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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습격자들(3)



가르마쿤은 별안간 타워로 통하는 차원문이 열리자 화들짝 놀라 재빨리 폼을 잡았다.
“어흠, 그래 오늘은 어떤 녀석이 왔나 보기로 할까? 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위대한 우리 문명의 결정체인 제 3종 프로키…….”
“닥치고 이거나 받아, 너구리.”
차원문 안에서 두 개의 몸뚱이가 날아와 가르마쿤을 덮쳤다.
꽥꽥거리던 녀석은 그것이 등 쪽이 걸레짝이 돼버린 인간 두 마리인 걸 알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다 죽어가는 놈들이 어떻게 타워에…….”
“시끄럽고 빨리 에너지 변환 시스템이나 작동해. 그 녀석들 골로 가기 전에.”
“넌 지난번 그 건방진 인간 나부랭이? 이 자식! 타워 키 하나에 딱 한 명만 받아준다. 규칙을 무시하지 말라고!”
“아, 시끄러. 그놈들 여기 훈련하러 온 게 아니야.”
“그럼 뭘…….”
산하는 자신의 아이 모니터에서 타워의 에너지 변환 시스템을 기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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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수리]☜ [생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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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로 이 녀석들 고칠 수 있지? 분명히 아직 안 죽었다?”
“할 수야 있다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놔야 할 텐데?”
“얼마야? 스탯 얼마나 필요한데?”
“한 놈 당 20. 이 녀석들 부상 상태를 봐서 그 정도는 필요해.”
“쯥… 어쩔 수 없지. 내 스탯에서 까고 이놈들 고쳐 놔.”
“어느 스탯에서 가져갈까?”
“흠…….”
산하는 아이 모니터에 표시되는 자신의 스탯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 강산하 - 랭크 E >
힘 : 22
민첩 : 22
체력 : 21
정신 : 20
협회 추천 포지션 : 특정 불능

“제기랄, 여기서 40이나 뜯기면 이건 뭐 일반인이나 다름없어지겠네.”
“킥킥, 그냥 관두지 그래? 너희 인간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족, 친족도 얼마든지 살육하는 놈들이잖아. 괜한 짓 말고 관두는 게-”
“닥치고 빨리 치료나 시작해.”

< 강산하 - 랭크 E >
힘 : 22 -> 12
민첩 : 22 -> 12
체력 : 21 -> 11
정신 : 20 -> 10
협회 추천 포지션 : 특정 불능

“너 정말 후회 안 할 거냐? 이래서야 네 녀석의 능력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격이잖아.”
“상관없으니 빨리 해. 이러다 저놈들 죽겠다.”
신비한 푸른 광채가 길영과 지나, 두 사람을 감싸고 하얗던 그들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산하는 뻐근한 목을 두들기며 히죽 웃었다.
“사실, 난 별로 스스로 강해질 필요가 없거든.”

