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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4화

다시 과거로 돌아간 후에(1)

“뭐, 뭐야? 혹시 욕 들으면 성적으로 흥분하는, 그런 타입? 으웩, 진짜로 소름 돋잖아!”
이젠 아주 방어 자세까지 취하며 최대한 물러날 수 있는 데까지 도망가 버린 현주.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 보여서 살짝 충격이었다.
“설마 친동생을 덮치거나 그러는 거 아니지?”
현주는 불안에 찬 얼굴로 나를 경계했다.
아주 오냐오냐해 줬더니 망상이 한도 끝도 없네.
하도 어처구니없어 그 물음에 답해주는 대신 가까이 다가가 대뜸 무릎을 걷어차 버렸다.
“가지가지 해라.”
“아씨, 왜 때려!”
“맞을 짓을 하니까 때리지.”
“우씨, 변태 폭력남!”
그 욕설에 나는 웃었다. 그러자 움찔하고 무서워하는 동생.
다행이다. 이번엔 제대로 알아들었구나.
“악! 아파, 아파아!”
“다시 말해봐. 뭐라고?”
“아파, 아프다니까!”
헤드록을 건 채 조였더니, 결국 현주는 항복이라 외치며 내 팔을 툭툭, 쳤다.
이런 투닥거림이 얼마 만일까.
이 당시에는 매우 평범한 일상이었다. 이렇게 서로 싸우고, 욕하고, 장난치고 하는 것들이. 회귀 전에는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매우 소중한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그걸 지금 되찾았다는 기쁨에 나는 주체할 수 없어 동생의 머리를 조이는 척 감싸 안고는 다시 한 번 눈물을 삼켰다.
“아씨, 머리 다 망가졌잖아!”
팔을 풀자 연신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불평을 토로하는 현주.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역시 넌 단발이 어울려.”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단발했다고.”
현주는 본 적도 없으면서 헛소리 말라는 듯 뚱하니 나를 흘겨보았다.
하긴, 단발을 한 적은 없지. 헌터가 되기를 다짐하며 머리를 짧게 자른 그때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장난치는 걸 보니, 우려하던 일은 아닌 것 같네.”
“우려하던 일?”
“혹시 똘끼가 다시 돋아서 또 무슨 사고 친 줄 알았어.”
그 말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넌 아직도 내가 그렇게 못 미덥냐?”
“그럼 믿음이 가? 그렇게나 사고 치고 다닌 사람을 바로 옆에서 봐왔는데. 그 덕에 아빠도… 아, 이건 미안.”
현주는 뭐라 말하려다 급히 사과했다.
아마 그 뒷말은 ‘돌아가신 거잖아’일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버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지만, 실상 거의 내 탓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고등학생 때 나는 무수히 사고를 치고 다녔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여서 철이 없었다고나 할까. 남부러울 것 없이 갖고 싶은 거 다 가지고 생활한 탓인지, 부끄럽지만 그 시절의 난 폭주족처럼 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싸움만 일삼던 반항기 가득한 남자였다.
그런지라 경찰서도 자주 다녔는데, 아버지는 그런 나 때문에 자주 불려오셨고, 그 덕에 스트레스성 만성 위염을 앓으셨다. 그것이 후에 암까지 진척된 것이다.
물론 의사의 말로는 일반적으로 위염이 위암의 전구 질환으로 보기 어렵다고 소견을 냈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가능성이 없다고도 볼 수는 없기에.
그렇게 아버지를 잃고 난 뒤, 나는 과거를 후회하며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 아끼던 바이크를 팔고, 나를 돈줄로만 여기며 타락의 길로 빠뜨린 친구들과도 절교하고 평범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엔 매우 힘들었다. 공부와 담을 쌓은 내가 인생 처음 대학 입시 학원에 가자,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비웃음 가득한 시선들을 참고 견뎌야 했다.
점점 집안이 기울어 70평 아파트를 팔고 연립주택 전세로 이사한 것도 그렇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가족에게조차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한 것도 그렇고, 끝끝내 믿은 여자 친구에게서 일방적인 이별 선언을 받은 것도 그렇고…….
