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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파티 모집(1)



강산하는 각성자 협회 부속, 전이 센터에 와 있었다.
‘던전’에 진입하기 위해선 전이석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제 갓 시작한 초보 헌터들이 전이석을 구입할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그들은 각성자 협회에서 제공하는 공용 전이석을 사용하러 이곳으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형님! 여기에요!”
최길영이 두두두 달려왔다.
언제나 그렇듯 녀석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으와~ 사람이 많네요. 전에 이신우 헌터님이 왜 개인용 전이석을 따로 가져오셨는지 알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이래서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
“형님, 하여간 다시 한 번 감사해요. 저랑 팀 맺어 주셔서.”
“감사는 됐어, 이번에 가서 넌 영 가망이 없는 놈이다 싶으면 바로 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
“네, 헤헤헤.”
순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 와중에 옆에 있던 사람이 히죽대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혹시 던전 가는 거 처음이세요?”
“네, 그런데요?”
“혹시 기초교육 안 받았어요? 던전에 갈 땐 최소 3명 이상의 인원은 갖추고 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쪽은 보니 딱 둘 뿐인 것 같아서.”
“헤헤, 괜찮아요. 우리 형님이 얼마나 센데요. 형님이 없앤 놈은 무려 B랭크도 못이긴… 읍읍!”
산하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길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형님, 왜 이러셉…….”
“요 입이 방정이지. 분위기 파악 좀 해.”
그 말대로 B랭크라는 말이 들린 순간 상대의 분위기는 살풋 달라져 있었다.
“B랭크가 뭐가 어쨌다고요?”
“네? 제, 제가 뭐랬나요?”
“방금 B가 어쩌고 했잖아요.”
“무… 무슨 말씀이세요. 서, 성적표 얘기에요. 대학 다닐 때 항상 D나 E만 받아서 B받으면 어떤 기분일까나. 그랬을 뿐이에요, 헤헤헤.”
“…….”
묘한 표정으로 길영을 바라보던 그 남자가 사라지자 산하는 길영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며 입을 열었다.
“너 심마니라는 게 뭔지 알아?”
“십만이요? 전 백만이 더 좋은데.”
“임마, 십만이 아니고 심마니! 산삼 캐러 다니는 사람들 말이다. 사람이 따로 재배하는 인삼 말고 산삼, 한마디로 자연산 말이야.”
“아~ 그게 그런 말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왜요?”
“한마디로 대박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사람들인데 그 심마니들은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 라고 소리를 치는 게 전통이야. 그런데 소리를 지른 동시에 재빨리 산삼을 캐서 그 자리를 피해야 해. 왜 그런 줄 알아?”
“왜, 왜요?”
“언제 누가 칼을 품고 달려와 산삼을 빼앗아 갈지 모르니까. 알겠냐? 돈벌이에 몰린 인간들은 다 똑같은 법이야. 그리고…….”
산하는 얼굴을 찡그리며 사라졌던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여기 있는 녀석들도 비슷해. 각성자보다 헌터란 말이 더 자주 쓰이는 이유가 던전에서만 활동하는 녀석들이 대다수라서 그렇다고 했지? 헌터, 즉 사냥꾼이란 말이다.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은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이야.”