*****

- 툭툭
최길영은 누군가 자신의 뺨을 때리며 잠을 깨우는 것을 느끼자 짜증을 내며 웅얼거렸다.
“으응… 누구야. 난 더 잘 거야…….”
“그럼 이참에 영원히 잘래? 이럴 거면 고치주지 말 걸 그랬군.”
“응? 산하 형?”
“그래 나다, 임마.”
길영이 차가운 돌바닥에서 부스스 일어나 머리를 흔들었다.
기묘한 두통이 머릿속을 덮쳐오고 있었다.
“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에요? 분명 뭔가 끔찍한 일이…….”
“기억 안 나? 보스방에서 우린 강도짓하는 헌터를 만났어. 그놈들이 너랑 지나를 붙잡았지.”
“아! 맞아요! 분명 뒤에서 제압당하고 목에 칼이 겨눠진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떻게 됐더라?”
“그놈들이 너희들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켰어.”
“어… 그, 그랬었나?”
“그랬어.”
길영은 잘 기억이 안 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두들기다 벌떡 일어섰다.
“그럼 누나는? 지나 누나는요?”
“지금 네 옆에 있잖아.”
“아, 누나! 누나, 정신 차려요.”
“으으…….”
길영이 지나를 안아들고 흔들자 그녀도 신음을 내며 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길영은 자기들의 상체 방호구가 벗겨져 있는 걸 알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혹시 형이 우리 방호구 벗기셨어요?”
“아니.”
“어라, 그럼 그게 어디 갔지? 요번에 돈 좀 써서 산 B클래스 방호구인데.”
“누구긴 그 강도들이 벗겨갔지.”
“그, 그런가요? 아니 그런데 우리 어떻게 살았어요? 진짜 위험한 분위기였는데.”
“그게 말이지…….”
산하는 잠깐 말을 흐리다가 곧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갑자기 또 다른 팀이 들어오니까 놈들이 바로 달아나더라.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는 모양이야.”
“아, 그래요?”
“대신 타워 키는 그 팀한테 줬다. 목숨의 은인인데 그 정돈 해야지.”
“엑! 그 비싼 걸 줬다고요?”
“니 목숨보다 비싸겠어?”
“캑…….”
둘의 잡담을 듣던 지나가 크게 한 번 콜록거렸다. 아직 정신이 몽롱한지 게슴츠레한 눈이었다.
“지나 누나! 정신이 들어요?”
“그놈들… 어떤 놈들이었죠? 산하 씨, 놈들 얼굴을 기억해요?”
“글쎄다. 그땐 나도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별로 기억할 것 같지 않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길영의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난 지나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던전 10층에서 각성자 범죄가 일어나다니… 이대로면 신규 각성자들의 성장에 문제가 발생할 거예요. 그건 헌터 시스템 전반에 혼란을 주고 전 세계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겠죠.”
“그게 그렇게 돼? 어째서?”
“지금 세계는 헌터들이 가져오는 던전의 부산물에 기대고 있거든요. 지금도 던전 물품을 가공하는 기술에 막대한 돈이 투자돼요. 어떤 보스 몬스터의 드랍템 중 하나는 단 한 개로 원자력 발전소 1년분 전력 생산이 가능하대요.”
“…그거 엄청나구만. 그래, 이제 이해가 간다. 신규 헌터의 육성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세계 경제의 흐름에 타격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로군.”
생각에 잠긴 산하를 쳐다보던 지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런데 진짜 누가 우릴 도와준 게 맞아요?”
“무슨 소리야 그게.”
“혹시 산하 씨가 혼자 다 해치우신 건 아니겠죠?”
강산하는 힐난하듯 그녀를 삐죽 쳐다보았다.
“이봐, 윤지나. 솔직히 내가 누구한테 당하고 다니는 허술한 놈은 아니지만 내 전문은 괴물이지 인간이 아니야.”
“그, 그렇겠죠.”
“20년 전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인간이라면 빤쓰도 안 입고 달려오는 아귀 같은 놈들이었어. 어린애 손이라도 아쉬운 판에 다른 인간이랑 다투는 미친 짓을 왜 해? 그랬다간 난 이미 그놈들 위장 속에서 소화되고 있었겠지. 다른 각성자랑, 그것도 나보다 센 놈이랑 싸워 이기는 재주는 나한테 없어.”
“죄송해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귀환하자. 너희들이 깨어나질 않아서 나도 집에 못가고 있었단 말이다.”
짜증스런 목소리에 길영도 지나도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산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기랄, 눈치 하난 더럽게 좋은 녀석이라니까.’

