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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던전 공략 - 상층(1)



“준비들 다 됐지?”
“옙!”
“네. 끝났어요.”
협회 전이 센터, 공용 전이석 앞에서 강산하와 최길영. 그리고 새로 합류한 윤지나가 서 있었다.
그녀의 합류로 이제 ‘탱킹과 딜링’ 이라는 파티 플레이의 기본 구성이 갖추어진 것이다.
“그럼 들어간다. 시작은 이전에 이어서 던전 3층부터다.”
“옛!”
공간이 어그러지며 그들은 단번에 던전 3층 입구로 이동되었다.
“우선 길영이, 너는 평소처럼 맨 앞에 서라. 다만 이번엔 지나의 움직임에 발을 잘 맞춰. 특히 지나 쪽으로 달라붙는 놈이 생기면 그 즉시 네가 떼어내야 한다. 할 수 있겠냐?”
“네, 염려 놓으세요.”
“내가 염려놓겠냐? 그러면서 네 뒤통수도 잘 간수하란 말이야. 혹시라도 네가 뻗어버리면 그 순간 우린 바로 퇴각이야.”
“으… 알겠습니다.”
“그리고 윤지나. 지난 팀에선 어땠는지 몰라도 네 스타일을 내가 좀 봐둬야겠어. 디버프는 일단 여기선 쓰지 않겠다. 그러니 알아서 실력 보여 봐.”
“네, 알겠어요.”
지시를 내린 후 일행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해 가기 시작했다.
X같은 녀석들과 팀이 된 탓이긴 했지만, 벌써 두 번이나 후퇴한 곳인지라 길영은 나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고 드디어 그들 앞에 몬스터가 나타났다.
“늌~크.”
“왔구나, 초록 괴물아! 이번엔 예전 같지 않을…….”
길영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 윤지나의 보우건(Bowgun)이 불을 뿜었다.
- 팍! 팍!
“끼욱~”
“흐에……?”
길영이 멍청히 쳐다볼 때엔 이미 두 늌크의 이마에 보우건 화살이 처박힌 뒤였다.
절명한 녀석들이 뒤로 넘어가자 마지막 남은 하나가 꾸엑 괴성을 질렀다.
“길영 씨, 바로 공격해요!”
“네, 넷!”
최길영이 방패를 앞세우고 용감히 달려가자 홀로 남은 늌크의 곤봉이 그 위를 마구 두들겼다.
그러나 이젠 경험이 생긴 길영도 그대로 막고만 있진 않았다.
“두세 명이면 모를까 너 하나면 문제없어!”
늌크의 공격을 받아내던 중 다른 손에 들린 길영의 스턴 메이스가 녀석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끄어억!”
“이것도 먹어라, 전기 충격이다!”
“끄앍엙앍옭앍!”
짜릿한 충격에 온몸을 덜덜 떨던 늌크가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녀석의 면상에 길영의 마무리 공격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일행은 첫 번째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우와~ 이번에 난 거의 한 게 없네. 지나 씨, 방금 그건 뭐예요?”
“탱커가 적에게 붙은 다음에 공격 기회를 노리는 건 쓸데없는 피로를 누적시키는 거래요. 할 수만 있다면 후방 딜러는 이렇게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방식도 사용하죠.”
“오호라~ 확실히 그러네요.”
“다만 이 방법을 쓰면 바로 저한테 어그로가 쏠릴 거예요. 그러면 진형이 무너지게 돼서 주의해야 하는데, 이번엔 자신 있었어요. 고작 3층 늌크잖아요?”
“크~ 자신감 멋져요, 히히.”
늌크들의 시체가 사라지고 뭔가 떨어뜨린 것이 없나 길영이 찾으러 간 사이, 산하가 지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왜 그러세요?”
“좋은 공격이었지만 그 방식, 당분간은 쓰지 마.”
“어째서요?”
“어째서긴, 길영이를 네 예전 팀 녀석들처럼 만들고 싶어? 네 실력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편한 상황만 만들어주면 저 녀석은 언제 강해지란 거야.”
“아… 그렇겠군요.”
“이건 우리한테도 중요해. 던전 공략에서 포지션 역할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다면 파티의 축은 딜러가 아니라 탱커야. 그건 길영이 녀석이 한사람 몫을 못하는 한 우린 계속 삽질만 하게 될 거란 소리지.”
“알겠어요. 전 딜러로서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나머진 길영 씨한테 맡길게요. 그래도 산하 씨 쪽은 항상 신경 써야겠죠?”