“…….”
“여기 녀석들 대다수가 E랭크인데 너 혼자 B가 어쩌고 떠들어대면 당연히 건수 냄새 맡고 골치 아픈 것들이 관심 보이지 않겠냐? 그 쓸데없이 나불대는 버릇 못 고치면 머리랑 몸통이 생각보다 빨리 이별해야 할 거다, 임마.”
“헙…….”
그때부터 최길영은 자기 입을 꿰매듯 붙잡고 있었고 마침내 그들의 대기 번호가 전광판에 뜨자 산하와 함께 대기실 안쪽으로 부리나케 걸어갔다.
그곳은 파티가 던전에 돌입하기 전 마지막 체크를 하는 파티별 전용룸이었고 거기서 산하는 불편한 얼굴로 품속에서 마나 블레이드를 꺼냈다.
“형님, 어떠셨어요? 그거 잘 사용돼요?”
“글쎄다, 이걸 봐.”
그가 마나 블레이드를 들고 정신을 집중했지만 나타난 것은 고작해야 단검 정도의 희미한 칼날이었다.
그와 동시에 길영의 표정도 찡그려졌다.
“어라… 혹시 고장 났나요?”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지금 마나 부스터까지 사용해서 겨우 이만큼 나온 거야. 내 생각엔 이놈은 뭔가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 이 마나 블레이드라는 거, 정말 내가 쓸 수 있는 게 맞냐?”
“당연하죠, 형님은 디버퍼시잖아요. 디버프 능력은 마법 능력에 해당되니까 당연히 형님의 마력을 변환해서 칼날로 만들어 줄 텐데 왜 이것 밖에 안 나오지?”
“정말 고장이 났거나… 아니면 지금 시대에서 말하는 마력은 내가 아는 것관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산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 때엔 마법이나 마력을 쓰면서도 그게 뭔지 도통 모르고들 썼거든. 그냥 손에서 뭐 날아가면 마법인가보다 했지.”
“헤에… 그래요?”
“내가 아는 놈 중에 마법 사용자는 딱 셋이었는데 한 놈은 게임에 나오는 서양식 마법사고 다른 하나는 무당, 마지막이 되게 웃긴데 심리학 전공 교수였어.”
“무, 무당요? 교수?”
길영이 요상한 얼굴로 되묻자 산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마법사 놈은 자긴 반드시 제자가 하나 있어야 한다고 만나는 놈마다 자기 마법을 가르쳤는데 한 놈도 성공시킨 놈이 없었어. 무당의 부적은 효능 하난 기똥찼는데 그놈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휴지조각이 되더군.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대.”
“헐…….”
“그 심리학 교수는 꼴에 과학도라 마법은 안 믿는데 초능력은 인정한대. 그러면서 염동력을 신나게 쓰더군. 그게 그거지 무슨… 참 웃기지도 않아.”
도통 들어본 적 없는 얘기에 길영은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산하는 마나 블레이드의 손잡이 부분을 퉁퉁 두들겼다.
“각성자 중에도 마법이 가능한 건 따로 있나 싶어 그 세 놈이 서로 하는 짓을 바꿔서 해봤지만 결과는 꽝이었어. 결국 마법의 원리는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지. 그런데 이런 걸 만들어 냈다고?”
“어… 그러네요, 정말로.”
“너도 모르는 걸 보니 역시 지금도 마법의 원리는 밝혀내지 못한 모양인데 마력을 이용하는 이 무기를 도대체 누가 무슨 수로 만들어 낸 거냐고.”
“헤에… 정말 그런 건 생각도 못해봤네요.”
“하여간 이유는 몰라도 난 이 마나 블레이드를 제대로 쓸 수 없는 것 같다. 일단 이건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그 말은 곧!”
“넵?”
산하는 길영을 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네 녀석이 앞에서 잔챙이들 상대까지 다 해야 한다는 소리야. 각오하라고.”
“으이익~”
최길영의 입에서 괴상한 비명 이 터져 나왔다.

