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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2화

나는 죽었다(2)

“민혁이가 울었다고?”
“정말이라니까.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아들, 무슨 일 있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회사에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던 거니?”
한사코 아무 일 아니라고 손사래 쳤지만, 걱정으로 좁혀진 어머니의 미간은 도무지 풀어지지 않으셨다.
10년 전, 1차 마물 침공 때 이 집과 함께 파묻혀 돌아가신 어머니. 당시에 나는 밖에 있던 터라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도 못했다.
그런 탓에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허탈감은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후회로 남아 있었다.
“저 봐, 저 봐.”
“정말 무슨 일 있었구나.”
큰일이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나 보다.
이런 나약한 모습은 오래전에 버린 줄 알았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도 감정적이 되는 건지…….
“아, 알겠다. 저 인간, 아직도 그년 잊지 못해서 저러는 거 아냐?”
“얘는 오빠한테 저 인간이 뭐니.”
엄마는 괜히 나한테만 그러느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현주.
그런데 무슨 얘기지?
내가 의아해하자 현주는 핀잔을 놓듯 꿍하게 말했다.
“모르는 척하지 마. 아직도 그년 사진 서랍 속에 숨겨놓고 있는 거, 다 알고 있거든?”
서랍 속에 사진? 아, 아아, 기억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까지 사귀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의 협력 업체 사장님의 딸이었는데, 아버지가 오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우리 집안이 무너지자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당시에 나는 한창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휴가를 받고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다 어느 유명한 기업의 후계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일로 꽤 오랫동안 괴로워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나는 그녀의 사진을 숨겨놓고 있을 정도로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가. 잠깐, 그런데 얘는 그런 걸 또 어찌 알고 있데?
“너, 설마… 나 없을 때 몰래 서랍 뒤지고 그러냐?”
“나를 뭐로 보고! 잠깐 뭐 좀 빌리려고 갔다가 우연히 본 거거든?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엄마, 봤지? 말 돌리는 거 보니까 딱 정답이구만.”
‘말 돌리는 게 지금 누군데’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들어 먹을 동생이 아니기에 꾹 참았다.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직도 가끔 향수병 도진 사람처럼 생뚱맞게 질질 짜면서.”
“어머머, 정말이니?”
“정말이래도! 무서워서 같이 드라마도 못 보겠다니까.”
동생의 말에 난 이마를 짚었다.
응, 그것도 기억났다.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너무 동질감을 느껴 동생 앞에서 눈물을 쏟은 흑역사가 있었지. 그 시절의 나는 여러모로 심신이 힘들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녀석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잖아.
“아들, 아직도 잊기 힘들어? 미안하다. 이게 다 엄마가 못나서…….”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런 사소한 일,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사소한 일이긴. 어? 저기 창밖에!”
현주가 ‘창밖에’라고 말하는 순간, 난 반사적으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뭐야? 수상한 사람이라도 봤어?”
보호하듯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은 채 경계하며 창밖을 살피자, 뒤늦게 당황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니. 오빠 전 여친이 지나가고 있다고… 장난치려 한 건데…….”
그제야 얘가 날 떠보기 위해 그랬다는 걸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짐짓 험악하게 한 소리 했다.
“그런 장난은 치지 마라. 화낸다.”
“어? 어, 으응.”
괜히 나무랐나? 덕분에 분위기가 무거워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자, 어머니가 대뜸 현주의 등짝을 때리셨다.
“얘는 쓸데없는 장난은 왜 해 가지고!”
“아파아! 별것도 아닌 일에 저 인간이 예민한 거지, 어떻게 내 잘못이야?”
현주가 고통 어린 불만을 토로하자, 어머니의 눈이 도끼날이 되었다.
“또, 또! 오빠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하여간 얘가 대학 가더니 못된 것만 배워와서는!”
“내가 뭐!”
“뭐긴 뭐야. 어디 몸 파는 애들처럼 머리는 새빨갛게 염색하질 않나, 손톱은 그게 또 뭐니?”
“지금 한창 유행하는 거란 말이야. 그리고 이건 관계없잖아!”
“자꾸 또박또박 말대답할래!”
“엄만 만날 나한테만 그래!”
현주는 한창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어, 머리도 웨이브 파마에 밝은 주황색으로 염색했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네일 아트까지… 전체적으로 어수선해 보인다고 할까.
결코 단정치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런 여동생의 패션을 항상 못마땅해하셨다. 그러다 나쁜 길로 빠져들면 어찌하느냐면서. 하지만 나는 현주가 그러지 않을 애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왜 모르겠는가.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생존자의 목숨을 우선시하는 애인데.
“어머니께 괜한 걱정은 끼치지 마.”
“왜 오빠까지 설교야! 나는 적어도 누구처럼 사고 치진 않거든? 그쪽이나 잘하셔.”
“그래,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넘어가는 내 모습이 다소 이상했는지, 혀를 내밀며 반항하던 현주가 도리어 당황해했다.
“뭐야, 이상해. 설마… 진짜 심각한 일이야?”
“무슨 소리야?”
“뭔가 죽을병에 걸린 사람처럼 태도가 이상하잖아!”
이런, 아무래도 크게 오해를 산 모양이다.
어머니도 놀랐는지 금방이라도 캐물으려는 듯 입을 달싹이셨다. 분명히 이 둘은 내가 울은 걸 죽을병과 결부하여 생각하는 게 분명하리라.
“정말 그런 거 아니래도 그러네. 전 건강해요. 아까는 단지…….”