“필요 없어.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해.”
“아… 네.”
차갑게 말을 잘라버린 산하는 등에 짊어진 예의 묵직한 케이스를 끌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후의 싸움은 길영에게 조금은 빡빡하게 돌아갔다.
“왓! 저기 떼로 몰려오네. 지나 씨 미리 저격 좀!”
“앗차, 타이밍이 늦었네요. 그냥 싸워요.”
“으아악!”
지나는 은근슬쩍 실수하는 척하며 정면 대결을 유도했고, 그때마다 길영은 진땀을 흘리며 적에게 맞섰다.
거기다 산하의 갈굼이 사정없이 뒤에서 날아들었다.
“야, 눈 똑바로 안 떠? 지금 앞에 두 놈 뒤에 짱돌 던지는 녀석 하나 있다! 짜샤! 지금 왼쪽으로 돌아서 지나한테 가려고 하잖아. 동선 안 틀어 막어? 탱커란 놈이 탱은 안 하고 보고만 있기냐?”
“네, 넵. 거기서… 으아악!”
“바보야! 뒤를 잘 보라고 했더니 그걸 바로 처맞고 앉았냐. 그게 화살이었으면 넌 벌써 아웃이야, 임마.”
“예, 옙! 정신 차리겠습니다.”
산하의 엄한 목소리가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길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어다녔다.
동시에 지나는 자신이 딜러로서 점점 적을 노리기 편해지고 있는 걸 느끼곤 새삼 혀를 내둘렀다.
‘역시 이 사람과 함께한 것이 정답이었어. 1세대 각성자라곤 하지만 던전 플레이는 초보나 마찬가지일 텐데 단시간에 이 정도 상황판단이 될 줄이야…….’
그녀뿐만 아니라 길영도 자기 실력이 느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4층 입구에 서성이던 다섯 마리 늌크 무리를 본 순간 산하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윤지나, 후방 두 놈 저격해! 최길영 돌격!”
동시에 그의 손에서 붉은 촉수 같은 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에 질 새라 지나의 보우건이 빠르게 화살을 날렸고 뒤쪽에서 돌팔매를 준비하던 두 놈이 화살에 맞아 그대로 나뒹굴자 길영이 방패를 앞세우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 퉁퉁! 탕탕탕!
남은 세 늌크의 공격이 무수히 떨어졌지만 길영은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며 그 공격을 받아냈다.
그러다 순간 틈을 노려 한 녀석의 마빡을 스턴 메이스로 후려 갈겼다.
“으캑~”
“너도 저리 비켜!”
뚝배기를 부수고 그 옆 놈을 발로 밀어 차자 마지막 남은 녀석의 미간을 다시 날아온 화살이 사정없이 꿰뚫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늌크의 위로 길영의 매타작이 떨어졌다.
“으라차! 돈 내놔라, 템 내놔라!”
“으엑, 끄엑, 꾸에에엑~”
물욕에 불타는 길영의 곤봉 찜질에 몰매를 맞고 사라져 가는 늌크를 보며 산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몬스터 중에 몸에 금칠한 놈이 있다면 저 녀석은 무적일 거야. 하여튼 순간적으로 내가 말한 룰을 깼는데 바로 반응해 준 건 아주 훌륭했다, 윤지나.”
“산하 씨 판단이 정확했어요. 이 5인조 늌크는 연계 플레이가 좋아서 살짝 까다롭거든요. 헌데 이 녀석들은 여기보단 좀 더 아래쪽에 나올 텐데 좀 의외네요.”
“확실히 그냥 다섯 놈을 한데 뭉쳐놓은 건 아닌 것 같더군. 자기들 나름대로 파티 형식을 취한 거였지?”
지나가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셨네요. 근접 딜러 셋에 후방 딜러 둘, 포지션을 갖춘 늌크 무리죠. 사실 인원수만 충분하면 별 것 아니에요.”
“역시… 우리가 좀 수가 적지?”
“그렇죠. 보통 파티라 하면 최소 다섯 명부터 시작이에요.”
“에? 싫어요~ 우린 계속 이 멤버로 가요. 보수 나눠 먹기 싫단 말이에요.”
어느새 길영이 녀석은 입구 근처에서 난바 버섯을 찾아 보관함에 소중히 집어넣고 있었다.
“형님이 디버프 한번 해주시면 얘들 한 일주일 설사한 것처럼 골골대는데, 우리가 쫄릴 게 뭐가 있어요.”
