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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습격자들(2)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너?”
“킥, 거 웃기는 새끼네.”
끝까지 개폼을 잡는 탓에 산하는 더는 참지 못하고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강도 새끼들이 제멋대로 들이닥치더니 이제 와서 나더러 뭐하는 놈이냐고 묻는 건 대체 무슨 경우냐? 너 경찰 겸 강도야? 킥킥.”
“곱게 죽고 싶으면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반사 데미지에 디버프, 그리고 그 50층 보스의 능력인 검은 화염이라니… 그렇게 다양한 특수능력은 본 적이 없다.”
“글쎄다? 혹시 내가 소문의 S랭크 각성자는 아닐까?”
“그럴 리 없지. S랭크가 그런 허름한 장비를 걸치고 이런 던전 상층에서 시간 낭비나 하고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넌 이제 뒤졌어!”
벽으로 날려갔던 놈이 흙먼지로 엉망진창이 되어 입을 나불댔다.
“그분 랭크가 뭔지나 알아? 무려 A랭크시다. 너 같은 건 순식간이니까 빨리 목이나 길게 빼놓고 죽을 준비나 해.”
“시끄럽다니까.”
그가 귀찮은 듯 손을 튕기자 강풍과 함께 녀석이 다시 한 번 공중에 날려갔다 뚝 떨어졌다.
그러나 A랭크라는 말을 듣고도 산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날더러 S랭크가 이런데 있을 리 없다고 하더니 지는 A랭크네? 그럼 넌 여기 왜 있는데.”
“…….”
“흥, 어쨌건 내 알바 아니고 잠깐 기다려 봐, 병시나.”
바로 코앞에 있는 그를 무시하고 산하는 바닥에 쓰러져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길영과 지나를 양손에 붙들었다.
“어디보자… 이쯤이 세이프 존이겠지?”
10층의 보스, 파이어 서펀트를 물리치자 나타난 11층으로 가는 입구에 산하는 그 두 명을 던져 넣었다.
“세이프 존에 넣어두면 최소한 죽지는 않겠지. 캬~ 세상 참 편리해. 죽으면 그냥 죽는 거지 뭐 이런 걸로 다 살려준담. 안 그러냐?”
“……뭘 하는 거지 지금?”
“뭐긴 재들이 죽으면 내가 영 곤란해서 일단 숨은 붙여둔 거다. 난 좀 평범하게 보이고 싶거든.”
“진짜 힘을 숨기고 있단 말이냐?”
“글쎄?”
여전히 히죽거리는 그를 보며 녀석의 미간이 굳어졌다.
“자기 랭크를 숨기는 각성자는 가끔 있다. 하지만 보통 그런 녀석들은…….”
“협회가 알면 안 되는 더러운 짓을 하고 있겠지. 바로 너처럼. 안 그래?”
놈의 눈가가 꿈틀 흔들렸다.
“나에 대해 알고 있나?”
“몰라, 임마. 난 나 말곤 별로 관심도 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알았지?”
“뻔하지. 랭크가 높을수록 협회에선 특별 관리를 하려 들겠지? 그럼 뒤 구린 짓 하기가 영 귀찮아 질 것 아냐.”
“…….”
“왜, 찔려? 옛날처럼 멍청한 협회가 아니라면 강한 각성자의 확보가 인류의 중대사인건 당연히 알거야. 다들 편하게들 지내서 착각하는 모양인데, 인류는 지금 침략 당한 상황이라고.”
산하의 눈이 매섭게 불타올랐다.
”게이트가 뭔지, 그 안의 괴물들은 왜 있는 건지, 그것들이 언제 어떻게 지구를 공격해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각성자는 인류가 가진 단 하나의 무기야. 그런데 다들 던전의 보물에만 정신이 팔려 있더군. 병신들 같으니… 당장 내일이라도 게이트의 악마들이 밀어닥칠지 모르는데 그러고들 싶나?”
“아주 기묘한 사상을 가지고 있군. 넌 대체 뭐하는 놈이지? 언제부터 각성자가 된 거냐?”
“글쎄다, 오늘로 대충 각성자 경력 26년쯤 됐을 거다.”
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농담을 할 분위기는 아니라고 보는데. 유아기 때 각성자가 된 사례는 없다. 넌 고작해야 서른도 안돼 보여.”
“뭣하면 알아보던가. 강. 산. 하. 1992년 대한민국 제 31호 각성자시다.”
“19… 92년? 지금 나랑 장난하나?”