“그래, 전부 내 잘못이지. 맞아, 내가 아버지를 죽였어. 난 죽일 놈이야. 저는 쓰레깁니다. 타지도 않아요. 네, 그렇고말고요…….”
“그, 그러지 마. 아, 정말. 내가 실수했다고. 진담이 아니니까~아.”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세계가 격변한 이후로도 마음이 부서지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남아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지키려는 것이며, 지금처럼 상처받을 만한 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 맞다.”
미안함에 못 이겨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는 현주를 즐겁게 감상하던 나는 돌연 생각났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현주야, 나가자.”
“나, 나가자니? 아니, 그보다 괜찮…아?”
“응? 뭐가?”
“서, 서, 설마… 우으윽, 그런 거로 속이지 마앗! 진짜 식겁했잖아.”
아, 귀 따갑다. 그러게 누가 그런 말실수 하래?
“됐고, 나가자.”
“자꾸 어딜 나가자는 거야?”
“회…… 응, 회 먹으러 가자.”
“회?”
토라진 얼굴이 갑자기 확 풀리는 현주. 역시 회라면 사족을 못 쓰네.
회귀 전, 헌터 양성소 식당에서 둘이 식사할 때 현주가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예전에 우리 가족끼리 회를 먹으러 갔던 거 기억나느냐며… 당시에 고등어 회를 먹었는데, 비린내가 심해 내가 헛구역질하자 사장님이 크게 당황했더라며 깔깔 웃던 동생은… 갑자기 침울해하며 ‘다시 가족이 모여 외식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당시 현주가 한 말이 줄곧 가슴에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밥을 입안에 꾸역꾸역 들이밀며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그 모습까지도.
그날 이후로 나 역시 쭉 바라왔다, 가족끼리 소소하게 외식하는 것을.
“그런데 오빠, 회 싫어하잖아?”
“딱히.”
나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실제로 이제 음식을 가리고 말고 하는, 좋은 시절 형편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으니까.
이만큼 했으면 슬슬 회 먹으러 간다며 야단법석을 떨 법도 한데, 어째선지 현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빠.”
“왜?”
“진짜 괜찮아?”
괜찮으냐니… 돈 걱정? 아닌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의문이 표정에 드러난 걸까, 정색한 얼굴이 더더욱 딱딱하게 변했다.
“정말 오늘따라 이상해. 잘 웃지도 않고, 마치 지금 행동도 곧 사라져 버릴 것처럼… 어딜 봐도 이상하잖아.”
아차, 또 큰 오해를 산 모양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엄마, 진짜 오빠가 이상해!”
“역시나. 아들, 병원 가자니까.”
결국 다시 한바탕 곤혹스럽게 둘을 설득해야만 했다.

* * *

“어? 강현주.”
겨우겨우 설득해 밖으로 데려 나온 우리 가족. 한참 어느 횟집으로 갈지 고르며 걷던 와중에 안경 쓴, 약간 토실토실한 여성이 아는 체를 해왔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현주와 친하던 동갑 친구였다.
이름이 아마… 최소라였던가?
그녀는 각성자로서 재능이 없기에, 헌터가 된 이후부터 나는 전혀 보지 못한 아이였다.
그래도 현주는 쭉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가끔 사적인 전화라며 기쁘게 헌터 대기실을 뛰쳐나갔으니까. 아마 소라라는 존재는 동생에게 있어 마지막 일상의 안식처였으리라.
“어머니, 민혁 오빠, 안녕하세요.”
뒤늦게 옆에 있는 우리를 보고 꾸벅 고개 숙이는 현주 친구.
친가족도 아닌데 어머니라 부르는, 그 붙임성 있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저리 살갑게 다가가는 태도 덕분에 어머니에게도 점수를 많이 따서 ‘소라는 참 착하다’며 칭찬이 자자하셨지.
“어머, 이게 누구야? 대체 얼마 만이니. 아줌마네 집에 자주 놀러 오지그랬어.”
“요즘 학교 다니느라 많이 바빠서요. 그런데 어머니는 여전히 변함없으시네요. 피부 관리하시나 봐요?”