“왜 하필 드는 비유가 그래?”
“기, 길영 씨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아마 10층까지는 산하 씨의 디버프 능력이 있는 한 그 어떤 파티보다 효율적일 거예요. 다만…….”
지나는 산하의 눈치를 살피며 어깨를 으쓱했다.
“10층 이상부턴 몬스터들도 마력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나타난대요. 그래서 그 뒤론 디버퍼의 효율이 급감하게 된다고…….”
“죽은 이신운가 하는 녀석이 그렇게 말하긴 했지. 흥… 뭐 그건 그 때가서 걱정하자고.”
“그래요, 지금 그런 거 생각해 봐야 뭐해요, 히히.”
그러나 순간, 비싼 버섯을 찾고 마냥 킬킬거리던 최길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으악, 형! 뒤에!”
길영이 갑자기 다급하게 소리치자 뒤쪽 바닥에서 사각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시체 바퀴였다.
“형, 조심!”
- 빠악!
시체 바퀴가 허공을 날아 강산하의 뒤를 덮치던 순간 그의 몸이 사라지더니 기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번개처럼 옆으로 휙 빠진 그가 팔꿈치로 시체 바퀴의 몸통을 내려찍은 것이다.
껍질이 깨지고 초록색 체액이 튀었다.
“욱…….”
비위가 상한 윤지나가 숨을 삼키며 녀석의 등껍질에 보우건을 박아 넣자 그 참에 공중으로 몸을 날린 산하는 놈의 몸통을 발로 짓밟아 무참히 곤죽을 내버렸다.
- 우직, 우직, 우지직!
“우웩!”
“새끼가 어딜 통수 치려고 해. 이렇게 뒤에서 달려드는 것들은 이젠 지긋지긋해.”
시체 바퀴의 체액에 끈적해진 발을 땅에 부비는 산하를 보고 결국 지나는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했다.
“으웩, 우웨엑…….”
“제길, 왜 네가 그렇게 조급해하면서 우리 팀을 찾았는지 알겠네. 멘탈이 여전히 쿠크다스야. 그때에 비해 별로 변한 게 없어.”
“헉… 헉, 미안해요.”
“됐다. 비위가 약한 건 뭐 어쩌겠어,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랑 같이 다니면서 몇 번 더 보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질 거다.”
“그… 방금 산하 씨 움직임은…….”
“아, 그거? 보다시피 내 무기가 저렇게 크고 무겁잖아. 중요할 때 내 손에 저게 없을 경우야 얼마든지 있으니 그럼 남는 건 이 몸뚱이 하나뿐이지. 옛날에 검을 못 쓰는 경우가 생겨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익혀 둔 최후의 수단이야.”
자기 주먹을 들어 보이는 산하를 보며 지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소위 무투가라고 몸으로 싸우는 헌터들이 있다곤 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육체가 비정상적으로 강화되는 특수 능력이 있어서 가능한 건데… 차라리 검이나 둔기 하나라도 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이론은 그렇다만, 이 녀석이 워낙 무거워야 말이지.”
그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대검의 케이스를 쿵 찼다.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더는 뭘 몸에 걸치고 싶지 않아. 이참에 무기를 바꿔볼까 해서 마나 블레이드라는 걸 사용할 생각도 했지만, 난 못쓰더군. 쳇.”
“그래요? 산하 씨도 디버퍼라는 마법 사용자니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 못 할 리 없을 것 같은데.”
“길영이랑 똑같은 소릴 하는군. 하여간, 난 못써.”
“…….”
둘이 대화하는 동안 4층의 입구를 싹싹 훑은 최길영이 히죽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형님, 지나 씨. 3층 공략도 빠르게 끝난 김에 우리 4층도 한번 가보지 않을래요? 체력은 충분한 것 같은데.”
“전 좋아요. 아직은 그저 몸이나 가볍게 푼 정도니까.”
“쳇, 네 녀석 물욕이 나한테도 전염되나 보네. 좋아, 가보자.”
“네! 헤헤헤헤.”
씩씩하게 대답한 길영이 제일 앞서 4층을 향해 내려갈 때 아무 생각 없이 그 뒤를 따라 이동하던 지나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헌데 대체 어떻게 시체 바퀴의 껍질을 맨손으로 부순 거지. 산하 씨의 스탯은 그리 높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강산하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보았건만 그에게선 별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지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디버프를 아주 강하게 썼나 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