“이게 장난으로 보여? 그럼 넌 장난하다 곧 뒤질 놈이네.”
“건방진 놈이 누구 앞에서 헛소리냐!”
놈의 허리에서 두 개의 마나 블레이드가 붉은 섬광을 뿌리며 산하의 목을 노렸다.
평범한 헌터가 쓰는 마나 블레이드의 검날은 파란색, 그러나 이자의 붉은 칼날은 그보다 세배는 더 강해 보였다.
그러나 그 번개 같은 속도에도 산하의 모습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역시 그걸 쓰네. 나도 하나 가지고 있긴 한데 난 도저히 쓸 수가 없거든. 젠장, 부럽다. 누군 이렇게 몸뚱이만한 걸 무기라고 맨날 짊어지고 다니는데, 쳇.”
“이놈이… 방금 그걸 피했어? 속도라면 자신 있는데 너 같은 놈이 감히 그걸…….”
“거 내가 좀 피할 수도 있지 뭘 그거 가지고 성질을 부려? 니가 베면 누구나 다 맞아줘야 되냐? 어린애도 아니고 인성이 덜 됐네.”
“입 닥치지 못해!”
그의 손이 진동하듯 흔들렸다.
동시에 마나 블레이드의 참격이 반원 모양의 충격파를 만들며 산하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헉!”
붉은색으로 섬뜩하기까지 했던 그 충격파는 산하의 코앞에서 형체도 없이 부스러져 사라져 버렸다.
놈이 경악에 차 외쳤다.
“대체 그걸 어떻게! 서, 설마 디버프인가? 그럴 리 없어! 내 저항력은 디버프 따위가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니다!”
“그을쎄? 이게 왜 이렇게 됐을까?”
여전히 빈정대는 산하의 앞에서 남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의 검날이 붉은 색인 걸 봐서 나의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분명 놈의 디버프는 내겐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럼 대체 저건 무슨 능력이지? 반사? 분해? 무효화 능력?’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안 덤비냐? 내가 가줘?”
계속해서 낄낄대는 강산하를 보며 남자는 양손의 마나 블레이드를 꽉 움켜잡았다.
그 검날이 붉게 타올랐다.
“고작해야 조직원 입단 테스트하러 나온 곳에서 이런 짓까지 해야 할 줄은 몰랐군.”
그의 몸이 살짝 푸르게 빛나더니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온몸과 심지어 들고 있던 마나 블레이드의 검날까지 투명해지며 공기 중으로 녹아드는 놈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왔다.
“네가 누군진 모르지만 하필이면 날 만나다니 정말로 운이 없구나. 네 능력이 뭐였든지 간에 여기서 그 뼈를 묻어야겠군. 잘 가거라, 흐흐흐.”
“지랄을 해라 아주. 개폼이 뼛속까지 녹아있네.”
빈정대며 말하긴 했지만 놈이 사라진 순간부터 산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아까 녀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던 게, 다 이 녀석 때문이었군. 귀찮은 놈 같으니.’
주변에 정신을 집중했지만 놈의 발소리 하나 들리지도 않았다.
‘지금의’ 산하로서는 놈의 기척을 찾을 방법이 없는 모양이었다.
“좋아, 인정하지. 네 위치를 전혀 찾을 수가 없네. 이러다가 내 통수에 칼침을 놓겠다. 이런 생각이겠지? 그런데 말이야, 네가 미처 생각 못한 게 하나 있어.”
“…….”
“난 아주 경험이 많은 놈이거든. 몸이 투명한 적과는 이미 예전에 싸워봤어. 그땐 뒈지기 직전까지 갔다만, 이젠 내 나름대로 대비책이 있거든.”
“어헉!”
순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괴상한 비명이 들려왔다.
뭔가 투명하지만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사람의 형체가 꼴사납게 바둥거리고 있었다.
“커, 커헉! 크어억! 네… 네놈 지금 대체 뭘…….”
“오호라~ 거기 계셨구만? 생각도 못한 곳에 있었네. 까닥하면 목 날아갈 뻔 했어.”
“끄아아악!”
놈의 팔꿈치가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역으로 꺾여 축 늘어졌다.
손에 들린 마나 블레이드의 무게를 팔의 근육과 뼈가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투명화가 풀리자 드러난 놈의 얼굴은 말라비틀어진 나무토막처럼 거칠게 주름져 있었다.
“네놈…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
“평소보다 입을 좀 크게 벌려 봤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릴까? 알아먹겠어, 너?”
