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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3화

나는 죽었다(3)

지금껏 줄곧 나는 노력이 부족하기에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좀 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내 신체가 마력 요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함이 있던 것이라면?
“가능성은… 있어.”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그도 그럴 게, 그렇게나 노력했는데도 능력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번엔 다른 방법을 취해본다?”
의자에 등을 깊숙이 파묻으며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마력 요소를 신체로 사용하지 않고 정신력만으로 사용하는 초능력이 있긴 하다. 예를 들면 텔레파시나 투시, 염동력 같은 것들이. 하지만 이것들은 전부…….
“서포터 초능력이잖아.”
골치가 아파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헌터에겐 공격을 담당하는 어택커, 방어를 담당하는 디펜더, 그리고 그 외 모든 것을 지원하는 서포터, 이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여기서 서포터는 최후방에서 물자를 지원하거나 생존자 후송 등 잡다한 일거리를 도맡아 하는 잡무 처리반이라 할 수 있었다.
어째서 서포터는 저런 일거리만 하느냐면, 간단히 말해 서포터로서 성공한 각성자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서포터는 오로지 정신력만을 사용하는 부류이기에 마력 요소를 머리에 자리 잡히게 한다. 반대로 디펜더나 어택커는 전부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부류이기에 신체에 더 가까운 배꼽 아래, 단전에 마력 요소를 집중시킨다.
문제는 여기서 나타난다. 단전은 크기가 커서 노력만 한다면 손쉽게 마력을 늘릴 수 있는 데 반해, 머리는 마력 요소가 자리 잡는 곳의 크기가 작아 좀체 늘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서포터는 각성 직후 마력 요소가 적은 이들이 많이 택하는 길이며, 덕분에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서포터는 잡무 담당, 또는 무능력자나 겁쟁이, 막말로 쓰레기 청소부라고도 불렸다.
그럼 머리와 단전, 두 곳 모두 마력 요소를 모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단 한 명도 성공 사례가 없으며, 시도한 자들은 모두 몸이 망가져 두 번 다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런 서포터의 길을 자진해서 가야 한다니…….”
내 입에서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한 번 머리에 마력을 모으게 되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어. 서포터로서 강해진다는 보장도 없고. 최악의 경우, 전보다도 약해질 수도 있다. 그런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할 가치가 있을까?
하도 고민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나는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아냐. 역시 그 방법밖에 없어.”
단전에 마력을 모아 신체를 활용하는 방법은 이미 실패했다. 즉, 다시 그 길을 간다 하더라도 내가 강해질 확률은 없다는 뜻. 인류가 멸망하는 미래를 되풀이할 뿐이다. 그렇다면 단 1%라 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도전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강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냐. 무조건 강해져야만 해.”
회귀 전에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강해지고 싶다. 강해져야만 한다. 그러니 잡무 담당이라 불리는 서포터라 할지라도, 바보라며 모두에게 비웃음당하더라도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지리라.
“나 들어간다. 응?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야?”
한창 마음을 다잡고 있는 그때, 덜컥, 문을 열고 현주가 들어왔다.
나는 작게 헛기침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무슨 일?”
바쁘니 어서 용건을 말하라고 보채듯 턱짓하자 현주는 양손을 허리에 착 붙이며 강하게 말했다.
“이제 엄마 없으니까 감추지 말고 어서 말해.”
참으로 집요하다. 하긴, 이 녀석은 쓸데없이 고집스러운 점이 많았지. 절대로 생존자는 구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어서 매번 무리해 사람 곤란하게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뭐, 그럴 만한 이유는 알고 있지만.
1차 마물 침공이 일어났을 당시, 현주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머물고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때 살아남은 건 현주뿐이었다.
어느 정도 진정된 후 들은 말로는 그날 갑자기 집이 무너지기 시작해 둘이 뛰쳐나오다가 문 앞에서 가로막혔는데, 그때, 어머니가 문밖으로 자신을 떠밀어 혼자만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의 충격이 어떠했겠는가.
그 후, 현주는 어머니가 돌무더기에 깔려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탓에 날마다 악몽을 꾸며, 왜 구해주지 못했느냐고 원망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거의 1년이 넘도록 정신을 회복하지 못해 방구석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만큼 현주에겐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 현주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생존자를 구하는 걸 우선시하게 되어버렸다. 두 번 다시 그 괴로움을 겪지 않겠다면서…….
그렇기에 나는 아무리 동생이 작전을 어기고 진형을 이탈해도 탓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만든 건 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으니까.
단지… 현주가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남을 생각하는 만큼 나 역시 동생을 생각한다는 걸 알아주기만을 바랄 뿐.
아무튼, 당장 저 고집을 어찌하느냐가 문제인데…….
“꼭 들어야겠어?”