***

“우진수가 죽었다.”
“뭐? 지금 농담하나?!”
“농담이 아니다. 오늘, 신입 테스트 차 던전 10층에 갔다가 어떤 놈에게 살해당했다.”
“바보 같은 소리!”
사방이 막힌 특수 보안 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녀석은 우리 길드 서열 7위의 실력자다. 마음만 먹으면 S랭크 암살도 가능한 놈인데, 고작 던전 10층에서 누가 놈을 죽일 수 있단 말이야.”
“사실인진 아직 확인이 안됐다만, 이름이 강산하라고 하더군…….”
“강, 뭐? 우진수처럼 한국인인가?”
“그래, 놈의 말로는 자기가 한국 각성자 제 31호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헛소리야!”
근육질 흑인 남자가 내려친 강철 테이블이 단숨에 바닥까지 찌그러져 내려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각성자가 발생하는 곳이다. 누적된 등록 숫자만 수만 명이 넘을 텐데 31번째? 몇십 년 전, 1세대 퇴물 각성자에게 그 우진수가 패배하고 죽었단 말이냐?”
“지금까지 나온 정보만 따지자면, 일단은 그렇다고 결론 내렸다.”
흑인 남자가 갑자기 차분해 지더니 돌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롱, 네 말이 그렇다면…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겠지.”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지금 같은 냉정함이다, 밥 머레이. 우진수의 인비지블 스킬은 우리에게도 꽤 중요한 능력이었어. 그러나 이젠 그걸 활용할 수 없게 돼버렸군…….”
“왜 우진수는 고작 신참 테스트에 자기가 직접 나간 거지? 다른 녀석을 보낼 수도 있었잖아.”
“그건 내가 명령했기 때문이지.”
그들 건너편에서 커다란 맥주캔 하나를 든 붉은 피부의 남자가 건들거리며 걸어왔다.
“고작 투명해지는 능력 하나 덕분에 내 길드에 들어온 그 녀석이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밥벌이라도 하라고 내보냈지.”
“그레일, 너 이 자식…….”
맥주캔을 단숨에 비워버린 남자는 찌그러진 철제 탁자를 가볍게 걷어차 벽에 처박더니 ‘밥’이라는 그 흑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이거 하난 확실히 하지. 네가 그 우진수라는 옐로 몽키를 얼마나 좋게 봤는지 몰라도 애초에 그딴 약해빠진 녀석을 길드에 끌어들인 것부터가 넌센스였어. 우진수가 S랭크를 암살할 수 있다고? 그건 너 혼자만의 생각이다, 엉클 톰.”
“날 그렇게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머릿속에 싸움박질 밖에 없는 무식한 레드 넥 놈아.”
“오오~ 해보자는 거냐? 나야 좋지, 길드 내에서 아직도 네가 나보다 서열이 낮은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더라고. 쓸데없는 말 나오지 않게 오늘 교통정리를 제대로 해보는 게 어때?”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주지.”
자리에서 일어선 밥의 키는 그레일이라는 남자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그러나 그레일은 히죽히죽 웃으며 태연하게 밥을 쳐다보았다.
“너도 알 테지만 이건 원래 ‘내’ 길드였어. 내가 만들고 내가 모든 계획을 시작했다. 넌 나중에 추가된 사이드 디쉬에 불과해. 길드 서열 3위라고 네가 뭐라도 된 것 같나? 너같이 피부에 색깔 있는 인종들은 채찍과 쇠사슬이 제일 잘 어울린다, 역겨운 기생충들아.”
“그럼 그 기생충이 하나 묻겠는데 길드가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녀석이 왜 서열은 1이 아니라 2인 거지? 이거 누가 대답 좀 해주겠나?”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레일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밥이라는 남자는 앞에 서 있는 그레일의 약점을 잘 아는 듯 비웃음과 함께 쏘아붙였다.
“S랭크 헌터 ‘아메리칸 싸이코’ 그레일 론머맨. 별명은 그럴싸하다만 그 잘난 실력에도 네가 우리 중 제일은 아니야. 그게 왜 그런지 굳이 내가 말로 해줘야 알아먹겠냐, 멍청아?”
“밥 머레이! 빌어먹을 퍼킹 니거 새끼! 오늘 네 더러운 깜장 가죽을 내 구두 밑창에 발라버리고 말겠다!”
“어디 해봐!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는 남부 텍사스 촌놈아!”
둘의 불타는 눈이 부딪히자 실제로 방안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 괴이한 돌풍이 불고 방안의 공기가 뜨겁게 가열되던 그 순간…….
“거기까지만 해. 조직원 사이의 내분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진 둘 다 잘 알고 있을 거잖아.”
밥과 그레일 곁에 서있던 롱은 그 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전형적인 동양 남자였다.
그 말투는 강압적이지도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지만 밥과 그레일은 알아서 동작을 멈춘 뒤 여전히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을 뿐이었다.
“너희 사이의 갈등은 어느 정도 의도적인거야. 조직이라고 하는 건 적당히 세력이 나뉘어 있는 게 좋거든. 경쟁도 하고 서로의 자극제가 되어 주니까.”
“쳇…….”
“그 갈등을 너무 심화시키지만 말아줘. 지금 같은 중요한 때에 우리끼리 싸워 전력을 약화시킬 이유가 없어. 안 그래도 귀찮은 장애물이 하나 나타난 모양이거든.”
이 ‘롱’이라는 사내는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한 남자의 인적 사항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는 앞의 둘과 비교해 무척이나 차분해 보였다.
“설마 했는데 진짜인 모양이군. 대한민국 각성자, 등록 번호 제 31번 강산하. 20년 전 동인천 게이트 크래쉬 사건 때 잠재적 사망 처리되었으나… 최근 다시 생존이 확인되었다? 이거 제법 흥미로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