‘단지’란 말에 둘의 집중된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서 그런 거예요. 하, 하하…….”
“좋긴 뭐가 좋아! 울 것 같은 얼굴이잖아!”
“역시 안 되겠어. 아들, 병원 가자.”
미소 짓고 사는 걸 잊은 지 오래라 아무래도 이상한 표정을 지어버린 모양이었다.
정말 곤란하네.
그로부터 병원에 데려가려는 어머니를 겨우겨우 설득해 다시 자리에 앉힌 나는 정좌해 분위기를 진지하게 되돌리며 말했다.
“어머니, 저 잠시 일 쉴까 해요.”
내 말이 그렇게 충격이었을까. 현주와 어머니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진짜 무슨 일인데!”
“역시 무슨 일 있구나!”
“아뇨,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에요. 단지 꼭 해야 할 일이 생겨서 그래요.”
“해야 할 일? 뭔데?”
현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나는 그런 동생에게 슬쩍 눈짓으로 응답하며 말했다.
“그건 아직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무조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래, 내가 해야 한다. 다시 그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 목소리에서 흔들리지 않을 다짐을 읽었는지, 어머니는 불안한 눈빛을 보내면서도 좀체 입을 떼지 못하셨다.
“이상해! 제대로 설명해 줘! 답답하잖아.”
“너는 가만히 있어봐. 아들, 얼마 동안 쉬려고?”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1년 이상은 될 것 같아요. 그동안 일하며 모아놓은 돈이 있으니 당분간은…….”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엄마 아직 안 죽었어.”
중간에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한 말에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 유학이라도 갈 생각이니?”
“그런 건 아니지만, 부득이하게 몇 개월 집을 비울 수도 있어요.”
“…그러니.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네 아비가 살아 있으면 좋은 말을 해줬을 텐데. 그래도 혹시 돈이 필요하면 말해. 아직 보험 받은 돈이 얼마 남아 있으니까.”
“어? 엄마, 아직도 보험이 남아 있었어?”
“혹시나 너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위해 남겨둔 돈이야. 그러니 아들, 주저하지 말고 필요하면 말…….”
이번엔 내가 마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어 어머니의 말을 막았다.
“저는 지금만으로도 충분해요.”
지금은 이렇게 옆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이 평범한 생활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아시나요. 이렇게 마주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얼마나 꿈꾸었는지 아시나요. 이 이상 제가 무얼 더 바라나요.
다시 눈시울이 붉어질 것 같아 황급히 손을 놓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자애롭게 바라보시며 말했다.
“엄마는 아들을 믿어. 알지?”
“네.”
그렇게 허락이 떨어졌다.
그런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 방에 돌아와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아직도 여러 가지 감정이 여운으로 남아 몸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죽은 줄로만 여긴 동생과 어머니가 살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 팀원도 전부 살아 있겠지.
A등급인 리더와 D등급인 나, F등급인 강현주, 김철종, 임혁필 대원을 데리고 결성한 5인 팀. 종합 F등급 팀이던 주제에 10년 넘게 살아남아 바퀴벌레 팀이라 불렸지만, 그 어느 팀보다도 동료애로 똘똘 뭉쳐 있던 자랑스러운 팀이다.
우리 팀원은 모두 3차 마물 침공 때 죽었다.
김철종 대원은 한창 마물에게 도망치던 와중 무너진 건물 더미에 몸이 깔렸는데, 그를 구출하기 위해 멈춰 서자 이러면 다 죽는다며 자진해 혀를 깨물어 자살했다.
마력 요소가 적은 임혁필 대원은 금세 지쳐 뒤처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눈치챈 우리가 속도를 조절하자 그는 웃기게도 ‘저도 여기까지인가 봅니다’라는 담담한 말과 함께 갑자기 뒤돌아 마물들에게 돌진해 버렸다.
리더와 현주는 내 눈앞에서 목이 잘려 죽었다.
그런 모두가 살아 있다. 이렇게 기쁜 날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이번에야말로 이 삶을 지킬 것이다. 기필코, 내 모든 것을 걸어서.
…하지만 무슨 수로?
순식간에 희망이 절망으로 뒤바뀌었다.
회귀 전에 나는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번엔 지켜낼 수 있을까? 무슨 자신감으로?
그때, 내가 노력하지 않았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할 만큼 했다고 자부한다. 하나 남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소중한 지인들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필사적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지키지 못했다. 가족도, 리더도, 팀원도, 무엇 하나도! 나는 강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내가 이제 와 다시 그때처럼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

“무척 특이한 능력자로군요. 아무리 봐도 썩 대단찮은 각성자 같은데, 아까 보여준 힘은 꽤… 하지만 몸이 버티지 못해 자멸하는 꼴이라니. 잠재력은 그럭저럭 되는데, 그릇이 받쳐 주지 못하는 건가요? 흐응~”

순간, 증오해 마지않는 놈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의 머리를 수집품 취급하던 변태 성욕자이며,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 악마, 알레페토 그라시우스.
그 마족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잠재력은 그럭저럭 되는데, 그릇이 받쳐 주지 못한다고.
부아가 치밀지만,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회귀 전에 나는 신체 능력을 강화하여 어택커로서 활약했는데, 능력 조절이 잘되지 않아 자주 몸을 다치곤 했다.
리더가 말하기를, 나는 정신력과 신체의 균형이 맞지 않아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신체가 마력에 적응할 때까진 절대로 모든 힘을 일깨워 사용하지 말라고 극히 당부했지…….
그 말만 믿고 나는 마력 요소를 늘리는 훈련을 그만두고 매일 꾸준히 체력을 길렀지만…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신체 능력 강화 시간을 고작 5분에서 10분으로 늘리는 게 한계였지…….
그래서 얻은 오명이 ‘조루 능력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