“그래 보이니?”
“저거, 아부 떠는 거 보소?”
한창 어머니께 칭찬을 열변하던 와중에 현주가 초를 쳤다.
현주 친구는 자연스럽게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냔이 못하는 말이 없어! 너야말로 그렇게 놀러 가자고 해도, 내 말은 코빼기도 안 듣더니, 뭐 하러 나왔냐?”
“우후훗, 듣고 싶어? 듣고 싶어?”
“딱 보니 자랑거리 생겼구만?”
“아, 정말 오늘은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오라버니가 그렇게 회를 사 주겠다고 하지 뭐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기는 무슨. 좋다고 가장 먼저 뛰쳐나온 사람이 누군데.
“어이구, 으스대기는. 그래, 회 사 주는 오빠도 있어서 참으로 좋겠네요. 그런데 진짜 뭐야? 민혁 오빠, 오늘 월급날이에요?”
갑자기 화살이 내게 돌아와 버렸다. 덕분에 무안해진 나는 할 말을 찾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너도 올래?”
“정말요? 와, 대박.”
“미친년, 염치도 없이 가족 외식하는데 어딜 따라오려고 그래?”
“나도 알아. 얘는 누굴 몰염치한 사람으로 만들어. 안 그래도 약속 있어서 거절하려고 했어.”
“퍽이나 그랬겠다.”
“진짜, 이냔이!”
서로 투닥거리며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둘 다 진심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표정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말했다.
“소라였지? 동생이랑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
“네, 네?”
내 말이 너무 의외였던 걸까? ‘에이, 뭐가 고마우냐’며 자연스럽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당황하게 해버린 듯했다.
아차차, 설마 또 실수한 건가?
“아니, 어, 내 말은… 그래, 그냥 보기 좋아서. 그래서… 응, 그랬어.”
“아, 네에…….”
“하아, 저 인간… 말 좀 가려서 하라니까…….”
따갑다. 동생의 차가운 시선이 너무도 따갑다.
“호호, 우리 아들이 너희 둘 친한 게 부러웠나 보다. 그나저나 우리 소라, 다음에 꼭 아줌마네 집에 놀러 와. 맛있는 거 해줄게.”
“네, 그럴게요.”
차마 지켜보기 어려웠던 걸까, 어머니가 도와주셨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야, 강현주. 잠깐 이리 와봐.”
“아, 왜에~”
“글쎄, 잠깐 이리 와보라니까!”
대충 대화가 끝날 분위기가 되자, 현주 친구는 갑자기 현주의 팔을 붙잡고 거리를 벌렸다.
“뭐야, 뭐야? 너희 오빠, 무슨 일 있었어?”
“역시… 네가 봐도 좀 이상하지?”
얘들아… 다 들리거든? 대놓고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니 상처받을 것 같구나…….
“아니, 이상하기보단… 뭔가 바뀌었달까. 좀 멋있어졌어.”
“무슨 바보 같은 말이야? 저게 뭐가 멋있어?”
“아니, 그, 있잖아. 분위기랄까. 전에는 해죽거리기만 해서 순둥이 같은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어쩐지… 남자다워 보여.”
난 부끄러움에 시선을 하늘로 향했고, 나처럼 몰래 엿듣고 계신 어머니는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아무렴, 그렇고말고. 누구 아들인데’라고 중얼거리셨다.
“얼씨구? 이게 드디어 눈깔이 삐었네. 야, 그리고 바뀐 것 아냐. 저 인간, 원래 저랬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원래 상또라이였다고. 진성 상또라이.”
사, 상또라이…….
“됐어. 너랑은 말이 안 통하네. 나간다.”
“야, 그게 무슨 소린데? 궁금하잖아. 야, 강현주! 에이, 그럼 어머니, 다음에 꼭 놀러 갈게요.”
“오든지 말든지. 가자가자.”
현주는 급히 자리를 피하듯 나와 어머니의 팔을 붙잡고 이끌었다.
그렇게 현주 친구와 떨어지자, 현주는 조금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오빠, 혹시 소라한테 관심 있어?”
얘는 진심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