“어, 커헉… 모, 몸이…….”
“머리 아프지? 속 뒤집히지? 온몸에 근육이 비명을 지르지? 지금 니가 입고 있는 옷도 무거워서 죽을 지경일거다.”
“컥, 끄허헉…….”
“지금 네 몸은 갓 태어난 어린애만도 못해. 옷이 피부에 파고 들어가고 있는 거 보여? 킥킥.”
“아, 아아악…….”
“죽는 선물로 하나 알려주지.”
산하가 그의 귀에 입을 대고 작게 한마디 속삭였다.
“사실 내 위장은 두 개라서 말이야. 최근에 다른 쪽이 좀 출출했는데 병신같이 강도질 하러 와줘서 고맙다. 감사히 잘 먹을게.”
“……!”
놈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이미 목의 근육조차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그의 의식이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이 모니터에 나타난 그의 스탯이었다.

< 우진수 - 랭크 A >
힘 : -999999……
민첩 : -999999……
체력 : -999999……
정신 : -999999……
* 위험 - 급격한 스탯 저하로 생명 활동을 유지할 수 없음.
유지할 수 없음.
유지할 수…
유지…
유…

***

“히… 앍얽엙읅얽읅…”
“임마, 정신 차려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
“하히호헤히헤호… 졔쩨졔졔발 주, 주기지 마세… 흐으으 마셍요오, 으흐흐흐.”
“새끼가 뻔뻔하긴.”
벽에 날아가 처박혔던 녀석은 산하와 개똥폼 녀석의 싸움을 전부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똥폼 잡던 녀석이 한줌 가루로 변해 바닥에 흩어지는 걸 본 뒤론 반쯤 정신이 나가버렸다.
“남을 죽이려고 했으면 너도 죽을 각오를 해야지. 이런 게 바로 공평이란 거야. 아무리 범죄자 새끼라도 니들끼리 수당 나눌 땐 공평하게 하지? 이것도 똑같아.”
“져져져져는 강됴가 아녜요오~ 그냥그냥… 이굔 그냥 테테테스튜래요오…….”
“테스트? 너 강도가 아니라고?”
“아, 아녜요오… 그냥 위에소 시쿄소요…….”
“시, 시켰다고? 너 설마 무슨 조직 같은 거에 들어가려던 머저리냐?”
“예에에…….”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녀석이 반쯤 울음을 섞어 대답했다.
순간 산하의 얼굴이 격하게 일그러졌다.
“그럼 저 자식은 설마…….”
그가 이젠 가루가 되어 사라진 똥폼 녀석의 잔해로 달려갔다.
놈의 육체는 완전히 사라졌고 그저 녀석의 소지품만 남아 바닥에 구르고 있었는데 거길 마구 뒤지던 산하의 눈에 놈의 헌터폰이 들어왔다.
그것은 카메라 모드인 채로 현장의 영상과 소리를 지금까지도 계속 전송하는 중이었다.
“이런 젠장!”
열 받은 강산하가 고함을 지르자 널브러져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세이프 존을 향해 미친 듯 달려갔다.
“으아아아! 귀환! 귀화안!”
“끝까지 시끄럽게 구네, 빌어먹을!”
검은 케이스가 열리고 무식한 크기의 대검이 튀어나왔다.
그걸 손에 잡은 산하의 팔뚝에 시퍼런 힘줄이 불쑥 튀어나왔다.
“앞으론 조용히 좀 다녀라, 새끼야!”
“흐아아악!”
- 부우웅~
무지막지한 소리와 함께 대검이 풍차처럼 돌며 날아갔다.
그리고 도망치던 녀석의 몸통은 단숨에 두 동강 나 버렸다.
“…….”
시끄럽던 놈을 처리한 뒤 산하는 발앞에 떨어져 있는 헌터폰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바로 이 앞에서 자기 이름과 신상 정보를 떠들어댄 것이다.
이것은… 정말 좋지 않았다.
“어이, 거기 누구든 있다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카메라를 가린 뒤 헌터폰을 입에 가져다 댄 산하가 중얼거렸다.
“난 너희가 누군지 모르고 뭐하는 놈들인지도 몰라. 이번 일을 곱게 묻겠다면 나도 너희를 쫓지 않겠어. 하지만 날 어떻게 해보려 한다면 이쪽도 생각이 있지. 피차 서로 좋은 대답을 들었으면 한다만?”
꽤 오랜 침묵 뒤에 헌터폰 안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Good L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