“그럼 대충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어?”
‘거, 편한 대로 살아가려 하십니다’라고 핀잔주는 듯한 어투였다.
그 부분에선 할 말이 없어 결국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화내도 소용없어.”
화내는 거 아닌데…….
“나중에 알려줄게.”
“나중이 언젠데?”
나는 살짝 눈치 보며 검지를 세웠다.
“내일?”
내가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내젓자 그제야 손가락 하나의 의미를 알아챈 현주는 질색한 얼굴이 되었다.
“설마… 또 1년?”
역시 어처구니없었을까? 말투가 상당히 사나워졌다.
“미쳤어? 그걸 언제 기다려? 지금 설명해 줘도 되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말해줘도 되겠지. 따지고 보면 현주는 나와 같은 각성자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필연적으로 나와 함께 싸울 전우가 될 테니까. 하지만…….
“너, 대학 졸업하면 네일리스트 되는 게 꿈이었냐?”
“말 돌리지 말고.”
끙.
“대답해. 관련된 일이야.”
“그게 뭔 관련? 의미 모르겠거든?”
원래 이렇게 반항적인 애였던가…….
내가 다소 침울해하자 현주는 망설이듯 우물쭈물하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생각만 해둔 정도야. 손톱에 그림 그리는 거, 예쁘고 귀엽잖아.”
“하긴, 넌 그런 거 좋아했지.”
현주는 어릴 적부터 작고 귀여운 걸 많이 좋아했다. 한때는 병아리나 강아지 키우겠다고 난리를 피웠을 정도니까. 그러니 네일 아트에 푹 빠질 만도 하다.
“그런데 내가 오빠한테 꿈 얘길 했던가?”
말했다, 헌터 생활을 할 당시에.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면 네일리스트가 될 거라고, 오래전부터 그게 꿈이었다고.
물론 지금으로선 말하지 않은 게 되겠지만.
이 부분은 뭐라 딱히 답할 말이 없어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현주야, 네일리스트 꼭 되고 싶어?”
“뭐, 뭐야, 아까부터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척은.”
“대답해.”
진중한 내 물음에 다소 긴장했는지, 현주의 눈썹이 크게 좁혀졌다.
“몰라. 정말 생각만 하는 정도라니까. 자격증 시험이고 뭐고 아직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뭐라 할 단계도 아냐.”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은 하는 거지?”
“그야 뭐… 아, 자꾸! 대체 뭔데?”
짜증 섞인 언성이 높아졌다. 어지간히 답답한가 보다.
나는 저 짜증이 폭발하기 전에 얼른 내 마음을 말해주었다.
“응, 결정했어. 역시 보류.”
“아, 왜!”
“너를 위해서.”
그래, 너를 위해서.
어머니를 잃고 살아가던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어쩌면 현주가 헌터가 되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 의견을 존중할 거다.
어차피 1년 후, 세계가 격변한 뒤에 헌터가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현주 자신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평범한 생활 속에서 평범한 꿈을 좇으며 살아가는 동생이 되기를 바라니까.
그러니 사정이 바뀌기 전까진 일단은 보류하자.
“아씨, 뭐가 나를 위해서야!”
하지만 현주는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는 얼굴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딱딱하게 무게를 줘서 다시 말했다.
“강현주, 잘 들어. 지금 내가 설명해 봐야 바뀌는 것도 없고,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냐. 무엇보다도 나는 너를 위해 말을 아끼는 거다. 그런데도 정말 듣고 싶어?”
강압적으로 어투를 바꾸자, 듣기가 두려워진 것인지 목을 살짝 움츠린 현주는 입을 달싹거리다 결국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이씨, 그렇게 말하면 무섭잖아. 아, 됐어. 안 들을래. 괜히 나만 손해 볼 것 같아.”
“잘 생각했어.”
매번 하는 짓은 막무가내에 고집스러워도, 실상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착한 동생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도 분명 나를 생각해 한발 물러나 준 것이겠지.
난 착한 동생이 자랑스러워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뭐야, 그 얼굴? 무서워.”
아무래도 나는 미소 짓는 데 또 실패한 모양이다.
“하긴, 이런 동생은 눈곱만치도 의지 되지 않으시겠죠. 상담해 주길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럴 리가. 항상 의지해왔는걸.”
전방 디펜더인 동생을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어찌 어택커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빈말이 아니라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자는 현주와 리더뿐이었다.
그런데 내 답변이 그렇게 놀랄 일인가? 왜 저렇게 입을 벌리고 있지?
“노, 농담이지?”
“어?”
“설마… 진심이야?”
동생은 식겁한 얼굴로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표정이… 매우 불쾌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인간이 오늘따라 부쩍 진지 모드로 오그라드는 말을 하네?”
그렇게 오그라드는 말이었더냐…….
“말은 좀 가려서 하지? 어휴, 내가 다 부끄럽네.”
그 말에 난 깜짝 놀라 멀뚱멀뚱 현주를 바라보았다.

“명심해. 너는 부리더야. 내가 죽으면 네가 팀을 이끌 각오로 임해.”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제가 방패막이가 돼서라도 리더만큼은 지킬 거니까요.”
“진지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런 말은 둘만 있을 때 해.”
“…네?”
“오빠, 말은 좀 가려서 하지? 어휴, 내가 다 부끄럽네.”

인류 멸망의 날, 그 당시에 리더 같은 능력자가 죽는 건 국가에 있어, 더 나아가 인류에 있어 큰 손해이기에 죽는 건 내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몰라도 리더는 심히 당황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주가 지금과 같은 말을 했다.
“왜, 뭐, 어쩌라고. 불만 있으면 말해보든가.”
현주는 정신을 놓고 있는 내 모습을 화났다고 오해한 것인지 뚱하니 말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어쩐지 뭔가… 응, 기뻐서.”
정말 별거 아닌데 왜 기쁜 걸까?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어 콧잔등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