 되어라’라는 식으로 확실한 이미지를 부여하면 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벽을 때릴 때도 강철 해머를 연상한다든가, 마력을 흡수할 때도 튼튼한 그물이나 가죽 보자기 같은 걸 연상하면 더 뛰어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정신력과 마력 소모가 매우 크다는 것. 때문에 도무지 오래 유지할 수도, 크게 만들거나 다수를 생성할 수도 없어 안타까웠다.
역시 이 부분만큼은 마력을 쌓고 제어에 익숙해져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마력 흡수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