***

“오른쪽 봐!”
“으힉!”
“그거 맞고 휘청거리냐? 다리에 똑바로 힘줘! 다시 왼쪽!”
“으히에엑!”
훈련소 조교처럼 산하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울려 퍼졌다.
늌크 세 마리에 협공 당하던 길영이 몰매를 맞으며 휘청거리자 보다 못한 산하가 고함을 질렀다.
“엎드려, 임마!”
“으헥!”
늌크들의 허리춤을 강산하의 거대한 대검이 가로질렀다.
그리고 놈들은 트럭에 치인 야생동물처럼 저 멀리 벽으로 날려가 처박히며 즉사해 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린 길영의 머리에 꿀밤이 떨어졌다.
“아오~ 그 자식 진짜 답답하네. 버티는 건 얼추 버틴다만 뭐 반격할 타이밍을 전혀 못 잡냐.”
“아유~ 제 실력에 이 이상 더 어떻게 해요. 세 마리가 와서 사방에서 두들기는데 치명상 피하고 공격들 방어하면서 서 있는 것도 간신히 한다구요.”
“여긴 고작 던전 3층이잖냐. 늌큰지 뭔지 별로 세지도 않던데 저딴 것들한테도 쩔쩔매면 오늘 이 이상 내려갈 수 있겠어?”
“혀, 형님이 지금처럼 계속 이렇게 처리해 주시면…….”
“말이 되는 소릴 해, 임마! 저런 잔챙이들 쓸어버린다고 이거 꺼낸 게 대체 몇 번째야? 이젠 삭신이 다 쑤셔온다, 이 녀석아.”
두 사람의 던전 공략은 의외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최길영은 쓸 만한 탱커로서 적의 공격을 잘 받아냈지만 말 그대로 탱커, 그 이상 어떤 것도 하지 못했고 결국 산하의 대검이 적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번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체력을 사용하는 그 공격 방식 탓에 도저히 효율적인 던전 공략이 안 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길 가던 쥐새끼도 나더러 공격해 달라고 하겠다? 넌 손에 든 그 곤봉은 언제 쓸 거야?”
“아으~ 큰맘 먹고 장만한 스턴 메이슨데…”
길영의 손에 들린 건 한 손용 특수합금 곤봉으로 전기 충격까지 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무기였다.
나름 돈 들여 새로 장만한 무기였으나 지금의 길영은 그저 다른 손에 든 강화 플라스틱 방패로 적의 공격만 막는 데 급급할 뿐. 공격할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다.
“넌 아직도 몸이 굳어져 있는 게 문제야. 이게 무슨 게임인줄 알아? 죽을 기세로 싸우라고 했는데 뭘 그렇게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는 거야? 틈이 보이면 방패 살짝 치우고 바로 후려갈기라고.”
“그게요, 말은 쉽지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구요.”
“쳇, 지금으론 무린가…….”
골머리를 썩던 산하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3층 공략은 포기다. 도로 올라가서 귀환하자.”
“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둘 다 장기적으로 안 좋아. 20년 전처럼 우리 편 쪽수라도 많으면 모르겠다만, 공방의 밸런스가 중요한 이 던전 안에선 너도나도 그저 잔부상만 심해질 뿐이야.”
“…넵.”
결국 3층 공략에 실패하고 올라온 길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형님. 전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해서…….”
“됐어. 나도 이제야 던전이란 곳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겠다. 여긴 난전에 가깝던 게이트완 달리 포지셔닝이 확실하게 필요한 곳인 걸 알겠어. 지금 상태론 안 되겠다.”
산하는 아이 모니터를 켜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 최길영 - 랭크 E >
힘 : 10
민첩 : 8
체력 : 19
정신 : 14
협회 추천 포지션 : 탱커

< 강산하 - 랭크 E >
힘 : 13
민첩 : 13
체력 : 13
정신 : 13
협회 추천 포지션 : 특정불능

“지난 번 히든 던전 공략 이후로 네 스탯은 확실히 버티는 쪽으로 성장하고 있구나. 역시 탱커는 네 주요 포지션이 될 게 분명해. 3층이긴 하지만, 늌크들의 집단 공격에도 별 상처가 없다는 게 그 증거지. 넌 앞에서 버티고 난 적을 약하게 만들다가 크게 한 방을 노린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속적으로 적의 숨통을 끊어줄 딜러야.”
“그냥 형님이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 대검 말고 다른 간단한 무기를 쓰시면…….”
“난 그러기 싫다. 내가 각성자로 게이트에서 싸우던 내내 저놈을 사용해왔어. 이제 와서 내 전투 스타일을 통째로 바꾸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야.”
“음… 그럼 역시 딜러가 될 사람을 한명 더 팀에 넣어야겠네요. 제가 당장 헌터폰으로 찾아볼게요.”
“그래, 잘 구해봐라.”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산하의 머릿속에선 입 밖으로 나가지 않은 또 한마디가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 녀석이 너처럼 내 힘을 디버프라고 철썩 같이 믿어줄 눈치 없는 녀석이면 참 좋겠는데 말이다.’